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와 김삿갓)
이 곳 고치령에 도착하여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10여분 임도 따라 내려가서 식수부터 구해야 했다. 조금씩 흐르는 계곡 물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서 계곡 물에 손을 담그기도 겁이 날 정도다.
산신각 옆에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서 버너의 펌프질을 하는데도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고 엊그제만 해도 더워 죽겠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추워죽겠다고 엄살을 떨고 있으니 그 누가 이런 변덕을 다 받아 줄 수 있을까.
지난번 새벽에는 어떤 놈이 텐트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잠을 깨우더니 오늘 새벽은 바람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은 국물을 데워서 찬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접는데 텐트가 바람에 날려서 혼자 텐트 접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요긴하게 이용하라고 산신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 후, 2년 뒤에 이 부근의 주변을 답사하려고 차량으로 이곳 임도를 넘어가며 산신각을 한 커트 찍으려 했으나 그 사이에 어떤 못된 작자가 불을 질러서 그 자리에는 숯 덩어리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누구는 산꾼이 그랬다 하고, 누구는 종교적 입장차이로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하며 그런 곳이 한 둘이 아니라 한다. 하여튼 요즘세상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웃기는 짬뽕들이 지들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는 세상이다.
오늘 구간은 24km나 되는 긴 거리이고 오르내리는 고도차이가 심한 곳이 몇 곳이 있으므로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이므로 깜깜한 새벽 6시부터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3시간정도 대간 길을 이어가면 비포장 임도인 마구령에 도착하고 거기서 1시간정도 땀을 쏟고 나면 갈곶산이다. 이 곳 갈곶산 아래에 부석사가 있으며 대간 길은 그 반대로 이어진다.
부석사의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로 표시되어 있으나 "소백산 부석사"가 더 옳을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봉황산 부석사"가 정답이다. 태백산이 맞다, 소백산이 맞다하며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소백산의 비로봉과 태백산 천제단의 중간지점에 부석사가 있으니 이럴 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
갈곶산에서 부석사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며 등로는 희미하지만 눈썰미만 좋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쯤은 등산객이 늘어나서 이 곳 산길도 고속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부석사를 찾아 내려가면 무량수전 뒤편의 좁은 산길에 자리 잡은 자인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석불 2상을 만나 뵙고 그 아래 조사당을 거쳐서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내려오게 된다.
부석사에 와서 자인당과 조사당을 모두 둘러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같은 천방지축의 산꾼들은 그런 곳은 보기 싫어도 자연 뽕으로 보고 지나가므로 글쟁이와 산쟁이가 콤비를 이루면 환상의 조합일 것이다.
그러나 두 쟁이들은 체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므로 동행이 힘들고 지금 타이핑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글을 타이핑하느니 차라리 산길을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책상머리에서 됫박을 말로 파는 뻥튀기장사는 역시 내 체질이 아니다.
김삿갓은 길쟁이와 글쟁이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기인이다. 기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니 그 팔자가 기구한 것을 누굴 탓할 것인가. 사주팔자가 그러하니 사주팔자를 탓하며 꼴리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하게 한 세상을 사는 길이라 생각되며 그 묘역은 바로 이곳 갈곶산 아래 백두대간을 경계로 부석사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왕 샛길로 빠졌으니 조금 더 샛길로 빠져봅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어떻고, 안양루가 어떻고, 당간지주가 어떻고, 석축이 어떻고, 조사당벽화가 어떻고, 삼층석탑이 어떻고, 고 최순우 박물관장님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등 이런 얘기들은 이제 진부하여 고객의 수준을 무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신제품을 개발하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잊지 않고 찾아와서 졸필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님들에게 그나마 답례를 하는 일이므로 김삿갓과 부석사를 패키지로 묶어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제목 부석사/ 지은이 김삿갓/ 출처 안양루 현판에서, 원문은 생략>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이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열려있고/ 천지는 부표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니/ 백 년 동안 이런 경치 몇 번이나 구경할꼬/ 세월은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어있네//
산과 산 사이,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가 고갯마루이므로 무슨 령이니 무슨 재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면 그 다음은 죽었다고 일단 복창해야 한다. 보통 산은 오르고 나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대간 길이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내려오면 또 올라가야 하므로 사람을 아예 잡고있어 내려온 길은 이제 겁부터 나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면 속된 표현으로 이가 갈리는 곳이다.
