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산행기-12 (소백산의 많은 것들)
이상한 기척이 있어 잠에서 깨어났다. 호기심 많은 어떤 놈이 밖에서 텐트를 발톱으로 긁으며 단잠을 깨우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못되어 평소에도 어차피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지만 내 스스로 일어난 것과 방해를 받아 일어난 것은 다른 얘기라 이런 놈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로 했다
숨을 죽이고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몇 번 긁다가 조용한 것을 보니 이 놈도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이 놈들 습성을 조금은 알고 있어 이럴 때를 대비하여 머리맡에 숨겨둔 비밀병기를 꺼내 준비를 하고 텐트의 앞 쟉크를 조금 열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다시 긁어대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한 놈을 더 데리고 와서 쌍으로 긁으며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지랄을 떠는 놈들에게는 지랄탄이 최고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침낭 속에서 라이터로 지랄탄의 심지에 불을 붙여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지랄탄이 주위에서 피식피식 불을 품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랄을 하고 있으니 기겁을 하여 도망친다. 이 놈들이 산전에 이골이 난 백전노장을 몰라보고 코털을 건드려 잠을 깨우며 새벽부터 장난을 쳤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지불해야 삼라만상의 삼천세계가 공정해 지는 법이라 오늘 찾아가는 도솔봉의 미륵께서도 참 잘하였다고 칭찬해 주실 것이다.
밖으로 나가보니 아이고 야! 추워죽겠다. 아직은 추위에 적응이 안되어서 영상의 기온임에도 덜덜 떨린다. 이 곳 고도가 900m정도로 되므로 평지의 기온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여름철에도 밤에 비바람이 몰아치면 저체온증으로 얼어죽을 수도 있는 곳이 산이다.
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어느 산이나 멋이 있지만 특히 소백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정말 일품이다. 소백산의 자랑을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소백산의 밤하늘이라고 말하고 싶고, 이런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소백산에 천문대가 있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물부터 끓여 커피부터 한잔 마시며 그 향내를 음미하니 비록 싸구리 봉지커피일망정 그 맛과 향내는 스타벅스 커피는 명암도 내밀 수 없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도 맛있는 별식이다. 떡국을 1인분씩 3봉지를 만들어와서 어제 저녁에 한 봉지, 오늘 아침에 한 봉지, 나머지 한 봉지는 도솔봉이나 죽령에 도착하여 산 거지 흉내를 내볼 생각이다.
파는 미리 송송 썰어왔고 마늘도 다져왔으니 간장만 조금 부어 다진 소고기를 한 움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떡국은 없다.
집에서 소고기를 가져오면 도중에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중간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요즘은 정보가 지식이므로 소고기를 구하는 것은 일부러 품을 팔 필요도 없이 어제 저수령 휴게소의 푸주간에서 소백산목장에서 갓 잡은 양질의 소고기를 구입하였으니 요즘은 통박만 잘 굴리면 엄청 편한 세상이다.
죽령을 경계로 도솔봉과 소백산의 연화봉을 구분하므로 죽령은 도솔봉과 소백산을 오르는 들머리이나 대부분 등산객은 소백산의 유명세 때문에 소백산을 선호하고 도솔봉은 매니아 아니면 잘 찾지 않는 산이라 그 멋진 도솔봉을 모르는 산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산이 지척에 있음에도 두 산의 형세는 완전히 정 반대다. 소백산의 능선은 굴곡이 없는 여성의 부드러운 선이라면 도솔봉의 능선은 잔 봉우리들이 많아 진을 빼고 있으며 소백의 봉우리들은 돌이 없는 육산이라면 도솔봉의 정상은 바위덩어리 산이다.
어제도 봉우리를 5-6곳 넘어오느라 진을 빼었는데 오늘도 높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를 넘어오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번에는 상당히 높은 봉우리가 딱 버티고 있고 그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는 폼새가 이 곳이 묘적령인가 보다. 앞 봉우리는 묘적봉이고 뒷 봉우리가 도솔봉인 모양인데 저 곳을 올라가 다시 내려와서 또 올라갈 생각을 하니 신선놀음이 아니라 유격훈련도 이보다 더 고약한 유격훈련은 없다.
도솔봉의 경관은 정말 흠잡을 곳이 없는 도솔천의 세계였다. 죽령을 힘들게 굽이굽이 올라오는 도로의 모습도 장관이고 그 넘어 연화봉에서 멀리 비로봉으로 이어진 소백의 검붉은 능선도 한눈에 조망되어 그 모습도 장관이고, 좌우로 풍기의 들판과 단양의 물줄기가 그려놓은 그 모습도 장관이었다. 이런 도솔천의 선경 속에서 미륵불이 살고 계시니 지긋지긋한 사바세계를 뭐 하러 내려오시겠는가, 내가 미륵이라도 안 내려오겠다.
