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진의 on the Road/ 대구 관덕정·계산성당·성모당·성유스티노신학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모아진다
개화와 근대사의 시작. 그 격변의 시대에 천주교가 있었다. 유럽권 국가에서는 성당을 보면 그 지역의 특징을 알 수 있는데, 한국의 오래된 성당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대구 근대로에서 그 때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성자의 유해가 있는 곳, 관덕정
17세기 초에 전해졌으니 400년쯤 됐다. 한 때는 왕도 관심을 가진 학문이고, 그리 위협적인 단체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천주교도는 역도로 몰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이곳, 관덕정에서 순교의 피가 흘렀다.
그런데 왜 대구일까. 조선 말기, 박해를 피해 한양에서 먼 충청도 내륙이나 대구 인근의 오지로 천주교 신자가 모이면서 교세가 형성됐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들도 안전하진 못했다. 결국 관덕정이 영남지방에서 가장 큰 순교지로 기록됐으니 말이다.
관덕정은 영조 25년에 세운 것으로 원래 이름은 관덕당이다. 여기 아미산 언덕바지에 넓은 마당이 있어 군사훈련이나 군관을 선발하는 시험장 등 광장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공개 처형도 이곳에서 이뤄졌고, 을해박해(1815년), 정해박해(1827년), 기해박해(1839년), 병인박해(1866년)를 통해 25명의 신도가 각종 참혹한 방법으로 순교하게 된다.
관덕정에는 유해가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해는 성인들의 신체 일부분으로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와 이곳에서 순교한 聖 이윤일 요한 등 46분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또 유해와 함께 1902년 대구본당(현 계산성당)에서 사용하던 제대가 그대로 보관돼 있다. 과연 성지다운 면모다.
지하에는 성당, 유해전시실, 순교전시실 등이 있고 2층에 사료전시실과 인형전시실이 있다. 3층에는 교구전시실과 누각이 있는데, 이 누각이 특이하다. 천장에 전통 한국의 단청무늬를 넣되 천주교를 상징하는 성령의 비둘기, 예수의 십자가, 포도나무 등이 묘사돼 있다. 문득 남미에서 본 검은 마리아상이 연상된다. 토착화된 종교…. 이제 천주교와 개신교도 상당히 우리화돼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 신앙을 위해 투쟁하고 생명을 내 놓아 그것이 뿌리내리도록 한 순교자의 숭고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시공을 가르는 성전
계산성당은 서울의 명동성당, 전주의 전동성당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당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 성당이 100년이나 됐다고? 글쎄, 한 30년쯤이라면 모를까 한세기를 지났다고 하기엔 너무나 깔끔하고 굳건하다. 마치 탄탄한 믿음이 건물로 형상화된 듯하다. 이것은 건축양식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고딕형식으로 두 개의 탑을 가졌는데, 사실 처음의 모습은 이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1899년 처음 지었을 땐 기와를 올린 한옥식이었는데, 얼마 못 가서 화재가 났다. 이후 서양식으로 건립해 1902년에 첫 미사를 드렸고, 1918년에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입구에는 눈에 띄는 표지가 하나 있다. 바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다녀갔다는 내용이다. 1984년 5월5일에 오셔서 기도하고, 어린이날을 축복했다고 하니 이곳에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내부는 장중한 기둥과 우아한 아치가 반복되며 마음의 고요를 돕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신 앞에 나아가는 차분함 이랄까? 이곳에서만큼은 누구라도 발소리를 죽이게 될 것 같다. 벽면의 스테인드글라스에는 한복 입고 갓을 쓴 우리의 옛 성현들이 있다. 역시 천주교 100년을 함께 해 온 성당답다. 잠시 뒷자리에 앉았다가 밖으로 나오기 위해 뒤를 도니 천장 밑에 파이프오르간이 자리잡고 있다. 보통은 앞쪽 잘 보이는 곳에 있는데, 이 또한 특이한 점이다. 보면 볼수록 매력 있고 품격이 느껴지는 곳이다. 유럽의 성당이 화려하고 묘사가 직접적이라면, 계산성당은 구석구석 살펴봐야 보이는 것들이 많다.
성모당은 오르는 길이 곧 순례길이다. 성서의 이야기가 표현된 부조물을 보며 걷는 숲길이 어떤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마침내 만나게 되는 성모당. 지붕이 없는 곳이지만 고요하고 아늑하다. 이것이 성지가 주는 힘이 아닐는지….
성모당은 프랑스 루드르 동굴을 본떠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 동굴과 붉은 벽돌, 회색 벽돌의 어울림이 단순하면서도 아름답다. 이것이 넓게 펼쳐진 광장과 조화를 이뤄 신성한 영역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든다. 전면에는 1911과 1918이라는 숫자가 문구와 함께 써 있는데, 특히 1918은 성모당을 건축한 드망주 신부가 하느님에게 청한 3가지 소원이 모두 이뤄진 해를 말한다. 그래서 이곳을 '소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도 한다. 사람들은 광장 끝에 마련된 벤치에 앉거나, 동굴 앞에 바짝 다가가 기도를 올린다. 맥시코 챠물라 마을에서 바닥이 없는 성당은 보았어도, 지붕이 없는 예배실은 처음이다. 하긴, 신도들은 기도하는 곳이 곧 성전이라 했으니 이상할 것도 없다. 따사로운 봄 빛을 받은 광장의 잔디와 성모상의 모은 두 손이 아름답다.
