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백두대간 산행기-19 (점봉산을 넘어 드디어 한계령에)

오완선 2012. 12. 1. 18:10
◆ 구룡령과 설피마을

어느 덧 신록의 5월로 접어들어 다시 구룡령을 찾았다. 오늘은 이곳 구룡령에서 갈전곡봉을 오른 후에 조침령까지 대략 20km정도로 이어갈 생각이며 내일은 점봉산을 넘어 한계령까지 계획하고 있다

이 곳 구룡령은 홍천에서 한계령을 넘지 않고 양양으로 진입하는 56번 도로의 고갯마루이다. 양양에서 서울로 상경할 경우에는 한계령입구인 오색으로 진입하는 삼거리에서 좌측도로로 진입하면 이곳 구룡령에 이르게 된다.

서울에서 속초와 강릉을 가기 위해서는 백두대간을 넘지 않고는 갈 수가 없다.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 진고개. 구룡령이 모두 백두대간의 고갯마루이므로 이 곳 중에서 한 곳은 필히 넘어야 하고, 교통체증으로 한계령이 많이 지체될 경우에는 구룡령을 이용하므로 이제는 많이 알려진 곳이다.

구룡령은 백두대간의 여러 절개지 중에서 처음으로 동물이동통로를 개설한 곳으로 백두대간의 인식이 조금씩 변하고 있어서 이곳을 지날 때는 도로 때문에 백두대간이 절단되어 동물의 이동통로가 끊긴 아쉬움을 그나마 위안을 삼으며 지나곤 한다.

백두대간의 산행기록을 작성하는 사람들에게는 산행기를 작성하기가 가장 힘든 구간은 아마 오늘 구간일 것이다. 나는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며 산행과는 관련 없는 잡설을 늘어놓고 있지만 산행기록을 쓰는 사람은 무척 답답한 구간이다.

1시간 정도 올라가면 이렇다 할 특색이 없는 갈전곡봉이 나오고 또 거기서 이름 없는 봉우리를 넘고, 또 이름 없는 봉우리를 넘고 하며 봉 타령만 해야 하고. 그나마 봉우리들 이름이라도 있으면 봉우리이름이라도 나열하며 기록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갈전곡봉을 제외하면 봉우리들 이름도 없으므로 작성자 맘대로 일봉, 이봉. 삼봉 등으로 작명하여 봉우리이름을 적어나가야 하고, 도중에 다른 지명이라도 있으면 지명이라도 삽입할 수 있지만 아무런 지명도 없고, 그 흔한 고개이름 하나 없으므로 봉 타령만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특이한 경치나 볼거리라도 있으면 그 것으로 글을 풀어나가면 되겠지만 그것도 아니고, 20km의 전 구간이 오르내림만 있고 특이한 볼거리도 없고 거의 대동소이한 산길의 연속이므로 글을 쓰기가 참으로 난감한 구간이다.

그렇다고 코스나 쉬운 구간이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대간은 공짜구간이 없으므로 발품은 발품대로 열심히 팔고 쓸 글은 없고, 청정지역이라서 진드기도 많아서 진드기가 목덜미를 통해 몸속으로 파고들므로 재수 없으면 진드기 때문에 고생만 하고, 속 모르는 사람은 말년이라서 농땡이 친다 하겠지만 이럴 때에는 미치고 팔짝 뛸 일이라는 표현이 제격이다.

이렇게 봉우리의 이름이 없는 것은 봉우리가 낮아서 없는 것이 아니라 찾는 사람이 없어서 봉우리의 이름이 굳이 있어야 할 필요가 없는 곳이고 또 찾는 이가 없어서 이름도 지어놓지 않았다. 이는 이만큼 이 곳이 오지라는 뜻이므로 이 구간의 자락들은 당연히 이 땅의 최고의 오지다.

이번 구간은 구간 소개보다는 이 곳 백두대간이 품고 있는 산자락을 몇 곳 언급하는 것으로 오늘 구간을 대신하려고 한다. 백두대간의 고개 이름 중에서 가장 멋진 이름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오늘 목적지인 조침령을 꼽을 것이다.

