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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18 (대관령목장과 오대산)

오완선 2012. 12. 1. 18:11
(대관령 목장)

마음 같아서는 나머지구간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지만 세상사는 내 맘대로 절대로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매년 3월15일부터 5월 31일까지는 봄철산불경방기간으로 정하여 도심주변의 일부 산의 지정된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전국의 거의 모든 산은 산행을 금지하고있다.

다른 곳은 몰라도 국립공원인 설악산은 감시가 심해서 이 기간동안은 설악산은 산행을 할 수 없는 곳이라 5월말 경방기간이 해제되는 6월초에 설악산 구간을 통과해야 백두대간은 끝이 나므로 4월에 두 구간, 5월에 두 구간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4월에 다시 대관령휴게소를 찾아왔다.

첫날은 대관령휴게소에서 대관령목장의 초지를 걸어가며 소황병산을 오르고, 다시 오대산의 노인봉을 오른 후에 월정사입구에서 주문진으로 이어진 도로의 고갯마루에 자리잡은 진고개 휴게소까지 24km로 조금 먼 거리이지만 고도차이가 심하지 않아 난이도는 없으므로 10시간정도 예상하는 구간이다.

“산은 단백질이다”라는 케치프라이즈를 내걸고 이 땅에서 가장 큰 목장을 일궈낸 대관령의 삼양목장이 오늘구간의 백미다

대관령 삼양목장은 영화와 드라마촬영장소로 널리 소개되어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서 이제는 유명세를 타고 관광명소로 변한 곳이다. 얼마 전에 백두대간길이 아닌 일반 관광코스인 전망대를 찾아간 적이 있다.

무슨 드라마와 영화촬영장소였다고 곳곳에 안내판을 설치해 두고 있었지만 드라마와 영화는 관심은 없어서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고 "태극기 휘날리며"만 기억에 남아있다

정상에 자리잡은 전망대까지는 승용차로 갈 수 있으며 입장료는 1인당 5000원이고 전망대에 올라서게 되면 강릉시내와 망망대해의 동해바다가 한눈에 보인다. 목장 길은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으나 관람코스는 이곳 전망대를 왕복하는 단일코스만 개방되어 전체를 다 둘러보지 못하고 일부지역만 볼 수 있었다

하얀 풍차의 풍력발전기 몇 대가 커다란 날개를 돌리며 목장의 서정적 풍경을 유감 없이 보여주고 있지만 조금 더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는 소 몇 마리라도 풀어서 소들이 거니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우리 안에 갇혀있는 타조 몇 마리를 보고 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목장에 와서 소 한 마리 못보고 가게되면 주객이 전도되므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며, 계절에 따라 다를 수 있으므로 나는 못 보았지만 방목도 하고 있다고 태클이 들어오면 그런 태클은 정말 환영하고 싶다.

이 곳 관광용 전망대는 목장의 서쪽에서 오르며 대간 길은 목장 동쪽의 선자령 전망대를 지나므로 그 사이에는 한눈으로는 도저히 바라볼 수 없는 600만평의 어마어마한 초지가 펼쳐있다. 600만평의 장관은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표현할 길이 없고 1000m이상 되는 높은 산악고지에 이런 장관을 만들어 낸 우리민족의 불굴의 의지에 무한한 자부심을 느낄 뿐이다.

미로처럼 연결된 목장 길의 총 연장은 120km이며 목장을 한바퀴 도는 순환도로는 22km가 조금 넘는다 한다. 순환도로를 원주율로 나누면 직경이 대략 7km로 약 20리이므로 이제야 조금 실감이 난다.

대관령의 어디에서나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곳에 기상관측안테나와 통신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대간 길은 이 곳을 지나므로 안테나를 1차 목표로 삼고 대간 길을 시작하며 이 곳에서 선자령. 곤신봉. 매봉을 거쳐서 소황병산에 도착할 때까지 대관령의 목장지대를 통과하므로 목장 길을 따라서 가던, 초지를 가로 질러가던 방향만 잃지 않으면 목장지대는 주의할 곳이 없다.

곤신봉, 매봉, 이런 봉우리들이 지도에는 있지만 동네 뒷동산을 올라가는 것만도 못하여 이런 봉우리들이 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고, 봉우리다운 특색도 없으므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마냥 콧노래를 부르며 룰라 룰라하며 봄나들이를 즐기는 곳이 대관령구간이다.

