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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떨어진 메뉴들이 한 곳에 모인 이유는?

오완선 2017. 12. 9. 17:05



입력 : 2017.09.29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윤밀원

처음엔 좀 의아했다. 벽의 메뉴판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조준한 영점사격 탄착군이 이럴까? 칼국수에 막국수와 평양냉면? 거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양곰탕과 양무침, 그리고 족발에 이르면 ‘이건 뭐지?’ 싶다. 몇 되지 않는 메뉴가 저마다 근본이 다르고 서로 연관성도 없다. 식당 창업 초보자도 피하는 메뉴구성이다. 창업 전문가 견해를 들어볼 것도 없이 이런 식당은 얼마 못 간다. 심지어 외진 곳에 자리 잡았다. 그런데 전문가들을 비웃듯 아주 잘 나간다. 분당 정자동의 한식당 <윤밀원> 얘기다. 

노랫말 쓰듯 좋아하는 음식 조리하다 보니···

메뉴들 사이의 조리법과 식재료 차이가 크면 식당은 여러 모로 손해다. 우선 구매해야 할 식재료 종류가 늘어나고 구입비도 더 들어간다. 조리설비와 조리 공간, 조리 인력도 더 필요하다. 물, 전기, 가스, 조리시간 역시 더 써야 한다. 또 메뉴가 분산되면 손님 입장에서는 그 집에 대한 인상이 한 눈에 잡히지 않는다. 전문점 이미지나 식당 아이덴티티가 그래서 타격을 받는다. 

<윤밀원>은 돈벌이를 위한 식당으로는 꽝이다. 누가 봐도 그렇다. 그럼 대체 왜 이런 식당을 열었을까? 주인장 김태윤(50) 씨에게 물어봤다.

“맛있는 음식 먹는 걸 좋아했어요. 음식 조리하는 것도 즐거웠고. 언젠가는 내 식당을 차려 내 음식을 다른 이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지금 소원을 이룬 거지요. 이 메뉴들은 제가 평소 즐겨먹었던 음식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로 연관성이 없네요.”
이 집 주인장이 노르웨이 양머리 고기나 이탈리아 구더기 치즈에 빠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김씨는 유명 가수들의 대중가요 250여 곡의 노랫말을 지은 작사가다. 처음엔 작곡으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작곡보다 작사자로 더 잘 나갔다. 글을 쓸 때 내면에 허기가 찾아왔다. 그때마다 할머니의 양무침과 평양냉면 등으로 해소했다. 이북이 고향이신 할머니는 음식솜씨가 뛰어났다.

손자는 성인이 되도록 할머니의 양무침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자랐다. 노래뿐 아니라 요리도 잘 만들었다. 할머니의 양무침 맛과 조리법을 용케 기억하고 재현해냈다. 그 맛을 누군가와 함께 누리고 싶었다.

김씨도 잘 안다. 이런 형태의 식당이 사업적으로 무모하다는 것을. 개업할 때 주변에서도 말렸다. 그러나 어느 정도 유지만 된다면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문을 열자 기대 이상으로 많은 손님들이 환호했다.

맛도 양도 엄청난 칼국수

손님들은 주인장의 숭고한 뜻 같은 건 따지지 않는다. 식사하기 편안하고 음식이 맛있어 찾아올 뿐이다. 서로 아무 관계도 없는 메뉴들 하나하나가 모두 수준급이다. 한 가지만 잘 하기도 어려운 메뉴들이다. 일거리가 많고 꼼꼼하게 조리하려니 많은 일손이 필요하다. 테이블 7개의 작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주인장 포함, 모두 8명이다.

비효율의 극치인 이 식당이 손님 입장에서는 가성비의 극치다. 멸치와 소고기 양지로 육수를 낸 칼국수(8000원)는 양이 엄청나다. 웬만한 장정 두 셋이 먹어도 될 양이다. 송송 썬 대파, 김 가루와 함께 파란 부추가 고명으로 듬뿍 들어갔다. 여기에 잘게 찢은 소고기 양지 또한 푸짐하게 올렸다. 100g 정도라는데 더 되는 것 같다.

국물에 멸치가 들어갔지만 멸치 비린내가 없다. 고급스런 양지 육수 국물 맛은 진국 그 자체다. 넉넉하게 고명으로 얹은 양지가 육향을 더욱 조장한다. 김치 겉절이도 아주 먹을 만하게 익었다. 직접 주방에서 뽑은 면발은 전통적인 칼국수 면을 닮았다. 넓적하고 도톰하다. 한 젓가락 입에 넣으면 구수한 양지 육향이 입 안이 꽉 찬다.

고운 고춧가루를 고기 기름에 하루 동안 숙성시킨 양념장을 넣은 매운맛의 양지칼국수(9000원)도 있다. 매운 맛이 구수하다. 국물이 칼칼해 해장으로 먹기에 좋다.

전문점 수준 넘는 평양냉면, 오색 오미의 양무침

평양냉면을 이런 식당에서 만든다고 해 놀랐는데 그 맛에 더 놀랐다. 다른 메뉴들 모두 버리고 평양냉면 전문점 간판을 당장 달아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이다.

평양냉면이 나오자 고명으로 무슨 빈대떡을 얹은 줄 알았다. 얼핏 보면 제사상에 올린 시루떡 같다. 자세히 보니 큼지막한 소고기 양지와 사태 살 편육이 두 점, 나머지 하나는 돼지고기 편육이다. 냉면 그릇에 들어간 고기값만 해도 냉면 값을 훌쩍 넘길 것 같다.

육수를 낸 고기를 따로 수육 메뉴로 팔지 않고 고명으로 제공했다. 점포 임차료를 저렴하게 내는 편이어서 그 차액 분을 고객에게 돌려주고자 했다고. 아마 그렇게 엄청난 고기를 고명으로 얹어주는 평양냉면은 조선 팔도에 이 집 말고 없을 것이다.

냉면 육수는 고기로 낸 국물에 동치미국물을 소량 섞었다. 고기국물과 동치미 국물을 섞으면 한결 맛이 좋아진다. 하지만 동치미 맛이 쉬 변해 잘못하면 아니 섞은 것만 못하다. 동치미 담그기와 관리에 자신 있어야 사용한다. 동치미 덕분에 육수에서 상큼하게 치고 나가는 맛이 난다. 

양무침(2만1000원)은 주인장 할머니의 사랑이 깃든 메뉴. 할머니의 레시피를 손자가 보강했다.

소의 소화기관인 양의 색깔은 흑과 백이다. 여기에 파란 부추, 빨간 핑크페퍼콘, 노란 레몬 제스트를 더했다. 오색이 제대로 조화를 이뤘다. 예전엔 그저 깨끗이 씻어서 참기름과 소금에 찍어먹기만 해도 맛이 좋았던 양이다. 그런데 이렇게 무쳐놓으니 색과 향이 살아 있는 샐러드 스타일의 요리가 됐다. 양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는 전혀 나질 않는다.
입맛에 따라 마늘을 듬뿍 넣은 고추기름장, 고수, 양파 장아찌와 곁들여 먹는다. 모두 강한 향을 가진 재료들이다. 특이한 것은 고수인데 주인장 김씨가 고수와 함께 양무침을 즐겨왔다고 한다. 양을 얇게 저며 입에 넣으면 아주 연하고 보들보들하다. 오래된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기 딱 좋은 메뉴다.

경기 성남시 분당구 불곡남로13번길 3, 031-714-8388
글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