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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15 (검룡소와 고랭지 채소밭)

오완선 2012. 12. 1. 18:16
◆ 태백산은 어떤 산인가?

태백산은 생각보다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지 못하고 아직도 도립공원의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높이는 1500m급으로 지리산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북상하여 올라오면 덕유산 이후에 처음 만나는 1500m 고봉이지만 산세가 완만하여 누구나 손쉽게 올라올 수 있다.

평소에 산을 찾지 않는 사람들에게 산에 취미를 붙이게 하는 방법은 태백산을 한번 데려오면 그 효과가 만점이다. 태백의 이름 때문에 오르기 힘든 산으로 생각하고 있으나 막상 도전해보면 올라갈 만 하여 그 다음부터는 산에 자신감을 갖으며, 태백산을 올랐다는 그 자신감으로 다른 산을 오를 때의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다.

산의 규모가 적기 때문에 당골 광장과 유일사를 연결하는 등산로가 거의 전부이며 입장료를 내기 싫으면 유일사와 화방재 부근의 도로변 개구멍들을 찾아 오르곤 한다.

정상의 천제단에서 바로 하산하지 않고 부쇠봉을 지나 돌탑이 있는 문수봉에서 당골광장으로 하산하는 코스가 그나마 조금 길게 산행하는 방법이지만 그렇게 해도 5-6시간정도면 초보자도 산행을 모두 끝낼 수 있다.

태백산은 겨울산행의 백미이며 등산애호가들 치고 겨울 태백을 몇 번씩 오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눈꽃축제 기간 중에는 당골광장에 만들어 놓은 집채만 한 눈 조각상들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하며 정상부근의 주목단지는 이 땅에서 이 곳과 견줄 만 한 곳은 없는 곳이다.

태백산의 정상에는 하늘에 제를 올리는 두 개의 제단이 있으며 그 하나는 천제단이며 또 하나는 장군봉의 제단이다. 태백산의 정상을 천제단으로 알기 쉬우나 실은 장군봉이 몇 미터 더 높은 곳이며 두 곳의 거리는 300m정도 떨어져 있으나 오르내림이 없으므로 불과 몇 분 거리에 불과하다.

그동안 태백산에 대하여 풀지 못한 숙제를 하나 가지고 있었다. 환인 천제로부터 환웅께서 천부인을 받아 태백산의 신단수에 강림하여 홍익인간의 드넓은 건국이념을 가지고 이 땅을 건국하였다는 단군신화가 서려있어 태백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으나 단군신화에 나오는 태백산과 이 곳 태백산은 이름은 같지만 다른 산이다.

건국신화가 서려있는 태백산과 왜 같은 이름을 가진 태백산이 이 곳에 있는지, 왜 이곳을 태백산이라 이름을 지었는지 알 길이 없고 이에 관한 글을 읽어본 적도 없어서 오늘 대간 길에서 그 숙제를 풀면 더 할 수 없는 기쁨이며 이번 대간 길의 최대의 수확이지만 숙제를 풀지 못하더라도 내 나름대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면 오늘 걸음도 더없이 값진 걸음이 될 것이다.

이제 백두대간도 나머지 구간의 큰 그림은 머릿속에 그려지고 있다. 태백산을 넘어 삼척의 두타와 청옥산을 지나 횡계의 고루포기산을 거쳐 대관령의 삼양목장에 이르게 되고 다시 오대산에서 구룡령을 넘어 점봉산으로 이어갈 것이며 점봉산에서 설악의 한계령으로 내려와 다시 대청봉을 오르고 난 후에 미시령으로 이어간다. 미시령에서 북 설악의 몇 개의 봉우리만 넘으면 그 험난한 여정도 이제 끝이 날 것이다.

앞으로 이어갈 중심의 산들은 한번 정도는 이미 올랐던 산들이라 생소하지 않으나 그 여러 산들이 단절 없이 어떻게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길을 찾아가는 길이 이토록 험난하기만 하고 앞으로 250km를 더 걸어야 할 것이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하나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 그렇다 이제까지는 구슬만을 만들어 왔으니 이제는 꿰어야한다. 나의 여러 생각들이, 단편들이 이제는 큰 틀 속에서 하나로 이해하는 버릇이 어느덧 나도 모르게 생겨나고 어느 현상을 이해하고 접근하는 방법에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음을 가끔 느끼곤 한다.

도래기재에서 태백의 첫 관문인 구룡산을 오르는 동안 용도를 알 수 없는 임도가 산허리를 감돌고 있고 두 곳 정도에서 그 길을 건너왔고 그 길은 방치된 길이 아니라 어떤 용도는 분명히 있는 길이었다.