선자령을 30여분 지나왔으나 둔덕에 선자령이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잠시 의아했다. 선자령은 30분전에 분명히 지나왔고, 그 전에도 선자령의 눈꽃산행을 몇 차례 하였으므로 선자령은 잘 알고있는데 이 곳이 선자령이라니 별 꼴이다. 지도에는 이 곳이 곤신봉이므로 목장 측에서 안내판을 잘못(?)설치하였다.

처음에는 잘못 표기하였다고 단정하였으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틀린 것이 아니라 이게 정답이었다. 낮은 안부가“령"이므로 이 곳 아래가 선자령이 맞고 여기는 곤신봉이 틀림없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런 고정된 생각에서 탈피하는 것이 바로 열린 생각이었다

선자령은 모두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름이며 곤신봉은 대간을 걸어가면서 지도를 보는 사람들이나 아는 지명이다. 그렇다면 선자령 부근에서 가장 경치가 좋은 곳에 선자령이란 표지를 붙여두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다.

대간 꾼이나 알고있는 생소한 지명인 곤신봉을 굳이 고집하지 않는 것이 옳았다. 그렇게 표시를 해도 알 사람은 다 아는 것이다. 뭐 좀 안다고 이 곳의 지명이 잘못됐다며 바꿔야 한다고 뻑뻑 우기는 사람이 바로 소인배였다.

대관령의 고갯길이 전부 대관령이다. 고갯길의 정상만이 대관령이라고 우기는 것과 똑같은 그런 우매한 생각들을 나는 그동안 하고있었던 것이다.

길을 가다보면 이런 안내판도 있다. 처음 목초지로 개간할 때에 학계와 전문가 그리고 관에서는 이구동성으로 이 곳은 지대가 높아 한랭하여 목초지대로는 부적합하다며 반대가 극심하였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 곳은 그런 우려와는 다르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목장으로 자리를 잡고있다. 그런 주장을 했던 그런 자들이,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오늘도 활개치며 그런 짓거리를 지금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관념의 허상에 사로잡혀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 그 수많은 위선들을 백두대간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백두대간은 말이 없다. 스스로 그리 하여지는 자연의 법칙만을 일깨워 주려고 할 뿐이다. 스스로 그리 하여지는 그런 과정들이 바로 우리의 역사였고 우리의 삶이었으며 스스로 그리 하여지도록 만들어 가는 과정이 산 자의 몫이 될 것이다.

소황병산은 넓은 초지로 변해있어서 이 곳에서 길 찾기를 잘 해야했다. 축구장처럼 넓은 공터의 가장자리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좁은 소로를 찾아야 했으나 당시만 해도 아무런 표지가 없어서 지도에서 각도를 계산하여 그 각도가 가리키는 방향에서 희미한 등로의 흔적을 찾아야했다.

소황병산에서 노인봉으로 가는 곳곳에는 분홍색 엘레지 꽃이 넓은 지역에 걸쳐서 군락을 이루며 만개하고 있다.

한 겨울의 한파를 운명으로 알고 피하지 않고 몸으로 맞서 봄을 기다리며 저렇게 만개한 것이다. 자신을 지키는 생존의 이치를 하찮은 풀 포기도 알고 있는데 풀 포기만도 못한 것이 우리 인간들이다.

눈이 오면 눈꽃 피우고, 바람불면 바람 따라 씨 날리고, 온갖 짐승의 먹이가 된다 한들 그 자리에서 피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그들은 언제나 이곳의 주인이다.

노인봉의 정상에 자리잡은 노인봉 산장을 오랜만에 들렸으나 반겨줄 산장지기는 출타중이라서 기대했던 막걸리 한잔도 못 얻어 마신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랭지채소밭으로 변해버린 낮은 둔덕을 내려온 후에 허물어진 옛 산장 터를 지나 진고개휴게소에서 발길을 멈추었으나 구간을 끝낸 성취보다는 남은 길들이 마지막 잎새처럼 생각되고 있었다.

