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만물상] ‘리얼돌’ 인문학

오완선 2021. 4. 16. 14:29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피그말리온은 피와 살이 있는 여자들을 싫어해서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결혼했다. 상아로 아름다운 여성상을 만들어 껴안고 입도 맞췄다. 이름은 갈라테이아. 자위용 인형 리얼돌(real doll)의 원조인 셈이다. 21세기엔 현실이 되고 있다. 영국 미래학자 이안 피어슨은 저서 ‘미래의 섹스’에서 2050년이면 로봇이나 인형과의 성관계가 인간 대 인간의 관계보다 많아진다고 예측했다. 인간과 로봇의 동거도 자연스러운 현상이 된다고 내다봤다.

▶17세기 초 네덜란드 선원들이 항해 중 홀아비 시름을 달래려고 낡은 옷을 여러 개 기워 자위용 인형을 만든 게 리얼돌의 시초다. 1900년대 초 고무인형으로 진화했고 지금은 사람 피부와 질감이 유사한 TPE(Thermo Plastic Elastomer)라는 합성고무로 제작된다. 1996년 미국 어비스 크리에이션스가 ‘리얼돌' 상표로 제품을 출시한 뒤 이 이름으로 통용되고 있다. 인공지능을 장착해 파트너와 감정 교류까지 하는 리얼돌도 이미 등장했다.

▶피그말리온 신화는 인간이 일찌감치 성적 판타지를 꿈꿨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지금도 수많은 소설·만화·영화에서 반복 재생된다. 스필버그 영화 ‘AI’에선 인공지능을 탑재한 남자 매춘 로봇이 “로봇 애인을 경험하면 다시는 인간과의 관계를 원하지 않게 될 거야”라고 여성을 유혹한다. 일본 만화 ‘쿄시로 2030’, 영화 ‘데몰리션 맨’의 주인공 남녀는 특수 고글이나 손길을 느끼는 센서가 부착된 옷을 입고 가상현실(VR) 공간에서 만나 사랑을 나눈다.

▶리얼돌 체험방이 학교 주변과 주택가에 침투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1인 가구가 늘고 코로나 여파로 성매매가 어려워진 것이 확산 이유로 꼽힌다. 업소를 폐쇄하라는 청와대 청원이 등장했지만 성매매가 아닌 데다 인형이어서 단속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리얼돌은 전에 없던 윤리적 물음도 던진다. 2017년 캐나다 토론토에서 로봇 성매매 업소를 연 ‘킨키돌스'라는 회사는 ‘돈으로 사람을 사는 성매매를 근절하자’는 구호를 내걸었다니 어리둥절하다. 리얼돌·섹스로봇이 노인·장애인·성소수자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긍정과, 변태스러운 행태라는 혐오감이 혼재한다.

▶편리한 사랑을 꿈꿨던 피그말리온도 결국엔 갈라테이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달라고 신에게 빈다. 신은 소원을 들어주며 갈라테이아 손에 반지를 끼워줬다. 돌이 아닌 육신은 늙어가겠지만 대신 온기가 흐르는 몸과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이루라는 축복이었다. 리얼돌은 영원히 이것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