세월이 흘러 모두가 추억이므로 이런 얘기를 풀어 보지만 사실 그 때만 해도 경치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것은 팔자 좋은 사람들 얘기고 당장 죽겠는데 그 딴 소리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고 도솔봉에 도착하니 우선은 배가 고파죽겠고 허리띠는 자꾸만 내려가 허리띠를 조이기 바빴다
배가 고파보니 그 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하나를 드디어 풀었다. 노자가 하신 말씀 중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實基腹(실기복)하고 弱基志(약기지)하라 하였다. 이는 배를 실하게 하고 뜻을 약하게 하라는 뚱딴지같은 소리여서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로 표현할 때에는 뜻을 강하게 세우라고 구라를 치는 것이 옳지 않는가. 또 그래야만 본받을 경구가 아니겠는가
바로 그거였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우선 배부터 채우고 난 다음에 죽령을 내려가던 집에를 가던 할 것 아닌가, 산에서 허기지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데 뜻만 강하게 세워서 죽을 일 있냐, 우선 먹고 봐야지, 바로 이런 정직성이 위선 앞에 수천 년을 박해를 받아 왔던 것이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진리는 없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위선 속에 갇혀 우리가 살고 있는지를 화두 삼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죽령의 주막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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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부터 첫눈이 오기 전까지는 가을철 산불예방기간이라 어느 산이나 입산을 금지시키고 있어 이 기간은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요령 것 산행을 하지만 국립공원은 감시가 철저하여 이 기간을 피해야하므로 11월초에 소백산구간이 시작되는 죽령을 다시 찾았다.
죽령에 대하여는 몇 번 언급을 하였으므로 다른 내용은 생략하며, 이 땅에 최초로 길을 낸 곳은 문경새재에서 언급한 계립령인 하늘재이고 그보다 2년 뒤인 서기 158년에 이 곳 죽령에 길을 만든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전해오므로 무려 185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고갯길이다.
현재는 터널을 뚫어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 길이는 4.6k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터널이다.
풍기에서 바라보면 큰 V자 모양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좌측이 도솔봉이고 우측이 연화봉이며 죽령의 고도는 700m가 조금 못되고, 좌우 도솔봉과 연화봉은 1300m급 봉우리들로 죽령과 600m의 고도차이가 있음으로 멀리서 보면 당연히 V자 형태다
소백산의 대간 길은 죽령에서 천문대로 이어진 세멘도로를 따라 연화봉을 오른 후에 주봉인 비로봉을 거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며, 다시 선달산과 옥돌봉을 거쳐 강원도 영월에서 봉화의 춘양을 연결하는 도로변의 도래기재까지 대략 40km가 소백산 권역이고
이곳 도래기재에서 다시 구룡산을 올라 태백산의 천제단을 거쳐 태백입구의 어평휴게소가 있는 국도변 고갯마루인 화방재까지 20km정도가 태백산 구간으로 총 3일이면 이곳까지 마무리 할 수 있으나 해가 짧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4일을 계획하고 있다.
소백산은 동계에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으며 이는 소백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들이다.
이화령에서 태백산까지의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횡단하는 구간임으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겨울이면 북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에 그대로 노출되어 기온변화가 급격하고 이 구간에서도 소백산은 지대가 가장 높음으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며, 소백산은 모두 당일산행으로 올라오므로 사전준비 없이 올라와서 계획에 없는 야영을 하는 경우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있다. 일반 등산객이 특히 주의할 점은 소백산은 대피소가 없으므로 일몰 전에 무조건 하산을 완료해야 한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며 끝자락에서 충북 땅은 강원도로 그 자리를 양보하여 소백의 끝자락은 충북과 강원 그리고 경북의 꼭지점이나 삼도의 꼭지점은 대간 길에서 조금 벗어난 어래산이며 이 어래산 자락에 김삿갓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봄에는 철쭉이 유명하여 천상화원이라 부르고 있지만 사실 다른 철쭉명산에 비하면 소백산 철쭉은 자랑거리가 못되고 대신에 겨울눈꽃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장관이므로 자랑할 만 하고, 산세가 워낙 부드럽고 굴곡이 없어 초원의 목장을 연상하게 하므로 이런 이유로 천상화원이라 부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비로봉주변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군락지가 있어 태백과 함께 주목으로는 으뜸인 산이고, 소백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바로 이런 주목을 사용하였음으로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찰로는 연화봉아래 희방사가 있고 비로봉아래 비로사가 있으며 주능선에서 벗어난 단양의 영춘면에 천태종의 총 본산인 구인사가 있고 영주의 부석면에 자리잡은 그 유명한 부석사가 소백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등산로는 산의 규모에 비해 단조롭고 비로봉을 목표로 몇 곳을 연결하여 코스를 잡으므로 어느 곳을 잡던 10개의 코스를 벗어날 수 없고 모두 당일산행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단양 쪽에서는 천동굴이 대표적이나 영춘면의 어의곡리가 요즘은 각광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TV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이 농촌탐방을 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 어의곡리다.
풍기지역에서는 죽령과 희방사를 통해 연화봉을 오르고 비로사에서 비로봉을 오르고 있다. 이 중에서 힘든 코스는 희방사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무려 2시간이상을 계단으로만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고, 영주지역에서는 소수서원과 가까운 배점리에서 초암사의 죽계구곡을 통해 국망봉을 오르고 있다.
이들 코스를 조합하여 등산을 하기 때문에 소백산의 산행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조금 장거리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들은 구인사까지 코스를 잡기도 한다.
