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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에서 좌청룡 우백호보다 중요한 것은

오완선 2021. 4. 2. 17:12

무덤 봉분 뒤 불룩한 부분(사진 가운데 맨 아래쪽)이 세종대왕릉의 잉 부분이다. 우리 조상들은 좌청룡 우백호보다 잉을 중시했다고 문화재 전문가들은 말한다./조훈철 문화재 작가

문화재 이해법③

:현장 답사를 해야 한다

문화재 작가 조훈철씨와의 대화는 우리 조상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세번째 관점으로 이어졌다.

―세번째 강조점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자. 왜 문화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현장 답사가 중요한가?

“조선 성리학자들의 이중성 때문이다. 성리학자들은 출세를 하기 위해 성리학과 관련된 서적인 사서삼경을 공부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렇게 배척하던 불교식의 천도재를 지냈다. 중앙에서 관직에 머물다 시골에 낙향해 자기 집을 짓거나 서원을 건립할 때에는 터의 지기를 살피는 풍수를 반드시 활용했다. 다만 기록으로 남길 경우에도 성리학적인 이론만 언급하고 풍수나 불교적인 용어는 전혀 남기지 않았다.

예컨대 조선왕조실록을 보더라도 한양 도성 계획에 대한 정도전의 이야기는 무수히 많이 등장하지만 도성 계획에 풍수가 개입되었다는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눈 밝은 전문가가 현장을 확인해 보면 풍수가 개입된 흔적이 곳곳에 나타난다. 궁궐, 서원, 정원, 사대부 종택 등에서 하나도 예외 없이 모두 적용된다. 그래서 문서만 읽어서는 안되고, 현장 답사를 해야 조상들의 삶을 전체적으로 알 수 있다. 문화재 공부의 어려운 점이다.”

―기록에는 없지만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풍수 사례는?

“창덕궁 인정전 정문의 앞마당은 형태가 사다리꼴이다. 대체로 대궐의 앞 마당은 넓고 반듯한 사각형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왜 찌그러진 사다리꼴일까? 북한산에서 종묘로 들어가는 지맥을 훼손시키지 않고 마당을 만들려다 보니 사다리꼴이 된 것이다.

또 안동 하회마을에 가면 부용대라는 절벽이 있다. 이 암벽의 나쁜 기운이 마을에 미치지 않도록 중간에 소나무 1만 그루를 심어 만송정이라는 인공 숲을 만들었다. 이는 겨울철 북서 계절풍을 막는 방풍림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를 풍수적으로 해석하면 암벽의 거센 돌기운을 막아내기 위한 인공숲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재들을 너무 과학적 현상적으로 따지면 진정 조상들이 원하는 그 취지를 놓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안동 하회마을의 벼랑바위 부용대.

안동 하회마을의 만송정. 풍수전문가들은 부용대의 바위 기운을 막기 위해 만그루의 소나무를 심었다고 풀이한다./조훈철 문화재 작가

―또 다른 사례는?

“안동 병산서원의 경우 강당 앞에는 기숙사 역할을 하는 두 개의 방이 있다. 오른쪽 서재는 반듯한데 왼쪽 동재는 아주 미세하게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나는 측량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실제 측량을 해본 경험자이기에 이런 것에 매우 민감하다. 건축 과정에서 생긴 착오일까? 아니다. 앞에 위치한 병산의 울퉁불퉁한 암벽 기운을 막기 위한 것이다.

암반이 많이 노출된 지형은 살이 끼어 인간이 살기 좋지 않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집을 지을 때 피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장소를 택할 경우 이렇게 풍수 비보를 하면서 장점을 활용하고 단점을 보완하는 지혜를 발휘해 왔다. 건축가의 입장에서 보면 중국의 자금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이유 궁전처럼 주변 자연환경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기하학적 원리에 따라 대칭적인 형태의 건축물을 만들기가 가장 쉽다.”

경복궁을 누르는 나쁜 암벽 기운

조씨는 이 이야기를 하던 도중에 카페의 북쪽 창 밖 멀리 있는 백악산의 울퉁불퉁한 바위들을 가리켰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저 산도 바위가 많아 좋지 않다. 조선시대 왕들은 경복궁이 터가 좋지 않아서 여러 불길한 사건들이 많이 발생했다고 생각했다. 왕자의 난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래서 궁 밖의 돌산이 안 보이는 창덕궁을 왕들은 특히 좋아했다. 그래서 성종 때는 경복궁을 떠나 아예 창덕궁으로 옮겨 정착했다.”