오늘 목적지인 조침령(鳥寢嶺)은 새가 잠드는 고개이므로 참으로 멋지고 정감 어린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조침령의 고개이름을 음미하다보면 우리 조상님들이 자연을 얼마만큼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짐작케 한다.

자연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미물인 새의 보금자리까지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이런 지명을 지었을 것이다. 새가 잠드는 곳이므로 잠에서 깨어나지 않도록 배려하는 그런 아름답고 세심한 마음씨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그 아랫마을 이름은 쇠나드리다. 새가 나들이 나갔다가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그 모습을 이렇게 아름다운 지명으로 표현할 줄 아는, 그런 발상을 할 줄 아는, 너무나 사실적이고 서정적이고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이 우리본래의 순박한 마음일 것이다.

이곳 자락들은 이 땅의 최고오지로 남아있었으나 여행전문가란 사람들이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이곳 진동리의 설피마을이 어떻고, 조경동이 어떻고, 아침가리골의 계곡이 어떻고 하며 떠들고 난 이후부터는 민박집이 즐비하고 MT촌으로 전락되어서 지금은 오지가 아니라 시즌 때에는 난장 터로 전락되어 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는 봐 줄만하다. 조침령에서 10여분 떨어진 아랫마을인 쇠나드리에는 점봉산 양수발전소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라 공사트럭이 분주하게 드나들면서 처참하게 망가트리고 있다.

양수발전소는 상부댐과 하부댐의 두 개의 댐이 필요하다. 양수발전소는 상부댐에서 하부댐으로 물을 흘러 보내며 그 낙차를 이용하여 발전을 하고, 다시 하부댐의 물을 관을 통하여 상부댐으로 끌어올리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의 발전소가 지리산에도 있다. 지리산 양수발전소의 하부댐은 거림골 지역으로 진입하는 삼거리의 예치마을에 하부댐이 있고, 상부댐은 청학동에서 4-5km떨어진 고운골의 상류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부댐은 고운골의 상류에 자리잡고 있어서 고운호라 부르고 있다. 거대한 산정호수인 상부댐이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지리산자락의 한 쪽에 자리 잡고 있다.

조침령의 일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이며, 기린면 소재지가 현리이고 현리의 다리가 있는 곳에서 개천을 따라 동쪽으로 40여 리 떨어진 무척 외진 곳이며 백두대간이 가로막아 더 이상은 갈 수 없는 지역이다.

쇠나드리 마을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설피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지금은 이 곳까지도 수많은 팬숀이 들어서는 등 모두가 변해버려서 이 땅에서 오지는 이제 모두 사라져 버렸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더욱이 설피마을은 각종야생화가 만발하여 천상화원이라 부르는 점봉산의 곰배령을 찾아가는 길목이어서 봄철의 주말이면 찾아오는 사람들로 더욱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오늘은 이런 오지들을 품고 있는 산줄기를 걸어가므로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꾼 들이 아니면 일반등산객은 찾아오지 않는 이런 호젓한 산길을 계속 이어간 하루였다.

자유로운 새가되고 싶은 마음으로 새들의 보금자리인 조침령에서 하루 밤을 지새우고 내일은 설악산을 향한 마지막 관문인 점봉산을 넘어서 한계령까지 길을 이어갈 생각이다.

이 곳 조침령은 현재 도로공사가 한창이며 오색입구에서 구룡령을 넘어오는 56번 국도에서 조침령에 터널을 뚫어서 기린면 진동리와 길을 연결하고 있는 중이다. 이 도로는 원래는 임도였으나 교통량의 증가로 새롭게 도로를 넓히고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점봉산 상부댐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목적에서 도로를 개설하고 있다.

금년 여름철에 이 곳을 다시 찾아 가보니 터널이 뚫려있지만 아직 비포장이고 개통되지 않은 도로였다. 그러나 터널로 차량통행은 허용하고 있어서 진동리에서 56번 국도로 바로 연결할 수 있었고 상부댐은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하여 그 모습을 보지 못 하였다.