소백산의 등산로가 단조로운 것은 그만큼 골이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오밀조밀하지 않고 민짜로 쭉 뻗은 모습이 소백산의 전체적인 모습이며 봉우리도 많지 않아 모두 합해야 열 손가락으로 전부 셀 수 있으며 고도는 1300m에서 1400m를 전후하고 있다.
지금 대간 길을 걷고있는 해가 2000년이며, 그 해 밀레니엄의 첫 날, 비로봉에서 일출을 맞이하였고 대간 길을 시작하기 바로 전 5월에 희방사에서 구인사까지 산행을 하여 이번 소백산 주능선 대간 길은 길을 연결하는 의미말고는 별다른 의미도 없다.
죽령에서 1시간 30분이면 제 1연화봉에 오를 수 있고 이 곳에서 30분정도 이어가면 천문대앞을 지나며 천문대에서 다시 1시간 30분정도 지나면 비로봉까지 갈 수 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며 죽령에서 국망봉까지는 다른 곳으로 잘 못 가고싶어도 도저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직진능선이며 안내표지가 잘되어 있어 다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구간이다.
국망봉에서 다시 30-40분 이어가면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이어지는 능선과 직진 길인 백두대간길로 갈라지며 특색 없는 밋밋한 구간을 3-4시간을 지루하게 걷다보면 마당치로 내려서고 다시 소백산의 끝 봉우리인 형제봉을 향해 오름 짓을 잠시 하다가 능선길이 아닌 우측 경사면으로 발길을 돌려 대간 능선을 찾아야 한다.
이 지점이 소백산구간에서 독도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지만 아마 지금쯤은 많은 안내리본이 달려 있어 후답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 지점부터 약 20km정도는 백두대간이 도 경계선 역할을 못하여 백두대간의 좌우가 모두 경상북도 영주 땅이다.
이런 이유는 형제봉으로 도 경계선을 따라가면 김삿갓묘역으로 이어지며 그 곳에서 남대천의 물길을 만나 끊어지게 되므로 백두대간은 이렇게 물길을 피해가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이런 루트를 개척한 선답자에게 감사할 뿐이며 1시간정도 다시 이어오면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고치령 고갯마루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10시간의 힘든 발걸음을 모두 멈추고 산신각을 벗삼으며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의 긴긴밤을 궁색을 떨며 홀로 보내야 했다.
(부석사와 김삿갓)
이 곳 고치령에 도착하여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10여분 임도 따라 내려가서 식수부터 구해야 했다. 조금씩 흐르는 계곡 물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서 계곡 물에 손을 담그기도 겁이 날 정도다.
산신각 옆에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서 버너의 펌프질을 하는데도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고 엊그제만 해도 더워 죽겠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추워죽겠다고 엄살을 떨고 있으니 그 누가 이런 변덕을 다 받아 줄 수 있을까.
지난번 새벽에는 어떤 놈이 텐트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잠을 깨우더니 오늘 새벽은 바람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은 국물을 데워서 찬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접는데 텐트가 바람에 날려서 혼자 텐트 접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요긴하게 이용하라고 산신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 후, 2년 뒤에 이 부근의 주변을 답사하려고 차량으로 이곳 임도를 넘어가며 산신각을 한 커트 찍으려 했으나 그 사이에 어떤 못된 작자가 불을 질러서 그 자리에는 숯 덩어리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누구는 산꾼이 그랬다 하고, 누구는 종교적 입장차이로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하며 그런 곳이 한 둘이 아니라 한다. 하여튼 요즘세상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웃기는 짬뽕들이 지들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는 세상이다.
오늘 구간은 24km나 되는 긴 거리이고 오르내리는 고도차이가 심한 곳이 몇 곳이 있으므로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이므로 깜깜한 새벽 6시부터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3시간정도 대간 길을 이어가면 비포장 임도인 마구령에 도착하고 거기서 1시간정도 땀을 쏟고 나면 갈곶산이다. 이 곳 갈곶산 아래에 부석사가 있으며 대간 길은 그 반대로 이어진다.
부석사의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로 표시되어 있으나 "소백산 부석사"가 더 옳을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봉황산 부석사"가 정답이다. 태백산이 맞다, 소백산이 맞다하며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소백산의 비로봉과 태백산 천제단의 중간지점에 부석사가 있으니 이럴 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
갈곶산에서 부석사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며 등로는 희미하지만 눈썰미만 좋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쯤은 등산객이 늘어나서 이 곳 산길도 고속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부석사를 찾아 내려가면 무량수전 뒤편의 좁은 산길에 자리 잡은 자인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석불 2상을 만나 뵙고 그 아래 조사당을 거쳐서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내려오게 된다.
부석사에 와서 자인당과 조사당을 모두 둘러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같은 천방지축의 산꾼들은 그런 곳은 보기 싫어도 자연 뽕으로 보고 지나가므로 글쟁이와 산쟁이가 콤비를 이루면 환상의 조합일 것이다.
그러나 두 쟁이들은 체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므로 동행이 힘들고 지금 타이핑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글을 타이핑하느니 차라리 산길을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책상머리에서 됫박을 말로 파는 뻥튀기장사는 역시 내 체질이 아니다.