겸재 정선이 그린 백악산./간송미술관

―전국의 문화재를 어떻게 탐방 다녔나? 저런 돌산에도 직접 올라가 봤나?

“시간만 나면 차를 몰고 다녔다. 그동안 승용차를 3대나 바꾸었다. 문화재 답사를 갈 때에는 사진이 중요하므로 날씨를 잘 봐서 가야 했다.

오지로 다니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있었다. 문화재를 찾아 산 중턱을 수시로 오르락 내리락 해야했다. 하지만 문화재에는 조상들의 기운이 서려있어 나를 보호해 준다는 믿음이 강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지 잘 지내온 것 같다. 문화재가 있으면 돌산이 아니라 어떤 지역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느 순간 문화재가 나의 종교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산 중턱에 문화재가 왜 그리 많나?”

“문화재는 산 중턱뿐 아니라 어느 곳이든 존재한다. 방치된 것들이 많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산 중턱에는 불교 문화재들이 특히 많다. 마애불 형식으로 골짜기마다 있거나, 절들이 사라지고 석탑들 한 두 점이 산속에 있는 경우도 많다. 전 국토가 박물관이란 말은 현장에 가면 실감이 난다. 인력이 부족해 전문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문화재를 접할 때 솔직히 자괴감이 든다.”

명당의 조건

시계가 오후 4시에 가까워졌다. 인터뷰를 마무리 짓기 전에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하나 던져보기로 했다. 아마 풍수가 아닐까?

―백두대간이란 단어가 유행하는데 풍수와 관련이 있나?

 

“우리 조상들은 기(氣)의 흐름을 중시했다. 그러한 기운이 흐르는 통로를 산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시발점이 바로 백두산이다. 그래서 백두산에서 남쪽 끝 산인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높이가 높고 연속적인 산줄기를 백두대간이라 부른다. 이것을 체계화한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이 작성한 산경표(山經表)이다. 산경표는 백두산을 중심으로 시작하여 우리나라의 정기(精氣)가 남쪽의 지리산까지 흐르고 있다고 강조한다.”

―산경표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의 산지는 1개 대간과 1개 정간(正幹) 및 13개 정맥(正脈) 체계로 되어 있다. 백두대간은 한반도의 자연적 상징이며, 동시에 한민족의 인문적 기반이 되는 산줄기라고 할 수 있다. 여기 경복궁은 백두대간에서 뻗어나온 13개 정맥 가운데 하나인 한북정맥의 산줄기가 뻗어 내려 도봉산-북한산을 지나 보현봉-응봉-백악산을 지나서 경복궁으로 내려오는 구조이다.”

백두대간의 출발점인 백두산 천지./조선일보 DB

―이런 백두대간의 기 흐름에서 볼 때 명당은 어떤 곳인가?

“풍수 이론에 따르면 기는 바람을 만나면 흩어지고(氣乘風則散) 물을 만나면 멈춘다(界水則止). 그러니 명당이라면 바람을 뒷산, 좌청룡(왼쪽 산이나 언덕), 우백호(오른쪽 산이나 언덕)로 막고 앞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 사찰이나 궁궐에 들어갈 때 항상 물길 위 다리를 건너야 하는 것은 이 건물들이 풍수지리상 이러한 명당 터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길 안이 명당이다. 이 물길을 안에서는 명당수라고 하고, 밖에서는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한다는 의미에서 금천이라고 불렀다.”

―배산임수, 좌청룡, 우백호, 명당수 외에 다른 조건은?

“남쪽 멀리 조(朝)산이 있어야 하고 가까이에는 자그마한 안(案)산이 있어야 한다. 안산은 가문의 인재 배출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안산의 기운을 받아 인재들이 생긴다고 본다. 안산은 뒷산보다 높아서는 안된다. 좋은 산은 정문을 그쪽으로 내서 기운을 받아야 하고, 암벽이나 돌이 많은 나쁜 산은 정문의 방향을 약간 틀어서 기운을 막아야 한다.”