◆ 점봉산을 넘어 드디어 한계령에

오늘 점봉산을 넘어 한계령에 도착하면 백두대간의 머나먼 길은 이제 모두 밟은 것이다. 한계령에서 미시령을 넘어 진부령까지는 그 전에도 걸었던 길이라 새로운 길이 아니고 단지 백두대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형식적인 의례가 될 것이다.

점봉산을 향하는 마음은 설렘과 기대보다는 죄의식 때문에 마음이 무거운 걸음이다. 점봉산은 1996년부터 유네스코에서 생태보호구역으로 지정하여 산행이 전면 금지된 구간이므로 점봉산을 들어서는 순간 모두가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곤경에 빠지면 누구나 방어적인 자기 합리화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점봉산을 걸으며 양심범이란 궁색한 변명으로 이 길을 걸어가고 있다. 나는 나의 확실한 신념에 의해서 이 길을 걷는 것이다. 나는 나의 양심에 따라 행동할 뿐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얼마든지 감수할 용의가 있고 회피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점봉산은 한계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구분하며 한계령을 지나며 목격하는 험준한 만물상이 바로 점봉산이고. 점봉산까지 포함시켜서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현재 허락된 점봉산의 등산로는 오색에서 주전골과 흘림골의 두 구간만 일부 허용하여 탐방객을 받고 있으나 정상은 오를 수 없으므로 단풍시즌에 가을정취를 만끽하려는 탐방객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다.

주전골은 요즘의 위폐에 해당하는 사전을 만들었던 곳이라 주전골이라 하며 흘림골은 흐린 날씨가 많아서 흘림골로 불리고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곳 조침령에서 점봉산의 정상까지는 완만한 흐름이 계속되고 부드러운 육산의 형태이나 정상에서 한계령으로 다가갈수록 바위구간이 많아지고 위험구간이 많아서 안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며, 특히 여러 곳에서 수시로 도면을 확인하며 길 찾기에 더욱 신경을 써야하는 구간이고 도중에 단목령이라 불리는 아담한 고갯마루를 만나게 된다.

이 곳 단목령의 동쪽으로는 오색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으며 이 등산로는 계곡을 따라서 오색으로 내려간 옛 길이다. 지금은 산사태로 많이 허물어져서 위험한 길로 변해 있으며 반대편 서쪽으로는 설피마을로 내려간 길이 있다.

옛 사람들은 오색에서 한계령을 넘지 않고 이 곳 단목령을 통해 백두대간을 넘나들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고갯마루이고 현재는 오색과 설피마을로 내려가는 탈출로로 이용하고 있고 일반등산객은 이 길을 이용할 필요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 곳 단목령부터는 설악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출입이 금지된 구간이다.

단목령에서 정상까지 이어진 길은 온갖 식물들의 보고였다. 곳곳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가 한참 그 자태를 자랑하고 평지와 다름없는 분지에는 각종 희귀식물들이 군락을 이루며 텃새경쟁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중간에 심마니들이 이용한 옛 움막이 있고, 오색의 주전골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며, 포수들이 움막을 치며 기거하였다는 홍포수막터를 지나서 완만한 오름 길을 오르면 점봉산의 정상에 드디어 도착하게 된다.

점봉산에서 바라본 설악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가 없다. 점봉산에서 설악의 자태를 보지 않고는 설악을 제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귀청에서 중청을 지나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설악 서북능선의 모습은 거의 환상의 그림이었다.

설악산에 대해서는 그 누구 못지않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설악산의 모습이 이렇게 외경스러운 모습일 줄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전에도 점봉산을 한번 오른 적이 있지만 그 때는 운무에 가려서 이 모습을 전혀 보지 못 하였다. 설악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니 경외감이 절로 우러나오며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저런 외경스러운 모습을 보고 저런 모습이 숭배대상이 아니라면 그 무엇을 우리가 숭배할 것인가. 샤머니즘이라 부르는 원시종교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그 무엇이며, 샤머니즘이라고 단순하게 이름 짓는 그 순간, 이미 언어의 함정에 빠져들어서 그 본질이 바로 이런 경외감이라는 것을 우리는 놓치고 있을 것이다.

