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10.02 09:21
우리나라에서 난청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은 대략 500만명으로 추산되나 이중 보청기를 사용하는 비율은 7%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다른 선진국(14%)들과 비교했을 때 현저하게 낮은 수치다. 보청기 보급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보다 가격이 비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보청기 시장의 90% 이상은 외국 제품들이 장악하고 있는데, 수입 디지털 보청기의 가격은 보통 적게는 150만원에서 많게는 700만원이다. 상당수 난청 질환자들이 65세 이상 노인이거나 취약 계층임을 감안하면 보청기 사용은 ‘사치’인 셈이다. 정부는 형편이 어려운 난청 질환에게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으나, 최대 지원금은 10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애당초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인정받기도 쉽지 않다.
이어헬스(ear health) 스타트업 ‘더열림’이 제작해 작년에 첫선을 보인 스마트 보청기 ‘오렌지에이드’는 정가가 88만원으로, 다른 보청기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다. 정부 보조금을 받으면 최저 63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오렌지에이드의 가격이 저렴한 이유는 대리점을 통한 중간 유통 과정을 완전히 생략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보청기 판매는 대부분 대리점을 통해 이뤄진다. 난청 질환을 앓는 사람이 대리점에 들러 자신의 청각 상태에 맞춰 보청기 기능을 조절하는 ‘피팅’ 작업을 거친 후 구매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더열림은 기술 개발을 통해 난청 질환자가 스스로 피팅 작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난청 질환자는 굳이 대리점을 방문할 필요없이 쿠팡이나 지마켓 같은 인터넷 쇼핑으로 오렌지에이드를 구매할 수 있다.
더열림은 2015년 유정기(50) 대표가 창업했다. 유 대표는 25년간 현대전자와 팬택 등 휴대폰 제조사와 스마트폰 부품기업 멜파스에서 근무한 엔지니어 출신이다. 멜파스 근무 당시 보청기 제조 및 판매 사업을 하며 난청 질환자의 고통을 알게 돼 창업을 결심했다고 한다. 2017년에는 현대그룹·KTB네트워크·동국제강에서 근무한 영업·기획 전문가인 조동현(50) 대표가 유 대표의 사업 취지에 공감해 더열림에 공동대표로 합류했다.9월30일 서울 광화문에서 더열림의 두 공동대표를 만났다.
-회사명에 담긴 뜻은 무엇이며 현재 직원 수는.
(유정기 대표)“더열림이라는 회사명은 ‘귀가 열려라’에서 착안한 것입니다. 저희 제품을 사용하는 분들이 좀 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담아 지었습니다. 현재 직원 수는 저희 둘을 포함해 7명입니다. 나머지 5명은 모두 보청기 개발진입니다. LG전자와 팬택 모토로라 등에서 일했던 전문 엔지니어들로 구성돼있습니다. 본격적인 보청기 판매는 작년 9월부터 이뤄졌고, 그 전까진 개발 기간이었기 때문에 직원 수는 아직 많이 않은 편입니다.”
-오렌지에이드 보청기는 어떤 제품입니까.
(유 대표)“스마폰 앱을 통해 보청기의 미세기능을 사용자 청각 상태에 맞게끔 직접 조절할 수 있는 스마트 보청기입니다. 젊음을 상징하는 색인 ‘오렌지’에 ‘도와주다’는 뜻을 지닌 영단어 aid를 합친 이름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블루투스 이어폰과 다를 바가 없고, 실제로 블루투스 이어폰 기능과 핸즈프리 전화 수신 기능도 들어있습니다. 저희는 보청기의 핵심부품인 신호처리 직접회로(IC)의 알고리즘을 직접 개발하고 5건의 보청기 기술 특허를 취득했습니다. 작은 소리의 증폭 능력을 의미하는 평균음향이득 성능도 외국산 보청기보다 2배 정도 높으며, 목소리 외 잡음을 줄이는 정도인 등가입력잡음도 외국산보다 우수합니다. 또 오렌지에이드는 디자인을 세련되게 고안해 ‘보청기처럼 생기지 않은’ 외형을 지녔습니다. 패션 아이템으로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오렌지에이드의 가격이 싼 이유는.