(오대산은 어떤 산인가)

다음날, 진고개휴게소에서 오대산에 관한 기억들을 더듬어보며 오대산의 동대봉을 오르고 있다

오대산은 이름그대로 五臺가 있어 오대산이라 부르고 있으며 대(臺)는 봉우리와 같은 뜻이나 정상이 펑퍼짐한 넓은 형태의 봉우리를 말하므로 오대산의 산세가 부드러움은 오대산의 이름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오대산의 五臺는 동, 서, 남, 북의 4대와 중대가 있는 것으로 옛날부터 전해오고 있으나 현재는 이런 이름을 가진 봉우리는 동대산을 제외하고는 일치하는 봉우리가 없어서 나머지 臺는 어느 곳인지 아직은 정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월정사와 상원사의 다섯 암자이름들이 동대암, 서대암등 각대의 이름들을 가지고 있으나 이 암자가 있는 곳이 五臺는 아니며, 서쪽능선에 속한 비로봉, 상왕봉, 효령봉과 대간 길에 자리잡은 동대산과 두로봉을 五臺로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다.

오대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1,563m의 비로봉이며, 비로봉은 비로자나 부처님에서 유래된 지존의 이름이므로 비로봉은 그 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붙이는 이름이나 속리산만 예외가 되고 있는 것은 속리산에서 이미 보따리를 풀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여담으로 부처님모습을 보고 비로자나 부처님을 손쉽게 알아보는 방법은 부처님의 두 손의 모습인 수인을 보고 판별하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비로자나 부처님은 가슴부근에서 아래 손의 검지를 위 오른손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며 비로자나 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시는 전각을 대적광전 또는 비로전이라 부르고있다.

오대산은 등산객보다는 월정사와 상원사를 찾는 관광객과 불자가 더 많이 찾아오고 있으며 상원사에서 비로봉을 올라가는 중간지점에 우리나라 4대 적멸보궁의 하나인 상원사 적멸보궁이 자리잡고 있다.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곳이므로 불자에게는 성지와 다름없는 곳이다.

상원사 적멸보궁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당 터로 꼽는 글들을 읽어 본적이 있으나 풍수에 전혀 지식이 없는 나 같은 문외한의 눈에도 그런 글을 읽기 전에, 그런 소리를 들어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비로봉에서 적멸보궁을 바라보며 저 곳이 천하의 명당이라고 직감적으로 생각할 정도였으니 적멸보궁은 그 형세가 범상치 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비로봉에서 적멸보궁을 바라보면 사방팔방의 낮은 능선들이 모두 적멸보궁으로 모여들고 있으며 그 모습이 마치 연꽃모양이며 적멸보궁은 연꽃의 중심에 해당하는 지점임을 누구나 한 눈에 알아 볼 수 있다. 그 후에 명당 터란 글을 읽어보고 적멸보궁의 그 장소에서 연꽃의 모습을 연상해 보려 했으나 막상 그 곳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고 연꽃은커녕 호박꽃도 연상해 낼 수가 없었다.

오대산의 등산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대산의 전체지형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오대산의 전체모습은 남에서 북으로 길게 뻗은 백두대간 길이 하나 있으며, 백두대간 길의 두로봉에서 주봉인 비로봉을 거쳐 서쪽의 내륙으로 길게 뻗어나가는 긴 산줄기가 하나있다.

두로봉에서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이 산줄기는 내륙의 홍천군과 양평군의 용문산 등 여러 산을 거느리며 양평군 양수리 부근의 청계산을 끝으로 북한강의 물줄기를 만나서 그 수명을 다하는 긴 능선이다.

그러나 산경표에서는 이 산줄기에 관한 언급이 없어서 불행하게도 정맥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일부견해는 산경표가 놓친 정맥이라 하고, 다른 견해는 백두대간에서 분기되었어도 그 끝자락이 바다에서 끝나지 않고 내륙의 강에서 끝났으므로 정맥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다.

산악인들은 이 산줄기를 가칭 "한강기맥"으로 부르고 있으나 이 줄기를 처음 답사했던 산악 팀은 두로봉에서 분기되었다 하여 "두로지릉"으로 불렀다. 양평군과 홍천군 내륙의 산들은 이 산줄기를 통하여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백두대간과 만나서 백두산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대산의 등산로는 상원사을 기점으로 비로봉을 오르는 등산로와 백두대간 길로 크게 구분하며, 여기에 추가하여 백두대간의 노인봉 동쪽아래에 소금강이 주요 등산로다.

소금강은 계곡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뤄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여 금강산의 이름을 빌려와서 소금강으로 부르고 있다. 소금강의 이름을 처음 사용하신 분은 율곡 선생님이며, 소금강이라고 부르는 곳이 전국에 몇 곳 있으나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오대산 소금강이다.

