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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땅.

오완선 2014. 2. 20. 19:45

전주 풍남문 앞에 있는 전동성당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건물 중 하나다. 야트막한 한옥이 많은 시내에 솟은 종탑(鐘塔)과 지붕의 선(線)이 일품이다. 이 우아한 건물 마당에 상투 틀고 목에 형틀을 쓴 사람의 동상이 있다. 그 앞에는 한 남자가 손에 십자가를 들고 서 있다.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인 윤지충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의 동상이다.

▶윤지충은 1791년 어머니가 죽자 권상연과 상의해 어머니 제사를 안 지내기로 하고 신주(神主)를 불태웠다. 당시 천주교 가르침에 따른 것이었다. 이는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 사회에 대한 엄청난 도전이었다. 조정은 지금의 전동성당 자리에서 두 사람 목을 베 9일 동안 풍남문에 내걸었다. 100여년 지나 신작로를 내기 위해 풍남문 성벽을 허물게 됐다. 이때 성벽의 돌을 가져다 주춧돌 삼아 지은 게 전동성당이다. 명동성당을 마무리한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를 맡았다.

만물상 일러스트

▶한국의 천주교 전래는 아시아나 남미 여러 나라와 다른 점이 있다. 유럽 선교사들이 갖다 심어준 것이 아니라 안에서 무수히 많은 신자가 자발적 노력으로 들여와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새로운 복음과 기성 사회 질서 틈바구니에서 신자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김대건 신부 등 103명을 성인(聖人)으로 추대한 것도 이런 공(功)을 기려서였을 것이다. 그리고 엊그제 프란치스코 교황은 윤지충과 권상연을 비롯한 한국 천주교 창립 주역 124명을 복자(福者)로 이름 올렸다.

▶천주교에서 복자는 성인 바로 다음 반열로 '신앙의 스승'을 가리킨다. 눈에 띄는 것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다산(茶山) 정약용 집안의 수난과 순교(殉敎)다. 윤지충은 다산 어머니의 친정 조카였다. 다산의 형 정약종은 아내와 둘째 아들, 딸을 성인에 올린 데 이어 이번에 자신과 큰아들이 복자에 추대됐다. 다산 큰형 정약현의 사위 홍재영과 그의 아버지 홍낙민도 복자가 됐다.

▶"순교자의 땅, 순교자의 땅." 요한 바오로 2세는 84년 처음 방한했을 때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엎드려 땅에 입맞추면서 이렇게 말했다. 초기 천주교인들의 목숨 건 신앙은 우리 정신사의 새 장(章)을 열었다. 북한 땅은 200여년 전 새로운 종교가 들어온 골목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곳 주민들은 신앙의 자유를 잃고 김씨 일가를 신처럼 떠받드는 체제에 살고 있다. 그 땅에 적지 않은 현대판 순교자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하면 가슴이 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