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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성당 평전

오완선 2020. 12. 15. 15:30

◆최의영·우광호 지음|시공사|436쪽|1만8000원   2020.12.12.조선일보.

성당은 감사와 갈망, 결핍이 피워낸 꽃이다. 중세 끄트머리, 르네상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힌 이탈리아인들은 지난 시대의 어둠을 벗어나고 싶은 갈망과 새 시대가 선사한 풍요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모두 성당에 쏟아부었다. 가톨릭 사제인 최의영 신부와 가톨릭계 언론인 우광호씨가 5년에 걸쳐 피렌체·나폴리·베네치아·바리·밀라노 등 5개 도시와 그 주변의 성당 80곳을 돌아보고 쓴 순례기는 유럽 건축과 미술의 아름다움을 전하고 역사 속 이야기를 건넨다. 성당이 품은 가톨릭 성인들의 삶과 죽음의 사연들은 종교를 넘어 인간성의 보편적 미덕으로 확장된다.

저자들이 첫손에 꼽은 건, 피렌체 대성당으로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꽃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이다. 지름 42m, 높이 136m의 거대하고 아름다운 큐폴라(돔)를 찬미하기에 앞서 저자들은 좌절과 극복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캄비오는 당대 최고 건축가이자 예술가였다. 하지만 성당 건축 임명장을 받아들고 "내 인생 전체를 걸겠다"고 오연히 맹세한 그에게 신이 허락한 것은 고작 밑그림뿐이었다. 6년에 걸친 세심한 사전 작업을 마쳤을 뿐인데 갑자기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설상가상으로 흑사병이 온 도시를 덮쳤다. 140년에 걸친 고통과 좌절, 도전과 극복의 과정을 거쳐 우뚝 선 성당은 아름다웠다. 그 장엄미에 압도된 저자들은 신의 '천천히 구원하는 섭리'를 느낀다.

유럽 성당들은 중세 미술의 보고(寶庫)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소장한 마사초의 '성삼위일체'는 회화 역사상 단시점 원근법이 처음 적용된 걸작이다. '삼차원으로 감상하고 싶으면 그림에서 6m 떨어져 한쪽 눈을 감고 보라'는 두 저자의 힌트는 참으로 짓궂다. 코로나 감옥에 갇혀 중증 여행병을 앓는 독자들에게 당장 그곳에 달려가 확인하고 싶어지게 하니 말이다. 시에나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선 성당 제단화와 저자가 어릴 적 부산 범어사에서 본 탱화의 아름다움을 비교하고, 산 자카리아 성당에선 벽면을 도배지처럼 뒤덮은 15~17세기 대형 성화들 위용에 입을 벌린다.

성당마다 만나는 성인의 삶은 거울처럼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 대성당은 로마시대 법조인과 정치인으로 성공한 삶을 살다가 세속의 모든 부와 권력을 버리고 종교에 귀의한 성인 암브로시우스가 묻힌 곳. 이교에 빠졌던 아우구스티누스를 위대한 신학자의 길로 이끌었고, 반란자 7000명을 학살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를 그의 품 안에서 참회하며 생을 마치게 했다. 나폴리 대성당에선 4세기에 순교한 젠나로 성인의 피가 1년에 두 번 액체 상태로 돌아온다는 기이한 이야기도 듣는다.

베네치아는 옥토를 빼앗기고 쫓겨온 사람들이 만든 도시다. 갯벌 위에 지은 가난한 도시가 해상무역 시대를 맞아 크게 번영했다. 그 거대한 반전을 목격한 이들이 산 마르코 대성당과 산 조르조 마조레 대성당을 지어 신에게 바쳤다. 그들의 마음속에 무엇이 깃들었을까. 저자들이 찾아간 산 조르조 대성당엔 틴토레토의 걸작 '최후의 만찬'이 소장돼 있다. 그림 속 예수는 어둡고 누추한 방에서 직접 빵을 들고 다니며 제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생의 마지막 날 저녁을 보냈다. 사치를 경계하고 남을 섬기는 삶을 잊지 않으려 했던 베네치아인들의 마음을 읽는다.

밀라노는 명품 성당의 향연이 펼쳐지는 도시다. 1386년 첫 삽을 뜬 밀라노 대성당은 1965년에야 정면 출입문을 완성했다. 600년 동안 135개의 첨탑과 3000개 넘는 조각상을 만들어 성당을 장식했다. 무엇이 이토록 오래 식지 않는 열정을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 두 저자는 성당 앞에서 티끌처럼 작아지는 자신들을 느낀다면서도 인간은 '생각하는 먼지'라고 했다. 이 모든 아름다움과 거룩함, 숭고함이 그 티끌의 염원으로 이룩됐다.

책 곳곳에 성당 사진들을 풍성하게 펼쳐 놓았다. 여행에 목마른 이들에게도 훌륭한 위로가 될 듯하다.

 

인⃝피렌체 대성당의 큐폴라(돔) 너머로 피렌체시 전경이 펼쳐져 있다. 본⃝135개 첨탑과 3000개 넘는 조각상을 자랑하는 밀라노 대성당. 늘 사람들로 붐빈다. 약⃝피렌체의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있는 피에타. 미
켈란젤로 만년의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