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마르가 닳도록 스페인어] @에 대한 짧은 고찰

오완선 2018. 4. 2. 21:17


흔히 우리가 전자 우편 주소에서 사용하는 기호인 ‘@.’ 한글로는 그 모양을 따 ‘골뱅이’, 영어로는 ‘앳(at)’인 이 기호는 스페인어로 ‘아로바(arroba)’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e-mail 주소의 형식에서 이 기호를 쓰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좀처럼 골뱅이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 같다.

내 경우엔 간혹 다이어리나 SNS에 주말에 갔던 맛집이나 친구와 함께 간 예쁜 카페의 이름을 적고 싶을 때 ‘@ + 장소’의 형식으로 이 기호를 활용할 때가 있으나, 영어에서 장소를 나타낼 때 그 앞에 전치사 ‘at’을 써주는데서 기인한 것이라 한국인들에게 널리 애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활용도 점수 면에서 그리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이 기호가 재미있게도 최근 스페인어 화자들 사이에서 성차별을 방지하고 이를 실천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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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스페인어의 명사에는 남성형, 여성형이 존재한다. 자연스럽게 명사를 꾸며주는 역할을 하는 형용사 역시 수식해주는 명사의 성, 수에 맞춰 함께 변화시켜줘야한다. 그래서 스페인어를 배우는 많은 학생들이 형용사나 명사의 단어를 적을 때 단어의 성을 꼭 표기해두는 버릇이 생긴다. 가령 ‘예쁜, 멋진’에 해당하는 스페인어 형용사를 적을 때, ‘guapo(a)’ 또는 ‘guapo/-a’와 같이 반복적이고 습관적으로 ‘-a’를 뒤에 붙여 o를 a로 바꿀 수 있음을 알아볼 수 있도록 표기하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수많은 명사와 형용사를 매번 이렇게 필기 할 수는 없으므로 이 단어들의 대표형을 각각의 명사나 형용사의 ‘남성 단수형’으로 할 것으로 약속하였다. 즉, 사전에서 단어를 검색할 때도, bonita(여성 단수), bonitas(여성 복수), bonitos(남성 복수)가 아닌 대표형인 bonito(남성 단수)로 검색해야 하고 반복적으로 성, 수 표기를 해놓지 않았더라도 남성 단수형을 보고 성수변화를 짐작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누군가로부터는 “왜 남성 단수형이 기본형이지?”라는 공격을 피할 수 없다.

나로서는 스페인어를 처음 배울 때 부터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부분이었으나 정말 왜 남성형이 기본형이 되어야 하는 것인지, 여성 단수형이 기본형이 되면 안 되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스페인어에서는 ‘우리’, ‘그들’ 등의 다수를 지칭하는 인칭대명사의 경우, 남녀 구성성비와 상관없이 혼성집단의 경우 남성 복수형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우리’를 뜻하는 스페인어는 남성으로만 이루어진 집단의 경우 ‘nosotros’,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경우 ‘nosotras’로 말하다. 하지만, 가령 여성이 99명인 집단에 남자가 1명만 있더라도 그 집단은 남성 복수형에 해당하는 ‘nosotros’를 써야한다는 점에서 많은 여학생들이 불쾌함을 표현한다. 매번 자신이 속한 집단에 남자가 많은지, 여자가 많은지를 하나하나 세어야 하는 불편함, 귀찮음이 있으니 이러한 선택이 불가피해보이기는 하나, 정말로 ‘여성형을 기본형으로 하면 안 되는 것일까?’라는 의문의 제기는 타당해 보인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제기’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스페인어에서 ‘arroba’의 사용이 눈에 띈다. ‘@’라는 기호의 모양을 뜯어보면 안쪽에 a를 커다란 o가 감싸고 있어 하나의 기호 안에 모음 ‘a’와 ‘o’가 함께 들어가 있다. 그리고 이 기호를 ‘chic@s’, ‘amig@s’, ‘simpátic@s’와 같이 사용하여 단어의 남성, 여성형을 한꺼번에 표현한다. 실제로 인터넷이나, 일상생활에서 많이 활용되고 있는데 반복적으로 성수표기를 적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 경제적이고 성차별적인 느낌도 피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름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성을 모두 사용하는 움직임이 있는 것처럼 @의 사용이 차별을 피하는 운동에 따른 작은 표현의 수단으로서 기능하는 것이라고 보면 맞겠다.

생각지도 못했던 ‘arroba’라는 기호 하나로도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따르던 언어의 쓰임 내지는 법칙을 전복하여 생각해보고, 새로운 시각과 행동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언어의 법칙을 하루아침에 뒤바꾸지는 못하겠으나 언어에 깃들어 있는 단일화된 생각을 끄집어 내보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스페인에서, 예전에는 남자들이 지배적이었던 직업군의 단어들인 ‘jefe(사장)’, ‘presidente(대통령)’등의 단어를 각각 ‘jefa’, ‘presidenta’와 같이 여성형을 만들어 사용한지 오래다. 최근 우리 한국 사회에서도, 남성 중심적 또는 권력중심적인 구조에 계속해서 물음을 던지고 흔들어보려는 시도들이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이라든지 ‘Me too 운동’, ‘Me too 지지 선언’ 등에 나타나고 있다. 불합리함에 질문을 제기하고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잡아 나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그러한 움직임의 실천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될 수 있다고 감히 ‘arroba’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곽은미/마르가 스페인어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