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맛집

1970~80년대의 추억을 먹는 듯한 정겨운 느낌의 <팔도왕소금구이>

오완선 2012. 12. 25. 12:04

바쁜 와중에 한 통의 전화벨이 울린다. ‘월간외식경영의 황해원 기자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다음 달 호 ‘불고기 매거진’에 게재할 만한 원고를 부탁해도 될까요? ’‘아 그래요? 나 바쁜데... 언제까지요?’‘ 이번 주 토요일이나 다음 주 월요일까지 될까요?’ 언제까지냐고 물어보지 말았어야 했는데 무언가 걸려든 이 느낌은 무엇인지. 사실 시험 기간엔 이러저러한 이유로 더 바빠지는 편이지만 오랜만에 부탁하는 건데 딱히 거절할 만한 이유도 잘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느 집을 이야깃거리로 삼아야 할까. 당장 그게 가장 큰 고민이 되었다. 순간적으로 몇 집 떠오르기는 했다. 일단 2년 전쯤‘수원 화성 성곽 아래 숨어 있는 맛집’이라는 제목으로 블로그에 소개되어 많은 이웃들로부터 큰 환호와 원성을 들어야만 했던 그 집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당시 할머니 혼자서 장사하시는 집이라 상호를 공개하면 안될 것 같아 상호를 가린 채 소개를 했는데 포스트를 본 많은 분들이 어딘지 알려달라며 쪽지, 안부게시판, 댓글 등의 다양한 형식으로 읍소, 애교, 반협박 식으로 호소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이야 알려질 만큼 알려졌고 특히 최근에는 정말 화려한 변신도 이런 변신은 없을 만큼 누구 말대로 상전벽해를 이루어 혹시 그런 집이 독자들에게 관심이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후보에 올렸으나 잠시 고민 끝에 다음으로 미루기로 했다. 그렇다면 또 어느 집이 있을까? 이왕이면 내가 몸담고 사는 우리 지역의 괜찮은 집을 소개하고 싶은데 어디가 좋을까? <남보원> 아니면 <이화화로>? 고민 끝에 누구나 손쉽게 갈 수 있고 지극히 서민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추억 속의 그 집이 이내 떠올랐다. 수원 팔달구 인계동에 위치한 <팔도왕소금구이>라는 돼지 특수 부위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다.

내 어릴 적 아버지가 앉아 계실 것만 같은 추억의 실비집

이 집은 그야말로 아주 소박한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실비집 스타일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얼큰하게 취하신 내 어릴 적 아버지를 만날 것만 같다. 요즘은 조금 뜸해졌지만 필자 역시 한때는 이 집을 자주 드나들었었다. 이 집 주인장이신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일밖에 모르시는 분이다. 어느 날 필자가 방문해서 늘 하던 대로 명함을 달라고 하여 블로그에 소개하기 위한 사진을 찍는데 어디서 많이 보던 익숙한 인터넷 주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뿔싸. 자세히 보니 있지도 않은 이 집의 홈페이지 주소에 필자의 블로그 주소가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황당했지만 주인장이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웃으며 “여기 이 주소는 내 블로그 주소인데 여기 쓰여 있네요?”라고 말씀 드리니까 그게 뭔지도 몰랐다며 어찌나 미안해하던지. 지금도 그 명함이 계속 사용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혹시라도 그 주소를 보고 필자를 그 집 홍보 사원으로 착각하지 않길 바란다.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될 수 있을까

이 집은 갈매기살, 가브리살, 토시살 이렇게 세 가지 부위가 주력 메뉴다. 특별히 선택하지 않으면 그날그날의 사정에 맞춰 손님상에 내놓는데 일단 문 앞쪽에 만들어진 화로에서 고기를 굽는다. 연탄불이 이 집의 특징이다. 하루 종일 연탄불 앞에서 고기를 굽는 주인장이 안쓰럽게 느껴질 때도 없지 않아 있는데 지금은 그 일을 즐기고 있는 듯하다. 마치 어떤 영역을 넘어선 듯한 대단한 공력이 느껴진다. ‘그 누구도 이렇게 맛있게 고기를 구워낼 수 없다’라는 어떤 자신감 있는 그 현란한 손놀림에 보는 이들마저도 그저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예쁘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건 여성의 본능이니까. 그런데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인다. 여기서 문득 십수 년 전 필자가 재직하고 있는 학교를 졸업하고 명문 대학에 입학했던 어느 여제자가 생각난다. 또래 여학생들과는 사뭇 다른 그런 여학생이었다. 지독하리만큼 외모에는 별로 신경 쓰지를 않았다. 조금 바쁘면 그냥 머리 질끈 동여매고 등교하고 남이 뭐라 하든 말든 전투적인 자세로 공부에 몰두하던 그 여학생이 그립다. 오히려 외모에 신경 쓰고 교무실에 꽃을 가져다 놓던 그 학생들보다도 더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졌다면 그건 비약일까?

이 집 주인장으로부터 십수 년 전의 그 여학생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너무 지나친 비약이라며 야유를 퍼부을지도 모르겠지만 얼굴은 까무잡잡하고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여있어도 그것이 생존을 위해서였든 아니든 자기 일에 그처럼 몰두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아름답게만 느껴진다.

