취미

(5) 쌍커풀 수술의 손해

오완선 2018. 2. 5. 11:24



한 외신칼럼에서 본 재미난 기사가 생각난다. 그들의 가십거리로 올려진 한국사회는 '3대 왕국'이라는 화려한 수식어를 붙이고 있었다. 그 수식어의 내용은 데모왕국, 수험왕국, 성형왕국이다. 그 중 성형왕국이라는 수식어는 최근 한층 더 부각되고 있는 말인 것 같다.
얼굴성형술은 이미 세계에서도 한국을 따를 나라가 없다고 한다. 기뻐해야할 명예로운 1위인지, 쓴웃음만 나올 따름이다.
이렇듯 우리 여성들 중에도 거의 자생형 얼굴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빠르게는 10대 어린 학생들로부터 환갑이 훌쩍 넘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그 종류와 시술부위는 이미 수위를 넘어선 것 같다.
보톡스는 필수고, 쌍꺼풀 시술은 해를 거듭할수록 통과의례 행사로 자리매김하는 추세라고 한다. 조형미인 만연 현상의 사회, 우리 모두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할 문제가 아닐까? 성형의 득과 실을 따져보자.

우선, 한국형 성형수술의 선두주자로 발탁됐던 쌍꺼풀 사정부터 알아보자.

세상에 쌍꺼풀 없는 여자는 없다.

태어날 때부터 지녔던 선천적 쌍꺼풀도 있지만, 눈두덩 외피가 두꺼워 평소엔 잘 생기지 않는 눈꺼풀도 중요한 순간엔 생겨난다.

단지 그 쌍꺼풀은 워낙 점잖아서 일어날 때와 지울 때를 가리고 있을 뿐이다.

이 말을 믿기 어렵다면 오늘 밤에라도 당장 시험해 보라. 침대 머리맡에 손거울을 준비했다가 사랑하는 남편과 사랑을 나눈 뒤 제 얼굴을 비춰보라.

그맘때 제 얼굴에 일어난 쌍꺼풀은 필설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름답게 비칠 것이다.

그 쌍꺼풀은 날이 새어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른바 속눈꺼풀의 자리로 돌아가, '나는 쌍꺼풀 없다'는 여자로 남는다. 이야말로 은근슬쩍 제 할 짓 다하고도 점잖은 여자로 칭송받는 사람일 것이다.

이와 같은 소중한 눈꺼풀을 두고 쌍꺼풀 시술을 받았을 경우, 자연과 인공이 결합한 미태의 연출은 미태가 아닌 추태 그 자체일 것이다.

쌍꺼풀 수술의 손해는 또 있다.

눈썹과 눈 사이 눈두덩을 관상법에서는 전택궁이라고 한다.

40대 이전의 유산운, 주택운 등을 보는 곳이다. 제아무리 솜씨 좋은 시술자라 해도 쌍꺼풀을 만들자면 눈두덩의 간격을 줄이게 된다. 줄어든 눈두덩만큼 복도 감하는 꼴이다.

또 눈은 가정궁이자 애정궁이다.

쌍꺼풀진 강렬한 눈빛으로 구애를 하자고 들면 섹시한 모습에 매료되기도 하겠지만, 이면에는 까다로운 성격이 숨어있다.

혹 쌍꺼풀 수술에 의해 흰자위가 두드러져 보이기라도 하면 삼백안 특유의 히스테리컬한 성격을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부드러운 눈을 원했던 쌍꺼풀이 도리어 화가 되어 원만한 가정의 파괴를 가져올 수도 있다. 특히 조심해야 할 시기는 30대 중후반기이다.

남성은 가급적 쌍꺼풀진 동그란 눈을 원하지 않는다. 남성 안상은 길쭉하게 생긴 꼴에 점수를 더 준다. 그 길쭉한 눈에서 사회적 위상을 보기 때문이다.

결국 쌍꺼풀 수술은 출세를 가로막는 걸림돌이 된다. 연예인이 되어 많은 사람에게 어필할 요량이라면 또 모를까.

하지만 눈이 지나치게 처져 눈꼬리가 깊게 파였거나 안검하수와 같은 질병에 의해 감은 듯 늘어진 눈의 경우, 쌍꺼풀 수술은 위의 열거한 단점을 감안하더라도 또 다른 단점을 막기 위해 득(得) 쪽으로 손을 들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말하지만 혼전 여성의 쌍꺼풀 수술은 자멸행위이다.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혼 후 상황을 본 이후에 실행해야 할 것이다.

결혼 후 남편과의 사랑 속에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쌍꺼풀, 그 사랑의 메시지는 제 남편 한사람에게만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또 다른 목적이 없다면 말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