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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17 (백두대간이 처참하게 파괴된 자병산)

오완선 2012. 12. 1. 18:13
(백두대간이 처참하게 파괴된 자병산)

그 동안 먼 길 함께 오시느라 엄청 수고들 많았습니다.

불량품은 오늘로 모두 땡처리를 끝내고 내일부터 출시되는 신제품의 사양은 대관령삼양목장, 오대산, 이 땅의 최고오지인 조경동의 아침가리골과 설피마을, 출입이 금지된 점봉산, 그리고 밤새워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도 부족한 설악산 등, 제품의 품질은 이미 검증을 받은 최상의 제품들입니다.

오늘은 이곳 백봉령에서 자병산을 오른 후에 석병산과 두리봉을 지나서 강릉에서 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상의 강릉시 왕산면의 삽당령의 고갯마루까지가 오늘일정이고,

내일은 삽당령에서 석두봉과 화란봉을 오른 후에 지방도로가 지나는 왕산면의 닭목재로 하산하여 다시 횡계의 고로포기산과 능경봉을 연결하고 능경봉에서 (구)영동고속도로의 하행선의 대관령휴게소가 이번 구간의 종착역이다

오늘은 대략 17km로 8시간정도 예상하며 내일은 25km로 11시간 정도로 계획하고 있다. 이렇게 계획을 잡는 것은 도로와 연결되기 때문이고 도로로 한번 떨어지면 더 이상 산행하기가 싫은 것은 누구나 똑같은 인지상정이고 산 꾼 들이라고 특별한 것은 아니다.

내일 구간이 만만치 않으므로 삽당령에 도착하여 조금 더 진행하게되면 진행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그 곳에서 멈출 요량이다.

시작부터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며 우회로를 걷고 있다. 바로 앞의 자병산을 올라가야 하지만 자병산은 백두대간에서 이제는 사라진 봉우리다. 한라세멘트에서 석회석을 채취하느라 훼손의 차원을 넘어 산 전체를 통째로 파괴시켜 버렸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 한 그루 없는 민둥산이고, 그것도 모자라서 봉우리는 아예 없고 몸통만 있으며 옛날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의 모습을 연상하면 딱 그대로다.

석회석을 파 먹으며 배를 채우고 있는지, 아니면 복토를 하고있는 모습인지는 알 길이 없으나 트럭들이 산허리를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아차! 지금 난지도 하늘공원의 은빛 억새가 바람에 하늘거리며 절정을 이룰 때가 되었는데 그 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요런 것만 맨 날 생각하고 있으니 나도 무쟈게 한심한 놈이지만 역마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니 내 잘못은 아니다. 역마살은 옛날에는 흉살이지만 세상이 변해서 요즘은 길살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하므로 그것으로 위안 삼고있다.

백두대간은 곳곳이 많이 훼손되었지만 이 곳처럼 처참하게 파괴된 곳은 없고 그 다음이 추풍령이며 그 다음이 남덕유산의 함양쪽 일부 자락이다. 이렇게 훼손을 넘어서 처참하게 파괴를 시켰으면 미안한 마음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아침부터 이렇게 꼬라지가 나서 하드에서 열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 곳은 사유지임으로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판 문구의 내용이 오만 방자하여 사람을 더 열 받게 하고있다. 곳곳에 "폭파중, 출입금지" 이런 푯말로 촌놈 겁을 주고 있어서 점잖은 체면에 욕은 못하겠고 이런 열 불나는 꼴을 보고 그대로 지나가면 그 사람은 배알도 없는 사람이라 이런 사람들은 주소록에서 무조건 삭제다.

고만고만한 관목지대를 지나오는 동안에는 나무 가지들이 회초리가 되어 얼굴을 후려갈기고, 그것도 부족하여 뒤에서 배낭을 낚아채며 가뜩이나 꼬인 심사에 더 성질을 돋구고 있다. 산죽들이 등로를 일부 가로막고 있으나 이런 정도는 이제 애들 장난의 눈요기며 심심풀이 땅콩이다.

대간 길은 석병산의 정상을 거치지 않고 두리봉으로 이어가지만 여기까지 와서 석병산의 정상을 찍지 않으면 천 추의 한이 될 것 같아서 배낭을 벗어두고 잽싸게 올라가서 정상을 찍고 내려왔다. 왕복해봤자 20여분밖에 걸리지 않은 거리이나 이 것도 힘이 들어 그냥 지나는 것이 대간 길이다.

석병산의 정상은 바위덩어리로 되어있고 병풍모습의 암벽에는 직경 1m정도 되는 자연구멍이 뻥하게 뚫려있어 이 모습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희한한 모습이라 올라온 본전은 충분히 뽑은 것 같다.

대간을 뛰었다고 자랑하는 사람에게 석병산의 이 모습을 보았냐고 물어보면 그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은 보지를 못했다. 정상에서 반대편으로 10여 미터를 더 가야 있으므로 보고 온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다.

