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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가지 진미가 한입에 쏙

오완선 2012. 8. 17. 09:34

 

지난 8월10일 아침, 전남 신안 지도읍 신안북부수협 송도위판장 모습. 민어들이 경매를 기다리고 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민어 집산지 신안군 지도읍 송도위판장 풍경과 다양하게 즐기는 민어 요리들

지난 8월10일 아침 7시30분, 전남 신안군 지도읍의 신안북부수협 송도위판장. 크고 작은 민어들이 위판장 바닥에 줄지어 깔리기 시작했다. 밤새 고기잡이를 마치고 들어온 배들이 풀어놓은 것들이다. 무게 15~16㎏의 대물들도 보인다. 대개 몇마리씩 투명비닐에 담겨 얼음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이다. 육질 부분에 피가 스미거나 부패하는 것을 막고자 선상에서 피 빼기 작업을 하고 비닐에 담는다고 한다.

 

사리때는 하루 12t까지 잡혀
어획량 따라 ㎏당 2만~6만원까지
암컷보다 수컷이 비싸

 

무게 16㎏에 이르는 대형 암컷 민어

어획량·크기·암수컷 따라 값 천차만별
“자 민어, 시작합시다.” 8시30분, 경매사의 안내로 살아 있는 민어부터 경매가 시작됐다. “에~, 민어 수치(수컷) 3미 합이 15㎏~.” 중매인들이 수신호를 보내고, 경매사는 가장 높은 가격(㎏당)의 수신호를 찾아내 낙찰가와 그 중매인 번호를 외친다. 부둣가에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경매는 10시 무렵까지 이어졌다. 이날 들어온 민어는 모두 4t, 위판 가격은 ㎏당 2만7000~3만5000원(수컷 기준) 수준이었다. 전날은 9t, 전전날은 10t이 들어왔다. 경매사 남희현(50) 과장은 “물 흐름이 별로 없는 때라 어획량이 크게 줄었다”며 “사리 때였던 나흘 전엔 하루 12t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민어는 조류가 셀 때 활발하게 움직이므로 물때에 따라 민어 어획량이 달라진다. 물 흐름이 좋은 사리 때 어획량이 많다. 조류가 셀 때 민어의 먹이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이는 고기잡이 방식과도 관련이 있다. 조류가 셀 때는 대형 어선들이 물 흐름을 따라 그물을 치는 유자망으로 잡는 반면, 약할 때는 고정형 그물인 자망이나 연승(주낙) 방식으로 민어를 잡는다.

 

“민어 금(가격)은 물때 금이랑게.” 민어 가격은 물때에 따라 크게는 서너배씩 차이를 보인다. 어획량이 많은 날엔 수컷이 ㎏당 2만원대(암컷은 1만5000원대)까지 떨어지지만, 적을 땐 ㎏당 5만~6만원(수컷)을 훌쩍 넘어선다. 한 중매인은 심한 가격차가 나는 이유를 “민어의 저장성이 떨어지는 데서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어를 냉동보관했다가 해동시키면 물러져 제맛이 나지 않는다. “버글버글(흐물흐물)해져부링게 맛이 안 나제라.”

 

수컷이 암컷보다 비싼 것은, 다른 고기와 달리 민어는 알보다도 부드러운 육질의 회를 더 알아주기 때문이다. 수컷이 ㎏당 1만~2만원가량 비싸게 거래된다. 암컷은 몸집이 커도 대형 알집 때문에 고기 부분이 그만큼 적어진다. “알 빼고 머리 빼고 뼈 빼면 무게가 반 가까이 사라져불제.” 값 차이는 산 것과 죽은 것 사이에도 ㎏당 1만원 이상씩 난다. 역시 저장성, 산 것을 훨씬 오래 보관할 수 있어서다.

 

여기에다 민어는 또 크면 클수록 ㎏당 가격이 비싸진다. 송도위판장 옆 수산시장의 한 수산물가게 주인은 “큰 고기일수록 육질이 좋고 맛도 뛰어나기 때문”이라면서도 “하지만 마리당 5㎏짜리를 기준으로 그 이상 것부터 비싸지므로, 가정에서 먹으려면 4㎏대 민어를 사는 게 좋다”고 말했다. 위판장과 수산물상가(점포 30여곳) 사이엔 회 떠주는 곳이 세곳 있다. 민어를 해체한 뒤 부위별로 다듬어 포장해주는 곳이다. 민어가 많이 들어온 날이면 민어 상자를 든 사람들이 줄을 선다.

 

(시계방향으로) 민어알찜, 민어껍질·부레·뼈양념다짐, 민어전, 민어맑은탕.

뼈·껍질·내장 등 버릴 것 없어
최고 별미는 부레
하루 숙성시키면 더 부드러워

 

17가지 맛 낸다는 민어…모든 부위가 요릿감
민어(民魚)는 이름에 ‘백성 민’자를 쓰지만,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 식생활과는 거리가 느껴지는 비싼 바닷고기다. 진상품으로 임금님 수라상에 자주 올랐고, 있는 집들에서도 최고의 보양식으로 쳐 왔던, 맛과 영양을 겸비한 귀한 물고기였다. 일제강점기 들어 대량 어획이 이뤄지면서, 한때는 연 2만t 넘게 서남해안에서 잡혔다고 한다. 어획량 대부분이 일본으로 넘어간 건 물론이다. 당시 임자도엔 민어를 잡은 배들이 몰려들어, 유명한 임자도 타리(임자도에 딸린 섬) 파시가 열렸다.