불의의 사고를 당했을 경우에 마땅한 탈출로도 없어 오도 가도 못하는 이 깊은 산중에, 이 임도를 지나는 차량도 있을 수 없는 이 깊은 산중에 이런 길이 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어둠 속에서 길을 잘못 가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의아심이 생기고 있다.

구룡산 정상에 도착하여 일출을 보았으니 어제보다 더 이른 새벽 5시에 칼바람과 싸워가며 올라왔다. 오늘 구간도 만만치 않아 11시간 정도 예상되므로 화방재에 늦어도 5시경 도착해야 청량리행 마지막 열차를 탈 수 있으니 새벽부터 강행군을 하고 있고, 실은 집에는 하루 늦게 가도 되지만 그보다는 태백의 준령에서 일출을 보며 그 속에서 그동안의 숙제를 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오르고 있다.

하늘이 뻥 뚫린 구룡산 정상의 넓은 헬기장에 올라서서 때마침 솟아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며 그동안 태백의 의문들이 하나둘 벗겨지고 있었다.

지리 천왕봉과 설악의 대청봉을 능가하는 시원시원한 조망 뒤에 이 땅의 무수한 산들의 군상을 보았으며 동서남북 어느 곳 하나 산들만 있을 뿐이다

그 중심에 태백의 준령이 있어 태백의 외침은 만방의 산신에게 그 뜻을 전하고 이 땅의 모든 일을 천신에게 고하기에 손색이 없었다.

흰 뫼의 기상은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나 내륙으로 뻗어나가 새로운 등뼈가 되고 동녘의 해오름을 알리는 그 외침의 소리는 이 땅의 방방곡곡으로 끝없이 이어 나가리라

이 깊은 오지에서 천억 년을 이 곳 만을 지켜오며 그 이름을 숨겨왔던 태백의 구룡산. 눈길마다 아홉 마리 용들이 꿈틀대고 어느 곳을 바라봐도 아홉 용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 태백 천제단의 모습이 한 눈에 보이고, 그 모습은 솥의 밑바닥처럼 둥근 모습을 연상케 하고 있다. 아! 태백산은 이 땅의 배고픈 만백성에게 밥을 지어주는 커다란 솥이고 어머니의 그 드넓은 가슴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너머 함백산의 모습도 선명하게 보이고 또 그 너머에는 백두대간의 힘찬 용트림도 실루엣으로 펼쳐있다. 이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몸에서 알 수 없는 전율이 일어난다. 이 곳을 오지 않았다면, 이 곳에 올라와서도 운무에 가려 이 모습을 보지 못 하였다면 나는 영영 태백에 천제단이 왜 있는지 그 숙제를 풀지 못하였을 것이다.

구룡산에서 신선봉을 거쳐 깃대배기봉과 부쇠봉 그리고 천제단으로 이어진 태백의 대간 능선은 커다란 반원모양으로 그 중심의 낮은 골짝에 무엇인가 숨겨두면 찾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그 후 이 곳 골짝을 찾아갔으나 군사보호구역이었으며 새벽녘에 보았던 그 임도 길은 군 훈련용 도로였다.

발걸음을 옮기며 신선봉의 정상에 올라섰으나 커다란 묘가 봉우리전체를 점령하고 있다. 묘를 쓴지 얼마 되지 않아 비석도 깨끗하고 봉분의 잔디는 뿌리를 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 구룡산의 흥분된 감정도 싹 사라지며 인간들이 왜 이런 짓을 하는지 해도 해도 정말 너무 들 한다.

단군의 아들의 이름을 따서 부쇠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를 옆으로 끼고 돌아 천제단을 올라서서 비로써 안도의 긴 숨을 한번 몰아쉰다.

그 동안 경상도의 아랫녘 산청 땅에서부터 시작하여 길고 긴 경상도 땅을 남북으로, 그것도 모자라 서에서 동으로 이토록 힘들게 밟고 왔으니 그동안 미운 정, 고운 정도 많이 들었으나 봉화 땅을 끝으로 이 곳 천제단에서 정든 경상도 땅과는 영영 이별하고 이제부터는 강원도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

경상도 땅은 이렇듯 백두대간으로 모두 감싸져 있고 백두대간을 넘지 않고는 경상도 땅을 밟을 수 없으니 경상도 땅은 천연성곽으로 둘러싸인 자연요새지역이어서 그 땅에 터를 잡은 신라가 천년의 사직을 이어왔을 것이며 이런 폐쇄성 때문에 보수성이 강한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점은 바로 이런 지리적 특성에 기인하고 있다고 추측해 본다.