갈곶산에서 선달산을 이어오는 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늦은목이재로 내려와서 또다시 선달산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선달산에서 좌향좌 하여 두어 시간을 가면 삼도의 꼭지점인 이 땅의 또 하나의 삼도봉인 어래산이 있으나 대간 길은 그대로 직진하여 박달령으로 이어간다.
이 곳 박달령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이며, 선달산에서 이 곳으로 내려온 길은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라 일반산행에서 이 길을 걸을 때는 멋진 곳이라며 호들갑을 떨겠지만 지친 몸으로 걸어가기에는 꼬랑지가 얼마나 길던지 무쟈게 지루하고 앞에 우뚝 솟은 옥돌봉을 바라보고 또다시 저 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져 졸도한 줄 알았다
박달령에 도착하자마자 양지바른 언덕에 배낭을 둘러맨 채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3시가 조금 넘었지만 점심도 먹지 않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열심히 걸어왔다. 도중에 찹쌀모찌 2개정도 먹고 곶감도 서네 개 먹고 수시로 호도와 육포를 먹으며 허기지지 않도록 기름을 자주 넣고 왔으므로 배는 전혀 고프지 않고 커피생각만 간절하다.
그렇지만 커피한잔 끓이자고 배낭을 풀어 다시 싸는 일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낭을 요령 것 잘 패킹해야 무게를 덜 느끼지만 제 멋대로 그냥 쑤셔 넣으면 배낭이 아래로 쳐져서 어깨도 많이 아프고 무게도 엄청 무겁게 전달되므로 배낭을 싸는 것도 공을 많이 쏟아야 한다.
날도 춥고 지친 몸으로 배낭을 풀어서 다시 패킹하는 것도 귀찮아서 궁여지책으로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봉지커피를 통째로 입에 털어 넣고 물로 헹궈가며 조금씩 삼켜보니 그 맛이나 끓인 물에 타 마시는 거나 그 맛이 그 맛이고,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커피가 식었다는 등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배가 불러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괜히 똥 폼을 잡는 허튼 소리였다.
옥돌봉을 올라갈 때는 "날 잡아 죽여라"하며 오기로 똘똘 뭉친 그 못돼 먹은 존심 때문에 올라왔고 깡다구 차원을 넘어 선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숲이 우거진 하산 길로 접어들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어가며 6시경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고갯마루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12시간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목적지인 이 곳까지 점심도 굶어가며 죽기살기로 산길을 걸어왔으니 지칠 데로 지쳐서 이곳에 밤마다 출몰한다는 호랭이가 잡아먹던 말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 일반이므로 배낭부터 벗어 던지고 차가운 도로변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이 곳 고치령에 도착하여 쉬지도 못하고 곧바로 10여분 임도 따라 내려가서 식수부터 구해야 했다. 조금씩 흐르는 계곡 물은 이미 얼음처럼 차가워서 계곡 물에 손을 담그기도 겁이 날 정도다.
산신각 옆에 텐트를 치고 텐트 안에서 버너의 펌프질을 하는데도 손은 벌써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고 엊그제만 해도 더워 죽겠다고 난리였는데 이제는 추워죽겠다고 엄살을 떨고 있으니 그 누가 이런 변덕을 다 받아 줄 수 있을까.
지난번 새벽에는 어떤 놈이 텐트를 가지고 장난을 쳐서 잠을 깨우더니 오늘 새벽은 바람소리가 잠을 깨운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은 국물을 데워서 찬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텐트를 접는데 텐트가 바람에 날려서 혼자 텐트 접는 일도 쉽지 않다. 이럴 때 요긴하게 이용하라고 산신각이 있는 모양이다.
