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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산행기-5 (백두대간에는 몇 개의 터널이 있나)

오완선 2012. 12. 1. 18:31
(홀딱 벗고와 거창 삼도봉)

이른 새벽부터 산새들이 단잠을 깨우고 있다. 소리 장단을 맞추며 산새 두 마리가 이쪽 저쪽에서 번갈아 가며 "홀딱 벗고, 홀딱 벗고" 하며 새벽부터 야릇한 소리를 내며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새소리를 몇 번을 유심히 들어봐도 틀림없이 "홀딱 벗고" "홀딱 벗고"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이 산새는 산골지방을 묘사하는 문학작품에 가끔 등장하고 작품들에서도 편의상 "홀딱 벗고새"로 부르고 있으나 정확한 새 이름은 "검은등 뻐꾸기"고 우리나라 곳곳에 널리 분포된 산새다

집에서 말려온 누룽지를 끓여 아침을 대신하고 커피한잔 끓이고 나니 식수가 떨어 저 빼재마루에 있는 휴게소에 들려 물부터 준비해야 했다

무주에서 거창으로 넘어가는 37번 국도의 고갯마루가 대간 길의 빼재이고 이곳 휴게소이름은 신풍령휴게소로 되어 있어 신풍령으로 이름이 바뀌었나 하고 후에 거창이 고향인 사람에게 물어보니 지금도 빼재로 부른다고 한다

휴게소에는 반겨줄 사람은 없고 멍멍이만 요란스럽게 짖어댄다. 문이 잠겨 있으니 식수를 구할 길이 막막하고 길을 건너 절개지의 사면을 타고 대간 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안전하게 기어올라 갈 사면이 보이지 않는다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니 절개지의 홈통에서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어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 절개지의 사면을 치고 올랐다

여름철은 더위와 싸우느라 물 소비량이 많아 식수확보가 큰 문제이지만 안전한 샘물은 어느 곳이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지표면에 흐르는 이런 물을 구할 수 있는 것도 감사해야 했다

사면을 치고 오르니 등로가 열리고 어느 무덤 가에 앉자 오늘 걸어야 할 코스를 지도를 보며 전체를 상상해 본다

오늘 구간중 특이한 곳은 백두대간에서 두 번째 만나는 삼도봉이다. 이 곳 삼도봉을 거창 삼도봉 또는 대덕산 삼도봉이라 부르고 있으며 이 곳은 전북 무주군 무풍면과 경남 거창군 고제면 그리고 경북 김천시 대덕면이 한 곳에서 모이는 지점이다

이 삼도봉을 오르기 전에 거창군의 최북단에 자리잡은 고제면의 소사마을 지나며 이 곳을 지나는 지방도로를 건너 삼도봉을 오른다

삼도봉에서 대덕산을 거쳐 무주와 성주를 연결하는 30번 국도와 만나며 이 곳을 덕산재라 부르고 이 곳에서 오늘 산행을 끝낼 것인지 아니면 2-3시간 더 걸어 부항령까지 진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시작부터 산줄기가 확실하지 않고 도면에도 능선표시가 확실치 않아 각별히 신경을 써서 길 찾기를 해야 했다

바람도 없는 펑퍼짐한 잡목지대를 통과하느라 등은 땀이 흘러 축축하고 얼굴에는 수시로 거미줄이 달라붙어 아침부터 짜증나게 만들고있다.

산줄기가 확실한 능선 길은 길 찾기가 용이하지만 이런 야산지대는 등로가 확실치 않아 방향을 확인하여 감으로 때려잡고 진행해야하고 볼거리도 없어 재미가 없는 구간이다

조금씩 고도를 올려가고 있지만 능선길이 아닌 펑퍼짐한 잡목지대라 수시로 나침반을 확인하며 엉뚱한 곳으로 빠져나가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진행하다보니 앞이 확 열리며 가야할 능선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봉우리 3개가 옹기종기 모여 있어 삼봉산이라 부르는 삼봉산 정상에 올라서니 총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여 자세히 들어보니 부근의 어느 채석광산에서 돌을 캐는 발파음 소리였고 삼봉산을 내려오며 이어진 능선 길을 버리고 우측 내리막 경사면을 타고 소사마을로 내려왔다.