지금부터는 오르막도 없으니 기어서도 화방재까지는 갈 수 있다. 장군봉에서 유일사 방향에서 올라오는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다가 유일사 갈림길에서 직진능선을 타고 오후 4시경 화방재의 어평휴게소를 끝으로 이번 3일간의 대간 길을 모두 접고 6시경 청량리행 열차에 몸을 싣고 다음의 함백산을 기약해 본다.

◆ 백두대간 산행기-15 (검룡소와 고랭지 채소밭)

한번씩 보따리를 싸서 도망 나오려면 제일 먼저 마눌의 눈치를 봐야하고, 개인 일정은 미리미리 챙겨서 스케줄을 비워두어야 하고, 괜히 뻘짓하여 사고치지 않도록 직원교육 단디 시켜야 하고 이리저리 신경 쓸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집에서 나올 때는 하다못해 경비아저씨 눈치까지 봐야하니 이 짓도 못할 짓이다. 조용히 있으면 좋으련만 "오늘도 산에 가세요." "이렇게 추운데 산에 가세요." 하는 친절한 인사말도 한 두 번이 아니고 주말도 아니어서 농땡이나 치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 같아 엄청 쪽팔리는 일이다.

2주가 지난 11월 중순에 화방재를 다시 찾았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고 11월 10일에 이른 첫눈이 내렸다. 그 후에는 날씨가 좋아서 본격적인 폭설이 시작되기 전에 한 발짝이라도 더 멀리 도망가려고 야간열차를 타고 새벽 3시경 태백 역에 도착하여 24시 싸우나에서 잠시 몸을 풀고 새벽부터 신발 끈을 다시 조여 매고 있다.

화방재는 우리말로 풀어쓰면 꽃방석고개로 참 멋진 이름이지만 이런 이름들이 다 사라지고 있어 이런 고운 이름들은 자주 접하였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곳은 영월과 태백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있고 함백산을 가로질러 사북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가 분기되는 삼거리이며 백두대간에서는 태백산과 함백산을 연결하는 고갯마루이다.

함백산을 향해 대간 길을 이어가면 화방재에서 이어오는 지방도로의 고갯마루인 만항재를 만나게 되나 만항재를 건너지 않고 백두대간은 다시 함백산을 향해 산길로 접어든다.

이 곳 만항재의 높이는 무려 1340m로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제일 높은 고갯마루이나 대간 길을 걷는 입장에서는 고갯마루라고 부르기는 곤란하다.

도로를 기준하여 생각할 때에는 가장 높은 곳을 고개라 하겠지만 대간 길에서는 봉우리와 봉우리사이의 움푹 파인 잘록한 부분을, 산 용어로는 말안장처럼 생겼다하여 안부라 부르는 곳을 고개라 한다. 산 능선의 낮은 이런 안부를 관통하여 도로를 만들기 때문에 도로에서 가장 높은 곳과 산길의 이런 낮은 안부가 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만항재는 특이하여 이런 안부를 지나는 곳이 아니라 함백산의 8부 능선의 사면을 지나고 있으므로 고도가 높으며 이 도로의 끝자락에, 반대편 입구인 사북 쪽의 함백산 초입에 정암사란 사찰이 있다.

이 사찰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의 하나이며 정암사의 산중턱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수마노돌탑이 자리 잡고 있어 함백산의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의 하나이다.

함백산은 태백산보다 조금 높은 1573m이며 정상에는 군통신시설과 무선기지국의 안테나가 설치되어 정상은 많이 훼손되어있고 체육시설인 국가대표선수들의 고소훈련장이 정상에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산 정상을 훼손하여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면 그나마 위안이나 삼겠지만 훈련장은 그대로 방치되어있어서 무분별한 행정의 하나로 지탄을 받고 있는 시설중의 하나이다.

함백산에서 하산 길로 접어들면 싸리재(두문동재)에 도착하고 이 곳에서 다시 대덕산의 금대봉과 비단봉 그리고 매봉을 거쳐 삼수령인 피재에 이르게 된다.

대덕산의 금대봉은 생태보호지역의 한 곳으로 각종 야생화가 만발한 지역이며 봄, 여름철에는 이 곳을 소개하는 언론매체들의 단골 메뉴로 자주 언급되고 있으며 남한강의 최초발원지인 검룡소가 자리 잡고 있다.

일반인들이 검룡소를 찾아가는 길은 피재를 지나는 도로 따라 3-4km 더 올라가서 초등학교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 대덕산 방향으로 접어들어야 하지만 산꾼들은 이 곳 금대봉에서 대간능선의 반대편방향으로 이어진 산길을 따라서 검룡소를 찾아들 가고 있다.

이 곳을 걸어가는 동안에는 건너편 태백산의 전체모습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으므로 태백능선의 부드러움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다.

