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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도 필요없다...잠재력 무궁무진한 '열전 반도체'

오완선 2018. 6. 27. 14:29


입력 2018.06.27 06:00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 2018’에서 매트릭스 인더스트리라는 회사가 선보인 한 스마트 워치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파워 워치'라는 이름의 이 스마트 워치의 외관은 여느 스마트 워치와 다를 게 없어 보이지만, 이 제품이 주목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충전이 필요 없다는 점입니다. 

충전이 필요 없는 스마트 워치 ‘파워 워치'. / 매트릭스 인더스트리 홈페이지 갈무리.
그 비결은 ‘체열(인체에서 발생하는 열)’인데요, 사람 손목 위 피부와 스마트 워치 뒷면의 온도 차를 이용해 전기를 만드는 원리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만큼 최소한의 에너지로 작동하기 때문에 디스플레이는 흑백이지만, 스마트 워치로서 꼭 필요한 기능만 제공한다면 매번 충전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더 큰 제품일 것입니다.

이처럼 열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또는 전기 에너지를 열 에너지로 변환하는 것을 ‘열전(Thermoelectric)’이라고 합니다. 

열전 현상이 나타나는 원리는 이렇습니다. 성질이 서로 다른 물체의 양쪽에 전위 차를 걸어주면 전류가 흐르면서 한쪽은 열을 발생하고, 다른 한쪽은 열을 흡수하며 양쪽에 온도 차가 생기게 됩니다. 반대로 양쪽에 온도 차를 주면 전위 차가 발생해 전력이 생산됩니다. 전자를 ‘펠티어 효과', 후자를 ‘제벡 효과'라고 합니다. 

성질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반도체를 이용한 열전 반도체는 하나의 소자로 펠티어 효과와 제벡 효과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재미있는 물건입니다. 열전 반도체에 전기를 공급하면 한쪽은 차갑게 되고, 다른 한쪽은 뜨겁게 되기 때문에 물체나 물질을 식히거나 가열하는 용도 모두에 쓸 수 있습니다. 전기가 필요할 때는 열전 반도체에 열을 가하면 됩니다. 열을 이용해 물을 끓인 뒤 여기서 발생하는 증기로 터빈을 작동시켜 전기를 만드는 등의 복잡한 과정이 필요없습니다.

실제 우리 주변에서 열전 반도체를 활용한 예로는 냉·온수를 뚝딱 만들어내는 정수기를 들 수 있습니다. 또 열전 반도체는 원하는 온도를 비교적 정확하게 맞출 수 있기 때문에 온도에 민감한 특별한 용도의 냉장고나 온장고를 만들기에도 적합합니다. 자동차 엔진 등에서 발생하는 열은 주위 부품 수명에도 좋지 않을뿐더러, 그냥 버려지는 에너지가 되는데 열전 반도체를 이용하면 이 열을 조금이라도 전기로 재활용할 수 있습니다. 

온도 차를 이용해 전력을 만드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a)과 전기를 이용해 만든 온도 차를 냉각에 활용하는 과정을 표현한 그림(b). / Smart Material 제공
무엇보다 열전 반도체는 별도의 냉매가 필요없기 때문에 가스 방식의 컴프레서보다 친환경적이라는 점에서 더욱 미래 지향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89년 사용이 금지된 염화불화탄소(CFC)의 대체제로 쓰인 수소불화탄소(HFC)도 온실효과가 이산화탄소의 1000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세계 각국은 2021년 HFC 사용을 동결하고, 단계적으로 줄여 나가기로 합의했습니다.  

이렇게 장점이 많은 열전 반도체인데 왜 우리는 여전히 컴프레서나 터빈 발전과 같은 기존 방식을 더 많이 쓸까요. 아직은 열전 반도체의 전력 대비 냉각·가열 효율, 투입 열 대비 전력 생산 효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냉장고 컴프레서와 비교하면 열전 모듈은 상대적으로 소음도 적고, 냉·온 변환이 가능하고, 모듈 크기도 컴프레서 절반 수준으로 제품 소형화에 도움이 되지만, 가장 중요한 성능 측면에서 3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열전 반도체는 발전 시 소음이 전혀 발생하지 않고, 복잡한 기계장치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고장도 적게 납니다. 하지만, 증기를 이용한 터빈 발전 시스템과 비교하면 성능이 절반 수준입니다. 

이렇듯 지금까지는 ‘가성비'에서 밀린 열전 반도체지만, 최근 소비전력 대비 냉각·가열 성능을 높일 수 있는 고효율 소자 기술이 발전하면서 열전 반도체 시장이 빠른 성장세를 보일 전망입니다. 시장조사업체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전 세계 열전 반도체 시장 규모는 2017년 4억7155만달러(5240억원)에서 2020년이면 6억2673만달러(7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초기에는 냉각 용도의 시장 수요가 많지만, 차차 발전 용도의 시장 수요가 많아질 것이란 관측입니다.

특히 최근 주거 공간의 효율성이 강조되면서 리빙·다이닝·키친(LDK)으로 구별되는 전통적인 개념에서 벗어난 신개념 가전의 등장은 열전 반도체에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입니다. 주방의 주인공격인 냉장고만 해도 800~900리터에 달하는 메인 냉장고에 이어 중소형 세컨 냉장고를 함께 쓰는 가정이 많아졌습니다. 나아가 최근에는 주방 외 공간에서 쓸 수 있는 식품별로 특화된 써드 냉장고까지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와인 냉장고를 비롯해 올 여름 출시 예정인 협탁 냉장고는 간단히 음료수 정도만 보관할 수 있는 적은 용량이지만, 마치 가구 같은 디자인으로 방이나 거실 인테리어와 잘 조화되는 점이 특징입니다. 소용량인 만큼 높은 냉각 성능을 요구하지 않고, 소음에 민감하기 때문에 열전 반도체가 제격입니다. 

여러 개의 열전 반도체 소자를 결합해 와인 셀러에 최적화한 열전 모듈. / LG이노텍 제공
국내에서는 열전 반도체 방식 냉장고에 대한 에너지 규제가 없지만, 유럽연합(EU)의 경우 지나치게 에너지 효율이 낮은 등급의 제품에 대해서는 규제를 하는 편입니다. EU의 에너지 규제가 전반적으로 강화되는 추세이기 때문에 향후 열전 반도체 방식 냉장고에 대한 규제도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기술 수준의 열전 반도체 방식 냉장고는 국내 에너지 소비효율 둥급 기준으로 아직 5등급에도 못 미칩니다. 열전 반도체 소재에서부터 소자 구조, 모듈 패키징 등 에너지 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기술 개발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이유입니다. 열전 반도체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서 최적화된면 공장이나 대형 선박 등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폐열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하는 차세대 폐열 발전 시스템도 등장할 전망입니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의 두뇌 격인 시스템 반도체와 디지털 데이터가 저장되고 처리되는 메모리 반도체 말고도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 새로운 반도체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출처 :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6/22/201806220263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