정상에서 서쪽으로 작은점봉산을 거쳐 야생화 군락지인 곰배령으로 이어진 능선 길은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 정도로 포근하고 아늑한 길이다. 지금껏 살아온 길은 저처럼 포근한 길이라면 앞으로 가야할 길은 앞에 보이는 설악의 모습처럼 험준한 길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길이 될지라도 설악의 저 모습과 같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만들어 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들은 힘이 들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의 연속이었지만 지금은 이 곳을 떠나기가 싫어서 발걸음을 옮기고 싶지 않다. 점봉산의 정상에서 한 시간 이상을 지체하며 어느 산악인의 비목을 쓸쓸하게 혼자 남겨두고, 언제 다시올지 알 수 없는, 기약 없는 이별이라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한계령을 향해 발길을 옮겨야만 했다.

하산 길의 곳곳에는 식물들의 생태를 파악하여 기록한 푯말들이 자주 눈에 띄고 곳곳에는 알 수 없는 희귀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제 위험한 암릉이 자주 나타나는 것을 보니 점봉산도 이렇게 끝이 나는 모양이다.

당시에는 곳곳의 위험구간에는 나무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고 안전 밧줄이 걸려 있었으나 후에 이곳을 통과한 후답자의 말을 들어보면 모두가 철거되어 위험구간으로 변했다 한다.

오색에서 한계령의 정상을 올라오기 바로 전에 필례약수터 방향으로 이어진 삼거리가 있다. 필례약수터로 지나는 도로로 내려와서 마지막 관문을 무사히 넘은 홀가분한 마음과 만감이 교차하는 묘한 기분으로 한계령 고갯마루를 걸어가며 한계령휴게소를 바라본다.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인 산길을 이렇게 걸어서 드디어 백두대간을 모두 다 밟아 보았다. 이제 평소의 산행으로 이미 걸었던 설악 구간을 다시 걸어서 그 길을 순서대로 연결하는 마지막 형식만 남았을 뿐이다.

길을 걸어가는 그때나, 글을 쓰는 지금이나, 이 글을 애독해 주신 여러분도 너무 지겨우므로 한계령은 인내의 한계선이다. 이런 한계상황을 극복할 수 있었던 힘은 오직 설악이란 절세미인이 어서 오라 손짓하기에 가능하였다.

인내의 한계선인 한계령은 나에게는 이런 기억으로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다시 보자 한계령아! 기다려라 대청봉아!

◆ 설악산은 어떤 산인가

그 해, 지리산은 5월15일에 봄철산불경방기간을 조기 해제하였으나 설악산은 5월31일에 해제하여 6월초에 3일간의 일정을 잡아서 한계령의 108계단을 시작으로 그토록 소원하고 소원했던 대간 완주의 부푼 꿈을 간직하며 대간의 마지막 길을 걸어가고 있다.

한계령은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고갯마루다. 이 고갯길은 양양군과 인제군을 연결하는 옛 길이고 지금도 두 지역을 경계하는 고개이고 옛 문헌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계령의 높이는 935m이고 이 도로가 지금처럼 포장된 시기는 1981년 12월이다. 이 때부터 설악산주변은 우리나라의 최고 관광명소로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설악산의 대청봉(1.708m)은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에 이어 남쪽에서는 3번째 높은 봉우리다.

설악산을 처음 찾은 해가 1970년 새내기시절의 여름방학 때였으므로 그 시절이 잊혀지지 않고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마장동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비포장도로였던 이곳 한계령을 굽이굽이 돌아서 10시간정도 걸려서 속초에 도착하였다.

그 당시에는 속초에서 설악동을 운행하는 버스가 없어서 설악동까지 무거운 군장을 짊어지고 그 길을 걸어서 설악동야영장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대청을 오른 기억이 설악산과 첫 만남이었다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설악산이 더 좋으냐 지리산이 더 좋으냐, 또 설악산과 금강산중 어느 곳이 더 멋 있느냐, 이런 질문에 내 답은 한결같다.

