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성경시대 13.

오완선 2013. 12. 24. 19:42

부부

 

사랑도 늙는다. 죽기 살기로 사랑했던 파릇파릇한 감정들은 온데간데없고 설레지도 않는다. 손길만 스쳐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떨리던 순간이 있긴 있었던 것 같은데 심장에 빵꾸가 났는지, 굳은살이 박였는지 아무 느낌이 없다. 헤어지기 싫어서 동네를 돌고 또 돌며 서로에게 안달이 나던 연애 시절도, 눈에 불꽃이 튀면 침대로 뛰어들던 신혼 시절도 끝났다. 어느새 애정 표현이나 성적 욕구도, 성적 매력도 상실한 자신을 발견한 중년 아내는 씁쓸하다. 어떻게 하면 중년 남편의 등진 어깨를 되돌릴 수 있을까?

 

잦아들어 가는 불씨를 살려보려고 부부가 여행을 떠난다.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아내뿐 아니라 남편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된다. 부부가 찰떡처럼 친해지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남들과 비교하기 때문이다. 남의 남편들이 아내를 여왕 떠받들듯 하는 꼴을 보니 부아가 치민다. 죽었다 깨나도 그런 대접은 못 받아 본 무수리과 아내는 부럽고 눈꼴셔서 기분만 잡친다. 젊지도 않은 커플들이 좋아 죽겠다는 듯 장난을 치며 티를 낼 때 시앗 본 것처럼 약 오른다. 땀띠가 날 정도로 딱 붙어서 다니며 시시덕거리는 걸 보니 분명히 애인 사이거나 이제 막 재혼한 부부가 맞을 거라고 눈 내리깔고 싶어진다.

 

같이 산 지 오래된 부부는 서너 발자국씩 떨어져서 다닌다. 입은 야무지게 다문 채 그냥 구경만 한다. 남편은 딴 여자 쳐다보느라 사팔뜨기가 된다. 미모의 여인을 발견하자마자 도파민이 쾌락을 촉발하는 뇌 속 깊은 부분을 자극해 뇌의 줄기세포가 활동을 시작하고 심장 박동 수가 점점 빨라진다. 신경세포 사이에 정보 이동이 빨라지면서 남편의 눈동자는 그녀의 미세한 움직임 하나까지도 놓치지 않는다. 브레인 섹스가 시작된 것이다.

 

여행으로 들뜬 아내는 밤에 기대를 해 보지만 남편은 모른 척하며 곯아떨어진다. 김 팍 샌다. 다른 부부들은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는지 어제보다 더 살뜰하게 챙겨주는데 남편에게 외면당한 아내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진다. 하지만 남자들도 맘 편하게 잔 것만은 아니다. 데면데면하던 남편이 여행 기분에 들떠 어깨를 감싸 안거나 손을 잡아주면 아내가 콧소리를 내면서 달려드니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자는 척할 수밖에 없다.

 

아내도 만만치 않다. 하루 이틀 잔 사이도 아닌데 내숭은 무슨 내숭이냐며 자자고, 불 끄라고 지휘관처럼 우렁차게 명령한다면 ‘아내는 여자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무색할 것이다. 잡은 고기도 언제든 달아날 수 있는 먹잇감처럼 여우 짓을 해야 한다. 신선한 수혈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상냥한 아내나 사나운 아내를 만드는 것도 다 남편에게 달려 있다. 여자는 자고로 터치(touch)와 필링(feeling)이다.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여자는 행복하다. 옥시토신이 터치 수용체를 자극하는 호르몬인데, 여자가 남자보다 열 배는 많다.

 

방송문화연구소 조사 결과 다시 결혼을 한다면 지금 배우자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여성이 71.9%, 남성은 46.9%였다. 스콧 홀츠먼 미국 브라운대 교수는 ‘행복한 기혼남의 비밀’에서 성공적인 결혼 생활을 위해 남자들은 아내를 고객처럼 대하라고 했다. 예쁘게 보려 하면 곰보도 보조개로 보일 것이다. 늙은 아내의 코 고는 소리, 이 가는 소리, 잠꼬대도 랩(rap)으로 들릴 것이고 침 흘린 자국도 귀여울 거다. 단내 나는 입에 키스를 하고 눈곱을 떼어 주며 까치집 진 머리를 손으로 빗겨준다면 아내는 외간 남자 대한 듯 기뻐 날뛰지 않을까?

 

성경원자료제공 매경이코노미
발행일 2013.09.17기사입력 2013.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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