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성 박사

오완선 2015. 6. 8. 14:58


섹스가 끝난 직후,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든다. 남편은 본능적으로 아내 눈치를 힐끗거리게 된다. 아내의 얼굴에서 만족감을 찾으려고 애쓰지만 쉽지 않다. 혹시 작은 미소라도 발견하면 함박웃음을 웃고 싶어진다.

 

남자들이 섹스 후 듣고 싶은 최고의 말은 뭘까? 가쁜 숨을 내쉬는 남편 가슴에 기대어 ‘정말 끝내줬어, 역시 자기랑 나랑은 찰떡궁합인가 봐’라고 속삭여 준다면 입이 찢어질 것이다. 물론 이 말을 그대로 다 믿지는 않겠지만 그러면서도 남자는 매번 어땠냐면서 성적표를 받고 싶어 한다.

최선을 다하고 물으면 밉지나 않은데 서둘러 삽입하고 혼자 흥분해서 사정해 놓고는 좋았느냐고 물으면 얄미워서 한 대 쥐어박고 싶을 때가 많다. 그러나 지적질하면 기죽어서 발기도 안 된다니 말조심은 하고 봐야 한다. 달콤한 말을 한다고 억지로 거시기가 잘되는 건 아니지만 이왕이면 다홍치마다.

 

말은 사람을 죽이고 살린다. 한 사람만 좋으면 됐지 뭘 더 바라느냐고 하면 화를 내면서 당신이 너무 강해서 만족하지 못하는 거라고, 여자가 너무 밝혀서 무섭다고 뒤집어씌우는 불쌍한 남편도 있다.

 

예전에는 섹스 후 다정히 누워 그날 거사(?)의 좋고 나쁨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기도 했을 것이나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다. 중년 부부는 이제 그런 걸 묻고 대답할 군번이 아니다. 백날 떠들어 봤자 고쳐지지도 않는데 괜히 말해 봤자 그렇게 해줄 놈 찾아보라고 소리 지르는 남편과 서로 할퀴기만 한다. 오래된 남편은 아내를 더 이상 환희로 안내하지 못한다. 그러나 아직 포기 안 된 아내가 섹스 끝나기가 무섭게 ‘벌써 끝났어? 난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라고 따진다면 차라리 섹스를 안 한 걸로 치고 싶어진다. 게다가 숨 돌리기도 전에 냉큼 샤워하러 가는 아내를 보면 남자는 비애를 느낀다. 내 꺼가 그렇게 더러운가라는 섭섭함까지 덧붙여지기 일쑤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섹스를 하고 난 후 상쾌한 쾌감보다 매번 실망 아니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당혹감에 빠지거나 때론 낭패를 보기도 한다는 사실이다. 발기가 돼도 딱딱하지 않거나 발기가 돼 위풍당당하게 들어가시려고 하는 순간 발기력이 뚝 떨어져 삽입을 하지 못할 때, 막 피스톤 운동을 하려는 찰나 음경이 흐느적거려 맥없이 내려와야 할 때 가장 비참하고 끔찍하다. 이럴 때는 남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말고 재치 있게 굴어야 한다. 꼬옥 안아 주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면 남편은 눈물 나게 고마움을 느낄 것이다. 아내는 비록 희망사항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조금만 표현을 달리해보자. 그러면 마치 지하철에 다음 칸이 있듯 얼마든지 다음 번 섹스가 즐거워질 수도 있다.

 

쑥스럽기야 하겠지만 남편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 또한 전달해야 한다. 남자의 자존심을 생각한다고 무조건 좋았다고만 말해놓고 나중에 하나도 달라지는 게 없다고 짜증을 낸다면 남편을 두 번 죽이는 꼴이 된다. 그때그때 자신의 느낌을 정직하게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보다 나은 성생활을 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남편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않은 채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형편없는 섹스를 이끄는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할 일이 아니다.

 

아내를 충분히 만족시켰다면 오곡밥에 생선 반찬이 올라올 것을 자신하지만, 혼자만 좋고 말았거나 시원찮았거나 실패를 했다면 아내가 아침을 차려드려도 지레 기가 죽어 슬슬 도망갈 것이다. 아침을 얻어먹는 남자는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다들 우러러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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