지리산은 마음으로 느끼는 산이고 설악산은 눈으로 보는 산이므로 보는 사람의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금강산은 극히 한정된 곳만 봤기 때문에 그 전체를 알 수 없어 설악산과 비교한다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능하고 다만, 서로 인근에 있기 때문에 산세가 비슷하여 우열을 가르기가 힘들 것이다.

설악산은 금강산에 비해 격이 좀 떨어진 곳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나 금강산의 왕래가 자유롭게 된 이후부터는 설악산이 금강산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아 금강산의 개방이 오히려 설악산을 재평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설악산은 산이 구비할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명산이다. 암벽이나 빙벽을 즐기는 매니아도 즐겨 찾고 보행을 즐기는 일반 등산객에게도 최고의 명소로 꼽히고 있으며 일반관광객에도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므로 이런 설악산이 이 땅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는 커다란 축복이다

이처럼 설악산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이고 산 이름에 "악(嶽, 岳)"자가 들어간 산은 부드러운 육산이 아니고 바위가 많은 골산이므로 그 산세가 험하고 그런 험한 산세들이 조화를 이뤄서 설악의 절경을 연출하고 있다.

설악산의 절경은 가을철 단풍이 단연 백미이지만 요즘은 각종 공해의 영향으로 산성비가 내리고 온난화현상으로 가을철이 짧아져서 예전처럼 그 멋진 단풍을 구경하기에는 갈수록 힘들어진 점이 늘 안타까운 심정이다.

설악산은 백두대간을 경계로 편의상 내설악과 외설악으로 구분하고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양양군 및 속초시와 인제군을 나누기 때문에 내륙 쪽인 인제군은 내설악으로, 동해 쪽의 양양군과 속초시를 외설악으로 기억해 두면 정확한 답이 될 것이다,

설악산은 산세가 험준하여 많은 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대표적인 계곡으로는 외설악쪽은 설악동에서 즐겨 찾는 천불동계곡이며, 내설악쪽은 남교리의 십이선녀탕계곡과 용대리의 백담계곡을 꼽을 수 있다.

백담계곡은 조금 복잡하여 많이들 착각하고 있는 듯 하다. 원 상류는 구곡담계곡과 가야동계곡의 두 계곡이 있으며 이 두 계곡은 수렴동산장에서 합류하여 수렴동계곡으로 이름을 바꿔서 백담사로 내려오며 백담사부터 다시 편의상 백담계곡으로 불러지고 있다.

등산로는 동서남북의 사방에서 모두 대청봉으로 향하고 있으며 내설악의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시작한 서북능선은 대승령과 귀청, 끝청. 중청을 거쳐서 대청봉으로 이어진다.

설악산에서 설악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서북능선의 귀청일 것이다. 귀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하여 귀때기청이라 부르지만 줄여서 보통 귀청이라 한다.

소청, 중청, 대청의 연이은 모습은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이 만들어 낸 절경들을 조망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건너편 점봉산에서 곰배령으로 이어진 모습도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이른 새벽부터 남교리에서 시작하여 십이선녀탕을 거쳐서 서북능선을 열심히 걸어봤더니 대청봉까지 13시간이나 걸린 아주 긴 능선이었다.

백담사에서 대청봉을 올라가는 코스는 백담계곡과 수렴동산장을 지나서 불자들이 많이 찾는 봉정암에 이르게 되고, 봉정암에서 소청산장을 거쳐서 소청, 중청, 대청봉을 오른다.

봉정암은 전에는 조그만 암자였으나 지금은 어지간한 사찰은 명함도 내 밀수 없을 정도로 그 규모가 엄청나서 솔직히 말해서 산꾼들은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지나는 곳의 하나로 변해버렸다.

이 높은 곳까지 할머님들이 지팡이에 의지하여 하루종일을 걸어와서 사리탑에 지성을 드리는 모습을 보면 어느 종교나 종교적인 신념은 정말 대단하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곳이다.