김삿갓은 길쟁이와 글쟁이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기인이다. 기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니 그 팔자가 기구한 것을 누굴 탓할 것인가. 사주팔자가 그러하니 사주팔자를 탓하며 꼴리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하게 한 세상을 사는 길이라 생각되며 그 묘역은 바로 이곳 갈곶산 아래 백두대간을 경계로 부석사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왕 샛길로 빠졌으니 조금 더 샛길로 빠져봅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어떻고, 안양루가 어떻고, 당간지주가 어떻고, 석축이 어떻고, 조사당벽화가 어떻고, 삼층석탑이 어떻고, 고 최순우 박물관장님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등 이런 얘기들은 이제 진부하여 고객의 수준을 무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신제품을 개발하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잊지 않고 찾아와서 졸필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님들에게 그나마 답례를 하는 일이므로 김삿갓과 부석사를 패키지로 묶어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제목 부석사/ 지은이 김삿갓/ 출처 안양루 현판에서, 원문은 생략>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이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열려있고/ 천지는 부표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니/ 백 년 동안 이런 경치 몇 번이나 구경할꼬/ 세월은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어있네//
산과 산 사이,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가 고갯마루이므로 무슨 령이니 무슨 재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면 그 다음은 죽었다고 일단 복창해야 한다. 보통 산은 오르고 나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대간 길이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내려오면 또 올라가야 하므로 사람을 아예 잡고있어 내려온 길은 이제 겁부터 나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면 속된 표현으로 이가 갈리는 곳이다.
갈곶산에서 선달산을 이어오는 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늦은목이재로 내려와서 또다시 선달산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선달산에서 좌향좌 하여 두어 시간을 가면 삼도의 꼭지점인 이 땅의 또 하나의 삼도봉인 어래산이 있으나 대간 길은 그대로 직진하여 박달령으로 이어간다.
이 곳 박달령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이며, 선달산에서 이 곳으로 내려온 길은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라 일반산행에서 이 길을 걸을 때는 멋진 곳이라며 호들갑을 떨겠지만 지친 몸으로 걸어가기에는 꼬랑지가 얼마나 길던지 무쟈게 지루하고 앞에 우뚝 솟은 옥돌봉을 바라보고 또다시 저 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져 졸도한 줄 알았다
박달령에 도착하자마자 양지바른 언덕에 배낭을 둘러맨 채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3시가 조금 넘었지만 점심도 먹지 않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열심히 걸어왔다. 도중에 찹쌀모찌 2개정도 먹고 곶감도 서네 개 먹고 수시로 호도와 육포를 먹으며 허기지지 않도록 기름을 자주 넣고 왔으므로 배는 전혀 고프지 않고 커피생각만 간절하다.
그렇지만 커피한잔 끓이자고 배낭을 풀어 다시 싸는 일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낭을 요령 것 잘 패킹해야 무게를 덜 느끼지만 제 멋대로 그냥 쑤셔 넣으면 배낭이 아래로 쳐져서 어깨도 많이 아프고 무게도 엄청 무겁게 전달되므로 배낭을 싸는 것도 공을 많이 쏟아야 한다.
날도 춥고 지친 몸으로 배낭을 풀어서 다시 패킹하는 것도 귀찮아서 궁여지책으로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봉지커피를 통째로 입에 털어 넣고 물로 헹궈가며 조금씩 삼켜보니 그 맛이나 끓인 물에 타 마시는 거나 그 맛이 그 맛이고,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커피가 식었다는 등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배가 불러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괜히 똥 폼을 잡는 허튼 소리였다.
옥돌봉을 올라갈 때는 "날 잡아 죽여라"하며 오기로 똘똘 뭉친 그 못돼 먹은 존심 때문에 올라왔고 깡다구 차원을 넘어 선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숲이 우거진 하산 길로 접어들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어가며 6시경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고갯마루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12시간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목적지인 이 곳까지 점심도 굶어가며 죽기살기로 산길을 걸어왔으니 지칠 데로 지쳐서 이곳에 밤마다 출몰한다는 호랭이가 잡아먹던 말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 일반이므로 배낭부터 벗어 던지고 차가운 도로변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상한 기척이 있어 잠에서 깨어났다. 호기심 많은 어떤 놈이 밖에서 텐트를 발톱으로 긁으며 단잠을 깨우고 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가 조금 못되어 평소에도 어차피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지만 내 스스로 일어난 것과 방해를 받아 일어난 것은 다른 얘기라 이런 놈은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기로 했다
숨을 죽이고 동태를 살피고 있는데 몇 번 긁다가 조용한 것을 보니 이 놈도 작전을 바꾼 모양이다. 이 놈들 습성을 조금은 알고 있어 이럴 때를 대비하여 머리맡에 숨겨둔 비밀병기를 꺼내 준비를 하고 텐트의 앞 쟉크를 조금 열어두었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있으니 다시 긁어대기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한 놈을 더 데리고 와서 쌍으로 긁으며 지랄을 떨고 있는 것이다.
