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작대기 2개의 달이 오고야 말았다. 이쯤 되면 연말이란 얘기를 해도 충분하다. 동네 구석구석에 울긋불긋 단풍이 짙게 내렸고, 강원도 등 높고 깊은 산속은 눈이나 얼음이 얼었다는 뉴스가 들린다. 2022년의 가을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누구나 안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게 시간이고, 계절이다. 그래서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서라도 가을 구경에 나서려 목을 맨다. 좀 더 투자하는 이들은 과감해진다. 육해공을 다 접할 수 있는 곳으로 떠나니 말이다. 그곳, 바로 제주다. 물론 제주는 사시사철 그만의 매력이 넘쳐나는 곳이다. 유독 가을 제주를 두 눈에 담아야 하는 이유를 꼽으라면 ‘색(色)’이다. 그 어느 곳보다 푸른 하늘과 바다, 한라산만이 뿜어내는 녹색 에너지, 발길 닿는 대로 걷기 좋은 거무스레한 돌과 흙이 제주행 비행기에 오르게 한다.
깊어 가는 가을 놓치면 아쉬울 제주의 볼거리 8곳을 소개한다.
곶자왈은 제주 화산활동 중 분출한 용암류가 만들어낸 불규칙한 암괴 지대로 용암 위로 흙이 쌓이고 이끼가 묻어나며 초록 숲으로 피어났다. 과거에는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기도 했으나 현재 생물·지질·문화 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한경면에 위치한 환상숲곶자왈공원은 제주의 독특한 지형과 다양한 식생을 한 데 볼 수 있는 울창한 원시 생태 숲이다. 도너리오름에서 분출해 흘러내려온 용암 끝자락에 동굴을 형성해 바위와 나무, 넝쿨이 얽히고설켜 흡사 정글에 있는 듯하다. 이곳은 농촌진흥청이 지정한 농촌교육농장으로 숲 해설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는 살아있는 학습의 장이다.
인생샷과 함께 아름다운 숲길을 즐길 수 있는 산양큰엉곶. 제주의 신비를 품은 곶자왈 안에 다양한 포토존과 옛 기찻길 풍경 등 곳곳에 재미요소가 가득해 지루할 틈이 없다. 달구지길은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닐 수 있어 어린이들과 부모님과 함께 하기에도 좋다.
환상숲곶자왈공원 :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594-1산양큰엉곶 : 제주시 한경면 청수리 956-6
요즘 아이들 가운데 절반 정도는 야외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여행에서 아이들에게 걷기를 강요하는 일은 쉽지 않다. 자연을 경험하게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달리 아이들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동백동산은 이럴 때 함께 할 수 있는 좋은 장소로 그만이다. 사시사철 푸른 신록을 띄고 있는 동백동산은 동백나무가 전체 수목의 3분의 1을 차지해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큰 나무들이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어 키 작은 동백나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화산 폭발 뒤 용암이 흘러들며 약 1만년의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숲은 온갖 동식물의 안식처이다. 울창하게 우거진 숲길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제주 도롱뇽과 개구리를 관찰하고 동백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황칠나무 등 거대한 숲을 탐험하는 일은 부모와 아이가 제주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최고의 생태 체험이다.
동백동산의 하이라이트는 먼물깍 이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뜻의 먼물깍은 람사르습지에 등재해 보호받고 있다. 2014년에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했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아 희귀 생물들의 서식지로도 생태적 가치가 높다. 동백동산 숲길 코스 길이는 약 5km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탐방 시 구두나 샌들을 착용하면 입장을 제한할 수 있으니 가벼운 운동화를 챙기는 것이 좋다.동백동산 :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산 12
제주에서는 장애인, 거동이 불편한 노약자, 유아, 임산부 등 보행약자도 편리하고 안전하게 숲을 즐길 수 있도록 무장애나눔길을 조성해 가고 있다. 목재를 이용해 계단이나 요철을 없애고 평탄하게 길을 연결해 천천히 숲을 산책하는 슬로우 로드이다.
제주의 숲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대표 숲길 사려니는 ‘신성한 숲’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총 15km 구간 중 1.3km 구간에 무장애나눔길을 조성했다. 사려니숲길 입구는 중 붉은오름 입구에 무장애 나눔길을 조성해 경사는 5도 내외로 완만하다.
서귀포 치유의숲은 편백나무와 삼나무가 가득한 곳으로 걷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곳이다. 총 15km 구간 중 가멍오멍숲길 870m 구간에 노고록 무장애 숲길을 조성했다. 하루 600명으로 입장을 제한하며 온라인 사전예약제로 운영한다.
