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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 . --두타산--

오완선 2012. 12. 1. 18:14
두타산에서 4일간을 헛고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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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걸어가는 것도 지겹고 글을 쓰는 것도 지겹고 재미없는 글을 읽는 것도 지겨우니 백두대간은 정말 지겹고도 지겨운 길이며 오죽하면 길을 걸으며 이런 생각을 다 해보았습니다.

뭐 때문에 잊혀진 백두대간이 다시 태어나 사람을 이리도 골병들게 하는지, 산경표가 발견되지 않았으면 이 고생을 하지 않고 산천유람하며 편하게 살아갈 것인데 아니면 내가 죽고 나서 발견되던지 할 일이지, 앞으로 백두대간을 단독으로 완주했다는 놈은 성질이 못돼먹어도 한참이나 못돼먹은 인간이므로 절대로 상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하였다.

1월 어느 날 뉴스를 들어보니 강원도에 폭설이 내려 대관령이 막히고 두타산을 산행하는 20여 명이 조난을 당했다는 소리에 귀가 번쩍 뜨인다. 뒤에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대간을 운행하는 어느 산악회였고 암자로 탈출하여 하루 밤을 보내고 다음날 삼화사로 하산하여 모두 무사하였다 한다.

눈 속을 헤치며 길을 내는 것을 러셀이라 한다. 눈이 쌓인 지 오래되지 않으면 눈이 가벼워 러셀하기가 조금 수월하지만 눈이 오래되면 눈의 무게가 무겁고 눈이 딱딱하게 얼어있어 힘 좋은 젊은애들도 500m만 치고 나가면 그대로 다운되므로 수시로 교대를 하며 길을 뚫어야 한다.

1시간을 고생해도 기껏해야 500m 정도 밖에 갈 수 없으니 길이 뚫려있지 않으면 혼자서 러셀을 하며 단독으로 대간 길을 찾아가는 것은 엄두도 못내 달포 이상을 꼼짝도 못하고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1월 말쯤에 동대문의 산 친구들에게 연락하여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하였다. 두타산 구간의 일부는 뚫려 있으나 전부는 아직 알 수 없으므로 단독산행은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를 하지만 일부라도 뚫려있으면 뚫려있는 곳까지는 갈 수 있다는 얘기이므로 주간일기예보를 검색하여 강릉으로 향했다.

강릉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조카에게 다음날 댓재까지 픽업을 부탁했다. 그때만 해도 서슬이 시퍼런 고집불통인 작은아버지이므로 말릴 수는 없고 이 추위에 산행을 한다고 우기고있으니 걱정도 보통 걱정이 아닌 모양이다.

조카가 걱정되어 혼자 산에 올라가도 정말 괜찮겠어요 하며 걱정된 소리를 하지만 걱정 말라며 지금 장비로는 히말라야에서도 얼어죽을 염려는 없고 비상식량으로 1주일은 산 속에서 충분히 살 수 있으니 4일 후까지 연락이 없으면 119에 연락하던지 말던지 너 맘대로 하라며 오히려 혼자 가는 것이 더 안전하다며 안심시켰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거리가 1시간 반정도 떨어져 있어 일반산행은 두 산을 연계하여 산행을 하고 산행의 들머리는 동해시 삼화동의 삼화사 입구이며 부채꼴 모양으로 한바퀴 돌아서 다시 삼화사로 내려오지만 백두대간은 그 반대편의 댓재에서 정상을 향해 이어오고 있다.

두타산의 자랑거리는 무릉계곡의 하얀 반석들이다. 족히 10평이 넘는 하얀색의 넓은 반석들이 계곡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이름처럼 무릉계곡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계곡이야 더 멋진 곳은 이 땅에 무수히 많이 있으나 이처럼 하얀 반석이 널려있는 계곡은 이 곳을 따라올 곳이 없다.

아쉬운 점은 그 반석들이 어느 하나 멀쩡한 것이 없고 모두다 옛 사람들이 풍류를 읊으며 징으로 수많은 글씨를 새겨놔서 그 점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무리를 하면서도 이렇게 동계 대간 길을 시도하는 것은 한마디로 고집 때문이다. 동계에는 길을 멈추고 춘삼월에 다시 길을 이어야 하지만 백두대간의 4계를 모두 걸어봐야 그 참모습을 알 수 있고 어차피 고생문으로 들어서기로 작정하였으니 제대로 매운 맛을 한번 봐야 직성이 풀렸다.