 

그때는 민어가 얼마나 많았는지, 여름철 신안 섬 주민들은 바닷속에서 ‘부욱, 뿌욱’ 하며 우는 민어떼 소리에 잠을 못 잘 정도였다고 한다(‘개 짖는 소리에 잠을 설쳤다’는 설도 있다. 개들이 민어 소리를 듣고 밤새 짖었기 때문). 신안의 섬들에는 긴 대나무통을 바닷물 속에 넣어 소리로 민어떼를 탐지하는 방법이 전해온다. 민어는 1990년대 초까지도 전국에서 1천여t이 잡혔지만, 요즘 어획량은 연 수백t 수준이다.

 

흔히 민어는 17가지 맛을 내는 바닷고기라 부른다. 뱃살·뼈·부레·껍질·내장·간 등 거의 모든 부위가 요리에 이용되고, 또 각별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다음은 민어 요리의 본고장 목포의 횟집들에서 맛볼 수 있는 대표적인 민어 요리들. 20년간 민어 요리를 다뤄왔다는 목포 장군민어 서병임씨의 도움을 받았다.

 

민어회(몸통살·뱃살·껍질·부레·뼈) 다른 바닷고기처럼 산 것을 갓 잡아 썰어낸 회가 인기지만, 맛은 다듬은 뒤 하루쯤 숙성시킨 것이 더 좋다. 육질은 매우 부드럽고 연하다. 워낙 살집이 부드러워 졸깃함과는 거리가 멀다. 몇번 씹기도 전에 살살 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일반인들은 몸통살을 선호하지만, 뱃사람을 비롯한 지역 주민들은 뱃살을 좋아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민어의 핵심은 부레다. “부레를 먹어야 민어를 먹은 것”이란 얘기가 있을 정도다. 회로 먹으면, 부드러운 기름기에 싸인 졸깃졸깃하고 차진 부레 안쪽 부분이 씹을수록 입에 착착 달라붙는다. 참기름·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부레는 접착성이 강해, 예로부터 자개 등을 붙이는 아교 원료로 쓰였다. 일제강점기 기록에도 “민어가 10전이면 부레가 4전”이란 말이 나온다. 껍질은 살짝 데쳐 채소를 싸먹는데 졸깃하고 고소하다. 뼈를 날것으로 다진 뒤 양념을 섞어 경단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민어전·민어찜·민어알찜·민어탕수육 전은 몸통살을 얇게 썰어, 당근·파 등을 다져 넣은 달걀옷을 입힌 뒤 부침가루를 묻혀 튀긴다. 민어찜은 몸통살에 다진 마늘, 고춧가루 양념을 씌워 쪄낸다. 전이나 찜에선 회로 먹을 때와 비교해 민어 고유의 풍미는 느껴지지 않는다. 민어알은 인기 있는 부위는 아니다. 몸통살·뱃살·부레 등 부위에 밀린다. 알배기 암컷 값이 수컷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알은 양념을 얹어 쪄먹는데, 명란에 비해 순한 맛이 난다. 민어탕수육은 뱃살로 만든다. 뱃살에 튀김가루를 입혀 무화과 소스를 얹어 내는데 고소한 편이다.

 

민어맑은탕(뼈·머리) 국물 맛이 기막히다. 뼈와 머리를 푹 고면 곰탕처럼 뽀얗고 진한 국물이 우러난다. 세번 이상 고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보통 생민어를 회로 다듬고 남은 뼈와 머리 부분을 끓여 진한 탕을 만든다. 벌건 매운탕으로 끓이기도 하지만, 주민도 손님도 청양고추를 곁들인 맑은탕을 압도적으로 선호한다. 더 깊은 맛을 보려는 사람들은 살짝 말린 민어를 맑게 끓여달라고 미리 주문해 먹는다고 한다. 3일가량 말려 끓이면 살집이 한결 졸깃해지고 국물맛도 한층 깊어진다.

 

이밖에 지역에 따라 부드러운 살집을 넣어 끓인 민어죽이나 민어미역국, 내장을 이용한 순대 요리, 민어초밥, 간장조림 등으로 요리해 먹기도 한다.

 

목포·신안=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민어요리 여기서 맛보시랑게

목포는 목포·신안권의 중심도시답게 다양한 해산물 전문 식당들이 몰려 있다. 어지간한 횟집이면 다 민어회를 낸다. 민어 전문 횟집들이 몰린 민어의 거리(초원실버타운 앞 골목)도 형성돼 있다. 대개 민어회 3~4인분에 4만~6만원 선. 뱃살·부레·껍질 등이 딸려 나오고 민어탕은 별도 주문해야 한다. 민어 코스 요리는 1인당 5만원 안팎.

영란횟집(중앙동) 민어회·민어무침·민어전·민어매운탕, 농어회 등. (061)243-7311.

장군민어(용해동) 민어회·민어찜·민어전·민어탕수육·민어죽·민어탕, 낙지전복전골, 병어회 등. (061)274-5799.

신푸른바다횟집(수강동) 민어회·민어전·민어탕, 광어회 등. (061)244-7775.

달빛선어횟집(호남동) 민어회·민어전·민어회덮밥, 병어회 등. (061)245-2772.

삼화횟집(번화로) 민어회·민어전·민어탕 등. (061)244-1079.

허사도횟집(옥암동) 민어회 코스 정식, 민어·보리굴비정식 등. (061)285-4888.

옥정 하당점(통일대로) 민어회, 민어 코스 정식 등. (061)287-0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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