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백두대간의 완주를 끝내며

오완선 2012. 12. 1. 18:09
미시령을 넘어 진부령에 도착하다

다음날 다시 미시령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등령에서 미시령까지를 북주능선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구간은 서너 곳에서 너덜지대를 통과해야 하고 저항령를 지난다.

설악동 입구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커다란 V자 형태로 선명하게 보이는 곳이 저항령이며 이 곳에서 황철봉을 거쳐서 미시령으로 내려오는 도중에 또 두 서넛 차례의 엄청난 너덜지대를 만나게 된다.

너덜지대는 구들장으로 사용하면 좋을 그런 돌들이 너덜너덜 널려있으므로 너덜지대라 한다. 이곳 너덜지대는 엄청난 규모이고 돌의 가장자리를 잘못 밟으면 덜썩 덜썩하여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지기 딱 좋은 곳이고 흙을 밟지 못하고 돌만 밟으면서 지나가므로 발바닥에 충격이 많이 가서 무척 피곤한 곳이다

북주능구간은 너덜지대가 이 구간의 특징이므로 너덜지대를 제외하고는 특별히 다른 내용을 언급할 내용이 없는 구간이고 이 구간을 통과하려면 신발의 깔창을 큐숀이 좋은 깔창으로 교체하여 통과하는 것이 발바닥의 피로를 줄일 수 있어 많은 도움을 받게 된다.

울산바위가 보이는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내리막길을 재촉하면 또 한곳의 넓은 너덜지대를 만나게 된다. 너덜지대는 등로의 흔적이 없으므로 방향을 잘 잡아서 진행해야 하며 간혹 적은 돌 몇 개를 포개놓은 그런 흔적들이 등로임을 알려주고 있고 이곳을 지나오면 미시령휴게소가 반기는 고갯마루이다.

이틀에 걸쳐서 설악의 대간 길을 모두 걸어서 미시령의 표지석이 자리를 잡고 있는 둔덕을 바람막이 삼아서 아늑한 장소에 텐트를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미시령의 새벽바람은 차를 날려보낼 수 있을 정도로 매서운 곳이라 섣불리 야영을 하다가는 큰일나는 곳이지만 대간의 마지막 밤을 대간 마루에서 잠들지 않고 이대로 끝낼 수는 없어서 무리수를 감행하였으나 다행스럽게도 그날 밤은 바람이 그리 심하지는 않았다.

이곳 미시령도 금년 5월초에 민자터널이 개통되어 속초까지 30여분 시간이 단축되어 옛 고갯길도로는 차량통행이 뜸할 것으로 생각되나 옛길이 그리운 사람들은 속초를 왕복할 때에 편도는 이 길을 이용하고 있을 것이다.

꿈길처럼 아련하게만 보였던 그 머나먼 설악산도 이렇게 모두 다 밟아봤으니 내일이면 이 길도 모두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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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장을 부리고 싶지만 대간 길의 마지막 일출을 맞이하려고 이른 새벽부터 휴게소 뒤편의 산등성을 타고 어둠 속을 헤쳐나가고 있다.

속초의 이른 새벽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굽이굽이 돌고 도는 미시령을 새벽부터 분주히 달리는 차량들의 불빛들은 어둠 속의 또 다른 장관이었다.

상봉과 신선봉을 오르고 대간령(큰사이고개)으로 내려와 대간의 마지막봉우리인 마산에서 알프스리조트를 거쳐서 진부령으로 이어오면 그 머나먼 길도 이제 끝이 난다.

새벽이슬로 미끄럽게 변한 너덜지대를 지나서 돌탑을 쌓아둔 상봉에서 이상한 일출을 맞이해 본다. 떠오르다 구름 속으로 사라지고 구름 속에서 다시 떠오르는 여느 때와는 다른 보기 드문 일출의 모습이다.

이른 6월이지만 바람이 세차게 불어오고 기온도 급강하여 오래 머물지 못하고 화암재로 향하는 길은 이슬로 미끄럽게 변해있어 가뜩이나 위험한 내리막길을 더욱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했다.