외식업주들의 소망이 무엇인가? 물론 수입이 중요하다. 왜? 먹고 살아야 하니까. 공자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돈은 우리의 행복한 인생을 위한 수단이지 돈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옛날 선비들은 경제 활동에 있어서 ‘견리사의(見利思義)’와 ‘의주이종(義主괿從)’을 기본으로 삼았다고 한다. 즉 ‘군자는 의(義)에 밝고 소인은 이(괿)에 밝다’라는 이야기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적어도 돈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그저 손님 한명 한명이 돈으로만 보일지도 모른다. 그리 되다 보면 누군가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적인 업주가 될 수도 있다. 옛날 상도(商道)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렇게 말했던가? 진정한 장사꾼은 돈을 남기는 게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라고... 그 말에 많은 부분 동의한다. 손님은 업주의 진정성과 일에 대한 열정, 서비스에 감동한다. 물론 좋은 식재료는 말하지 않아도 기본이다. 필자가 이 집을 가끔 찾는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을 편안하게 대해준다. 특별히 꾸미지도 않는다. 얼굴에 꺼먹이 묻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는다. 오로지 손님이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불과 씨름한다. 주인장의 진정성을 연탄불도 알았는지 항상 최상의 상태로 손님상에 오르도록 육즙 가득한 고기를 만들어 준다. 문득 안도현 시인의 글 중에‘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어떤 시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신선한 갈매기살, 가브리살, 토시살이 주력 메뉴

그럼 이제부터는 고기 이야기를 해보자. 먼저 갈매기살이다. 갈매기살은 주물럭이나 구이용으로 많이 소비된다. 돼지 한 마리에서 아주 적은 부위만 생산된다고 한다. 그럼 가브리살은 어떠한가? 등심을 덮고 있는 작은 덮개 살로 역시 구이용으로 인기가 높은 부위다. 마지막으로 토시살은 사실 소고기에서나 가끔 쓰는 용어이지 돼지고기에서는 토시살이 어느 부위인지 모르는 사람이 태반이다. 돼지의 갈비와 갈비 사이 두꺼운 횡경막 부위다. 반찬이라야 뭐 특별할 것도 없이 신 김치와 콩나물무침 그리고 부추겉절이가 전부다. 그런데 이 반찬이 정말 맛있다. 특히 호일로 대충 만든 사각 도시락에 각종 반찬을 넘칠듯하게 쌓아서 불판에 올려주면 잠시 뒤에는 아주 환상적인 모둠 찌개로 화려한 변신을 한다. 더러 알루미늄 호일에 대한 유해성을 지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호일을 사용한 조리가 이루어지고 있다. 칼칼하고 새콤한 모둠 찌개에 탱글거리면서 육즙 가득한 고기를 하나 싸서 먹는 순간 소수 한잔의 유혹을 참을 수가 없다. 여기저기서 잔 부딪히는 소리가 정겹다. 그야말로 이게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누구는 군대 이야기로, 누구는 직장 이야기로, 누구는 자녀의 대학 입시 이야기로, 누구는 싸이의 강남 스타일 이야기로 모두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느라 가게 안은 이미 열기로 넘쳐난다.

그런데 고기를 먹으면서 순간 이게 소고기인지 돼지고기인지 헷갈리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도대체 돼지고기에 무슨 짓을 한 거야’라고 장난 삼아 묻고 싶을 정도다. 평소에 많이 먹는 돼지고기인데도 확실히 차별화된 맛을 보여준다. 겉은 마치 말캉거리는 고무공 같으면서도 한입 베어 물면 육즙이 가득한 진한 풍미의 소금구이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환상적인 고기 맛을 내는 집은 정말 흔치 않다. 주차 시설이 따로 없어 불편하고 가게도 그리 쾌적한 분위기가 아니지만 그래도 이집을 찾는 이유가 바로 이런 고기 맛과 주인장의 한결같은 태도에 있다. 이렇게 고기가 맛있는 비결은 주인장이 매일 인근 도축장에서 선별하여 고기를 대량 구매해온다. 그렇게 구매한 고기는 다시 일일이 기름막을 제거하는 작업을 거치게 되고 거기에 주인장의 불쇼가 이루어지면 불향 가득 머금은 환상적인 맛의 소금구이가 탄생하게 된다.

서비스로 제공되는 일품 잔치국수, 안 먹고 가면 손해

용인시 송전이라는 시골 동네에서 직접 재배한 각종 채소를 자체 조달하는데 이렇게 신선한 채소와 고기가 만났으니 맛있는 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느 정도 먹었을 때 마무리로 국수를 요청해보자. 잔치 국수인데 서비스로 제공해준다. 양이 적다 싶으면 곱빼기를 외쳐도 된다. 그런데 아는 사람만 아는 비밀이 있다. 가끔 잔치국수가 아닌 매콤한 비빔국수가 먹고 싶을 땐 살짝 속삭여주자. 잔치국수와는 또 다른 환상적인 비빔국수가 등장하는데 마치 특별 대접을 받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주인장의 딸이 KLPGA 골프 선수인데 조금 아는 척하면 너무도 유쾌해지신다. 혹시 아는가? 프로 선수로부터 한수 지도를 받게 될지도. 필자도 주인장의 딸인 정세나 선수와 악수만 하고 아직 골프 지도는 받지 못했는데 지도해주기로 한 약속 아직도 유효한지 이번 기회에 꼭 물어봐야겠다.

주소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 975-16 전화 (031)239-2358

글·사진 김인규
‘아포리아’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 맛집 블로그를 운영 중이다. 주로 그가 살고 있는 수원 지역을 중심으로 전국의 알짜배기 맛집들을 다닌다. 그는 현재 고등학교에서 도덕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아포의 맛집 탐방> www.cozy95.blog.me

'car2 > 맛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겹살가격으로 한우갈비를..  (0) 2016.02.17
생선회 숙성..  (0) 2013.12.15
한우 저지방 부위를 사용, 서울식 전골 불고기 맛집 5선  (0) 2012.12.25
한식당 5선.  (0) 2012.12.18
육회, 육회비빔밥 맛있는집..  (0) 2012.1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