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트러플과 와인이 흐르는 도시, 악마도 이 풍경 지나치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완선 2022. 3. 26. 10:28

스페인 청정 자연의 보고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 여행

 

1725년 설립된 미론(Mirón)성당은 언덕 위에 있어 소리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일몰을 감상하기에도 제격이다. /남정미 기자

이 시기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니 반응이 둘로 나뉘었다. 꼭 지금 가야 하느냐며 만류하는 쪽과, 그렇게라도 나갈 수 있어 좋겠다는 사람. 물론 이 시기는 오미크론으로 확진자가 하루 최대 50만명 이상 나오는 상황을 말한다. 양쪽의 반응을 다 가방에 실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는 스페인 카스티야 이 레온(Castilla y Leon) 지방. 스페인 17개 자치 지방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면서도 아직 한국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도시다. 코로나에 마드리드로 가는 직항이 없기에, 카타르 도하에서 환승해 20시간을 날아갔다. 마드리드 국제공항에서는 다시 차로 2시간을 이동했다.

이 낯설고도 먼 지방의 매력을 어떻게 설명할까. 미식(美食)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단 두 단어만으로 설득할 자신이 있다. 트러플과 와인이 흐르는 도시. 면적에 비해 도시 개발이 많이 이뤄지지 않은 청정한 곳이자, 자연보호구역이 많은 내륙고원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은 스페인 최대 트러플 산지(소리아)이자, 최고의 와인 산지(리베라 델 두에로)를 탄생시켰다.

자연 풍광에 마음을 잘 뺏기는 여행자에겐 이 말을 덧붙이겠다. 산티아고 순례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은의 길’이 바로 이 카스티야 레온 지방을 지난다. 중세 스페인에서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역사 유적과 문화재도 풍부하다. 보존 상태가 좋은 성·수도원·성당은 서 있는 자리를 순식간에 중세로 옮겨 놓는다.

◇아란다 데 두에로 지하 와이너리

‘리베라 델 두에로(Ribera del Duero)’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을 가로지르는 두에로 강 기슭을 따라 형성된 와인 생산 지대다. 와인 애호가들에게 스페인 최고의 와인 산지로 평가받는다. 행정구역상 바야돌리드(Valladolid), 부르고스(Burgos), 세고비아(Segovia), 소리아(Soria) 4개 주에 걸쳐 있는 이 드넓은 평원에는 아직 잎사귀 없는 포도나무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다고 겨울 여행자들이 실망할 필요는 없다. 리베라 델 두에로의 한가운데 자리한 아란다 데 두에로(Aranda de Duero) 옛 시가지에는 ‘비밀 기지’가 있다. 15세기부터 사용했던 지하 와이너리, 스페인식 표현으로는 ‘보데가’다. ‘엘 라가르 데 실라(El Lagar De isilla)’도 그중 한 곳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호세 사파테로씨는 “이 지역은 기온이 높고 여름에는 해가 길어 태양과 열을 피하기 위해 서늘한 지하에 와이너리를 조성했다”며 “과거 이 거리에만 300여 개의 지하 와이너리가 있었고, 지금도 그 일부가 남아 관광 명소 역할을 한다”고 했다.

아란다 데 두에로 옛 시가지에는 과거 태양과 열을 피해 지하에 만들어진 와이너리가 있다. 지금은 천연 와인 저장고 역할을 한다. /남정미 기자

사파테로씨 말대로 100여 개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서늘한 기운이 먼저 느껴졌다. 지하 벙커 같은 이 곳엔 당시 사용했던 탱크와, 지상으로 연결된 통풍구가 그대로 보존돼 있다. 보데가와 연결된 식당에선 지역 명물인 어린 양고기 구이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엘 부르고 데 오스마 성당

차를 타고 조금 더 동쪽으로 이동해 ‘엘 부르고 데 오스마(El Burgo de Osma)’ 지역에 도착했다. 카스티야 이 레온 관광청에서 일하는 메르세데스 빌라누에바씨는 “인구 5000명의 작은 도시인 이곳은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도 특히 중세 시대를 잘 간직한 곳으로 평가받는다”며 “‘부르고 데 오스마 대성당’은 스페인에서 13세기 고딕 건축의 모범 사례로도 꼽힌다”고 했다.

엘 부르고 데 오스마 지역을 둘러싼 옛 성곽 뒤로 오스마 성당이 보인다. /카스티야 이 레온 관광청

실제 도시의 주요 거리는 목조 및 석조 기둥이 떠받치는 아케이드 형식으로 구성 돼 있다. 과거 상업이 번성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했다. 아케이드 길을 따라, 오스마 대성당을 거쳐 오스마 성벽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노라니, 서울에 두고 온 걱정거리도 코로나 상황도 그대로 잊히는 듯했다. 스페인은 야외에서는 이제 마스크를 쓰지 않는다.