지랄을 떠는 놈들에게는 지랄탄이 최고다.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게 침낭 속에서 라이터로 지랄탄의 심지에 불을 붙여 기습공격을 감행하였다.
지랄탄이 주위에서 피식피식 불을 품으며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지랄을 하고 있으니 기겁을 하여 도망친다. 이 놈들이 산전에 이골이 난 백전노장을 몰라보고 코털을 건드려 잠을 깨우며 새벽부터 장난을 쳤으니 그 대가는 톡톡히 지불해야 삼라만상의 삼천세계가 공정해 지는 법이라 오늘 찾아가는 도솔봉의 미륵께서도 참 잘하였다고 칭찬해 주실 것이다.
밖으로 나가보니 아이고 야! 추워죽겠다. 아직은 추위에 적응이 안되어서 영상의 기온임에도 덜덜 떨린다. 이 곳 고도가 900m정도로 되므로 평지의 기온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고 여름철에도 밤에 비바람이 몰아치면 저체온증으로 얼어죽을 수도 있는 곳이 산이다.
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어느 산이나 멋이 있지만 특히 소백산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은 정말 일품이다. 소백산의 자랑을 하나만을 꼽으라면 나는 서슴없이 소백산의 밤하늘이라고 말하고 싶고, 이런 생각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소백산에 천문대가 있음은 절대 우연이 아니다.
물부터 끓여 커피부터 한잔 마시며 그 향내를 음미하니 비록 싸구리 봉지커피일망정 그 맛과 향내는 스타벅스 커피는 명암도 내밀 수 없다.
어제 저녁에 이어 오늘 아침도 맛있는 별식이다. 떡국을 1인분씩 3봉지를 만들어와서 어제 저녁에 한 봉지, 오늘 아침에 한 봉지, 나머지 한 봉지는 도솔봉이나 죽령에 도착하여 산 거지 흉내를 내볼 생각이다.
파는 미리 송송 썰어왔고 마늘도 다져왔으니 간장만 조금 부어 다진 소고기를 한 움큼 넣고 끓이기만 하면 세상에 이보다 맛있는 떡국은 없다.
집에서 소고기를 가져오면 도중에 변질될 우려가 있으므로 중간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요즘은 정보가 지식이므로 소고기를 구하는 것은 일부러 품을 팔 필요도 없이 어제 저수령 휴게소의 푸주간에서 소백산목장에서 갓 잡은 양질의 소고기를 구입하였으니 요즘은 통박만 잘 굴리면 엄청 편한 세상이다.
죽령을 경계로 도솔봉과 소백산의 연화봉을 구분하므로 죽령은 도솔봉과 소백산을 오르는 들머리이나 대부분 등산객은 소백산의 유명세 때문에 소백산을 선호하고 도솔봉은 매니아 아니면 잘 찾지 않는 산이라 그 멋진 도솔봉을 모르는 산 친구들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렇게 두 산이 지척에 있음에도 두 산의 형세는 완전히 정 반대다. 소백산의 능선은 굴곡이 없는 여성의 부드러운 선이라면 도솔봉의 능선은 잔 봉우리들이 많아 진을 빼고 있으며 소백의 봉우리들은 돌이 없는 육산이라면 도솔봉의 정상은 바위덩어리 산이다.
어제도 봉우리를 5-6곳 넘어오느라 진을 빼었는데 오늘도 높지도 않은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몇 개를 넘어오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이번에는 상당히 높은 봉우리가 딱 버티고 있고 그 뒤에 더 높은 봉우리가 또 기다리고 있는 폼새가 이 곳이 묘적령인가 보다. 앞 봉우리는 묘적봉이고 뒷 봉우리가 도솔봉인 모양인데 저 곳을 올라가 다시 내려와서 또 올라갈 생각을 하니 신선놀음이 아니라 유격훈련도 이보다 더 고약한 유격훈련은 없다.
도솔봉의 경관은 정말 흠잡을 곳이 없는 도솔천의 세계였다. 죽령을 힘들게 굽이굽이 올라오는 도로의 모습도 장관이고 그 넘어 연화봉에서 멀리 비로봉으로 이어진 소백의 검붉은 능선도 한눈에 조망되어 그 모습도 장관이고, 좌우로 풍기의 들판과 단양의 물줄기가 그려놓은 그 모습도 장관이었다. 이런 도솔천의 선경 속에서 미륵불이 살고 계시니 지긋지긋한 사바세계를 뭐 하러 내려오시겠는가, 내가 미륵이라도 안 내려오겠다.
세월이 흘러 모두가 추억이므로 이런 얘기를 풀어 보지만 사실 그 때만 해도 경치가 어떻고 뭐가 어떻고 하는 것은 팔자 좋은 사람들 얘기고 당장 죽겠는데 그 딴 소리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고 도솔봉에 도착하니 우선은 배가 고파죽겠고 허리띠는 자꾸만 내려가 허리띠를 조이기 바빴다
배가 고파보니 그 동안 풀지 못했던 숙제하나를 드디어 풀었다. 노자가 하신 말씀 중에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이 있었다. 實基腹(실기복)하고 弱基志(약기지)하라 하였다. 이는 배를 실하게 하고 뜻을 약하게 하라는 뚱딴지같은 소리여서 이해를 하지 못하였다.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로 표현할 때에는 뜻을 강하게 세우라고 구라를 치는 것이 옳지 않는가. 또 그래야만 본받을 경구가 아니겠는가
바로 그거였다. 배가 고파 죽겠는데 우선 배부터 채우고 난 다음에 죽령을 내려가던 집에를 가던 할 것 아닌가, 산에서 허기지면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데 뜻만 강하게 세워서 죽을 일 있냐, 우선 먹고 봐야지, 바로 이런 정직성이 위선 앞에 수천 년을 박해를 받아 왔던 것이다.