바람이 세찬 곳이라 나무들의 모습도 변해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의 가지는 모두 없어지고 반대편 방향에만 가지를 남겨둔 채 그 생명력을 유지해 가고 있다. 세찬 바람 속에서 숱한 세월을 살아오며 나무들도 생존의 법칙을, 한쪽을 잃어가며 전체를 살리는 오묘한 진리를 나무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한쪽을 버리는 아픔을 나무인들 어찌 모르겠는가! 버리는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인생살이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어느 산이나 신선봉이라 불러지는 봉우리는 조망이 좋아서 신선봉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곳 신선봉도 조망이 좋아서 동해와 설악이 한눈에 보이고 대청과 중청 그리고 울산바위의 그 위용을 마음껏 바라 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흐린 날씨로 이 모든 것을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래며 되돌아 나와 대간령으로 향한 포근한 능선을 마음껏 걸어보며 또 다른 위안을 삼는다.

새롭게 푸른색으로 단장한 울창한 산림 속을 가늘게 이어져 나간 오솔길을 걸어가는 지금의 이 걸음들은 한없이 축복 받은 걸음이다.

걷고 싶어도 걷지 못한 장애를 가진 우리의 이웃들, 병마와 싸우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투병중인 우리의 이웃들, 그들에게는 힘들다고 투정했던 그동안의 걸음걸음들은 천만금을 주고도 바꾸고 싶은 그런 걸음일 것이다.

남녘 대간의 마지막 봉우리인 마산에 올라서서 향로봉을 지나 금강산으로 이어지는 저 끝없는 산줄기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고, 울지 않겠노라고 그렇게 맹세를 하였건만 발길이 멈춘 진부령에서 끝내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진부령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가게에 들러서 과일 몇 개와 막걸리 1병을 구입하여 소공원의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서 반쪽이지만 백두대간을 무사히 끝내도록 지켜주신 이 땅의 모든 산 어미에게 감사드리고 이제는 내가 약속을 지킬 차례임을 고하였다.

이 길을 시작하며 나는 이런 부탁을 하였다. "이 길이 끝날 때까지만 저를 지켜주십시오. 더도 부탁하지 않겠습니다." 이제 이 약속을 저가 지켜야 할 차례가 되었음을 언제나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 글을 마치며

나는 백두대간을 다 걷지 못하고 반쪽 백두대간인 반백만을 걸었다. 새 천년을 맞이한 지천명에 시작하여 반백의 나이가 꽉 찬 다음해에 끝이 났다. 반백의 길을 반백의 머리로 변한 반백의 나이에 시작하여 반백이 꽉 찬 그 이듬해에 끝을 냈으니 모두가 반으로 얼룩진 길들이다.

새 천년의 새해 벽두에 다짐했던 결심을, 그것을 이루기 위해 나는 이런 과정을 겪어왔으며 그동안 겪어야했던 숱한 고통과 좌절과 번민과 긴 시간의 외로움 등을 돌이켜 생각하면 그것들이 바로 백두대간이었으며 걸어온 그 길들만이 백두대간은 아니었다.

그 길을 걸으며 알 수 있었던 것은 백두대간은 이 땅을 동서로 가르는 장벽이 아니라 이 땅의 곳곳에 골고루 물줄기를 흘려보내는 젖줄의 모태였으며, 이 땅의 모든 곳에서 만물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 갈 수 있도록 이 땅을 영원토록 지켜주는 사직이었다.

이 땅의 산줄기의 체계를 이토록 정확하게 정립한 산경표는 단지 지리적 사실만을 기록한 저술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위대성을 입증하는 대단한 기록이었으며 우리 선조들은 모든 분야에서 이토록 체계적이고 논리적 사유를 지닌 위대한 조상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제 면면히 이어온 이런 사유들이 토대가 되어 머지않아 이 땅에는 찬란한 꽃이 피어날 것임을 확신하였고 그런 모습들을 지금 여러 분야에서 목격하고 있다.

나는 험준한 일천칠백 리의 산길을 걸어오며 이런 사실을 확인하고 확신하는 믿음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하여, 나의 실존의 체험을 밑그림으로 삼아서 그 것을 전하려하였으나 하나도 전하지 못하고 미완의 백두대간처럼 이 글도 미완으로 남겨둔 채 끝을 맺는다.

마지막으로 지금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못 다 걸은 이 길을 모두 연결하여 우리민족의 시원인 백두산 천지에 입 맞추며 통곡할 자랑스러운 그 들의 모습을 바라 볼 수 있기를 소망하고 있다.

쉽지 않은 긴 길을 긴 시간 함께 걸어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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