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서 결혼하는 사람들에게 자주 하는 말은 ‘초반에 주도권을 잡아야 평생이 편하다’는 말이다. 그래서 신혼 때 부부싸움은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기 싸움으로 번지기 쉽다. 게다가 아내와 남편이 원하는 가정에 대한 상이 달라 갈등을 느낀다. 아내는 남편과 ‘관계’를 맺으며 쉬고 싶지만, 남편은 동굴 속에서 혼자 쉬고 싶어 한다.
사랑호르몬이 다 떨어질 때쯤 아내는 남편이 돈 잘 벌어다 주고 밤일 잘하면 더 바랄 게 없다. 애들 교육이 중요한 시대라 아내는 뼈 빠지게 벌어다 주는 돈으로 애들과 똘똘 뭉치게 된다. 이때 아빠는 밖에서도 외롭고 쓸쓸한데 집에서도 외딴 섬에 홀로 있는 느낌이 든다. 자기가 돈 버는 기계로 전락한 것 같아 비참하고, 집에 들어와도 아무도 반겨주는 이 없을 때 소외감을 느끼며, 돈조차 벌어오지 못하면 버림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끼며 써늘하게 살고 있다. 매일경제신문 조사 결과, 아내가 경제력이 있다면 남편이 전업주부를 할 수 있다고 응답한 남성이 69%다. 쓸개 빠지고 못나 빠지고 가족을 책임지기 싫은 남자들이 점점 늘고 있다.
연애할 때 여자는 늘 갑이다. 그러나 약혼식 하고 나서부터 을 쪽으로 기울다가 결혼식 준비할 때서부터 결혼식 행사 때까지는 완전히 을이다. 결혼 첫날밤부터 족두리를 벗기고 옷고름을 풀어주면서 자자고 해야 잘 수 있어 남편은 계속 갑으로 우쭐댄다. 신혼 초에는 5할대 타율로 하루저녁에 두 번씩도 한다. 시집온 지 얼마 안 되는 새댁은 밤이면 밤마다 남편의 요구에 시달려야 한다. 색시는 대단한 욕구는 없지만 사랑하는 신랑이 하고 싶어 하니까 그냥 한다. 그러나 얼마큼 살다 보면 갑이던 남편은 저절로 을이 되고 만다. 40대가 되면 여자는 민망해도 슬쩍슬쩍 건드리게 되고 예전만 못한 남편은 아내 팔을 치우고 돌아누워 자는 척한다.
우스갯소리로 좋은 남편의 4대 조건은 아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돌쇠, 개미처럼 부지런한 마당쇠, 아내 단점이나 잘못은 절대 비밀로 해주는 자물쇠, 밤에는 언제나 변강쇠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중 가장 실현하기 힘든 게 변강쇠일 것이다. 큰소리치면서 계속 갑으로 살려면 남자는 가운뎃다리가 항상 오랫동안 꼿꼿해야 한다. 새벽이면 천하를 호령할 듯 포효하던 녀석이 주인을 배반할 무렵부터 망조가 들게 마련이다. 사내로 태어나 자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정의 힘(精力)이다. 그것 하나면 북풍한설 몰아치는 만주벌판에서도 집으로 향하는 마음은 늘 한 가닥 훈풍이었을 것이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는 직장생활에서 의기소침하고 밤일까지 맘대로 안 된다. 부부관계는 안 하고 다음 달로 이월해도 저축되는 게 아니라 그냥 건너뛰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의 샤워 소리가 야생 진드기보다 더 무섭다는 중년 남자들의 뼈 있는 농담은 술자리 단골 메뉴다. 친구들 술자리에서 속없이 한 놈이 자폭을 하면 줄줄이 동병(同病)의 상련(相憐)을 드러낸다. 가끔 분위기 파악 못 하고 정력 자랑을 하는 야비한 놈도 있다. 남 잘하는 꼴은 죽어도 인정하기 싫어 양기가 입으로 올랐다고 헐뜯기는 하지만 배는 아프다.
남성호르몬이 충천한 씩씩한 아내가 잠자리까지 타박을 하면서 남편의 기(氣)를 팍팍 죽이면 남편은 설 자리가 없다. 저절로 갑이 된 아내는 남편을 갑으로 섬겨야 뜨문뜨문이라도 잠자리를 기약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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