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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길은 ‘벳푸’로 통한다

오완선 2018. 12. 22. 15:38


[조성하 여행 전문기자의 休]규슈 그랜드루트

고온 고압의 온천 수증기가 굴뚝을 통해 공중으로 배출되는 장면. 여기는 일본에서 가장 크고 최고라 불리는 온천타운 규슈의 벳푸. 지구의 11개 온천 천질 가운데 10개를 갖춘 온천 천국으로 저 풍경은 ‘100년 이내 사라지지 말아야 할 풍경’(일본)으로 선정된 벳푸의 진면목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그 무대를 일본으로 옮기면 이런 말도 가능하다. ‘모든 길은 에도(江戶)로 통한다.’ 에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망 후 전국이 동서로 나뉘어 천하의 대세를 잡기 위해 요동칠 당시 동군(東軍)의 수장 도쿠카와 이에야스가 서군과 벌인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승리해 새로 연 에도시대(1603∼1868년) 막부의 새 수도(현재의 도쿄)다. 그리고 당시 혼슈(일본 열도의 네 큰 섬 중 가장 큰 것)는 에도에서 뻗어 나간 다섯 길로 연결됐다. 이름 하여 ‘에도 고카이도(五街道)’. 이 중 도카이도(東海道) 나카센도(中山道)는 옛 수도 교토(京都)를 각각 태평양 해안을 따르거나 혼슈 중앙을 관통해 이었다. 고슈(甲州)·오슈(奧州)카이도는 야마나시와 후쿠시마현을, 닛코(日光)카이도는 닛코(도치키현)까지 이어졌다.  

그렇다면 규슈(네 큰 섬 중 서남단 것)는 어땠을까. 에도시대 규슈의 9소국(小國)은 에도를 해로(세토내해)와 육로(도카이도)로 오갔다. 모지(기타큐슈시)∼난바(오사카시)는 해상(446km), 난바∼에도는 육상 루트. 모지는 현재 부관페리가 오가는 혼슈 최남단 시모노세키(下關·야마구치현)와 마주한 규슈 최북단 항. ‘관문관리청’이란 모지(門司)의 뜻풀이 그대로 ‘일본지중해’ 세토내해로 진입하는 선박을 통제하던 곳이다. 그런 지정학적 이유로 규슈의 육로는 이 모지로 향했다. 그런데 메이지유신 이후 변화가 일었다. 구심점이 벳푸로 옮겨간 것인데 근대화로 열리게 된 온천관광이 세계적인 온천타운을 중심으로 발달해서다.  

아소-구주국립공원의 유후산 아래 쓰카하라 고원 전망대의 풍경. 왼편 위가 온천휴양지 유후인이고 오른편 길은 23.3km 거리의 벳푸와 유후인을 잇는 현도11호선(오이타자동차도로). 규슈 그랜드 루트는 저 유후인에서 히타로 이어진다.

벳푸: ‘온천천국‘ 일본서도 자타공인의 최대·최고 온천관광지. 그뿐이 아니다. 관광 마케팅과 산업도 최첨단이었다. 일본 최초 수세식 양변기가 설치된 온천료칸 개장(1924년), 세계 최초의 미모 여성 가이드 동승 관광버스 운행(1925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벳푸온천 홍보 퍼레이드(1928년), 할리우드 스타를 태운 범선의 벳푸 기항 및 온천관광(1929년) 등등. 21세기 들면서는 이웃한 유후인이 벳푸에 이어 일본 최고 온천휴양지로 부상하며 벳푸는 ‘규슈관광루트 중심‘이 됐다. 그리고 올해는 ’규슈 그랜드 루트‘ 개척 원년. 주인공은 지난 세기 이 모든 혁신을 주도했던 90년 역사의 벳푸 향토 기업 가메노이 버스다.  

규슈 그랜드 루트: 규슈 관광의 이 새 브랜드 창안자는 가메노이(龜の井)버스주식회사의 다나카 노부히로 사장. ‘벳푸∼유후인∼히타(日田)’를 연결하는 버스관광 루트인데 기존의 벳푸∼유후인 노선(일반버스 및 유후링 관광쾌속버스 운행)에 ‘유후인∼히타’ 새 노선을 추가 개설해 이은 것이다. 여행자가 벳푸 온천타운을 관광한 뒤엔 유후인으로 옮겨 조용한 휴식을 즐긴 후 특급버스로 히타를 찾도록 한 것이다. 그런 뒤엔 유후인으로 돌아와 구주렌잔의 아름다운 고원을 가로질러 구로카와온천과 아소산의 구마모토로 버스여행을 계속할 수 있다. 이 모든 구간 버스엔 산큐패스(기타큐슈 3일권)가 통용된다.  

 

규슈 그랜드 루트의 세 곳은 지형과 역사, 매력이 제각각이다. 벳푸는 지옥탕 순례에 다양한 테마파크(아프리칸사파리, 기지마고원 놀이공원, 다카시마야 원숭이공원)와 쓰루미다케(해발 1300m)의 벳푸만 전망대(케이블카)를 지닌 해안 도시. 반면 유후인은 높은 산에 둘러싸인 해발 470m 분지의 옛 정취 짙은 산간마을에서 온천을 즐기는 휴양지다. 그리고 히타는 267년간 에도시대에 막부가 직할영지로 삼았던 심심산중의 고도. 교토의 귀족이 거주하며 남긴 화려한 문화 덕분에 ‘리틀 교토’라 불린다.

히타: 중심 거리 마메다마치엔 당시 영화를 가늠케 하는 상점(술도가 간장 된장 양조장)이 여직 성업 중. 그 배경은 ‘수향(水鄕)’이란 별명으로 불리게 된 데서 찾는다. 이곳은 산간의 여러 물줄기가 모여 드는 분지. 당시는 강물이 물자 수송의 주역이던 시절로 수로(水路)는 지금의 고속도로. 그러니 각지 산물의 집하장이자 거래시장이고 모여든 상인 간에 거금이 돌았는데 히타는 그 자체로 상업은행 역할을 했다. 즉, 막부가 파견한 귀족이 상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막부 금고를 채웠던 것이다.

‘규슈 그랜드 루트’는 이렇듯 각기 다른 세 곳을 산큐패스 특급, 쾌속버스로 찾는 ‘느린 여행’이다. 렌터카 여행에선 기대할 수 없는 여유와 감상이 여기선 최고의 가치로 다가온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된 전인미답의 흥미진진한 여행 루트다. 누구보다 먼저 그 매력을 즐기고 숨겨진 진가를 세상에 알리는 건 오직 나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니 올겨울 여행은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기로 떠날 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