소사마을로 내려오는 비탈길은 온통 개간하여 밭으로 변해있어 밭으로 내려오느라 신발에는 한 움큼의 흙이 떡처럼 달라붙어 신발이 갑절이나 무거웠다

소사마을에서 삼도봉을 오르는 구간도 산중턱까지 개간하여 밭을 만들었고 마침 파종하는 농부가 있어 지금 파종하는 작물이 무엇인지 물어보니 시금치며 앞으로 50일 정도 지나서 수확을 한다고 한다.

삼도봉을 올라가며 무던히도 땀을 흘린 것 같다. 그리 높은 산은 아니어서 오르기 힘든 산은 아니었지만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간이라 뙤약볕이 장난이 아니고 그늘진 곳도 없어 지열이 올라와 숨이 꽉꽉 막히는 것 같았다

잠시 쉬어가며 뒤돌아 덕유산을 바라보니 덕유산 향적봉으로 이어진 스키장슬로프의 모습은 머리를 군데군데 바리캉으로 밀어 버린 형국이라 아주 흉물스럽게 보이고 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늘 고맙게 생각하며 감사해야 하는데 저렇게 자연을 훼손하고 있으니 자연 보호론자는 아니지만 무분별한 개발은 이제 그만 중단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삼도봉에 올라서서 삼도를 한눈에 바라보는 감회는 어느 곳보다 남달랐다. 모두가 이렇게 한 곳에서 만나는데 저 산아래 순박한 사람들을 이쪽저쪽으로 나누어서 서로 아옹다옹하도록 이를 조장하고 이를 이용해 이익을 꾀하려는 못된 정치모리배들은 하루빨리 도태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우러나오고있다

덕산재는 기대와는 달리 폐가로 변해버린 주유소의 흉물스런 잔해만 남아있고 오가는 차량도 없어 황량하고 음산하여 식수를 보충하고 곧바로 부항령으로 향하는 산길로 다시 접어들었다

덕산재에서 부항령까지는 2시간반정도 소요되나 이름 있는 높은 산도 없고 특이한 점도 없는 낮은 봉우리들만 몇 곳 넘어왔으나 이런 낮은 봉우리들이 무수한 잽이 되어 그로기로 몰아가고 있다. 준비하고 얻어맞은 강펀치보다 오히려 펀치 같지도 않은 잽이 누적되면 더 무서운 줄 이곳에서 제대로 알았다

(민주지산 삼도봉과 백두대간의 터널들)

이곳 부항령은 터널로 연결된 곳이다

산골의 지방도로를 개설하며 도로와 고도차이가 별반 없음에도 백두대간을 절단하지 않고 터널로 연결한 것을 보니 이제야 백두대간의 중요성을 알고 이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엿 볼 수 있어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백두대간을 보호하기 위해 터널을 뚫은 곳은 이 곳 부항령 터널이 유일한 곳이다. 다른 모든 터널들은 이미 백두대간을 끊어놓은 기존 도로가 있는 곳을 거리를 단축하거나 위험요소를 해소하고 적설기에도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추가로 터널을 뚫은 곳이고 고속도로와 철도의 터널은 백두대간을 보호하려는 취지와는 처음부터 거리가 먼 것들이다

참고로 백두대간을 지나는 터널은 덕유산의 육십령과 이 곳 부항령, 문경새재의 이화령, 소백산의 죽령, 함백산의 싸리재, 대관령이 있으며 미시령과 조침령 터널은 현재 공사중이다(미시령은 개통되었음)

육십령은 대진고속도로가 지나는 터널이고 이화령은 국도가 고갯마루를 지나고 있으나 민자를 유치하여 터널을 뚫어 통행료를 받는 유료터널과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나는 터널이 있다.

죽령은 중앙선 철도가 지나는 또아리 굴과 중앙고속도로가 지나는 국내에서 가장 긴 죽령터널이 있으며 함백산의 싸리재는 지방도가 지나고 있으나 추가로 터널을 뚫었고 그 아래에 태백선 철도가 지나는 정암터널이 있으며 그리고 대관령은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있다

부항령 고갯마루는 차량통행이 거의 없어 조용하고 시원하여 하룻밤을 보내기는 그만였고 소공원에 팔각정이 있어 밤이슬을 막아주므로 텐트 칠 필요도 없이 침낭만 깔면 되므로 산 거지인 나 같은 노숙자에게는 최상의 잠자리였다

주위가 소란하여 눈을 떠보니 봉고차에서 4-5명의 산꾼들이 내리더니 랜턴 불을 밝히며 터널입구의 경사면을 오르고 있다.