사실을 사실이라고 말하는 것보다 더 위대한 진리는 없는 것이다. 얼마나 많은 위선 속에 갇혀 우리가 살고 있는지를 화두 삼으며 걷다보니 어느덧 죽령의 주막집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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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5일부터 첫눈이 오기 전까지는 가을철 산불예방기간이라 어느 산이나 입산을 금지시키고 있어 이 기간은 빨간 완장을 찬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도록 요령 것 산행을 하지만 국립공원은 감시가 철저하여 이 기간을 피해야하므로 11월초에 소백산구간이 시작되는 죽령을 다시 찾았다.
죽령에 대하여는 몇 번 언급을 하였으므로 다른 내용은 생략하며, 이 땅에 최초로 길을 낸 곳은 문경새재에서 언급한 계립령인 하늘재이고 그보다 2년 뒤인 서기 158년에 이 곳 죽령에 길을 만든 것으로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전해오므로 무려 185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고갯길이다.
현재는 터널을 뚫어 중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그 길이는 4.6km로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터널이다.
풍기에서 바라보면 큰 V자 모양을 하고 있어 그 모습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다. 좌측이 도솔봉이고 우측이 연화봉이며 죽령의 고도는 700m가 조금 못되고, 좌우 도솔봉과 연화봉은 1300m급 봉우리들로 죽령과 600m의 고도차이가 있음으로 멀리서 보면 당연히 V자 형태다
소백산의 대간 길은 죽령에서 천문대로 이어진 세멘도로를 따라 연화봉을 오른 후에 주봉인 비로봉을 거쳐서 국망봉으로 이어지며, 다시 선달산과 옥돌봉을 거쳐 강원도 영월에서 봉화의 춘양을 연결하는 도로변의 도래기재까지 대략 40km가 소백산 권역이고
이곳 도래기재에서 다시 구룡산을 올라 태백산의 천제단을 거쳐 태백입구의 어평휴게소가 있는 국도변 고갯마루인 화방재까지 20km정도가 태백산 구간으로 총 3일이면 이곳까지 마무리 할 수 있으나 해가 짧아서 경우에 따라서는 4일을 계획하고 있다.
소백산은 동계에 인명사고가 자주 발생하여 우리를 슬프게 하고 있으며 이는 소백산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고들이다.
이화령에서 태백산까지의 백두대간은 한반도를 횡단하는 구간임으로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겨울이면 북에서 불어오는 북서풍에 그대로 노출되어 기온변화가 급격하고 이 구간에서도 소백산은 지대가 가장 높음으로 낮과 밤의 기온 차이가 심하며, 소백산은 모두 당일산행으로 올라오므로 사전준비 없이 올라와서 계획에 없는 야영을 하는 경우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있다. 일반 등산객이 특히 주의할 점은 소백산은 대피소가 없으므로 일몰 전에 무조건 하산을 완료해야 한다.
소백산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영주시(풍기읍)의 경계를 이루며 끝자락에서 충북 땅은 강원도로 그 자리를 양보하여 소백의 끝자락은 충북과 강원 그리고 경북의 꼭지점이나 삼도의 꼭지점은 대간 길에서 조금 벗어난 어래산이며 이 어래산 자락에 김삿갓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봄에는 철쭉이 유명하여 천상화원이라 부르고 있지만 사실 다른 철쭉명산에 비하면 소백산 철쭉은 자랑거리가 못되고 대신에 겨울눈꽃은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장관이므로 자랑할 만 하고, 산세가 워낙 부드럽고 굴곡이 없어 초원의 목장을 연상하게 하므로 이런 이유로 천상화원이라 부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비로봉주변에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산다는 주목군락지가 있어 태백과 함께 주목으로는 으뜸인 산이고, 소백산의 끝자락에 자리잡은 부석사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바로 이런 주목을 사용하였음으로 지금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찰로는 연화봉아래 희방사가 있고 비로봉아래 비로사가 있으며 주능선에서 벗어난 단양의 영춘면에 천태종의 총 본산인 구인사가 있고 영주의 부석면에 자리잡은 그 유명한 부석사가 소백산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등산로는 산의 규모에 비해 단조롭고 비로봉을 목표로 몇 곳을 연결하여 코스를 잡으므로 어느 곳을 잡던 10개의 코스를 벗어날 수 없고 모두 당일산행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단양 쪽에서는 천동굴이 대표적이나 영춘면의 어의곡리가 요즘은 각광을 받고 있으며 지난해 TV를 통해 보도된 적이 있는 노무현 대통령님이 농촌탐방을 하였던 곳이 바로 이곳 어의곡리다.