이번 구간은 두타산과 청옥산을 넘어 백봉령까지 27km정도의 구간이다. 중간에 차가 다니는 도로와 만나는 곳이 한 곳도 없어 중간에서 탈출을 하게되면 그 다음에 그 지점으로 다시 어프러치를 해야하므로 주말 무박산행으로 대간을 이어가는 주말 팀들은 당일로 끝장을 볼 수밖에 없어서 이 구간은 대간 길에서 힘든 구간으로 정평이 나있는 구간이다.

이 구간을 4일을 예상하고 두타산을 오르고 있다. 그 4일도 지금은 장담할 수 없고 얼마나 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할지 속단할 수 없으며 백두대간의 대장정에서 가장 힘든 여정이 될지도 모른다.

적설산행은 평상시 산행과는 스텝부터가 다르다. 봅스레이 코스처럼 러셀이 잘 된 곳은 큰 문제는 없지만 지금처럼 푹 파인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징검다리 걷듯 걸어가는 것은 발을 높이 들어야 하므로 전혀 다른 스텝이다.

평상시에 사용치 않은 근육을 사용하므로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며 간혹 발을 잘못 디뎌 허방이나 밟게되면 허우적거리며 그 곳을 빠져나오느라 힘을 엄청 소진하고 전혀 위험하지 않은 곳도 빙판으로 변해버려 안전사고를 늘 생각해야한다.

댓재에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두시간 반정도면 올라올 수 있는 거리이나 두시간을 걸어오지만 겨우 절반정도 올라온 것 같고 체력은 급격하게 저하되고 거북이걸음으로 열심히 걸어봐야 전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그나마 족적들이 있어 이나마 올라온 것이며 능선의 적설량은 보통 무릎정도여서 걷는 것이 아니라 앞사람의 족적에 발을 넣었다 뺏다하며 한발한발 나아가므로 얼마가지 못하고 힘이 들어서 스틱에 의지하여 잠시잠시 쉬어가고, 땀이 식으면 체온이 떨어져서 추위를 감당하기 어려워 오랜 시간을 쉬어 갈 수도 없었다.

두시간 반 거리를 그 곱절인 5시간을 걸어서 1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겨우겨우 두타산 정상에 올라섰으나 사시나무처럼 몸이 떨려서 조금도 지체할 수 없어 곧바로 청옥산을 향해 발길을 재촉해야 했다.

바람에 휘 날리는 빛 바랜 태극기의 외로운 모습만 두타산 정상의 기억일 뿐 다른 기억은 떠오르지도 않고 주위를 눈여겨볼 만큼 그런 아량도 허락하지 않은 혹독한 추위였다.

박달령을 거쳐 청옥산을 올라왔으나 체력은 이미 한계상황에 다 달았고 그 때의 심정을 당시에 이렇게 기록해 두었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양지바른 언덕에 쓰려져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그처럼 파란 하늘은 처음이라 눈이 부셔 바라볼 수 없고 온 산야가 하얀 눈에 덮여 더 더욱 눈이 부시다.

태초의 모습이 바로 이런 눈부심 일 것이다. 혹한과 강풍과 폭설이 모든 것을 날려보내고 온갖 잡것을 다 삼켜 버렸다.

혹한이여! 모든 잡것들을 다 얼려 버려라/ 강풍이여! 모든 잡것들을 다 날려 버려라!/ 폭설이여! 모든 잡것들을 다 삼켜 버려라!/

이 길을 걸으며 무심결에 떠오른 생각들을 잊지 말고 정리해 보자. 무수한 대간의 산행기록들을 나 또한 반복해 적고 싶지는 않다. 판에 밖은 그들의 기록들을 읽고 싶지도 않다. 숱한 발자국이 눈길 속에 묻혀 있을 것이다. 내 발자국은 그들의 발자국과 조금은 다르고 싶다.