그 후, 2년 뒤에 이 부근의 주변을 답사하려고 차량으로 이곳 임도를 넘어가며 산신각을 한 커트 찍으려 했으나 그 사이에 어떤 못된 작자가 불을 질러서 그 자리에는 숯 덩어리의 잔해만 남아 있었다.
누구는 산꾼이 그랬다 하고, 누구는 종교적 입장차이로 일부러 불을 질렀다고 하며 그런 곳이 한 둘이 아니라 한다. 하여튼 요즘세상은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어서 웃기는 짬뽕들이 지들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는 세상이다.
오늘 구간은 24km나 되는 긴 거리이고 오르내리는 고도차이가 심한 곳이 몇 곳이 있으므로 난이도가 꽤 있어 보이므로 깜깜한 새벽 6시부터 발길을 재촉하고 있다.
3시간정도 대간 길을 이어가면 비포장 임도인 마구령에 도착하고 거기서 1시간정도 땀을 쏟고 나면 갈곶산이다. 이 곳 갈곶산 아래에 부석사가 있으며 대간 길은 그 반대로 이어진다.
부석사의 일주문에는 "태백산 부석사"로 표시되어 있으나 "소백산 부석사"가 더 옳을 것이며 보다 정확하게는 "봉황산 부석사"가 정답이다. 태백산이 맞다, 소백산이 맞다하며 시시비비를 가려봐야 소백산의 비로봉과 태백산 천제단의 중간지점에 부석사가 있으니 이럴 때는 목소리 큰사람이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
갈곶산에서 부석사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리며 등로는 희미하지만 눈썰미만 좋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다. 지금쯤은 등산객이 늘어나서 이 곳 산길도 고속도로가 되었을 것이다.
이 곳에서 부석사를 찾아 내려가면 무량수전 뒤편의 좁은 산길에 자리 잡은 자인당에 봉안된 비로자나불 석불 2상을 만나 뵙고 그 아래 조사당을 거쳐서 무량수전 앞마당으로 내려오게 된다.
부석사에 와서 자인당과 조사당을 모두 둘러본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같은 천방지축의 산꾼들은 그런 곳은 보기 싫어도 자연 뽕으로 보고 지나가므로 글쟁이와 산쟁이가 콤비를 이루면 환상의 조합일 것이다.
그러나 두 쟁이들은 체질이 다르고 색깔이 다르므로 동행이 힘들고 지금 타이핑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글을 타이핑하느니 차라리 산길을 걷는 것이 훨씬 수월하고 책상머리에서 됫박을 말로 파는 뻥튀기장사는 역시 내 체질이 아니다.
김삿갓은 길쟁이와 글쟁이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태어난 기인이다. 기인으로 태어난 사람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으니 그 팔자가 기구한 것을 누굴 탓할 것인가. 사주팔자가 그러하니 사주팔자를 탓하며 꼴리는 대로 자기 맘대로 살아가는 것이 속 편하게 한 세상을 사는 길이라 생각되며 그 묘역은 바로 이곳 갈곶산 아래 백두대간을 경계로 부석사의 반대편에 자리 잡고 있다.
이왕 샛길로 빠졌으니 조금 더 샛길로 빠져봅시다. 부석사의 무량수전이 어떻고, 안양루가 어떻고, 당간지주가 어떻고, 석축이 어떻고, 조사당벽화가 어떻고, 삼층석탑이 어떻고, 고 최순우 박물관장님의 "무량수전의 배흘림기둥에 기대어 서서"등 이런 얘기들은 이제 진부하여 고객의 수준을 무시한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신제품을 개발하여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잊지 않고 찾아와서 졸필을 읽어주시는 고마운 님들에게 그나마 답례를 하는 일이므로 김삿갓과 부석사를 패키지로 묶어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제목 부석사/ 지은이 김삿갓/ 출처 안양루 현판에서, 원문은 생략>
평생에 여가 없어 이름난 곳 못 왔더니/ 백발이 된 오늘이야 안양루에 올랐구나/ 그림 같은 강산은 동남으로 열려있고/ 천지는 부표 같아 밤낮으로 떠 있구나/ 지나간 모든 일이 말 타고 달려온 듯/ 우주간에 내 한 몸이 오리 마냥 헤엄치니/ 백 년 동안 이런 경치 몇 번이나 구경할꼬/ 세월은 무정하여 나는 벌써 늙어있네//
산과 산 사이, 봉우리와 봉우리의 사이가 고갯마루이므로 무슨 령이니 무슨 재라고 부르는 곳에 도착하면 그 다음은 죽었다고 일단 복창해야 한다. 보통 산은 오르고 나서 내려오면 끝이지만 대간 길이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으련만 내려오면 또 올라가야 하므로 사람을 아예 잡고있어 내려온 길은 이제 겁부터 나고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면 속된 표현으로 이가 갈리는 곳이다.
