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8.05.11 04:00
[캐나다 기차여행] 세계3대 호화기차 '로키 마운티니어'
캐나다 로키산맥을 가로지르는 기차 '로키 마운티니어(Rocky Mountaineer)'에서만 통하는 농담이 있다. 밖이 훤히 보이는 큰 창문 너머 무언가 움직이는 물체가 나타나면 일단 "곰이다!"라고 외치는 것. 하지만 자세히 보면 등산객이나 사슴, 순록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죽기 전 이 기차를 타 보는 게 소원이었다는 백발의 노인이 우렁찬 목소리로 "곰이다"를 외친다. 번번이 속아 넘어갔지만, 야생 흑곰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는 설렘이 의심을 압도한다. 혹시 몰라 고개 돌리니 곰같이 생긴 사슴 한 마리가 마른 풀만 우적우적 씹고 있다. 또 속았다는 탄식과 웃음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선생님, 거짓말쟁이셨군요!" 와인을 따라주던 승무원이 눈을 흘기며 웃는다. 농을 던진 노인이 두 볼 가득 익살을 머금은 채 답한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제가 노안이 왔나 봐요."
매년 4월부터 10월 사이 운행하는 로키 마운티니어는 캐나다 서부 해안도시 밴쿠버를 출발해 로키산맥을 가로지른다. 시속 55㎞로 천천히 달리다가 볼거리가 있는 지점에서는 시속 20~30㎞로 속도를 낮춘다. 일생 한 번 볼까 한 자연경관이 끝없이 펼쳐진다. 승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한다. '뿡뿡' 울리는 기차 경적 속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어떤 신비함이 깃들어 있다. 나이 팔십 넘은 노인이 장난기 넘치는 양치기 소년으로 변하게 하는 신비함이다.
기차에 오르자 직원 셋이 웃으며 자리를 안내했다. 호화 기차답게 객실마다 승무원 두 명과 기내식을 담당하는 요리사 한 명이 함께 탄다. 이 여행의 목적은 걸어선 쉽사리 갈 수 없는 로키 산맥의 풍경을 천천히 감상하는 것. 천장부터 좌석까지 기차의 절반가량이 유리 창문으로 돼 있어 시야가 확 트였다.
우렁찬 경적과 함께 출발한 기차는 밴쿠버를 등지고 프레이저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로키산맥에서 시작해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밴쿠버 남쪽 조지아 해협으로 흘러드는 길이 1369㎞의 강이다. 1808년 이 강을 탐험한 사이먼 프레이저(Simon Fraser)의 이름을 땄다. 신나게 달리던 기차는 강폭이 가장 좁아지는 '지옥의 관문(Hell's Gate)'에 가까워지자 속도를 낮췄다. 승무원이 마이크를 들어 랩하듯 이 명소와 관련된 일화를 쏟아냈다. 강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밴쿠버의 명소 개스타운 증기시계에 다다른다는 이야기다.
지옥의 관문을 지나 산 중턱까지 올라온 기차는 푸른 숲속을 한참 내달린다. 산의 복부를 관통하는 긴 터널을 여럿 지나 작은 도시 애슈크로프트의 서쪽에 다다르면 초록빛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갑작스레 잿빛 협곡이 펼쳐진다. 검은 혈암(頁巖)으로 이뤄진 길이 10㎞의 블랙 캐니언이다. 기차 왼편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빛 톰슨강이 흐르고 오른편에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햇빛을 가린다.
로키 마운티니어는 해가 떠 있는 시간에만 운행한다. 오후 5시쯤 기차는 밴쿠버에서 북동쪽으로 355㎞ 떨어진 캠룹스에 멈춰 섰다. 톰슨강으로 둘러싸인 작은 도시로 목축·벌목업이 주 산업이다. 로키산맥으로 가는 여행객들이 반드시 지나쳐 가는 곳이라고 해 '로키로 가는 길목'이라 불린다. 덕분에 인구 6만7000명의 작은 도시임에도 묵을 수 있는 호텔이 많다. 로키산맥의 발목에서 짐을 풀어 하루를 보냈다.