◆사람을 키우고 건물을 남기다
성유스티노신학교는 딱 떨어지는 대칭구조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아니나 다를까 건립 이야기가 흥미롭다. 대구 천주교회 초대 교구장이었던 안세화 주교는 세계 각 지역에 재정 지원을 호소했고 중국 상해에서 무명의 기부자가 나타났다. 그는 신학교에 성유스티노를 모시는 조건으로 헌금했고,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것으로 잘 알려진 천주교도 서상돈이 땅을 기증했다. 그리하여 중국인 기술자들이 공사를 맡고, 프랑스 영사관 건축에 참여했던 사람이 책임목수가 됐다. 건물을 이루고 있는 빨간 벽돌은 이 시기에 들어오기 시작한 중국식 건축재료다.
1914년에 완공된 이 건물은 천주교 성지로서의 의미는 두말 할 것도 없고, 건축사적 의미도 갖게 된다. 이를 통해 서구의 근대건축양식과 벽돌제조기술이 대구에 소개됐다고 한다. 이것을 알고 나니 서상돈 주택의 빨간 벽돌 담장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성서에는 '한 알의 밀알' 이야기가 나온다.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수십 수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는 말이다. 앞서간 이들은 관덕정에서 자신을 씨앗으로 내던졌고, 이제 사람들은 유적이 된 성당에서 소망을 기도한다. 비록 신자가 아닐지라도 그들에게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 200년 전, 이 여행의 이유가 돼주신 순교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여행 정보]
● 대구 관덕정 가는 방법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한남 IC - 영동고속도로 - 중부내륙고속도로 여주분기점 - 경부고속도로 김천분기점 - 중앙고속도로 금호분기점 - 서대구 IC에서 '남대구, 성서' 방면 - 남대구IC에서 '본리네거리, 성서산업단지' 방면 - 성서공단로 - '상인네거리, 달서구청' 방면 - 월곡로 - 상인네거리에서 '서부정류장, 월촌역' 방면 - 월배로 - 경북기계공고에서 우회전 - 송현로 7길 - 청소년수련원에서 '신천대로, 대덕초고' 방면 - 앞산순환로 - 관덕정 진입로
[기차]
1. KTX: 서울역 - 동대구역 - 안지랑네거리에서 달서4 - 앞산일신학원건너 정류장 하차
2. 새마을호: 서울역 - 대구역 - 지하철 1호선 - 안지랑역 하차 - 안지랑네거리에서 달서4 - 앞산일신학원건너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관덕정 : 검색어 '대구 관덕정'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2동 938-19
계산성당 : 검색어 '계산성당'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2가 71-1
성모당 : 검색어 '성모당'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25-1
성유스티노신학교 : 검색어 '성유스티노신학교' / 대구광역시 중구 명륜로 12길 47
< 여행지 주요정보 >
관덕정
http://www.daegusaint.com 문의: 053-254-0151
관람시간: 오전 9시30분~오후 5시20분
미사 시간: 화요일 오전 10시, 금요일 오후 3시(순교자 현양미사), 토요일 오후 5시 (특전미사)
계산성당
http://www.kyesan.org/
미사 시간: 홈페이지 참고
< 음식 >
대구는 분식, 커피, 고기에 이르기까지 특이한 먹거리가 많고, 먹자골목이 발달돼 있기로도 유명하다. 음식마다 전문식당이 몰려 있어 아침부터 밤까지 여행자들이 허기질 틈이 없다.
봉산찜갈비: 대구 동인동은 찜갈비 골목이 유명하다
찜갈비 1만4000원(호주산), 2만5000원(한우) / 갈비살찌개 6000원
http://www.bongsanzzim.com 대구 중구 동인1가 332-3 / 053-425-4203
궁전통닭: 평화시장 닭똥집골목이 유명하며, 일반적인 간장볶음이 아니라 튀겨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저렴하고 푸짐한 차림으로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
모듬똥집 1만3000원/찜닭 1만7000원/치킨 1만4000원
대구 동구 신암동 597-13/053-957-4636
미성당납작만두: 당면이 들어간 납작한 만두를 팬에 빠르게 구워 파를 올리고 고춧가루, 간장, 식초를 식성에 따라 간하여 먹는다.
납작만두 2500~3000원 / 쫄면 3500원 / 우동 2800원
http://www.미성당납작만두.kr
대구 중구 남산4동 104-13 / 053-255-0742
커피명가 라핑카 : 1세대 바리스타가 운영하는 로스팅 카페. 작은 커피박물관처럼 꾸며져 있으며, 로스팅실에는 한국 최초의 배전기가 있고, 커피창고에서는 '생두창고 영화제'를 한다.
커피 5000~6500원
http://www.myungga.com 대구 수성구 국채보상로 953-1 / 053-743-0892
☞ 본 기사는 < 머니위크 > (
) 제27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송세진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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