고뇌하며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 영롱한 백설처럼 순결한 영혼으로 다시 태어나 새롭게 살고싶다. 고뇌하고 배우고 가르침을 받을 그 수많은 선택 중에서 선택한 길이 이 길 아닌가, 무엇을 고뇌하고 무엇을 배우고 어떤 가르침을 받아야 할지 아직은 모른다. 아니 이 길이 끝날 때까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멍청한 선택만 하자. 이 땅 전부를 걸어보며 생각해 보자. 혹한과 폭설과 강풍 속을 이렇게 걷고 또 걸어보자. 담금질이 강하면 강할수록 더 많은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

이 지긋지긋한 추위와 눈길을 탓 할 생각도 없다. 이런 길이 아니라면 그 누군들 이 길을 걷지 못 하겠는가?

다음날. 주섬주섬 장비를 챙기고 족적을 확인하였다. 건너편에서 내려온 흔적이 있음으로 길이 뚫려있으니 모레까지 열심히 걸으면 목표달성은 가능해 보였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착착 맞아떨어진 기분이라서 비록 힘은 들지라도 신바람이 나고있다.

백두대간은 이렇게 동계야영도 하면서 완주를 해야 제대로 한 것이다. 말 같지도 않은 이런 쌩 폼을 잡으며 30여분 진행하다보니 갑자기 발자국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오메, 요것이 무슨 조화여, 요놈들이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눈길에서 발자국이 사라졌으니 답은 하나다. 다시 빽하여 돌아간 모양이다.

이제 진퇴양난이다. 다시 빽하여 삼화사로 하산하여 산행을 끝내자니 우선은 사람 체면이 말이 아니다.

조카한테 큰소리치고 올라와서 이틀만에 철수한다는 것은 윗사람으로써 체면이 말이 아니고 또 그렇게 반대한 마눌은 기고만장하여 기세가 등등 할 것이고, 지금까지는 자존심 하나로 밑천 삼아서 근근히 버티어 왔는데 이번에는 조금 생각해 볼 일이다.

지도를 꺼내서 다음 탈출로를 찾아보았다. 10km정도를 진행하면 이기령에서 마을로 탈출이 가능해 보이고 3일간의 시간이 있으므로 한번 해 볼만하였다. 다음에 마을에서 하산지점인 이기령으로 다시 어프라치하더라도 대략 20km정도는 대간 길을 이어온 것이므로 이번 대간 길의 성과는 있는 것이다.

오르막 암릉이 있어 아주 위험스럽게 변해버린 고적대를 올라오니 이 곳 경치도 아주 멋진 곳이지만 혼자 러셀을 하며 벌써 3시간정도를 진땀을 뺏으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쳐서 쓰러지기 일보직전이라 지금은 그런 경치 타령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제부터는 내리막이라 조금 수월할 줄 알았으나 이미 지쳐있어 한 걸음 한 걸음이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고 앞에 보이는 갈미봉을 쳐다보니 지금 상태로 올라가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대가 낮은 이곳 안부는 눈이 더 쌓여있어 어느 곳은 거의 허리까지 빠져들어 허우적거리며 빠져나오기 바쁘므로 더 지치기 전에 텐트를 설치할 장소부터 찾아야 했다. 그래도 오늘은 목표치는 걸어온 것 같으므로 이틀만 잘 버티면 만사가 오케이다.

다음날도 오전에 1km정도를 뚫어 갈미봉에 올라왔으나 오후에 더 이상 진행해야 2km도 진행하지 못 할 것 같다. 내일은 조카에게 하산하기로 약속한 날이므로 연락을 하지 못하면 언론사에 근무하는 놈이라서 119에 신고를 하여 무슨 소동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제 불안이 엄습해 오기 시작한다. 지금 체력으로는 조카와 약속한 내일까지 하산은 도저히 불가능하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나마 높은 능선 길은 눈이 적은 편이나 지대가 낮은 안부는 곳곳이 무릎이상까지 눈이 쌓여있으므로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꼴이니 이런 낭패도 없고, 이기령까지는 분지형태이므로 평소에는 널널한 길이겠지만 지금은 적설량이 얼마나 되는지 알 길이 없다. 또 그곳에서 임도따라 마을로 하산하는 길도 무려 4km를 내려가야 하므로 하산 길도 무시할 수 없는 길이다.