백발의 산들이 기차를 굽어보고
기차는 오전 7시가 되기 전 다시 출발한다. 기차 직원들이 승객이 묵는 호텔로 마중 나와 짐을 옮겨주고, 버스에 태워 기차까지 안내한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거나 교통수단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법 같은 여행의 비결이다.
기차는 다시 경적으로 승객들을 홀리며 크레이글리치라는 마을로 향했다. 이 작은 마을에는 캐나다 횡단 철도의 역사가 담겼다. 150여 년 전 캐나다 연방 설립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주는 캐나다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연방 정부가 브리티시컬럼비아주를 회유하기 위해 철도 건설을 제안했고, 로키산맥을 통과하는 철도 건설이 시작됐다.
캐나다 주요 도시 곳곳에 차이나타운이 생겨난 것도 이때다. 험준한 로키산맥에 철도를 놓는 일은 목숨을 거는 작업이었다. 자국에서 인력을 구할 수 없던 캐나다 정부는 중국 등 아시아에서 건설 인력을 수입했다. 많은 아시아인의 목숨을 앗아간 공사는 1885년 11월 7일 이곳 크레이글리치 철도에 마지막 못을 박으며 끝났다.
천국 같은 풍경이 펼쳐지다 갑자기 새까맣게 타버린 숲이 펼쳐지기도 한다. 지난해 7월 브리티시컬럼비아를 휩쓴 산불 때문이다. 서울 면적 세 배에 달하는 1880㎢가 타버렸고 산불 진화에 든 돈만 9000만캐나다달러(약 800억원)였던 초대형 화재였다. 하지만 로키산맥의 생명력은 질겨 봄소식 들은 새싹과 작은 나무들이 새까만 재 사이를 비집고 올라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기차는 이제 키킹호스강을 끼고 달린다. 1858년 이곳을 탐험한 제임스 헥터가 이 강의 이름을 지었다. 이 강 주변은 지형이 험준하기로 유명하다. 헥터를 앞서 가던 말이 험한 지형에 놀라 발길질했고, 이에 맞은 헥터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다행히도 큰 부상을 입지 않은 헥터는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강 이름을 '발길질하는 말'이라는 뜻의 키킹호스(Kicking Horse)로 지었다.
강길 따라 하늘을 향해 달리던 기차는 여행 최고점인 해발 1626m의 콘티넨털 디바이드(Continental Divide·로키산맥 분수계)에 달한다. 꽤나 높이 올라온 것처럼 느끼자마자 높이 2766m의 캐슬 마운틴이 우습다는 듯 기차를 굽어본다. 4월에도 눈으로 뒤덮여 백발을 한 산들을 지나다 보면 어느새 기차 여행은 막바지에 이른다.
그림 같은 호수 레이크 루이스를 지나 종착지인 밴프에 가까워졌다. 기차가 부리는 마법이 끝을 보일 때 어디선가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왼쪽에 곰이다!" 1박2일 동안 스무 번은 넘게 들었던 이 농담의 무게가 이번엔 달랐다. 고개 돌린 곳엔 정말로 마차 크기만 한 야생의 흑곰이 느릿느릿 숲속을 향하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해 화장실 갈 때 직원 부축을 받던 노인까지 의자를 짚고 벌떡 일어섰다. 200여 명의 눈길이 느껴졌을까. 곰이 멈춰섰다. 고개를 돌려 기차를 힐끗 바라보더니, 다시 숲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행 정보
코스: 로키 마운티니어 기차 코스는 네개다. 1밴쿠버~캠룹스~레이크루이스~밴프 2밴쿠버~캠룹프스~재스퍼 3밴쿠버~휘슬러~퀘스넬~재스퍼 4시애틀~밴쿠버~재스퍼~레이크루이스~밴프 코스다. 기사에 소개한 코스는 1이다(지도 참조).
비용: 객실은 실버리프와 골드리프 등급으로 구분된다. 등급에 따라 제공되는 음식과 묵는 호텔이 다르다. 5~9월 실버리프 가격은 1799캐나다달러(약 150만원)부터 시작한다. 정착지와 출발 시기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정보: 로키 마운티니어 정보는 캐나다 관광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keepexploring.kr/mosaic/travel/tView/rm). 여행 상품 문의는 여행사 샬레트래블.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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