서귀포 자연휴양림은 한라산국립공원 내 해발 600~800m에 위치한다. 울창한 편백림 산림욕장이 있고 계절의 변화를 온전히 느낄 수 있다. 혼디오몽숲길 670m 구간에 무장애 나눔길이 있다. 서귀포자연휴양림에는 차량 순환로도 조성해 차를 타고 숲을 구경할 수 있다.
붉은오름자연휴양림의 토양은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에게도 이롭다고 알려진 화산 송이로 들어차 붉은 색을 띈다. 화산 송이의 건강한 기운이 가득한 이곳에는 상잣성숲길 1.1 km 구간에 무장애 나눔길이 있다. 다른 숲에 비해 비교적 경사도과 완만하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을 설치했다. 제주 전통가옥 형태의 숙박시설을 독채 형태로 운영하고 있으며 장애인 객실도 있다.
절물자연휴양림은 삼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휴양림이다. 산책로 8개 코스 27.3km 구간 중 5개 코스 약 7km 구간에 무장애나눔길이 있다. 절물 내 숙박시설은 장애인 우선 예약 정책을 시행 중이니 하루 종일 즐기며 온전히 숲을 느껴보기 좋다.
사려니숲길 :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 158-4 (064-900-8800)치유의숲 : 서귀포시 산록남로 2271 (064-760-3067, 사전예약: 서귀포시e티켓)서귀포 자연휴양림 : 서귀포시 영실로 226 (064-738-4544)붉은오름 자연휴양림 : 서귀포시 표선면 남조로 1487-73 (064-760-3481)절물자연휴양림 : 제주시 명림로 584 (064-728-1510)
수맥 따라 숲길 여행…머체왓숲길
머체왓숲길은 서귀포 남원읍을 관통해 해안으로 흘러가는 제주 4대 물줄기 서중천의 물을 머금은 숲이다. 넷플릭스 영화 ‘킹덤’의 촬영지로 원시림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왕복 약 2시간 정도 걸리며, 서중천 계곡을 따라 두 개의 탐방코스 소롱콧길(6.3km)과 머체왓숲길(6.7km)로 나뉜다.
상쾌한 피톤치드를 즐길 수 있는 숲길 탐방은 편백나무·황칠나무·동백나무·삼나무가 번갈아 군락을 이루며 향기를 선물하고, 푸르름이 절정에 오른 잎사귀들은 뜨거운 태양빛을 가려준다.
머체왓숲에는 꾸지뽕나무, 황칠나무, 청미래덩굴, 예덕나무, 편백나무 열매, 계피, 감초, 진피 등 건강한 약재가 많다. 입구에 위치한 건강체험장에서는 직접 건조하고 우려낸 건강 약재 차·귤 효소차와 함께 편백 족욕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창밖 풍경을 감사하며 지친 나에게 휴식을 건네 보는 것은 어떨까.
머체왓숲길 : 서귀포시 남원읍 서성로 755 (064-805-3113)
제주여행에서 바다를 빼놓기는 너무 아쉽다. 숲도 걷고 바다도 같이 즐길 수 있는 송악산 둘레길은 가볍게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날씨가 좋을 때면 산방산과 형제섬 그리고 저 멀리 한라산까지 조망을 할 수 있다. 탁 트인 풍경은 저절로 두 팔을 벌려 숨을 들이켜게 한다. 더없이 푸른 바다와 초록빛 가득한 송악산 둘레길로 떠나보자.
송악산 둘레길은 약 2.8km 구간으로 2시간 남짓 걸린다. 처음과 끝이 같은 순환형 코스로 해발 104m 송악산의 크고 작은 봉우리를 지난다. 얕은 언덕을 지나면 걷기 편한 나무 데크가 이어진다. 바다 위로 하얀 거품을 일으키며 마라도와 가파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바다 풍경을 지나면 푹신푹신한 소나무길로 접어든다. 솔숲은 짧지만 바다 향기와 뒤 섞인 솔향기를 느끼고 있노라면 마음에 평온함과 충만함이 전해져 온다.
송악산 : 서귀포시 대정읍 송악관광로 421-1
거문오름은 제주도의 오름 중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한 곳이다. 분화구 내부의 울창한 수림이 검은색으로 음산한 기운을 띠고 있어 신령스러운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름처럼 신령스러운 이 공간은 아무나 갈 수 없다. 방문 시 온라인 사전예약을 해야 하며 매주 화요일 주 1회 자연 휴식일을 통해 탐방객을 제한한다.
만장굴과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벵뒤굴 등 제주의 대표적 용암동굴의 시발점으로 ’거문오름 용암동굴계‘를 보유한 곳이다. 정상에 오르면 화산 분화구가 한눈에 보이고 분화구 안에는 낮게 솟아 오른 작은 봉우리들과 함께 다양하게 발달한 화산 지형들을 관찰할 수 있다.
