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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만 자작나무의 초록 속삭임

오완선 2018. 5. 28. 11:31


입력 2018.05.25 03:00

[인제 자작나무숲] 원대리 자작나무 명품 숲

불에 탈때 ‘자작자작’ 소리… 17~20m 웃자라면서 스스로 가지치기 해
흰색과 녹색의 산소탱크… 1㏊에서 생산하는 산소 20명이 1년간 숨쉴수있어
삼림욕 명소… “쏴” 나뭇잎 소리 들으며 다양한 탐방로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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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록을 대하고 있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전망대에 서서 초록으로 갈아입은 자작나무 숲과 눈높이를 맞추니 수필 ‘신록예찬’의 한 구절처럼 속세의 때가 스르르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한준호 영상미디어 기자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것은 역시 이즈음과 같은 그의 청춘 시대―움 가운데 숨어 있던 잎의 하나하나가 모두 형태를 갖추어 완전한 잎이 되는 동시에 처음 태양의 세례를 받아 청신하고 발랄한 담록(淡綠)을 띠는 시절이라 하겠다. (중략) 초록이 비록 소박(素朴)하고 겸허(謙虛)한 빛이라 할지라도 이러한 때의 초록은 그의 아름다움에 있어 어떤 색채에도 뒤서지 아니할 것이다.'

이양하는 수필 '신록예찬'에서 신록에 있어서도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5월이라 했다. 5월은 신록을 이루는 나무와 그 아래 깃들어 사는 풀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 좋은 계절. 때마침 산림청이 5월 '휴양·복지형 국유림 명품 숲 10곳'을 선정, 발표했다. 10곳 중에서도 금산 편백숲과 함께 숲 여행가들이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숲'으로 꼽은 강원도 인제 원대리 달맞이산 자작나무숲(인제읍 원남로 760)으로 갔다. 1시간을 걸어 자작나무숲과 마주한 순간 '5월이 계절의 여왕'이란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작년에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길 사이에 조성된 나무 데크로 탐방객이 걷고 있다.
순백 신부 닮은 수만그루 자작나무

소나무 해충인 솔잎혹파리가 무자비하게 휩쓸고 간 소나무 숲을 대신한 건 병충해에 강하다는 70만그루의 자작나무였다. 종이와 가구의 목재를 얻기 위해 심었다던 키 작은 자작나무는 어느새 자라 숲을 이뤘고 그 후로부터 30년쯤 지난 지금 숲을 찾은 사람들을 아낌없이 품어주는 휴식처가 되고 있다.

미세 먼지로 숨 쉴 자유조차 빼앗긴 봄으로부터 도망치듯 달려와 선 곳은 강원도 인제 원대리 달맞이산(달맞이봉) 해발 700m에 있는 자작나무숲이었다.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이라는 표지판을 보며 숲으로 들어서자 키 큰 나무는 마치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희고 긴 몸뚱이를 바람에 따라 느리게 흔들거렸다.

"자작나무의 꽃말이 뭔 줄 아세요? '당신을 기다렸어요'예요. 항상 눈을 뜨고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죠." 숲 해설을 맡은 원대리 자작나무숲 해설가 김달환(65)씨가 자작나무의 한 부분을 가리키며 말했다. 자세히 보니 나무 기둥에서 잔가지가 떨어진 부분의 모양이 마치 사람 눈동자처럼 생겼다.

"자작나무는 17~20m 웃자라면서 스스로 가지치기를 하죠.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잔가지까지 영양분이 가질 않아 도태되면서 낙지(落枝)하는 것인데, 쓸데없이 여기저기 가지를 뻗치지 않고 떨어내면서 하늘을 향해 자라는 모습이 강직하게 느껴집니다."

온통 초록투성이로 울울창창 무성한 녹음을 자랑하는 여느 숲과 달리 하얀색과 초록색 두 색깔로 이뤄진 자작나무숲은 깨끗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다.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여진 우리말 이름. 한자로는 백화(白樺) 나무라고 한다. '결혼식을 올린다'는 표현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하는데 이때 화촉은 자작나무(樺) 껍질로 만든 초를 의미하기도 한다. 김 해설가는 "천마도 바탕 재료도 자작나무 껍질"이라며 "천마도가 훼손 없이 비교적 온전히 보존될 수 있었던 건 기름 성분과 방부제 성분이 많은 자작나무 껍질때문이라고 한다"고 했다.

"자작나무는 여자일까요, 남자일까요?" 김 해설사의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하니 "손으로 살며시 만져 보라"고 한다. 자작나무에 손을 대니 하얗고 보드라운 살결 같은 표면에서 뽀얀 분(粉)이 손끝에 묻어난다. 가루분으로 곱게 화장한 새색시의 피부 같다. "자작나무는 '순백의 신부'에 자주 비유된다"고 했다.

미세 먼지에서 탈출

3.2㎞ 원정임도를 걸어 만난 ‘속삭이는 자작나무’. 자작나무 숲길이 시작되는 것을 알리는 표시다.
인근 수산리 자작나무 군락지와 함께 인제 대표 자작나무 군락지로 꼽히는 원대리 자작나무숲은 138㏊로 단일 군락지로는 최대 규모다. 그 중 입구부터 임도를 따라 41만 그루의 자작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활엽수 중 피톤치드를 많이 뿜어내는 자작나무숲이 치유의 숲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삼림욕과 아토피 피부염에 좋다고 알려지면서부터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산업연구과 강진택 박사에 따르면 자작나무숲은 1㏊당 연간 6.8t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데 이는 승용차 3대가 1년 동안 내뿜는 이산화탄소량과 비슷한 수준이다. 자작나무숲 1㏊는 20명이 1년 동안 숨 쉴 수 있는 산소를 생산해낸다. 기상 상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강원지방기상청과 강원대 부속 환경연구소의 조사로는 원대리 숲의 경우 5월 말 하루 중 오후 1시에 피톤치드 농도가 특히 짙은 것으로 나타났다.