갈곶산에서 선달산을 이어오는 길도 예외는 아니어서 늦은목이재로 내려와서 또다시 선달산을 힘들게 올라가야 한다. 선달산에서 좌향좌 하여 두어 시간을 가면 삼도의 꼭지점인 이 땅의 또 하나의 삼도봉인 어래산이 있으나 대간 길은 그대로 직진하여 박달령으로 이어간다.
이 곳 박달령도 비포장 임도가 지나는 곳이며, 선달산에서 이 곳으로 내려온 길은 산세가 완만하고 부드러워 걷기에 무척 좋은 길이라 일반산행에서 이 길을 걸을 때는 멋진 곳이라며 호들갑을 떨겠지만 지친 몸으로 걸어가기에는 꼬랑지가 얼마나 길던지 무쟈게 지루하고 앞에 우뚝 솟은 옥돌봉을 바라보고 또다시 저 곳을 올라갈 생각을 하니 억장이 무너지고 기가 막혀서 입이 딱 벌어져 졸도한 줄 알았다
박달령에 도착하자마자 양지바른 언덕에 배낭을 둘러맨 채 그대로 쓰러져 누워버렸다. 3시가 조금 넘었지만 점심도 먹지 않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열심히 걸어왔다. 도중에 찹쌀모찌 2개정도 먹고 곶감도 서네 개 먹고 수시로 호도와 육포를 먹으며 허기지지 않도록 기름을 자주 넣고 왔으므로 배는 전혀 고프지 않고 커피생각만 간절하다.
그렇지만 커피한잔 끓이자고 배낭을 풀어 다시 싸는 일이 말처럼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배낭을 요령 것 잘 패킹해야 무게를 덜 느끼지만 제 멋대로 그냥 쑤셔 넣으면 배낭이 아래로 쳐져서 어깨도 많이 아프고 무게도 엄청 무겁게 전달되므로 배낭을 싸는 것도 공을 많이 쏟아야 한다.
날도 춥고 지친 몸으로 배낭을 풀어서 다시 패킹하는 것도 귀찮아서 궁여지책으로 그래도 안 먹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봉지커피를 통째로 입에 털어 넣고 물로 헹궈가며 조금씩 삼켜보니 그 맛이나 끓인 물에 타 마시는 거나 그 맛이 그 맛이고, 맛이 어떻고 향이 어떻고 커피가 식었다는 등 그딴 쓸데없는 소리는 배가 불러서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괜히 똥 폼을 잡는 허튼 소리였다.
옥돌봉을 올라갈 때는 "날 잡아 죽여라"하며 오기로 똘똘 뭉친 그 못돼 먹은 존심 때문에 올라왔고 깡다구 차원을 넘어 선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숲이 우거진 하산 길로 접어들어 수북이 쌓인 낙엽을 쓸어가며 6시경 도래기재에 도착하니 고갯마루에는 이미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12시간 정도를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목적지인 이 곳까지 점심도 굶어가며 죽기살기로 산길을 걸어왔으니 지칠 데로 지쳐서 이곳에 밤마다 출몰한다는 호랭이가 잡아먹던 말던,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죽기는 매 일반이므로 배낭부터 벗어 던지고 차가운 도로변에 철퍼덕 주저앉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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