이번 구간에서 가장 눈 여겨 볼 곳은 뭐니 뭐니 해도 태백이 자랑하는 고랭지 채소밭이다. 강원도의 산비탈은 곳곳이 고랭지 채소밭이지만 비단봉에서 매봉과 피재에 이르는 거대한 북쪽 사면은 전부 고랭지 채소밭이다.

그 규모는 무려 40만평으로 우리나라 최대규모이며 평균고도는 1,250m이므로 대규모 단지로는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고 밤낮의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서 최상품으로 대접받고 있다.

이 곳은 화전민이주대책으로 개간사업을 실시하여 65년부터 밭농사를 시작하였으며 초창기에는 주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였으나 70년부터 본격적으로 배추농사로 전환하여 현재는 다른 작물은 재배하지 않고 있다.

만평에서 수확한 배추는 5톤 트럭으로 50대 분량이라 한다. 40만평이면 5톤 트럭 2000대 분량이므로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이 가물가물하여 상상을 초월하고 사이사이에 작업용 차량의 진입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이 곳 배추는 중간수집상이 선매하여 8월말이나 9월초에 전부 수확을 끝내며 상품가치가 떨어진 배추는 뽑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고 있고 지금쯤은 이삭만 주어도 한 트럭은 힘들이지 않고 가득 채울 수 있으므로 아마 태백의 배추장사는 별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얼마 전에 태백, 정선지역의 오지를 몇 곳 찾아다니며 이런 곳에서 이삭 주운 배추와 무를 트렁크가 부족하여 더 이상 못 가져왔다. 자기 돈 안 들어간다고 마눌은 재미가 있어 내년에 또 오자고 하지만 여기 오는 기름 값을 계산하면 배보다 배꼽이 몇 갑절이고 고급인력의 하루 일당을 계산하면 손해를 봐도 이런 손해는 없어서 내년 배추 값 시세를 보고 결정할 생각이다.

이 곳 고랭지채소밭의 능선길이 바로 백두대간의 마루금이고 금년에 다시 이 곳을 찾아갔을 때에는 거대한 풍력발전기 5대가 설치되어 있었고 추가로 더 설치하느라 대간의 마루금이 심히 훼손된 상태라 별로 유쾌하지는 않았다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북에서 남으로 동해바다를 따라 내려온 백두대간은 이 곳 피재에서 내륙으로 방향을 선회하여 지리산으로 향하며, 백두대간을 그대로 이어받아 동해바다를 따라서 계속 남하하며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천성산을 일궈가며 부산 다대포의 물운대에서 그 수명을 다한 큰 산줄기가 바로 낙동정맥이며 낙동강의 탯줄역할을 하고 있다.

태백의 황지 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은 낙동정맥이 가로막아 동해바다로 흘러가지 못하고 부산의 낙동강하구까지 천삼백 리의 먼 길을 굽이굽이 흘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며 동고서저(東高西低)로 특징 되는 한반도의 지형은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이 이렇게 동쪽에서 커다란 자연성곽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백산에 비하여 태백산은 규모는 비록 적으나 이렇듯 이 땅의 생명수인 거대한 두 물줄기인 한강과 낙동강의 시원이 되고 있으므로 소백보다 더 큰 태백이라 부르는 것은 옛 사람들의 깊은 혜안에서 비롯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은 고랭지채소밭의 텅 빈 농막의 대궐 같은 집에서 거센 바람을 피해 하루 밤을 보내고 피재에서 환선굴이 있는 덕항산을 넘어 광동댐이주단지를 바라보며 또 다른 황장산을 넘어 두타산과 청옥산이 기다리는 댓재마루에서 이틀간의 산행을 끝으로 다음을 기약해야했다.

이틀째 구간은 별로 특징이 없는 구간이라 세세한 기록은 생략하며 다만, 한약재로 귀하게 사용한다는 겨우살이가 넓은 지역에 걸쳐서 자생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참나무에 새순이 나오고 있는 줄 알았으나 자세히 보니 새순이 아니라 까치집처럼 참나무에 다른 식물이 기생하고 있었으며 열매의 크기는 콩알만 하고 속은 점도가 짙은 액체로 채워져 있고 길에 떨어진 열매를 하나주어 먹어보니 맛은 밋밋하여 아무런 특징이 없었다.

2000년의 백두대간은 그 후 잦은 폭설로 인해서 무릉계곡을 자랑하는 두타산과 청옥산을 바라보며 이렇게 끝을 내고 2001년의 새해첫날은 설악의 대청봉에서 일출을 맞이하였다.

하얀 눈으로 가득 덮여 길이 막힌 백두대간이 하루 빨리 뚫리기를 소원하며 더도 말고 백두대간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만 나를 어여삐 지켜주시기를 그 해 가장 큰 소망으로 빌고 또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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