풍기지역에서는 죽령과 희방사를 통해 연화봉을 오르고 비로사에서 비로봉을 오르고 있다. 이 중에서 힘든 코스는 희방사에서 올라가는 코스로 무려 2시간이상을 계단으로만 올라간다고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고, 영주지역에서는 소수서원과 가까운 배점리에서 초암사의 죽계구곡을 통해 국망봉을 오르고 있다.
이들 코스를 조합하여 등산을 하기 때문에 소백산의 산행은 이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조금 장거리산행을 원하는 등산객들은 구인사까지 코스를 잡기도 한다.
소백산의 등산로가 단조로운 것은 그만큼 골이 없다는 뜻이며 따라서 오밀조밀하지 않고 민짜로 쭉 뻗은 모습이 소백산의 전체적인 모습이며 봉우리도 많지 않아 모두 합해야 열 손가락으로 전부 셀 수 있으며 고도는 1300m에서 1400m를 전후하고 있다.
지금 대간 길을 걷고있는 해가 2000년이며, 그 해 밀레니엄의 첫 날, 비로봉에서 일출을 맞이하였고 대간 길을 시작하기 바로 전 5월에 희방사에서 구인사까지 산행을 하여 이번 소백산 주능선 대간 길은 길을 연결하는 의미말고는 별다른 의미도 없다.
죽령에서 1시간 30분이면 제 1연화봉에 오를 수 있고 이 곳에서 30분정도 이어가면 천문대앞을 지나며 천문대에서 다시 1시간 30분정도 지나면 비로봉까지 갈 수 있다.
비로봉에서 국망봉까지는 1시간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며 죽령에서 국망봉까지는 다른 곳으로 잘 못 가고싶어도 도저히 다른 곳으로 갈 수 없는 직진능선이며 안내표지가 잘되어 있어 다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구간이다.
국망봉에서 다시 30-40분 이어가면 신선봉을 거쳐 구인사로 이어지는 능선과 직진 길인 백두대간길로 갈라지며 특색 없는 밋밋한 구간을 3-4시간을 지루하게 걷다보면 마당치로 내려서고 다시 소백산의 끝 봉우리인 형제봉을 향해 오름 짓을 잠시 하다가 능선길이 아닌 우측 경사면으로 발길을 돌려 대간 능선을 찾아야 한다.
이 지점이 소백산구간에서 독도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지만 아마 지금쯤은 많은 안내리본이 달려 있어 후답자에게 도움을 주고 있을 것이다. 이 지점부터 약 20km정도는 백두대간이 도 경계선 역할을 못하여 백두대간의 좌우가 모두 경상북도 영주 땅이다.
이런 이유는 형제봉으로 도 경계선을 따라가면 김삿갓묘역으로 이어지며 그 곳에서 남대천의 물길을 만나 끊어지게 되므로 백두대간은 이렇게 물길을 피해가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힘들게 이런 루트를 개척한 선답자에게 감사할 뿐이며 1시간정도 다시 이어오면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고치령 고갯마루로 내려선다. 이곳에서 10시간의 힘든 발걸음을 모두 멈추고 산신각을 벗삼으며 찬바람이 불어오는 초겨울의 긴긴밤을 궁색을 떨며 홀로 보내야 했다.
(부석사와 김삿갓)
이 곳 고치령에 도착하여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10여분 임도 따라 내려가서 식수부터 구해야 했다. 조금씩 흐르는 계곡 물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서 계곡 물에 손을 담그기도 겁이 날 정도다.
산신각 옆에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서 버너의 펌프질을 하는데도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고 엊그제만 해도 더워 죽겠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추워죽겠다고 엄살을 떨고 있으니 그 누가 이런 변덕을 다 받아 줄 수 있을까.
지난번 새벽에는 어떤 놈이 텐트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잠을 깨우더니 오늘 새벽은 바람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은 국물을 데워서 찬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접는데 텐트가 바람에 날려서 혼자 텐트 접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요긴하게 이용하라고 산신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 후, 2년 뒤에 이 부근의 주변을 답사하려고 차량으로 이곳 임도를 넘어가며 산신각을 한 커트 찍으려 했으나 그 사이에 어떤 못된 작자가 불을 질러서 그 자리에는 숯 덩어리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누구는 산꾼이 그랬다 하고, 누구는 종교적 입장차이로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하며 그런 곳이 한 둘이 아니라 한다. 하여튼 요즘세상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웃기는 짬뽕들이 지들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는 세상이다.
오늘 구간은 24km나 되는 긴 거리이고 오르내리는 고도차이가 심한 곳이 몇 곳이 있으므로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이므로 깜깜한 새벽 6시부터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3시간정도 대간 길을 이어가면 비포장 임도인 마구령에 도착하고 거기서 1시간정도 땀을 쏟고 나면 갈곶산이다. 이 곳 갈곶산 아래에 부석사가 있으며 대간 길은 그 반대로 이어진다.