오늘이 일요일이니 일요일마다 백두대간을 이어가는 산꾼들인 모양이다. 새벽 3시가 조금 지난 이른 새벽이라 침낭 속에서 조금 더 지척이다가 누룽지를 끓여서 간편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시각에 결전을 다짐하며 배낭을 다시 둘러멨다

몸 상태는 빠르게 회복되어 큰 걱정은 없으나 그 동안 혹사당한 어깨가 갈수록 말썽을 부려 어깨통증이 제일 문제였다

백두대간을 준비하며 매일 새벽마다 뒷산을 오르고 주말에는 장거리산행을 꾸준히 하여 걱정했던 다리는 말짱한데 어깨가 아파 오는 것은 어찌 할 방도가 없어 오직 준비물을 최소화하며 무게와 전쟁을 하는 길 외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오늘구간은 대간 길의 마지막 삼도봉인 민주지산의 삼도봉을 올라 화주봉을 거쳐 우두령까지 대략 20km정도며 산행을 일찍 끝내고 귀가해야 하므로 한가롭게 걷는 길이 아니다

해인리에서 올라오는 삼거리를 만나면서 이 곳에서 올라온 일반 등산객의 모습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하고 산행시작 3시간 반이 경과한 8시경에 삼도봉 정상에 올라서서 비로써 긴 숨을 토해냈다

부항령에서 이곳까지 4시간 반정도 예상했으나 3시간 반만에 도착하였으니 일정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휴식을 줄여가며 무던히도 열심히 걸었던 길이다

이 곳 삼도봉은 경상북도 김천시와 전라북도 무주군 그리고 충청북도 영동군이 이 곳에서 모두 만나는 곳으로 경상도와 전라도 그리고 충청도가 모두 한 곳에 모인 명실상부한 삼도의 꼭지점이다

정상에는 삼도화합을 상징하는 커다란 조형물을 만들어 두었으나 산봉우리에 이렇게 큰 조형물을 세워둔 것도 전시행정의 표본이고 우리의 귀한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화합을 위해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이 우리 모두가 해야 할 일이지 이 따위 볼썽사나운 조형물이나 건립하며 자연경관을 해치고 있으니, 어휴! 이런 썩을 놈들, 자기 돈이면 이 따위 짓을 하며 쓸데없는 낭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석기봉과 민주지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몇 년 전 이 곳에서 동계훈련을 받다가 운명을 달리한 10여명의 특전용사들이 생각나 잠시 그들의 명복을 늦게나마 빌어보았다

화주봉을 지나고 나서는 평지와 다름없는 그늘진 숲길을 걸어가므로 한낮의 더위를 이길 수 있어 산행시작 8시간 반정도 지난 오후 1시경에 우두령에 도착하여 비로써 4일간의 모든 일정을 무사히 마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 쉬었다

지나가는 차량의 도움을 받아 국도가 지나는 김천의 지례면까지 가서 그 곳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마음씨 좋은 트럭 기사 분이 김천까지 가는 길이라며 역까지 태워주었다

그동안 홀로 산행을 하며 많은 히치를 하여 나름대로 요령을 터득하고있다. 승용차는 손을 흔들어도 차를 세워주지 않지만 트럭들은 50%이상의 확률은 되고 차를 세우기 좋은 장소를 골라서 히치를 해야 성공률이 더 높아진다

처음부터 좌석 표는 꿈도 꾸지 않았으므로 느긋하게 맘먹고 우선 목욕탕을 찾아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몇 일간 땀에 찌든 그 악취는 다른 승객에게 긴 시간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을, 산꾼들은 그만한 에티켓은 이미 기본으로 알고있다

일진이 좋은 탓에 좌석 표를 구입하여 편안한 귀가길이 되어 이번 길을 결산하며 마음을 다진 기억이 있어 당시의 메모장을 훑어보니 이런 글을 적어 놓았다

“끝이 없어 보인 머나먼 대간 길, 그러나 그 길은 분명히 끝이 있다. 끝이 있다면 그 길은 분명 걸을 수 있다. 이 생각만 가지고 걷고 또 걸어 갈 것이다.“

졸린 눈을 감고 다시 눈을 떠보니 기차는 어느 덧 수원역을 통과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