수렴동산장에서 좌측 암능을 타고 봉정암을 오르는 위험한 릿지 코스가 한곳 더 있다. 이 암능이 바로 설악이 자랑하는 용아장성 능선이다. 인명사고가 종종 발생하여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나 찾는 발길이 많아서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지금은 우회루트가 많이 개설되어서 예전에 비하면 위험구간이 많이 해소되었다하나 그래도 위험한 구간이고, 2000년 가을에 축구인 함흥철씨가 추락사한 곳이 바로 이곳이다.

외설악 쪽에서는 오색에서 올라오는 코스가 대표적이며 대청봉을 오르는 최단코스이므로 많이들 이용하는 코스다. 산행에 경험이 조금 있으면 3시간이면 올라 갈 수 있지만 구간이 짧은 대신에 경사가 만만치 않아서 초반부터 각오를 단단히 하고 올라야 하며 초보자는 설악의 매운 맛에 호된 신고식을 치르는 곳이다.

설악동에서는 천불동계곡을 두루 구경하며 희운각산장 앞을 지나서 소청, 중청을 거쳐서 대청봉을 오른다. 이 곳 천불동계곡은 가을단풍시즌 때에는 내방객이 많아서 지체되므로 말 그대로 천불나는 곳이다.

천불의 뜻은 주변경관이 천 개의 부처님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는 그런 뜻이므로 그 경관은 설악의 많은 계곡 중에서 단연 으뜸이지만 관광코스로 변모되어 식상한 사람들이 많으며 대청봉을 오르는 코스보다는 대청봉에서 하산하는 코스로 많이들 이용하고 있다.

중간에 금강굴로 향하는 등산로가 있으며 이 곳 금강굴은 관광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고 높은 바위 속의 중턱에 5-6평되는 석굴이며 석불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곳만 다녀와도 일반 관광객은 발 품을 많이 판 편이다.

천불동계곡의 비선대에서 다리를 건너서 우측으로 빠져들면 마등령을 올라가는 등산로다. 이곳 마등령에서 희운각산장으로 이어지는 암능 능선이 있으며 이 능선은 설악에서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용아장성과 쌍벽을 이루는 공룡능선이다.

설악의 수려한 경관은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모두 만들어 내고 있으며 우리가 사진으로 보는 설악의 모습들은 이 두 능선에서 촬영한 것이 거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설악동에서 케이블카가 운행하는 권금성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올라오면 칠선봉과 화채봉을 거쳐 대청봉으로 곧바로 오를 수 있으며 이 능선을 화채능선이라 부르고 있다.

화채능선의 몇 곳의 위험구간은 쇠사슬 등으로 안전설비를 만들어 두었으나 설치한 지가 오래되어 녹이 슬어서 안전을 확인하고 이용해야 하며 현재는 자연휴식제로 묶여있어 산행을 전면금지하고 있으며 출입이 금지된 지 벌써 10여 년이 훨씬 지났다.

화채능선은 설악에서 제일 부드러운 능선이며 이 곳에서 용아능선과 공룡능선을 바라보는 조망은 정말 환상적인 곳이라 더러 불법산행을 하고 있지만 걸리면 벌금 50만원은 각오해야한다.

일반등산객은 찾지 않으나 매니아들이 가끔 찾는 또 다른 등산로는 양양쪽 관모산에서 대청봉을 오르는 긴 능선으로 오색의 물레방아휴게소에서 백암골을 거쳐 올라오면 이곳 능선과 만나게 되고 아주 호젓한 능선 길이다.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설악의 등산로에 대해서는 거의 섭렵하였다고 자부하여도 되고 여타 다른 등산로는 모두 이 곳과 연결되는 곁가지들이고 중청에는 국립공원에서 운영하는 중청대피소가 있으며 멀리서 대청봉을 바라보면 하얀 공처럼 보인 둥근 물체가 중청대피소의 물탱크다.

오늘과 내일 이어갈 설악의 백두대간 길은 한계령휴게소 옆의 108계단부터 시작하여 귀청과 끝청의 중간지점에서 서북능선을 만나서 대청봉으로 이어지고, 대청에서 희운각산장으로 내려와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을 넘어서 저항령을 거쳐서 다시 황철봉을 오른 후에 미시령으로 이어간다.

