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청이 발표한 지난달 인구동향 자료를 보면 혼인은 2만 4천4백 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어들어 혼인 건수가 6달째 줄어든 반면, 이혼은 1년 전보다 700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이혼 건수가 늘어난 이유는 특히 동거기간 20년 이상인 50대 후반의 황혼이혼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그냥 참고 살지 않기 때문에 동거기간 20년 이상인 50대 후반의 황혼이혼이 급증했다. 즉, 인구 고령화 속 평균 수명이 길어지면서 중 장년층의 배우자 만족도가 떨어지고 경제적 불안정과 가치관의 변화 등으로 이혼을 선택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참을 인`을 수천 번 써가며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K할머니(68세)는 더 이상 울화를 누르며 참고 살기에 지쳤다고 말한다. 이혼하면 혹시라도 딸의 결혼생활에 누가 될까 참아왔지만 사위가 외국지사로 발령이 나면서 부부가 함께 외국으로 떠나게 되자 바로 이혼을 결심했노라고 털어놓는다. 이 밖에도 황혼이혼의 이유는 여러 가지다. 남편의 퇴직으로 집에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집안일에 대한 사소한 싸움이 잦아져 갈라서는 경우, 남편의 술과 폭행에 시달려오다 장성한 자녀가 이혼을 권유하는 경우, 아내의 씀씀이와 폭언에 자유로워지고 싶어 이혼을 선언한 경우 등을 꼽을 수 있다.
황혼이혼이 늘어난 것은 결혼에 대한 가치관 변화가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고 부부간의 지위가 동등해지면서 결혼과 이혼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이다. 또한 기대수명의 증가로 부부가 자녀를 출가시킨 후 함께 지내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지만 가부장 문화에 따른 낮은 친밀도로 황혼이혼이 높아진 것이다. 그 결과 ‘60대는 살갗만 닿으면 이혼 당하고 70대는 존재 자체가 이혼 사유다.’ 라는 웃지 못 할 이야기도 있다.
모든 이혼이 마찬가지지만 황혼이혼에서도 경제적인 문제를 쉽게 간과할 수 없다. “황혼이혼에서도 돈에 관계된 부분은 위자료와 재산분할로 압축할 수 있으며 위자료의 경우 황혼이혼이라고 해서 더 많이 받는다기보다 잘못의 경중에 따라 그 금액이 정해지므로 일반적인 이혼 위자료와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오랜 기간 외도를 했거나 폭행을 행사했다면 혼인생활이 짧았던 사람에 비해서 위자료가 많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법무법인 윈 이인철 가사법 이혼전문변호사의 말이다.
황혼 이혼은 자녀를 둘러싼 양육권이나 양육비 등으로 서로 간에 언성을 높일 일은 없지만 재산분할에 있어서는 의견조율이 힘들 때가 많으며 황혼이혼의 경우 일반적인 이혼보다 전업주부 생활을 오래 한 아내 쪽의 기여도를 더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 법원이 혼인기간이 길고 짧음에 따라 전업주부의 기여도를 다르게 산정하면서 황혼이혼을 하는 전업주부에게 재산의 50%를 분할해 주라는 판결이 잇따르고 있어 눈길을 끈다. 혼인기간이 5년이라면 공동재산의 10%를 산정하고 10년 정도 함께 살았다면 30~40%, 20년 이상 함께 산 황혼이혼의 경우는 분할대상으로 산정된 금액의 50%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가정법원에서는 지난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공무원연금도 이혼 시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결 선고하기도 했다.
부유층의 경우 배우자의 사망 이후 재산을 물려받을 때 내야 하는 세금을 피하기 위해 황혼이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가 사망한 후 상속을 받으면 자녀와 재산을 나눠야 할뿐더러 세금도 내야 하지만 황혼이혼을 택하면 대개 재산의 절반을 분할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오래 산 부부가 이혼을 결심하는 배경에는 ‘서로 다 안다’ 생각도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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