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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한 디테일의 디자인이 스며든 도시, 오사카 디자인 기행 4

오완선 2018. 4. 5. 05:18



오므라이스는 어디에서 탄생했을까. 회전초밥은 누가 어디에서 처음으로 만들었을까. 타코야끼, 오코노미야끼는 또 어느 도시에서 먹기 시작했을까. 답은 모두 오사카이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일본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 있는데, 도쿄 사람은 보다 죽는다고 하여 ‘미다오레’, 교토 사람은 입다 죽는다고 하여 ‘키다오레’, 오사카 사람은 먹다 죽는다고 하여 ‘쿠이다오레’라고 부른다. 오사카는 천하의 부엌으로 비유된다. 오므라이스는 1925년 양식당 홋쿄쿠세이(北極星)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졌고, 타코야키는 1935년경 아이즈야(会津屋)라는 가게로부터 시작되었다.

오사카의 대표적 음식으로 꼬치튀김의 일종인 쿠시카츠는 우리네 백화점 이름과 똑같은 신세카이(新世界)라는 동네에서 처음 생겼고, 생선으로 우려낸 국물에 우동을 넣은 나베요리인 우동스키는 1933년 미미우(美々卯)에서 고안되었다. 오코노미야끼 역시 1946년 이 도시에서 개발되었고, 회전초밥은 오사카의 시리이시 요시아키가 컨베이어벨트를 보고 발명하였으며, 얇은 삼겹살을 겹쳐 만든 돈카츠도 이 도시에서 탄생하는 등, 수많은 맛의 디테일이 이 도시를 기원으로 한다.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그가 축조한 성이 있고, 한 도시 안에 무려 800여개의 다리가 있으며, 일본에서 가장 긴 상점가 텐진바시로 상징되는 상업과 교역의 중심도시 오사카. 맛의 디테일과 다양성만큼 폭넓은 그 곳의 디자인을 들여다보자.

오사카성

오사카의 상징인 오사카성(大阪城)은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에 계획하여 1585년에 완성한 것으로, 현재의 성은 1931년에 복원하고 1997년에 재정비한 것이다. 일본의 3대 영웅 중 한 명인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성을 모델로 삼고 이보다 더 웅장한 규모로 만든 오사카성은 일본 통일 원정을 나가는 본거지 역할을 했다.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이어진 내전 당시 성의 대부분은 전소되어 버렸고, 2차 대전기간에도 성 동편의 무기공장 때문에 폭격의 표적이 되곤 했다. 오사카성의 대각선 맞은편에 오사카시립역사박물관이 함께 있기 때문에 관람일정을 함께 계획하는 것이 좋다.

일본 내에서 미식가들이 가장 많다는 오사카,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맛집이 모여 있다는 곳이 바로 도톤보리이다. 도톤보리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방문하면, 음성내장 펜으로 주문을 하는 등 메뉴주문 체계가 독특한 식음 매장들이 많아 그와 관련된 공간구성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도심지 대형광고물과 관련 그래픽디자인이 어떻게 지역의 상징으로 발전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대게요리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樂)의 간판은 거대한 게 모양의 오브제가 다리를 움직이고 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특히 잘 맞아 도톤보리에만 3개의 매장이 있다는 킨류(金龍)라멘은 거대한 용 모양의 오브제 간판으로도 유명하다. 복요리 전문점 즈보라야의 복 모양 간판이나 꼬치튀김 쿠시카츠로 유명한 다루마(だるま) 등 모든 간판들이 개성 있고 독특하다. 도심 밀집 상업공간에서 사실적인 모형을 활용한 방식으로 집단 활성화되어 조화감을 이루면서 지역 관광요소로 사용되는 사인의 사례를 보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일본 내에서 미식가들이 가장 많다는 오사카,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은 맛집이 모여 있다는 곳이 바로 도톤보리이다. 도톤보리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방문하면, 음성내장 펜으로 주문을 하는 등 메뉴주문 체계가 독특한 식음 매장들이 많아 그와 관련된 공간구성을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도심지 대형광고물과 관련 그래픽디자인이 어떻게 지역의 상징으로 발전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대게요리로 유명한 카니도라쿠(かに道樂)의 간판은 거대한 게 모양의 오브제가 다리를 움직이고 있고, 한국인의 입맛에 특히 잘 맞아 도톤보리에만 3개의 매장이 있다는 킨류(金龍)라멘은 거대한 용 모양의 오브제 간판으로도 유명하다. 복요리 전문점 즈보라야의 복 모양 간판이나 꼬치튀김 쿠시카츠로 유명한 다루마(だるま) 등 모든 간판들이 개성 있고 독특하다. 도심 밀집 상업공간에서 사실적인 모형을 활용한 방식으로 집단 활성화되어 조화감을 이루면서 지역 관광요소로 사용되는 사인의 사례를 보기에 이보다 적합한 곳은 없을 것이다.

일본 디자인은 1970년대 혜성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다. 1945년 세계 2차 대전 폐전 후, 재건의 과정에서 레이몬드 로위와 같은 미국의 디자이너로부터 이식된 디자인이 일본 디자인의 첫걸음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디자인 역사의 과정에서 미국의 디자인 발전은 스스로의 역량도 있었겠지만, 나치의 탄압으로 인한 1933년 바우하우스 폐교 및 훌륭한 독일 인재들의 미국 정착과도 깊은 관련이 있었다. 바우하우스 교수진의 수준 높은 조형교육 경험은 미국의 유수한 여러 대학과 기업 활동의 기저에 조용히 흡수되었고, 1950년대 국제주의 양식으로 세계가 균일한 기능주의적 모더니즘의 사고로 발전해 가는 데 있어 이를 주도한 미국 디자인의 중요한 자양분이 되었다. 일본 역시 전후 재건의 과정에서 패전국으로서 미국적 시스템을 여러 분야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었고, 자신들의 정체성과 결합하였다. 이 결과 70년대 이후 ‘극소주의’로 지칭되는 새로운 디자인 개념과 양상이 일본의 디자인을 대표하는 특질로 규정되었다. 일례로 소니의 초기 제품디자인에서 연상되는 일본의 극소주의 지향 디자인은 흔히 기능주의 모더니즘의 토대에 일본 전통공예의 완벽성이 잘 결합된 조화로 평가된다. 공예적 완벽성과 공교한 치밀함은 이후 모든 분야에서 일본 디자인을 일컫는 중요 키워드가 되었다. 오늘날 공간을 다루는 제반 분야에서도 일본의 디자인은 끊임없이 자연을 재해석하는 개념적 접근을 통해 절제된 기능을 조화시키고, 재료와 마감에서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세심한 디테일 지향의 디자인을 확장시켜가고 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