지도를 꺼내서 통빡을 아무리 굴려도 이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하산을 약속한 내일은커녕 적설량이 무릎이상이면 산길이 아니고 늪 속에 빠진 꼴이므로 모레도 힘들 것 같고 그 이상도 걸릴 것 같다. 그래, 이 곳에서 철수를 하자. 이틀 반을 죽기살기로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지금 상태에서는 그나마 최선의 길이었다.

그 힘들게 걸어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가고 있으니 이렇게 원통하고 서러울 수가 없다. 그 얼마나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그 길을 다시 되돌아가야 한단 말인가. 어제 텐트를 쳤던 자리로 돌아오니 맥이 풀려서 더 이상 걷기도 싫어서 다시 그 자리에 이른 시간이지만 텐트를 치고 그 날밤은 참으로 많은 생각을 하며 하루 밤을 꼬박 지새운 것 같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라는 평범한 경구가 실감났지만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꼬리를 물다보니 별별 생각이 다 떠오른다. 길인지 길이 아닌지를 알 수만 있다면 그게 무슨 걱정이겠는가, 길인지 길이 아닌지를 모르는 것이 문제이며, 길이 아니므로 가지 마라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다. 도대체 길이란 것이 무엇인가?

앞사람을 따라가도 길이 아닌 것이 인생길이며,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이 다른 것이 인생길이며, 가야할 길이 모두 다른 것이 인생길이며, 어느 길을 찾아가는 것이 옳은 길인지를 알 수 없는 길이 인생길이며, 나침반도 없이 방향도 모르고 걷는 길이 인생 길이다.

이런 인생 길을 실패 없이 걸어가는 것이 진짜 길을 걷는 것이며, 지금까지는 참으로 용케 이 길을 큰 잘못 없이 걸어온 것 같으나 철없는 아이들은 이런 길을 어떻게 걸어 갈 것인지를 생각하면 답답한 일이다.

방향이 확실하고 길이 분명한 이런 백두대간을 모두 걸었다 하여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이런 회의적인 생각도 떠오르며 하여튼 그 날밤은 이런 잡생각을 하면서 회한의 긴긴밤을 보낸 것 같다.

4일째 되던 마지막 날의 정오쯤에 첫날 막영지로 원위치 하여 러셀이 잘된 삼화사 방향의 하산 길로 접어들어 아무런 성과 없이 4일간의 산짐승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그 후, 이 구간을 3월 중순에 원수를 갚기 위해 제대로 한판 붙어 보았다. 야영장비는 조카에게 도착지로 가져오라고 하고, 아주 가벼운 당일군장으로 댓재부터 다시 시작하여 27km를 죽으라고 한번 달려보았다.

도대체 평상시에는 얼마나 소요되어 4일 동안 그 고생을 해야했는지, 그리고 모두들 이 곳이 힘들다고 하는데 얼마나 힘든 곳인지, 그 속내나 제대로 알고 싶었다. 독한 마음먹으면 10시간에 주파가 가능한 것을 4일 동안 그 고생을 하며 죽을 똥을 쌌던 것이다.

동일한 구간이라도 상황에 따라서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으므로 산행의 속도를 가지고 우열을 자랑하는 산 친구들에게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싶지만, 또 이런 현상이 산행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 무수히 많을 것이다.

여건이 조성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기다림의 인내를 두타산에서 두타수행을 통하여 조금이나마 깨우쳤으며 그 날의 그 고생들이 헛됨이 아니라 백두대간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잡고있다.

혹독한 추위에 야영을 하며 고생한 기억들을 비롯하여 하고 싶은 말이 조금은 더 있으나 엄살을 떠는 것 같아 모든 것을 생략하다보니 글이 이상해 졌고, 처음에는 동계야영의 어려움 등을 포함하여 글을 작성하였으나 작성한 글이 크릭을 잘못하여 몽땅 도망가버려서 다시 타이핑하느라 맥이 빠져서 부실한 글로 마무리를 한 느낌입니다

대간 길에 두타와 청옥산을 두 번이나 오르고 구간 타이핑도 두 번이나 하고 요것이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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