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소나무, ‘일본 적송’ 대신 ‘한국 적송’으로 부르자

오완선 2015. 7. 24. 18:54

얼마 전 텔레비전 방송에 나온 한 출연자가 독도에 자생하는 한국 특산 식물인 섬초롱꽃의 학명에 독도를 가리키는 일본말인 ‘다케시마’가 종소명으로 붙어 있으며, 식물학계가 ‘나카이’로 대표되는 식민시대의 잔재를 고치려 하지 않는다고 질타한 일이 있다. 식물분류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사실 가슴 아픈 일이다.

우리나라의 식물은 일본과 중국에 비해 100년 이상 늦게 서양에 알려졌다. 1800년대 중반 러시아의 군함이 동해안을 측량하면서 철쭉 등 50여종의 목본을 수집하여 서구로 보낸 것을 시작으로 영국, 독일, 러시아 등에서 한반도 식물을 수집해 학술지에 발표하면서부터였다. 특히 한반도의 본격적인 식물 조사는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은 나카이 다케노신(1882~1952)이 주로 했다. 그는 한반도의 식물을 조사하여, ‘조선의 식물지’(Flora of Koreana)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본격적인 조사를 통해 <조선식물>(1914)과 <조선삼림식물편>(1915~1939)을 발표하였다. 이때 조사된 많은 식물들이 나카이에 의해 최초로 기재되면서, 학명에 일본식 지명이나 일본인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보라색 꽃이 아름다운 금강초롱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금강초롱꽃의 학명은 Hanabusaya asiatica Nakai로 당시 초대 일본공사였던 하나부사 요시타다의 이름을 기념한 것이다. 섬초롱꽃, 섬기린초, 섬벚나무, 울릉장구채 등은 독도의 일본식 이름인 다케시마(Takeshima)가 종소명으로 포함되어 있다.

식물은 일반적으로 두 종류의 이름을 가진다. 한 가지는 학명(‘속명’+‘종소명’으로 구성)으로, 국제명명규약에 의해 전세계적으로 정당하게 제일 먼저 발표된 이름 하나만을 공통으로 사용한다. 학명은 안정성을 중시해 선취권을 인정한다. 학명이 바뀌는 일은 연구를 통해 대상 식물종이 다른 속으로 옮겨가서 속명이 변경되거나, 다른 종으로 통합될 때뿐이다. 그러므로 일본식 종소명이 붙어 있다고 해서 식물의 학명에서 그 이름을 마음대로 바꾸기는 매우 어렵다.

나머지 하나는 일반명이다. 일반명은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자유롭게 붙여서 사용할 수 있다. 우리가 쓰는 한글 식물 이름들은 모두 일반명에 해당된다. 나라마다 자국어로 된 고유한 식물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많은 식물이 학명은 물론 영어 일반명에 ‘일본’(Japan)이란 수식어가 들어 있다. 처음 식물을 학술지에 기재할 때 일본의 식물을 대상으로 하면서, 실제로는 우리나라나 중국에 더 널리 분포하는데도 영어식 이름에 ‘Japanese ○○’으로 지은 예가 많다.

최근 한국식물분류학회는 산림청 국립수목원과 함께 이런 문제를 바로잡고자 우리 자생식물의 영어 일반명을 새로 짓거나 잘못된 것을 고치는 일을 하고 있다. 일제의 잔재가 남아 있는 식물의 학명을 바로 고치기는 어렵다. 하지만 우리들이 흔히 쓰고 있는 이름과 외국에서 우리 식물을 부르는 이름부터 먼저 고쳐 나가고, 영어 일반명이 없는 식물에는 새로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나무인 소나무를 외국 사람에게 소개하려면 ‘Japanese redpine’, 곧 ‘일본 적송’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 이번에 우리가 고쳐 제안하는 이름은 ‘Korean redpine’(한국 적송)이다. 일본에도 소나무가 많이 있지만 우리처럼 대표적인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더 합당하다. 이 이름을 널리 쓴다면 소나무는 명실공히 우리의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식물분류학회는 앞으로도 우리 자생식물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와 국제학회에서의 활동을 통해 우리 식물이 국제사회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도록 꾸준히 노력하겠다.

최병희 한국식물분류학회장·인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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