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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고 애통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예수는 풍요의 땅에 역설을 가르쳤다.

오완선 2022. 12. 14. 10:41

성탄특집 이스라엘 성지 순례(中) 전도 활동 지역 : 갈릴리.

 

예수가 여덟가지 '참된 복'을 설교했다고 알려진 언덕에 세워진 '팔복교회'. 팔각형으로 지어진 교회에서 순례객들이 기도하고 있다. /김한수 기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 5장)

예수가 여덟 가지 복(福), 팔복(八福)을 가르친 산상수훈(山上垂訓)의 현장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의 나지막한 산이었다. 겨울이란 계절이 무색하게 꽃이 만개한 팔복교회 발코니에 서면 언덕 아래로는 부채꼴 골짜기가 나타나고 그 너머로는 갈릴리 호수가 바다처럼 펼쳐졌다. 지금은 바나나 농장이 들어선 이 골짜기에서는 자연적으로 소리가 멀리까지 또렷하게 들렸다고 한다. 이 언덕에서 예수가 설교한 ‘참된 복’은 세상 상식과는 다른, 역설적인 것이었다.

'팔복교회' 진입로에는 영어로 여덟 가지 복을 적은 표지석이 나란히 설치돼 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이 팔복교회. 이스라엘은 대부분 사막 지형의 광야이지만 갈릴리 호수 주변에선 초록색을 많이 볼 수 있다. /김한수 기자

갈릴리는 예수 공생애(公生涯) 3년의 핵심 활동 무대이다. 요단강에서 세례 받고 시험산에서 마귀들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는 갈릴리 지방으로 와서 본격적으로 전도 활동을 시작한다. 지난 1일 순례단이 찾은 요단강 예수 세례터는 소박한 모습이었다. 폭 10미터 남짓한 요단강은 흙탕물이었고 수심은 얕았다. 그렇지만 그 흙탕물에 미국 개신교 신자와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몸을 담그고 세례 의식을 가지며 2000년 전 세례받던 예수를 떠올리는 표정들이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요단강 세례터. 흙탕물이었지만 미국 개신교 신자들은 침례를 하고 있었다. /김한수 기자

순례단이 찾은 갈릴리 중심 도시 티베리아스는 활기가 넘쳤다. 호텔이 즐비했고, 호숫가 식당들은 이른바 ‘베드로 피시’라고 하는 물고기 요리를 팔고 있었다. 예수 당시에도 갈릴리 지방은 교통 요지였고, 인구도 물산도 풍부했다. 발굴되는 유적 규모도 상당하다. 한마디로 ‘중산층 지역’이었던 셈.

예수는 갈릴리에서 어부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를 받아들이고, 무수한 기적을 행했다. 중풍 환자, 베드로 장모, 귀신 들린 자, 혈루증 여인을 낫게 해주었다.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했으며 이미 죽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 귀에 ‘달리다굼(’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의 아람어)’이라고 속삭여 살려냈고 물 위를 걸었다.

갈릴리 호수에 석양이 지는 모습. /김한수 기자

군중에게 산상수훈을 비롯한 수많은 비유로 ‘역설의 가르침’을 설교한 곳도 갈릴리다. 보리떡 다섯 점과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오른뺨을 치거든 왼뺨도 돌려 대라’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도 벗어주라’는 가르침을 알려준 곳이기도 하다. 당시 사람들에겐 경멸 대상이었던 세리(稅吏)·창녀와도 어울려 식사했다. 율법학자들이 이를 비난하자 예수는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다”고 받아쳤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라는 황금율을 말했다. ‘율법의 유대교’가 아닌 ‘사랑의 기독교’를 선포한 것. 또한 ‘풍요의 땅’에서 ‘가난한 자의 복’을 역설했다. 그 무대가 가버나움, 벳새다, 고라신 등 갈릴리 주변 어촌 마을이었다. 그러나 갈릴리 지역은 예수의 노여움을 샀다.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풍족하게 살던 갈릴리 주변 사람들에게 기적은 신기했지만 ‘역설의 가르침’은 따르기 귀찮은 일이었을까.

 
갈릴리 호숫가 베드로수위권교회.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과 식사를 했다는 '그리스도의 식탁' 바위가 교회 내부에 있다. 예수는 이곳에서 베드로에게 지상의 사명을 맡겼다고 한다. /김한수 기자

갈릴리는 예수 부활 후 다시 성경에 등장한다. 베드로 등 제자들은 예수 사후 다시 갈릴리로 와서 어부로 살아간다. 그때 부활한 예수가 갈릴리 호숫가에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말한다. 뒤늦게 스승 예수를 알아본 베드로는 겉옷을 입은 채 호수로 뛰어들어 예수께 온다. 예수는 호숫가 큰 바위를 식탁 삼아 제자들과 식사하면서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세 번 거듭 묻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지상의 사명을 명한다. 이로써 베드로는 초대 교황이 된다. 그 자리엔 베드로수위권교회가 서 있다.

예수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였다는 곳에 세워진 '오병이어교회'. 바닥에 물고기와 보리떡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김한수 기자

순례에 동행한 소강석 새에덴교회 목사는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시대, 약육강식 시대에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한 자는 복이 있다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역설적이었을 것”이라며 “기독교는 사랑과 용서, 양보, 섬김을 강조하는 역설의 종교이며 역설 안의 진리를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갈릴리(이스라엘)=김한수 종교전문기자

 

                                                                                          2022.12.14. 조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