조선시대 사림파의 영수였던 점필재 김종직(1431~1492)의 경북 고령군 개실마을 종택. 대문이 앞산의 봉우리 정기를 정면으로 받는 형태로 건축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조훈철 문화재 작가

―산 사람의 집과 죽은 사람의 묘자리의 명당 조건은 같은가?

“마찬가지이다. 다만 산 사람의 공간인 양택은 평지이고, 죽은 사람의 공간인 음택은 산이다. 양택을 쓸 곳에 음택을 쓰거나 음택을 쓸 곳에 양택을 쓰면 기운이 반대가 된다.”

―풍수 전문가들이 말하는 ‘잉(孕)’은 무엇인가?

“풍수에서 정말 중요시 하는 개념이다. 잉태한다는 의미이다. 출산을 앞둔 여인의 배가 불룩 튀어나와 있는 것처럼, ‘잉’이란 혈(穴) 자리(묘자리) 바로 뒤에 볼록 솟아있는 자연 상태의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이러한 잉이 없으면 진정한 명당터가 아니라고 우리 조상들은 생각했다. 좌청룡 우백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겼다.”

―'저 푸른 초원 위에' 집을 짓고 살면 어떤가?

“우리 조상들은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인간에게 미치는 자연환경 가운데 바람은 정말 두려운 존재이다. 바람은 인간에게 많은 악영향을 끼치므로 바람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 바람에 잘못 노출되면 얼굴에 변형이 올 수도 있고, 심한 풍병에 걸릴 수 있으며, 심지어 하루 아침에 죽기도 한다. 푸른 초원은 사방이 바람 잘 통하는 곳이므로 인간이 자연 재해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곳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그렇게 낭만적이지 못하다.”

체계적인 문화재 이론 교육 필요

―이제 인터뷰를 마무리 지을 시간이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요약하면?

“우리 조상들이 물려준 귀중한 문화유산을 수학과목과 비교해 보자. 수학의 고차원적인 이론인 미분 적분 등을 이해함으로써 우주 여행을 가능케한 로켓의 발명이 가능했다. 이런 어려운 이론을 익히기 위해 우리는 어릴 때부터 그 기초가 되는 인수분해, 방정식 부등식 등을 체계적으로 익혀왔다.

우리 조상들이 남긴 문화유산의 수준은 수학에서 말하는 미분 적분의 수준이라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일반인들은 미분과 적분을 풀 수 있는 수학 실력이 안된다. 이에 반해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재를 미분과 적분 풀이처럼 설명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전에 방정식 부등식에 해당하는 부분을 익힐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 이후 일반인들에게 미분과 적분의 원리와 풀이법에 대해 이론적인 강의를 해줘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우리의 전통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저 같은 사람이 문화재를 아무리 이야기 해도 소용이 없다. 공무원 시험, 수능 시험, 승진 시험 등에 문화재 이해를 위한 기본 원리를 묻는 항목이 많이 들어가야 한다. 대한민국에서는 출세를 위한 시험과목이 아니면 무시당하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화재 이해를 위한 교육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지도자들이 깨달아야 한다.”

 

문화재 작가 조훈철씨가 지난 3월 29일 경복궁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전통 문화재를 이해하기 위해 필수적인 3가지 사항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기훈 기자

 

<문화재 퀴즈>

산 사람의 공간이므로 왼쪽이 더 높다. 왕이 봤을 때 왼쪽이 문관, 오른쪽이 무관들이다./문화재 공부법

죽은 사람들의 공간이므로 주인의 관점에서 오른쪽이 더 높은 지위를 갖는다. 따라서 태조 이성계의 신주 위치는 1번.

왕의 위패는 1번이다. 2번과 3번은 왕비의 위패. 죽은 사람들의 공간이므로 오른쪽이 더 높다.

이순신 장군이 근무했던 전라좌수영은 서울 경복궁 내 임금의 위치에서 볼 때 왼쪽이므로 여수이다.

좌협시보살은 석가모니불의 관점에서 왼쪽이므로 문수보살이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본 병산서원 사진. 산 사람의 공간이므로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왼쪽이 더 지위가 높은 공간이다. 정답은 2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