아마 이런 것을 보고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한다"고 하는 모양이다. 이럴 때에는 축록자 불견산(逐鹿者 不見山)이라고 풍월을 읊어야 하지만 그런 유식을 흉내내면 뭐하냐, 풍월은 좀 부족하더라도 우선 인간이 되어야지, 요런 작자들도 밥맛이라 주소록에서 일단은 아웃이다.

혹자는 이럴 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적은 이익에 연연하는 상인들의 어리석음을 지적할 때에 인용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런 것은 잘 모르겠고 나는 이 풍월을 최인호가 쓴 "상도"에서 주워온 것이다. 기억력이 좋아서 이런 것까지 미주알 고주알 기억한 것은 아니고 "산"이란 글자만 보이면 눈이 번쩍 떠져서 하드에 요런 것만 저장하고 있다.

석병산에서 30분 정도의 거리에 두리봉이 있으며 석병산은 암봉이라면 두리봉은 말 그대로 두루뭉실하여 정상인지, 정상이 아닌지, 눈썰미가 없으면 무심코 지날 수 있는 곳이다. 이렇게 두루뭉실해도 석병산과 비슷한 천 미터급의 봉우리다.

두 봉우리가 지척에 있어도 서로 닮지 않은 것을 보면 친구 때문에 잘못됐다는 것은 무조건 뻥이므로 요런 얘기하는 사람들도 아웃이다. 모두다 이렇게 아웃 시키다 보니 내가 아웃되어 이제는 혼자서 이 먼길을 걸어가는 홀로 "독"자의 외로운 독립군이 되어버렸다.

두리봉에서 내려오면 삽당령이고 여기까지 7시간 밖에 안 걸렸으므로 아직은 발동을 끄기가 너무 일러서 그대로 가속페달을 밟으며 계속 돌격 앞으로다.

삽당령에서 2시간정도를 페달을 밟고 나면 말 그대로 돌대가리인 석두봉을 오른다. 석두라고 전혀 꿀림이 없이 떳떳하게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을 보면 대갈통 똑똑해서 입으로 보초서는 놈보다 훨씬 더 든든한 느낌이다.

옛말에 못 생긴 나무가 선산지킨다고 했듯이 잘생긴 자병산은 처참히 파괴되었고 못 생긴 석두봉은 말없이 백두대간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옛말이 틀린 것이 하나 없다.

화란봉으로 이어가는 도중에 텐트를 치기 좋은 장소가 있어서 그 곳에서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났으나 랜턴을 켜도 발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도 이런 안개는 난생 처음 보는 정말 지독한 안개였다.

대관령까지 남은 거리는 이제 18km정도 되므로 8시간이면 널널하고, 대관령에서 5시에 조카와 만나기로 약속했으므로 9시부터 산행을 시작하여도 충분하여 대간 길에서 가장 한가로운 길이 지금 걸어가는 길이다.

화란봉을 지나서 닭목재에서 고루포기산을 올라와서 대관령을 향한 마지막관문인 능경봉을 넘어오면 고속도로처럼 달릴 수 있는 완만한 길로 이어진다.

영동고속도로의 준공기념탑 앞을 지나며 혹시 하드에 저장할 내용이 있나 대략 훑어보고 대관령휴게소에서 3일간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고대하고 고대하는 백두대간의 만기제대날짜 특명을 받았다.

영동고속도로가 새롭게 개통되어 (구)대관령휴게소의 옛 영화는 간 곳이 없고 몇몇 차량만 가끔씩 지나고 있을 뿐, 개점 휴업상태인 가게를 지키는 사람들이 손님들보다 더 많았다. 손님으로 늘 북적이던 이 곳이 이렇게 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던 일이던가!

그러고 보면 사람팔자나 휴게소팔자나 모두가 시간문제고, 하등 다를 바가 없으므로 세상만사가 폼잡을 일이 하나도 없는 것이므로 있을 때에 잘해야 한다.

이제 백두대간의 제대특명을 받은 열외병력이므로 쫄따구들이 제설작업을 하던, 제초작업을 하던, 뭘 하고 뺑뺑이를 치던 나하고는 상관없고 남은 것은 D데이 카운트다운뿐이다.

대관령에서 오대산의 노인봉을 넘어서 진고개까지 하루잡고/ 진고개에서 다시 오대산 두루봉을 넘어서 구룡령까지 또 하루를 잡고/ 구룡령에서 조침령을 지나 점봉산을 넘어 한계령까지 이틀을 잡고/

한계령에서 대청봉을 찍고 공능능선을 타고 마등령을 지나서 미시령까지 넉넉하게 이틀을 잡고/ 미시령에서 종착역인 진부령까지 하루를 잡고/

모두 합하여 1주일이면 개구리예비군복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부뿐 꿈을 가지고 정든 병영을 떠날 것이다.

마음 속으로는 벌써 전역신고를 복창하고 있지만 아직도 150km나 남았다. 군대서도 말년 열외병력일 때가 제일 지겹듯이 이제는 노가리 까는 것도 입이 아프고 솔직히 말해서 지겹기도 하다.

그러나, 앞으로는 레퍼토리가 좋아서 개판을 처도 국방부시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돌아가게 되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