(조동현 대표)“일반적인 보청기 가격이 비싼 이유는 대리점 중심의 유통구조 때문입니다. 유통 마진이 많이 끼어있는 상태입니다. 보통 보청기 하나 만드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100달러(12만원) 남짓인데 소비자가 구매하는 가격은 150만원, 200만원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불합리하지만 별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예 보청기 사용을 하지 않던가,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비싼 값을 주고 보청기를 구매하는 것입니다. 저희는 사용자가 스스로 피팅 작업을 할 수 있게끔 기술을 개발해 대리점 과정을 과감히 생략했습니다. 인터넷으로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택해 싼값에 공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유 대표)”제가 창업을 한 이유도 싸지만 성능좋은 보청기를 난청 환자들에게 보급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직전 직장인 멜파스에서 보청기 사업을 했었는데, 실제로 사업을 하다보니 보청기 가격에 유통 마진이 너무 많이 끼어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나라 보청기 보급률은 후진국 수준인 7% 밖에 되지 않는데 가격이 비싼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대리점 피팅 작업을 사용자 스스로 하게하면 가격은 3분의 1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작년부터 오렌지에이드 판매를 시작했는데 첫해 판매 실적은 어느 정도였나.
(조 대표)“작년 9월부터 판매 시작했고 연말까지 500개 정도 판매했습니다. 올해는 2000개 판매, 매출 5억원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상품 라인업 보강을 위해 난청 환자들이 좀 더 싼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디지털 음성 증폭기를 개발했고, 이달 중으로 판매할 계획입니다. 의료기기인 보청기는 미세 피팅이 가능하지만, 오디오 기기인 음성 증폭기는 간단히 볼륨 조절만 할 수 있는 방식입니다. 이밖에 현재 개발 중인 다양한 제품을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며, 올해 말부터는 아마존이나 이베이를 통해 미국으로 판매도 계획 중입니다. 내년 매출 목표는 약 40억원으로 잡고 있습니다.”
-현재 개발 중인 제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유 대표)“크게 세 가지 제품군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방금 말씀드린 디지털 음성 증폭기입니다. 두번째는 보청기 안에 센서를 심어 고령자의 맥박·운동량 등 데이터를 사용자의 자녀가 모니터링할 수 있는 업그레이드 제품도 내년 초 시장에 선보일 계획입니다. 세번째는 인공지능 스마트형 보청기로, 외부 소음 환경을 보청기에 달린 인공지능 센서가 자동으로 분석해, 환자가 직접 피팅하지 않아도 보청기가 알아서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조절하는 제품입니다.”
-회사를 운영하며 가장 어려운 점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
(조 대표) “저희는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입니다. 시장 진입이 어렵고, 많은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특히 의료기기는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고 인증을 받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됩니다. 하지만 국내 투자자들이 하드웨어나 부품 소재 개발 사업을 등한시하는 풍토가 있어 투자금 유치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유 대표) “우리나라에서 보청기 개발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 없다보니 저희는 맨땅에 헤딩하는 꼴로 이 사업에 뛰어든 셈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오렌지에이드를 개발해 인증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스타트업 창업하려는 사람들에게 조언할 만한 팁이 있다면.
(유 대표)“직접 사업을 해보니 내가 계획했던 것보다 사업 진행 속도가 항상 더뎠습니다. 어떤 프로젝트가 1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 보통 2년씩은 걸리더라고요. 항상 최악의 경우까지 감안해서 사업 플랜을 짜야합니다. 저는 개발 엔지니어 출신이다보니 투자 유치나 마케팅쪽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조 대표에게 합류를 제안한 것입니다. 대표가 뭐든 것을 다하려는 생각은 버려야합니다. 나보다 뛰어난 전문가가 있다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 대표)“젊은 창업인들은 이커머스나 반려동물, O2O(온라인·오프라인 연결서비스) 사업 쪽에 보통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은 목표지점까지 가는 것이 굉장히 힘들지만, 세상에 없는 제품을 만들면 굉장히 큰 부가가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스타트업을 준비하는 젊은 분들이 하드웨어 제조 스타트업 분야에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열림의 최종 비전과 목표는 무엇인가.
(유 대표)“현재는 보청기를 주로 판매하고 있지만 저희 사업 분야의 한 부분일 뿐입니다. 가까운 미래에 혈당측정기, 혈압측정기등 생활 밀착형 의료기기를 개발해 판매할 계획입니다. 이러한 생활 의료기기를 통해 사용자들의 건강 데이터를 수집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병원과 연동해 건강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는 게 꿈입니다.”
(조 대표)“사업 기반을 다진후 2023년에는 코스닥 시장에 기업 공개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글로벌 탑10안에 들어가는 이어케어 회사로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혁신적인 기술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는 회사로 성장하고 싶습니다. 또한, 난청으로 공통받는 개발도상국의 고령자 및 청소년, 아동 난청인들에게도 소셜임팩트(Social Impact) 가치를 제공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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