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미국산 독일차? 수입차 정체성 헷갈리네

오완선 2012. 9. 16. 18:03

입력 : 2012.09.15 03:01 / 수정 : 2012.09.15 08:20

폴크스바겐·도요타 등 미국산 도입 늘어
"글로벌 업체들 中공장 늘려… 머잖아 중국산 벤츠도 수입"

"'독일 최고 럭셔리 브랜드'라고 광고하길래 당연히 독일산(産)인 줄 알았는데… 미국산이라고요?"

독일 브랜드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사려고 최근 매장에 갔던 박모(34·고양시 일산동)씨는 판매사원에게 "한·EU FTA(자유무역협정)로 차 값이 많이 싸졌느냐"고 물었다가 "이 차는 미국산"이란 답을 듣고 놀랐다. 박씨는 "차 구조나 설계야 다를 리 없겠지만, 막상 독일산이 아니라고 하니 뭔가 속은 것 같아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폴크스바겐이 만든 중형 세단 파사트 운전석 문짝 기둥. 확대한 사진(왼쪽 아래)을 보면 'Made in U.S.A.' 원산지 표시가 선명하다. /김은정 기자
수입차 업체들이 브랜드 국적과 다른 제3의 국가에서 만든 차를 부쩍 많이 들여오면서, 수입차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표 참조〉.

다양한 틈새 모델을 찾는 소비자가 늘면서, 대표 세단 몇 종만 집중 수입하던 과거와 달리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글로벌 생산기지에서 만든 차를 들여오는 것이다. 국산차와의 치열한 가격 경쟁 때문에 일부러 FTA 체결국에서 만든 차를 전략적으로 들여오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폴크스바겐코리아가 이달 초 팔기 시작한 중형 세단 파사트의 운전석 문짝틀 안쪽에는 'Made in U.S.A.'라고 적힌 검은색 스티커가 붙어있다. 이제까지 본사가 있는 독일 볼프스부르크에서 만든 파사트를 수입했지만, 신형부터는 미국산으로 도입선을 바꿨다.

미국형 모델이 실내공간이 넓어 한국 소비자 취향에 더 맞는다는 게 표면적 이유지만, 진짜 이유는 가격을 낮추기 위해서다. 미국산에는 독일산과 달리 바이제논 헤드램프, LED 주간주행등, 주차보조 시스템, 파노라믹 선루프 등이 없어 가격이 480만원이나 싸다.

행여 미국산이란 점이 악영향을 미칠까 봐 이 회사는 디젤 차종의 2.0 TDI 엔진 등 핵심 부품은 독일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그래픽 뉴스로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조선닷컴
BMW벤츠 등이 국내에서 파는 SUV 차종 중 상당수도 미국산이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이 중국산 아이폰은 개의치 않지만 자동차 원산지는 중시한다"며 "물어보지 않으면 굳이 원산지를 밝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도요타자동차는 지난해 말 미니밴 시에나에 이어 올 초부터 세단인 캠리도 미국에서 만든 제품을 들여오고 있다. 도요타는 오히려 비(非) 일본산 차를 들여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원전 사태에 따른 방사능 오염 우려가 아직 소비자들에게 남아있는 데다, 최근 양국의 정치적 긴장 관계에 따른 반일 감정을 피해가겠다는 것이다.

닛산혼다도 조만간 나오는 신차 알티마와 어코드를 미국에서 들여온다. 한일 FTA 체결이 요원한 만큼, 미국·유럽 등 FTA 체결 국가로 수입선을 바꿔 관세 인하 혜택도 누리고 엔고(高)도 피해간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중국산 벤츠·BMW'가 한국에 들어올 날도 머지않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최근 2~3년 새 글로벌 업체들이 중국에 엄청난 규모의 공장을 지어대고 있지만, 앞으로 중국 내수 증가 여력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떨어져 '과잉생산' 문제가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에 따르면 상위 10개 자동차 업체의 생산능력이 2009년 말 기준 1400만대에서 2015년에는 3100만대 수준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특히 한국과 중국 소비자들이 실내 공간이 넓고 화려한 내장재의 차량을 좋아하는 등 취향이 비슷하다는 점 때문에 자동차 회사들이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대(對) 한국 수출기지'로 삼을 가능성도 높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