상원사부근에는 가게가 한 두 곳 정도에 불과하나 소금강지역은 찾는 사람이 많아서 다른 관광지처럼 커다란 대형주차장이 구비되어 있고 등산로입구에는 가게들이 즐비하다. 이 곳에서 무릉계를 따라서 노인봉을 올라오며 노인봉에는 악천후를 대비한 노인봉 산장이 있고 이 산장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산장이다.

등산로를 더 추가한다면 비로봉으로 이어진 서쪽 끝자락에 계방산이 있다. 계방산은 눈꽃 산행지로 이름난 곳이며 그 기슭에 고 이승복 소년의 생가 터가 있고, 이승복 생가 터에는 2-3평정도의 생가모습을 복원해 두고있으나 다른 볼거리가 없으므로 특별히 찾아갈 이유는 없는 곳이다.

오대산의 산세는 소백이나 태백산처럼 완만하여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고 대간 길에서 처음으로 이곳 오대산구간에서 멧돼지를 만났다. 멧돼지가 파헤친 흔적은 마치 사람이 삽으로 파헤친 것처럼 대단하였으며 곳곳을 광범위하게 파헤친 그 흔적은 한 두 마리가 아니라서 오대산의 멧돼지는 아무튼 알아줘야 하며 파헤친 흔적만 보고도 그 저돌성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월정사와 상원사가 있으며 월정사의 일주문 앞의 전나무 숲의 산책로는 오대산에 수목이 많음을 이곳 산책로가 잘 말해주고 있다. 월정사 구층석탑과 상원사 동종은 국보로 지정된 문화재며 상원사 동종은 현존하는 종들 중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아름다운 종으로 평가받고있으며 동종각에 보관되어 있어서 언제든지 관람은 가능하나 타종은 하지 않고 있다.

산을 찾아 다니다보면 자연스럽게 사찰을 찾게되며 그러다 보니 많은 문화재와 접하게 되여 까막눈이라도 조금은 면해보려고 공부를 조금해봤지만 분야가 방대하고, 짱구도 안 받쳐주고, 체계적으로 배울 기회도 갖지 못하였고, 특히 미적 감각이 없어서 나에게는 난공불락이었다.

나처럼 짱구가 좀 부족한 놈은 뭐니뭐니해도 몸빵이 적성에 맞는 일이라 산 타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은 없다. 반대로 짱구가 좋은 놈은 산에는 오지 않으려고 한다. 올라가서 내려 올 것을 뭐 하러 힘들게 올라가냐고 한다. 그래, 너 말이 백 번 맞다. 산은 나 같은 짱구나 다니는 곳이다.

그래서 공자 님께서도 짱구가 좋은 사람들은 힘든 산보다는 힘 안 드는 바닷가를 좋아한다고 말씀하셨다. 지자요수(智者樂水)를 요렇게 쉽게 생각하면 간단한 것을 엄청 어렵게 설명들 하고있다. 또 요렇게 알고 있어야 우리 같은 짱구는 지자요수(智者樂水)인지 지자요산(智者樂山)인지 절대로 헷갈리지 않는다.

오늘 이어가는 오대산의 백두대간은 진고개 고갯마루에서 급경사인 동대산을 올라와서 두로봉을 거쳐서 응복산과 약수산을 지나 구룡령까지 대략 22km이며, 오르내림의 경사가 많아서 체력이 많이 소모되는 구간이라 10시간정도를 예상해야 하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은 일반 산행 객은 당일코스로는 무리인 곳이다.

동대산에서 두로봉까지는 국립공원의 이정표가 잘 설치되어 있으므로 걱정이 없고, 두로봉 이후에는 등로는 잘 발달되어 있으나 일반등산로로 빠져들지 않도록 조금만 신경을 쓰면 무난히 목적지인 구룡령 고갯마루로 내려선다.

이제, 오대산구간도 끝이 났다. 설악산은 눈감고도 갈 수 있으므로 이 곳 구룡령에서 점봉산을 거쳐 한계령까지 마지막 미로를 찾는 일만 남았다.

그 머나먼 1,700리 백두대간의 험준한 산길도 그 끝이 있어서 바느질하듯 이렇게 한땀 한땀 이어오다 보니 결국은 그 끝을 들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