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3.09 08:00
일본의 다양한 신들의 문화
일본에서 15년 동안 거주하며 느낀 것은 일본은 참 독특한 나라란 것이다. 흔히 하는 말로 새해에는 신사에 가서 첫 날(初詣)을 보내고, 결혼할 때는 목사를 불러 채플에서 진행하며, 사람이 죽었을 때는 장례식장에 불교의 스님이 와서 장례를 진행하는 나라다.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자신의 상황에 맞게 진행한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런 와중에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이 있으니 바로 다신교 문화다. 일본에는 야오로로즈(八百万)란 800만의 신이 있다고 전해진다. 우리에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반대로 그들에게는 살아있는 문화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영화가 바로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다. 다양한 신들이 목욕하는 온천이 등장하는 것이 이러한 다신교의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맥주로 유명한 에비스란 술은 복의 신을 상품화시킨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신이 있는 만큼, 일본식 청주인 사케에도 신도 있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사케를 빚는 신이다. 그런데 급이 좀 다르다. 이 사케의 신을 모신 사당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신사 중에 하나로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교토에 있는 마츠오타이샤(松尾大社)가 그 주인공이다. 그럼 이 사당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일본의 기록에 따르면 술의 신이 된 이 일족은 한반도에서 건너왔다고 한다. 한자로 보면 진씨(秦氏) 일가. 일본발음으로는 하타 씨다. 이들을 모신 사당에는 술 빚는 양조도구가 있으며 다양한 축제도 같이 진행된다.
일본의 사케 양조장에 가면 늘 볼 수 있는 위패가 있다. 이들은 이 위패에 술을 잘 빚게 해 달라고 늘 기도를 하는데, 바로 이 위패의 주인공이 바로 하타씨(秦氏)다. 하타씨 (秦氏) 일족이 가진 양조기술이 특별했고, 신에게 바치는 술을 전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를 따르면 이 일가는 서기 283년 백제 120현의 사람을 데리고 일본에 왔으며 백제인 궁월군(弓月君)을 선조로 한다는 내용이 있다. 하지만 삼한 중 하나인 진한, 혹은 신라에서 왔다는 기록도 있으며, 정확하게 이들이 한반도 어느 곳에서 왔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심지어 백제, 진한, 신라 등이며 일본으로 온 연대도 제각각이다. 그런데 이것을 알려줄 만한 단서가 하나 발견된다. 바로 울진 죽변항에서 나온 봉평 신라비이다.
1988년 울진 죽변항 근처에서 발견된 봉평왕 신라비에 울진의 옛 이름이 기록으로 나와있다. 이 지역은 원래 신라의 법흥왕의 명을 받은 이사부가 당시 창해삼국(滄海三國)이라 불린 예국(穢國 현 강릉), 실직국(悉直國 현 삼척), 울진을 신라의 땅으로 복속시킨 곳이다. 그리고 울진의 옛 지명으로 보이는 내용이 이 비석에 나와있는데 ‘파단(波旦)’, 일본발음으로는 하단, 하타 등이 된다. 이를 보고 일본의 하타씨 일가가 한반도에서 일본에 가 자신들의 나라명인 파단을 성으로 쓰고 있다는 학설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배경으로 2009년도에 발간된 일본 분슌신서(文春新書) 의 수수께끼의 도래인(渡来人) 하타씨(謎の渡来人 秦氏 (文春新書))란 서적에는 하타씨 일족이 울진 출신이라는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들이 자신의 뿌리를 지키기 위해 지역 또는 이름을 썼을 것이라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88년 봉평리 신라비를 확인하려 하타씨 가문 사람이 울진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결국, 일본 사케의 신은 신라가 복속시킨 파단(波旦)이란 국가, 울진, 삼척 출신일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참고로 파단(波旦)은 지명이 아니라 관등명(官等名)이란 학자들의 주장도 있어, 학계의 논란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사족이지만 하타씨(秦氏)일족은 술만 잘 빚은 것이 아니었다. 저수지와 수로를 만드는 관개 농업을 시작하였고, 우수한 토목기술을 갖고 토지를 개발하였다 고류지(廣隆寺)라는 사찰을 만들었고, 이곳에 있는 일본 국보 반가사유상 역시 한국의 국보 제83호와 굉장히 유사하다. 고대 일본의 기틀을 세운 특별한 가문이었고 이 부분은 일본도 인정하고 있다.
조금 더 우리 술의 역사와 문화를 찾아야 할 때
일본의 고대문화 기틀을 세운 하타씨 일가가 울진 출신이든 아니든 한반도 출신이 일본 사케의 신이 되었다는 부분은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남겨진 술 문화를 보면 기록에서만 있을 뿐, 술 빚는 방식이나 생활에서 우리의 흔적을 찾기는 거의 힘들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로 문화적 우월감을 가지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 생각한다.
현재 우리는 우리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많다. 정종이란 단어가 전통청주라고 생각하기도 하며, 지방여행을 가도 지역 술은 확인도 안 해보고 획일적으로 소맥만을 찾기도 한다. 마치 프랑스 파리에 가서 맥도날드 햄버거 찾는 것과 비유될 수 있다.
그만큼 한국 술의 문화는 일제강점기와 압축성장을 통해 문화가 왜곡되었고, 사라졌었다. 그리고 큰 관심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2000년전, 한반도를 통해 일본 사케의 신이 된 하타씨(秦氏) 일가. 그리고 그것을 1000년이 넘게 지키고 있는 일본. 그들은 왜 그 긴 시간 동안 이 것을 지켜왔을까? 본래 술이 가졌던 가치가 특별했기 때문은 아닐까? 숙성을 통해 세월을 이어주고, 신과 사람을 이어주고 지역의 농산물과, 문화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이제까지 과음문화로 일색적이었던 한국 술 문화의 본질을 찾아야 하는 이유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과 문화적 가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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