다양한 지질 및 생태자원을 간직하고 있으며 옛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숯가마터, 일제강점기 갱도진지와 주둔지, 4.3 유적지 등 제주의 역사와 문화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거문오름 탐방소 입구에 있는 세계자연유산센터는 예약 없이 관람을 할 수 있다. 내부에는 전시 갤러리와 4D 극장 등 화산 활동을 통해 생성된 제주, 용암동굴, 한라산의 다양한 식생, 자연유산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거문오름 : 제주시 조천읍 선교로 569-36 (064-710-8981)
제주 여행 일정 중 하루를 다 할애하며 숲을 갈 시간이 부족하다면 야간에도 즐길 수 있는 제주 시내에서 가까운 숲 산책길이 있다. 사라봉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곳을 선정한 영주십경 중 ’사봉낙조‘에 해당하는 오름이다. 사봉낙조는 사라봉에서 지는 붉은 노을을 뜻하며, 바다 위로 붉게 물든 노을은 탄성을 절로 자아낸다. 야간에는 제주항과 시내를 한눈에 조망 가능하며 도민들도 자주 방문하는 곳으로 늦은 시간에 방문해도 위험하지 않다.
별도봉은 바다를 끼고 이어지는 산책로로 해안절경을 감상하며 걷기 좋다. 밤에는 밀려오는 바닷소리와 함께 산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소리가 한데 어울려 이곳만의 매력을 뽐낸다. 여행객들은 우당도서관 앞길에 주차하고 오르는 게 일반적 코스다. 해발 136m로 조용히 사색하며 산책하기 좋다.
도두봉은 공항에서 가까운 무지개 해안도로와 연결돼 있다. 낮은 오름이라 어린이들도 오르기 쉬우며, 탁 트인 전망으로 야경을 즐기기에 좋은 장소이다. 정상에 오르면 쉴 새 없이 이착륙하는 활주로의 비행기들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는 황금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 사진 찍기, 정상부 나무 터널 ’키세스존‘에서 하늘과 바다를 배경으로 담아내는 사진이 인기다.
사라봉 : 제주시 사라봉동길 61별도봉 : 제주시 화북1동 4472도두봉 : 제주시 도두일동 산1
가을이면 구름이 적고 맑은 날이 많아 내리쬐는 햇볕을 그대로 맞으며 걷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태양의 고도가 낮아지는 가을은 그만큼 자외선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고 한다. 그래도 가을엔 올레길을 빼놓을 수가 없다.
올레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시작해 화순금모래해변까지 이어지는 11.8km 코스로 약 3~4 시간이 걸린다. 한 폭의 그림 같은 박수기정의 풍경을 뒤로하고 대평마을을 지나 걷다 보면 군산 숲길 입구에 다다른다. 군산오름은 전체가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정상부에 오르면 파노라마처럼 비경이 펼쳐진다. 한라산과 산방산, 서귀포 일대 난드르 그리고 멀리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군산 오름이 선사하는 풍경이 평화로움을 가져다줄 것이다.
군산오름에서 2km 남짓 걸어가면 깊고 울창한 숲을 간직한 안덕계곡을 만난다. 계곡을 둘러싼 난대림은 제주 원시의 모습을 간직해 천연기념물 377호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한겨울에도 푸르름을 간직하며 기암절벽과 함께 맑은 물이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제주올레 9코스 : 대평포구-군산오름-안덕계곡-화순금모래해수욕장군산오름 : 서귀포시 안덕면 창천리 564안덕계곡 : 서귀포시 안덕면 일주서로 1524
한라산의 짙푸른 녹음이 가을 햇볕을 닮은 붉은빛으로 무르익는 천아숲길은 가을여행의 손꼽히는 명소이다. 한라산둘레길 코스 중 하나인 ’천아숲길‘은 천아수원지에서 보림농장 삼거리까지 총 8.7km 구간이다.
이 시기가 되면 관광객 뿐 아니라 도민들도 단풍 구경에 나선다. 차를 이용하면 꽉 막힌 길에서 시간을 지체할 수 있으니 코스를 완주할 요량이라면 1100도로 노선버스를 타서 가길 추천한다. 240번 버스를 타면 한라산둘레길 천아숲길 입구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숲길 자체는 난이도가 있는 편으로 편도 3시간 이상 걸리며 왕복으로 등반할 경우 거리가 상당함으로 버스를 타는 것이 좋다. 코스 종점에서는 걸어서 영실 입구 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숲길 초입부터 단풍의 빛깔이 은은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걸음을 옮길수록 붉은빛이 점점 짙어진다. 무수천 상류 계곡인 천아계곡에서 진정한 가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한라산의 단풍은 10월 중순부터 시작해서 11월 초에 절정을 이룬다. 숲길은 계곡을 건너야 하기 때문에 비가 온 뒤 2일간은 안전상의 이유로 입산을 통제한다.
천아숲길 천아계곡 :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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