부석사의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로 표시되어 있으나 "소백산 부석사"가 더 옳을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봉황산 부석사"가 정답이다. 태백산이 맞다, 소백산이 맞다하며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소백산의 비로봉과 태백산 천제단의 중간지점에 부석사가 있으니 이럴 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
갈곶산에서 부석사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며 등로는 희미하지만 눈썰미만 좋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쯤은 등산객이 늘어나서 이 곳 산길도 고속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부석사를 찾아 내려가면 무량수전 뒤편의 좁은 산길에 자리 잡은 자인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석불 2상을 만나 뵙고 그 아래 조사당을 거쳐서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내려오게 된다.
부석사에 와서 자인당과 조사당을 모두 둘러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같은 천방지축의 산꾼들은 그런 곳은 보기 싫어도 자연 뽕으로 보고 지나가므로 글쟁이와 산쟁이가 콤비를 이루면 환상의 조합일 것이다.
그러나 두 쟁이들은 체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므로 동행이 힘들고 지금 타이핑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글을 타이핑하느니 차라리 산길을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책상머리에서 됫박을 말로 파는 뻥튀기장사는 역시 내 체질이 아니다.
김삿갓은 길쟁이와 글쟁이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기인이다. 기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니 그 팔자가 기구한 것을 누굴 탓할 것인가. 사주팔자가 그러하니 사주팔자를 탓하며 꼴리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하게 한 세상을 사는 길이라 생각되며 그 묘역은 바로 이곳 갈곶산 아래 백두대간을 경계로 부석사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왕 샛길로 빠졌으니 조금 더 샛길로 빠져봅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어떻고, 안양루가 어떻고, 당간지주가 어떻고, 석축이 어떻고, 조사당벽화가 어떻고, 삼층석탑이 어떻고, 고 최순우 박물관장님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등 이런 얘기들은 이제 진부하여 고객의 수준을 무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신제품을 개발하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잊지 않고 찾아와서 졸필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님들에게 그나마 답례를 하는 일이므로 김삿갓과 부석사를 패키지로 묶어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제목 부석사/ 지은이 김삿갓/ 출처 안양루 현판에서, 원문은 생략>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이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열려있고/ 천지는 부표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니/ 백 년 동안 이런 경치 몇 번이나 구경할꼬/ 세월은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어있네//
산과 산 사이,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가 고갯마루이므로 무슨 령이니 무슨 재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면 그 다음은 죽었다고 일단 복창해야 한다. 보통 산은 오르고 나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대간 길이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내려오면 또 올라가야 하므로 사람을 아예 잡고있어 내려온 길은 이제 겁부터 나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면 속된 표현으로 이가 갈리는 곳이다.
갈곶산에서 선달산을 이어오는 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늦은목이재로 내려와서 또다시 선달산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선달산에서 좌향좌 하여 두어 시간을 가면 삼도의 꼭지점인 이 땅의 또 하나의 삼도봉인 어래산이 있으나 대간 길은 그대로 직진하여 박달령으로 이어간다.
이 곳 박달령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이며, 선달산에서 이 곳으로 내려온 길은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라 일반산행에서 이 길을 걸을 때는 멋진 곳이라며 호들갑을 떨겠지만 지친 몸으로 걸어가기에는 꼬랑지가 얼마나 길던지 무쟈게 지루하고 앞에 우뚝 솟은 옥돌봉을 바라보고 또다시 저 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져 졸도한 줄 알았다
박달령에 도착하자마자 양지바른 언덕에 배낭을 둘러맨 채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3시가 조금 넘었지만 점심도 먹지 않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열심히 걸어왔다. 도중에 찹쌀모찌 2개정도 먹고 곶감도 서네 개 먹고 수시로 호도와 육포를 먹으며 허기지지 않도록 기름을 자주 넣고 왔으므로 배는 전혀 고프지 않고 커피생각만 간절하다.
그렇지만 커피한잔 끓이자고 배낭을 풀어 다시 싸는 일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낭을 요령 것 잘 패킹해야 무게를 덜 느끼지만 제 멋대로 그냥 쑤셔 넣으면 배낭이 아래로 쳐져서 어깨도 많이 아프고 무게도 엄청 무겁게 전달되므로 배낭을 싸는 것도 공을 많이 쏟아야 한다.
날도 춥고 지친 몸으로 배낭을 풀어서 다시 패킹하는 것도 귀찮아서 궁여지책으로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봉지커피를 통째로 입에 털어 넣고 물로 헹궈가며 조금씩 삼켜보니 그 맛이나 끓인 물에 타 마시는 거나 그 맛이 그 맛이고,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커피가 식었다는 등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배가 불러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괜히 똥 폼을 잡는 허튼 소리였다.
옥돌봉을 올라갈 때는 "날 잡아 죽여라"하며 오기로 똘똘 뭉친 그 못돼 먹은 존심 때문에 올라왔고 깡다구 차원을 넘어 선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숲이 우거진 하산 길로 접어들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어가며 6시경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고갯마루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12시간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목적지인 이 곳까지 점심도 굶어가며 죽기살기로 산길을 걸어왔으니 지칠 데로 지쳐서 이곳에 밤마다 출몰한다는 호랭이가 잡아먹던 말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 일반이므로 배낭부터 벗어 던지고 차가운 도로변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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