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특집 이스라엘 성지 순례] [下] 고난과 부활 : 예루살렘.
“다 이루었다.”
예수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직전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상식으로는 ‘실패’한 삶이었다. 예수의 마지막 길을 맞은 건 박수도 환대도 아니었다. 채찍질과 조롱이었다. 그런데 예수는 “다 이루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전한 사랑과 평화의 가르침은 2000년간 전 세계 땅끝까지 확산됐다.
흔히 영화에서 골고다 언덕은 허허벌판 광야로 묘사되곤 한다. 그러나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음을 맞고 부활한 곳에 세워진 예수무덤교회는 예루살렘 한복판 저잣거리에 있었다. 성전이 있던 성전산은 도보로 10여 분 거리. 사형선고를 받은 곳에서 무덤까지도 800여 미터에 불과했다.
전 세계의 천주교 성당엔 ‘14처(處)’가 성화(聖畵) 혹은 조각으로 조성돼 있다. 신자들은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고 가시 면류관을 쓴 채 십자가를 지고 가며 쓰러지고 넘어진 14개 지점을 묵상하며 기도를 올린다. 예루살렘엔 그 ‘14처’가 상징이 아닌 현장으로 남아 있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이다. 우리의 재래시장 같은 그 골목에선 아랍 상인들이 기독교 순례객을 상대로 식사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가는 것은 이스라엘 성지 곳곳에 몰려든 순례객 행렬에서 실감할 수 있었다. 코로나 이전 연간 210만명에 이르렀던 순례객은 올해 각국의 방역이 풀리면서 거의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다고 한다.
이스라엘 성지 중 예수무덤교회의 줄은 가장 길었다. 순례단이 무덤교회를 찾은 때는 오후 6시 무렵이었다. 오후 5시쯤 해가 진 후 이미 거리엔 인적이 뜸했지만 무덤교회만은 순례객으로 가득했다. 30여 분을 기다려 들어선 사각형 공간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주검이 놓여 있었다는 돌판이 있었다. 이곳은 예수 부활의 현장이기도 했다. 4명이 가까스로 들어갈 수 있는 이 공간에서 순례객들은 돌판 앞에 엎드려 기도하느라 바깥에서 관리인이 나오라는 신호를 보내도 쉽게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예루살렘은 예수의 마지막 활동 무대이자 부활의 무대이다. 해발 800미터 예루살렘은 동쪽의 감람산(올리브산)과 성전산 사이에 남북으로 푹 꺼진 기드론 골짜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감람산 쪽엔 5만기(基)가 묻힌 거대한 유대인 묘지가 자리하고, 건너편으론 황금돔이 보인다. 현재 감람산 쪽으로는 예수승천교회, 주기도문교회가 있다. 감람산 아래에는 겟세마네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겟세마네’는 히브리어로 ‘올리브 기름 짜는 틀’이라는 뜻. 이곳엔 수령(樹齡) 2000년 된 올리브 나무가 철책을 두르고 있었다.
예수는 예루살렘과 감람산을 오가며 마지막 일주일을 보냈다. 고난주간이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통해 성찬례를 가르쳐준 예수는 겟세마네를 찾아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를 올리고 로마군에 끌려갔다. 감람산의 예수승천교회에서는 무슬림 순례객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알기 위해(To Know)” 방문했다고 했다. 이슬람에서도 예수를 선지자 중 한 명으로 여기고 있다.
흔히 예루살렘을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 등 3대 종교의 성지라고 부른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된 후 이 지역을 둘러싸고 2000년간 뺏고 빼앗기는 역사가 중첩된 결과이다. 성전산을 둘러싼 성벽 중 서쪽의 ‘통곡의 벽’은 그 현장이다. 유대인들은 통곡의 기도를 올리고, 무슬림들은 금요일 낮에 성전산 모스크로 몰려들고, 기독교인들은 순례를 위해 찾는 곳이 예루살렘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세 종교의 평화는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예루살렘=김한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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