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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가 똥값이에요"… '슈퍼푸드' 아로니아 사라진 이유.

오완선 2019. 1. 26. 15:00



입력 2019.01.26 12:05 | 수정 2019.01.26 14:22

지난 24일 충남 보령시에 자리한 ‘W 농장’은 바짝 마른 갈색작물로 빼곡했다. 한때 ‘수퍼푸드’로 각광받던 아로니아였다. 아로니아는 늦여름인 8~9월이 수확철이지만, 이 농장에서는 열매를 거두지 않아 그대로 썩었다. 6만6000㎡(2만평) 에 이르는 농장은 휑뎅그렁했다.

"열매가 똥값이에요. 거두면 거둘수록 적자가 나는데 어떡합니까. 다른 아로니아 농장주들도 사정이 비슷할 겁니다." 농장주 홍성남(79)씨가 한숨 쉬었다.

짙은 보라색의 베리류 열매인 아로니아는 8~9월이 수확철이다. /조선DB

◇아로니아 반짝 열풍, 毒이 됐나
아로니아는 짙은 보라색의 베리류 열매다. 주산지(主産地)는 폴란드로 전 세계 생산량 90%가 여기서 나온다. 항산화성분 안토시아닌 함유량이 많아 ‘수퍼푸드’로 각광 받자, 5년 전부터 한국에서 재배농가가 늘어났다. 각 지자체에서도 ‘고소득 작물’로 재배를 독려 했다. 아로니아를 심는 농가에 저금리 대출·보조금 지원 등의 특혜를 제공하는 식이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아로니아 재배농가는 9배 가까이 늘었다(492가구→4753가구). 덩달아 생산량도 74배나 터무니없이 증가했다. 종전 생산량은 117t인데, 지난해에는 8778t이나 아로니아가 시장에 나온 것이다.

과(過)생산은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2013년에 킬로그램당 3만5000원 했던 아로니아 값은 해마다 가파르게 떨어지면서 최근에는 500원 수준으로 폭락했다. 값이 70배나 떨어지면서, 아로니아 재배농가들은 수확조차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렸다.

아로니아총연합회에 따르면 올해 절반에 달하는 아로니아 농가가 수확을 아예 포기했다고 한다. 빌린 땅에 아로니아 씨앗을 뿌렸던 농장주들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파산했다.

한때 킬로그램당 3만5000원이던 아로니아는 최근 500원으로 떨어졌다.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한 탓에 수확하지 않은 아로니아 열매가 그대로 썩었다. /독자 제공

◇"FTA 때문이다"VS "열매 인기가 떨어진 것"
아로니아 농장주들은 지난 24일 청와대 앞으로 몰려가 "대통령님 아로니아를 살려주세요"라고 호소했다.

집회에 참석한 200여명의 아로니아 농장주들은 ‘똥값이 된 원인’으로 한·EU FTA(자유무역협정)를 지목했다. FTA 이후 폴란드에서 아로니아 분말·농축액이 물밀듯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생과(生果)는 FTA 수입금지품목에 해당하지만 가공식품은 제재를 받지 않는다.

정수덕(73) 아로니아총연합회 회장은 "국내 생산량 70~80%에 이르는 폴란드산(産) 아로니아 분말이 들어오고 있다"며 "정부가 마땅히 FTA 체결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정부는 "국내 아로니아 농가들이 FTA 피해를 받았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입장이다. 수입산 아로니아 분말·농축액이 국내산 생과의 값을 떨어뜨린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열매 자체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판단한다.

24일 오후 1시쯤 청와대 앞으로 달려간 아로니아 농장주 200여명은 “정부가 마땅히 FTA 체결에 따른 피해를 보전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우영 기자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건강보조식품’을 섭취하는 소비자들은 제한되어 있는데, 아로니아 수확량이 74배나 늘어난 것이 원인"이라면서 "다른 건강식품들도 속속 등장하고 하는 것도 아로니아에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정부는 농가에서 썩은 아로니아를 걷어 내고, 다른 작물을 심을 수 있는 방향으로 구제책을 마련할 방침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1/26/201901260088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