이곳에 있는 호텔 테르말(Hotel Termal) 부르고 데 오스마 역시 숙소 이상의 역할을 한다. 1541년 설립돼 1842년 문을 닫은 ‘산타 칼리리나’ 대학 자리가 호텔로 바뀌었다. 호텔은 돔 형태의 지붕이나 르네상스식 기둥 등 당시 대학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살려 운영하고 있다. 호텔 지하에 있는 온천은 류머티즘 치료에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오 로보스 자연공원

이튿날 일정은 ‘리오 로보스 자연공원(Río Lobos Nature Park)’에서 시작됐다. 걷기 위해서다. 리오 로보스 자연공원은 로보스강과 협곡을 품은 곳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꼽힌다. 황금 독수리, 이집트 독수리 등 희귀 동물 서식지로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곳이기도 하다. 매우 투명한 데다, 천천히 흐르기까지 하는 로보스강에는 기암절벽이 그대로 반사됐다. 하마터면 계속 땅이 이어지는 줄 알고 속을 뻔했다.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현지 가이드는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깎아지른 듯한 협곡의 빈 틈에는 ‘악마의 발코니’란 별명이 붙었다고도 알려주었다. 악마도 이 협곡 풍경을 보고 그냥 지나치긴 어려웠을 것이다.

리오 로보스 자연공원 내 동굴에서 바라본 수도원 건물. /남정미 기자

공원 안쪽을 따라 걷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허를 찔렸다. 중세 시대 템플 기사단이 만든 성 바르톨로메 예배당이다. 예배당은 협곡 사이를 지키는 기사단처럼 의연하게 서 있다. 겨울철에는 문을 닫지만, 4월부터 9월까지는 일반인에게도 그 내부를 공개한다. 마스크 쓰지 않고, 2시간가량 이런 풍경 속을 걸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여행할 이유는 충분하다.

리오 로보스 자연공원을 걷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기암 절벽 아래 수도원 건물. 스페인 내에서도 절경으로 꼽힌다. /남정미 기자

◇소리아 미론 성당

관광청의 메르세데스씨는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선 소리아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며 “스페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주지만, 그 가치만큼은 절대 적지 않은 곳이 소리아”라고 했다.

스페인 국가 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산 바우델리오 교회(Hermitage of San Baudelio)가 이곳에 있다. 11세기 말에 지어진 이 교회 내부에는 로마네스크 시기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다. 이 프레스코화가 미국 박물관 컬렉션을 풍부하게 만들어줬다는 말이 나올 만큼, 대부분은 원래 있던 자리에서 뜯겨나갔지만 아직 일부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산 바우델리오 교회 안에 그려진 로마네스크 시기 프레스코화. /남정미 기자

1882년 스페인 중요 문화재로 지정된 산 후안 데 두에로(San Juan de Duero) 수도원 역시 소리아에 있다. 13세기 초 구호기사단 소유였던 이곳은 스페인 로마네스크 예술의 가장 독창적인 기념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 외에도 소리아 지역에서 성인으로 평가된 사투리오를 기리며 만들어진 성 사투리오 예배당(Hermitage of San Saturio), 언덕에 있어 소리아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미론(Mirón)성당도 인기 있는 관광지다.

스페인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산 후안 데 두에로 수도원. /남정미 기자

소리아 지역은 ‘버터’로도 유명하다. 청정 지역인 소리아 고원에서 풀만 먹고 자란 소의 우유로 버터를 만들기 때문이다. 디저트 가게 뉴욕(New York)은 소리아 버터로 만든 디저트로 인기가 높다. 이 지역 명물인 토레스노(torrezno)도 꼭 맛봐야 한다. 우리 식으로 하면 튀긴 삼겹살인데, 리베라 델 두에로 와인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을 여행하려면 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해 소리아에서 여행을 시작하면 편하다. 마드리드 공항에서 버스(ALSA)를 타고 소리아로 가거나, 기차(renfe)를 이용해 소리아 역에 내릴 수 있다. 숙소는 부르고 데 오스마 온천 호텔(www.castillatermal.com)이 1박 25만원 내외이고, 스페인 국영 호텔인 파라도르 데 소리아(Parador de Soria)가 13만원 내외, 호텔 레오노르 미론(hotel leonor mirón)이 1박 10만원 내외로 저렴한 편이다.

그래픽=백형선 기자

자세한 여행정보는 카스티야 이 레온 관광청 홈페이지(www.turismocastillayleon.c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