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韓·日 어린이 장래희망 차이

오완선 2018. 1. 18. 14:07



입력 : 2018.01.18 03:13

'일본인의 노벨상 수상이 이어지면서 남자 어린이들이 학자를 꿈꾸게 됐다.'

일본 대형 보험사인 다이치생명보험이 이달 초 발표한 '유아·초등생 장래 희망 조사' 결과에 붙어 있는 설명이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조사에서 15년 만에 '학자·박사'가 일본 남자 어린이 장래 희망 1위에 오른 것이다. 일본 열도 전체가 "노벨 과학상 22개 등 26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보며 아이들이 학자의 꿈을 품게 됐다"며 들썩이고 있다.

이 뉴스를 접하면서 일본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후지산 정상(해발 3776m) 측후소에서 몇 달 전 만났던 일본 과학자들이 떠올랐다. 후지산을 오르는 산길에서 동행한 학자들은 각자 20~30㎏ 되는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대기 환경을 연구하는 한 50대 교수는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측정하는 데 필요하다"며 16㎏짜리 축전지 2개를 배낭에 넣고 있었다.

힘들면 중간에 벌렁 누워 산소 캔을 물고 숨을 고른 뒤 다시 일어났다. 6시간 걸려 도착한 측후소는 '산적 소굴' 같았다. 컴퓨터 모니터에 뜬 그래프를 보며 토론하는 도쿄대 연구진은 3일간 샤워도 못한 채였다. "이 고생하며 왜 여기까지 오느냐?"고 물었더니 "연구하기 좋은 환경이라면 어디라도 간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게 일본의 저력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후지산 정상에 있는 후지산 측후소 전경. 등산로가 열리는 매년 7~8월 두 달 동안 약 400명의 과학자가 이곳을 방문해 지구온난화와 대기 환경 등을 연구한다. 연구 결과는 모두 민간에 공개된다. /조선일보 DB

일본 과학계가 '노벨 과학상 22개'라는 열매를 거둔 밑바탕에는 목숨 건 '장인 정신'과 특정 분야에 몰입하는 '오타쿠 문화'가 있다.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무라 사토시 기타사토대 교수는 수상자로 선정된 바로 다음 날에도 비닐봉지를 들고 흙 속의 미생물들을 모으러 다녔다. 중소기업 샐러리맨 연구원이던 학사 출신 다나카 고이치씨는 2002년 노벨 화학상 수상 전화를 받고 푸른색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2015년 노벨 물리학상을 탄 가지타 다카아키 도쿄대 교수는 2002년 수상자인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교수의 제자다. 고(故) 유카와 히데키 박사가 1949년 일본인 최초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뒤 같은 분야에서 5명이 노벨상을 내리받았다. 3대(代)를 이은 '한 우물 정신'의 승리다.

세계적 과학 저널 '네이처'는 '한국이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못 내는 이유'로 기초 연구에 대한 장기 투자에 인색하기 때문이라고 꼽았다. 단기 성과를 요구하는 풍토도 문제지만, 일본 과학자에 못지않은 연구자 본인의 불꽃 같은 집념과 끈질긴 근성, 몰입이 없다면 일본 추월은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 어린이들은 언제쯤 한국인 노벨 과학상 수상자를 보며 학자의 꿈을 키울까. 지난해 한국 어린이 희망 직업 조사에서는 공무원(남자)과 가수(여자)가 최상위권에 올랐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1/17/201801170305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