원대리 자작나무숲 내 '속삭이는 자작나무숲'의 중앙광장 쉼터 일대가 삼림욕 명소다.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자작나무 움집을 중심으로 탐방객들이 모여 앉아 가져온 물로 목을 축이거나 간단한 간식을 꺼내 먹는다. 원대리 자작나무숲으로 전화(033-461-9696)해 사전 신청하면 들을 수 있는 자작나무숲 해설도 중앙광장 쉼터에서 진행된다.

산책로 코스는 중앙광장 쉼터를 중심으로 원을 그린다. 자작나무 코스(0.9㎞)를 비롯해 치유 코스(1.5㎞), 탐험 코스(1.1㎞) 등 다양한 탐방로가 마련돼 있다. 숲의 '주류'인 자작나무 사이에서 깃들어 사는 '비주류' 국수나무, 오갈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도 볼 수 있다. 자작나무숲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가면 작년에 새로 조성한 나무 데크 길로, 오른쪽으로 가면 산 지형을 그대로 살려 놓은 오솔길을 따라 걸을 수 있다. 1㎞ 정도의 자작나무 코스를 느린 걸음으로 한 바퀴 천천히 둘러보는 덴 40~50분 정도 걸린다.

데크 길로 직진하면 계곡 코스와 만난다. 좁다란 데크 길 양옆으로는 자작나무가 장막을 두른 듯 끊임없이 이어진다. 걷다 보면 데크 한가운데에 우뚝 솟은 자작나무와 조우하기도 한다. 데크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오른쪽 흙길로 걸어가면 다시 호젓한 오솔길로 진입한다. 빼곡한 자작나무숲 사이를 파고드는 햇살을 구경하기 좋은 뷰 포인트들이 오솔길 코스에 숨어 있다. 고개를 들어 보니 파란 하늘로 쭉쭉 뻗은 자작나무가 몸을 흔들었다. 나뭇잎이 흔들며 내는 '쏴' 하는 청아한 소리가 속세의 소음에 찌든 귀를 씻어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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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나무숲과 원대임도 사이를 잇는 계곡 길 구간은 시원한 계곡을 곁에 두고 걷는다.
자작나무숲은 데크 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사실상 끝난다. 이어지는 길은 '원대임도'와 이어진 계곡 길. 며칠 전 비가 많이 와 계곡 물소리가 요란했다. 다소 질척거리는 계곡 길을 걷다 보니 이번엔 경쾌한 목소리로 '도도솔 미' 음에 맞춰 지저귀는 새소리가 들렸다. 숲 해설가가 새소리에 맞춰 웃으며 가사를 붙인다.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는 것 같지 않나요? 검은등뻐꾸기라는 새인데 지저귀는 소리가 마치 '홀딱 벗고'처럼 들린다고 해서 별명이 '홀딱 벗고 새'예요."

위로 올려다보기만 한 자작나무와 눈높이를 맞춰보고 싶은 마음에 하산하기 전 6코스 부근에 있는 전망대에 섰다. 전망대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기'에 좋은 위치다. "자작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은 요란하지 않죠. 자작나무를 보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 나무는 부러지기 마련이니 유연하게 살라'고 답을 주는 것 같아요." 김 해설사가 빙그레 웃었다.

■여행정보

운영 기간: 하절기 5월 3일~10월 31일 오전 9시~오후 6시(입산 가능 시간은 오후 3시까지), 동절기 12월 16일~1월 31일 오전 9시~오후 5시(입산 가능 시간은 오후 2시까지).

탐방 코스: 안내초소에서 원대임도(2.7㎞, 1시간)나 원정임도(3.2㎞, 1시간 20분)를 지나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 진입. 임도를 정비해 놓긴 했으나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자신 있게 올라갔다가 나무 지팡이 짚고 오기 십상. 숲 해설가가 추천한 코스는 원대임도를 이용해 계곡 길을 거쳐 속삭이는 자작나무 숲에 진입, 산책 후 원정임도 방향 전망대에 들렀다가 하산하는 것. 최근 자작나무 숲 임도 사이 작은 오솔길도 개방됐다. 호젓한 ‘샛길’로 빠져보고 싶다면 원정임도 구간의 제7코스를 추천한다.

편의 시설: 입산하면 편의 시설이 없다. 계곡 길 중간쯤 사유지에 개인이 운영하는 매점 ‘계곡 쉼터’가 유일한 편의 시설. 화장실 시설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게 마음 편하다.

주변 맛집: 주차장 부근에 음식점이 서너 개 모여 있다. 주차장에서 원대수변공원 방향, 차로 3~5분 거리에 있는 옛날원대막국수(사진·033-462-1515)는 재료가 모두 소진되면 일찍 문 닫기도 하는 40년 전통의 ‘줄 서는 맛집’이다. 직접 뽑아낸 메밀면으로 만든 막국수(물·비빔 7000원)에 곰취 편육(1만8000원)을 곁들여 먹는다. 두툼하고 노릇노릇하게 부쳐낸 감자전(3장 1만2000원)도 안 먹고 오면 후회할 메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24/201805240197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