대청봉에서 공룡능선과 연결하는 방법은 중청, 소청을 지나서 희운각산장으로 내려온 후에 무너미고개에서 좌측으로 이어가는 것으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으나 이럴 경우에는 희운각산장 앞 계곡의 다리를 건너야 하므로 대간 길은 물을 건너지 않는 것이 원칙이어서 이 루트는 대간 길이 아니다.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들도 대부분 희운각 앞을 지나는 이런 루트를 따라가고 있으나 대청봉과 중청봉사이에서 뻗어나가는 또 하나의 능선이 있다. 지도를 정확하게 읽지 않으면 찾기가 그리 쉽지 않은 능선이고, 이 능선은 희운각산장의 뒤편을 지나 무너미고개로 바로 이어져서 물을 건너지 않고 연결된다. 대간 길은 물을 건너지 않고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희운각산장의 건립동기는 아주 슬픈 사연 때문이다. 1969년 2월 국내 산악사상 최대의 비운이 발생하였다. 해외원정을 앞두고 빙벽 훈련을 하던 10명이 조난되어 전원 사망한 사건이었고 그 후 설악산 10동지 조난사건이라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그 해에 뜻 있는 독지가가 사재를 털어서 대피소를 건립하였으며 그 호를 따서 희운각이라 하였다.

그 이전해인 68년에는 십이선녀탕에서 카톨릭의대 산악부팀이 폭우를 만나 7명이 조난을 당하여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으며 이 두 사건은 설악의 연이은 최대비극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며 한계령에서 3시간 반정도 힘들게 길을 이어오면 중청산장에 이르게 되고 중청산장에서 대청봉까지는 20여분 걸리는 거리이다. 새해 첫 일출을 대청봉에서 맞이하고 또다시 이렇게 대청봉을 올라와 있으니 감개무량하다.

족히 2-3백 명이 넘는 인파가 한겨울의 추위에도 마다하지 하지 않고 새해 첫날의 떠오르는 해를 보고 감격에 겨워서 대한민국 만세를 소리쳐 불러 봤던 그 감격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 뿐이니라 그 전날 해질 녘의 낙조의 모습이 너무나 황홀하여 넋을 잃고 바라봤던 기억도 함께 떠오르고 있어 오랫동안 대청봉에 머물면서 막힘이 없는 조망을 마음껏 감상하고 싶었지만 갈 길이 바쁜 걸음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한계령에서 이어온 대간 길은 중청과 대청사이에서 대간능선을 타고 희운각 부근의 무너미고개로 이어와서 공룡능선을 힘들게 걸으며 마등령으로 이어간다.

공룡능선의 신선봉에서 바라본 조망은 공룡능선에서 가장 멋진 곳으로 말 그대로 신선들이나 구경하는 그런 경관이 펼쳐지는 곳이다. 공룡능선에서는 길을 모르면 무조건 능선 쪽으로 붙어야하며 아래쪽으로 잘못 내려가면 가야동 계곡으로 내려가는 불상사가 생기고 공룡능선은 위험한 구간이 많으므로 각별히 안전에 주의해야하고 체력소모가 많은 구간이다.

희운각산장에서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까지는 3시간정도 소요되지만 단풍시즌의 주말에는 정체구간이 많아서 보통 5-6시간이 걸리는 길이다.

마등령에는 옛날에는 야영장이 있었고 매점도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폐쇄되었다. 옛 야영 터가 있기 때문에 지금도 텐트 칠 장소로는 아주 좋은 곳이고 마등령아래에 암벽에는 어느 때나 마르지 않고 흐르는 물이 있어 야영장소로는 그만이나 국립공원 내에서 야영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있다

마등령에 도착하니 산행을 끝내기는 조금은 이른 시간이었지만 내일구간을 생각하면 더 이상 진행할 이유가 없어서 발길을 멈추고 그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며 내일을 준비해야했다





ⓒ 곰배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