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낙서

추어탕..

오완선 2015. 9. 7. 14:38

옛 사람들은 추어탕을 먹을 때 울퉁불퉁 근육질의 사나이를 떠올렸던 것 같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한중일 삼국에서 모두 추어탕을 즐겨 먹었을 뿐 아니라 추어탕 한 그릇에 울끈불끈 힘이 솟는 것을 느꼈고 그래서 금단의 음식을 맛보는 기분마저 공유했다.

추어탕은 가을밤이 깊어질 때, 양반집 안방마님이 사랑채에 머물고 있는 서방님께 야식으로 은밀하게 들여보냈던 음식이다. 남의 이목이 부담스러웠기에 대놓고 먹을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안 먹고 넘어가면 어딘지 허전한 보양식이었기에 누가 볼세라 한밤중에 날랐던 것.

 

중국도 비슷하다. 대표적인 고전이며 음란소설로도 알려진 ‘금병매’의 남자 주인공 서문경은 절륜의 정력을 자랑한다. 이런 서문경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추어탕 내지는 미꾸라지를 소재로 한 장식.

 

조선의 양반과 중국 부자, 일본 상류층은 왜 은밀하게 추어탕을 즐겼을까? 추어탕이 단순히 스태미나 식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이상의 무엇이 있다.

 

특이하게도 조선 시대 수많은 문헌 중 양반이 추어탕을 먹는 기록은 하나도 없다. 추어탕은 성균관에서 일하는 관노인 반인(泮人)의 음식, 청계천 왈패인 꼭지들이 먹는 음식, 잘 봐줘야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가 끓여 먹는 음식이라는 기록만 보인다.

 

중국에서도 추어탕은 철저하게 농민의 음식이다. 중국 속담에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天上斑鳩 地上泥鰍)’라는 말이 있다. 농민이 구할 수 있는 음식 중 가장 영양이 풍부한 음식이 하늘에는 비둘기, 땅에는 미꾸라지라는 소리다. 뱀부터 자라에 이르기까지 보양식이 넘쳐나는 중국이지만, 농민들은 특별히 미꾸라지로 가을 몸보신을 했다.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습지가 많았던 옛날 도쿄에는 미꾸라지가 많았다. 복날에는 장어를 먹는 일본에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했던 농민과 노동자들은 장어 대신 미꾸라지를 잡아 보양식으로 삼았다. 손질한 미꾸라지를 우엉에 얹어 삶은 후에 계란을 풀어 먹는 일본식 미꾸라지 전골인 야나가와나베(柳川鍋), 일본 된장 미소를 풀어 끓인 추어탕, 혹은 미꾸라지 튀김으로 요리했다.

 

조선의 양반이나 중국의 부자, 일본의 상류층에서 왜 서민 내지는 하층민의 전용 음식이었던 추어탕을 몰래 먹을 정도로 식탐을 보였을까. 아무리 서민 음식이라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미꾸라지의 효능에 대한 믿음과 욕망이 컸기 때문이다.

 

추어탕이 얼마나 스태미나 식품인지를 한중일 속담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미꾸라지는 먼저 이름부터 힘이 넘친다. 가을에 특히 영양이 넘치고 맛있기 때문에 ‘추어(鰍魚)’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힘이 넘친다고 우두머리 추(酋) 자를 써서 ‘추어(酋魚)’라고 불렀다. ‘작은 미꾸라지 한 마리가 큰 파도를 뒤엎는다’라는 중국 속담이 있다. 파도를 뒤엎을 만큼 힘이 좋다고 믿었기에 농부들은 아예 수중 인삼이라고 불렀다. 조그만 미꾸라지가 힘이 세 봤자 얼마나 셀까 싶지만 일본에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장어 한 마리’라고 생각했다.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다. 이제 활기찬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힘을 비축할 때다. 이럴 때 추어탕 한 그릇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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