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나 ‘늙은 남편’을 조롱하는 농담이 넘쳐난다. 일본에서는 아무리 떼 내려 해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뜻으로 ‘젖은 낙엽’에 비유된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 여성의 71.8%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남편을 돌봐야 하는 기간이 길어져 노부부 간 갈등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세간에 나도는 얘기 중 늙어서 꼭 필요한 것이 여자에게는 돈, 딸, 건강, 친구, 찜질방인데, 남자에겐 아내, 부인, 마누라, 집사람, 애 엄마라는 게 있다. 우스갯말이지만 이보다 더 잘된 표현은 없을 것 같다.
일생 처자식 먹여 살리려 고군분투했던 남편들은 계급사회에서 밀려나 민가로 내려온 순간 아기가 된다. 수평문화 속에서 강한 네트워크를 이룬 아내는 민가에서 살아남는 데 강하지만 남편은 그렇지 않다. 아내가 없으면 좌불안석이다. 남성 혼자 밥 먹고, 옷 입고, 집 안을 정리할 수 있는지 평가하는 자립지수(Independence Quotient)는 57.9에 불과하다. 아내 없이 잠깐은 버틸 수 있지만 한 달 내로 엉망이 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성은 남편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사망 위험이 두 배 높고, 남성은 아내가 있어야 오래 산다. 실제로 100세 노인은 하나같이 남편 없는 여자, 아내 있는 남자다.
나이 든 남편은 이래저래 애물덩어리다. 집에 두고 나오면 근심덩어리, 데리고 나오면 짐덩어리, 혼자 내보내면 근심덩어리, 마주 앉아 있으면 웬수덩어리라고 한다. 동물사회에서도 늙은 수컷은 비장하거나 비참하다. 평생 적으로부터 무리를 보호하던 수사자는 사냥할 힘을 잃으면 젊은 수컷에게 자리를 내주고 쫓겨나 마지막 여행에서 혼자 죽는다.
간 큰 남자 시리즈가 히트한 것도 세상이 변한 줄 모르고 아내에게 겁 없이 행동하는 이 시대의 남편을 풍자했기 때문이다. 밀린 빨래와 설거지할 생각은 하지 않고 TV만 보려는 남자, 아내 말에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남자, 아내에게 아침밥 달라거나 반찬 투정하는 남자, 아내에게 전화 건 남자가 누구냐고 꼬치꼬치 물어보는 남자, 외출하는 아내에게 몇 시에 돌아오느냐고 묻거나 외출하고 돌아온 아내에게 어디 갔다 왔느냐고 묻는 남자, 외출할 때 따라 나서는 남자로 이어지다 아침에 눈 뜬 남자로 살벌해진다. 여자들은 갱년기 이후 여성호르몬 분비가 팍 줄어들면서 씩씩해진다. 노년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남자와 노년이 돼서야 집을 나서는 여자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일 것이다.
남자들은 어쩐지 내몰리는 느낌이겠지만 해결책은 간단하다. 권위를 잃어가는 현실을 서글퍼만 하지 말고 왕 노릇 하려던 자신을 반성하며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면 된다. 아내에게 면박당하고 아내가 끓여놓고 나간 곰 솥단지만 바라보고 있기에는 남편의 인생은 아주 많이 길다. 늙으면 잠도 없다. 돈 벌러 나갈 것도 아니면서 새벽에 눈떠 멀뚱멀뚱 있지 말고 어부인 잠 깨지 않게 살금살금 나가서 밥 하면 된다. 그리고 절대로 빼먹으면 안 되는 것은 밤일이다. 그것도 하던 거 그대로 하면 안 되고 새로운 기술을 갈고닦아 잠자리까지 끝내준다면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반색할 것이다. 소박당하지 않으려면 뒤늦게나마 마일리지를 쌓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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