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공원 내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일본인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히로시마/연합뉴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7일 피폭지인 히로시마를 방문하기로 하면서, 이곳 평화기념공원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에도 헌화가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미·일 양국 정부는 아직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히로시마 방문 일정 세부 사항에 대해선 “정해진 게 없다”며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지난달 11일 존 케리 국무장관처럼 히로시마 피폭 피해 참상을 담은 평화기념자료관을 둘러본 뒤, ‘원폭 사몰자 위령비’에 헌화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한국 입장에서 초미의 관심사는 위령비에서 서북쪽으로 걸어서 2~3분이면 닿을 수 있는 한국인 위령비도 방문하느냐는 점이다.
이곳에 세워진 한국인 위령비는 우리 민족이 감당해야 했던 두 개의 비극적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첫째 비극은 히로시마 원폭 투하로 숨진 조선 왕족 이우(1912~45)의 죽음이다. 이우는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인 영친왕의 이복형인 의친왕의 2남으로 원폭 투하 당시 일본 육군 제2총군사령부 교육담당 참모(중좌·우리의 중령)로 근무하고 있었다. 피폭된 이우는 1945년 8월6일 오후 폭심지 근처인 혼가와의 아이오이바시 밑에서 발견돼 이튿날 숨졌다. 의친왕(1877~1955)은 일본에 순응한 영친왕과 달리,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뒤 은밀히 독립운동을 지원하고 상하이 임시정부로의 탈출을 모의하기도 했고, 일본 정부의 회유를 끝까지 거절한 인물이다.
지난 1967년 원폭 피해자와 민단을 중심으로 한 히로시마 거주 재일동포들은 기념공원 내에 한국인 피폭자를 위한 추모비를 건립하는 계획을 추진한다. 처음엔 긍정적 반응을 보였던 히로시마시는 “공원 내 위령비 건립을 허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재일동포들이 일본 사회에서 감내해야 했던 차별과 배제라는 두번째 비극이다. 건립위원회는 어쩔 수 없이 위령비를 공원 바깥 피폭된 이우가 발견된 장소 근처에 세우게 된다.
이후 재일동포들과 조선인 피폭 사실을 기억하려는 일본 시민사회의 노력으로 비는 1999년 5월 현재의 위치인 공원 안으로 옮겨졌다. 비문엔 “(전쟁이 끝날 무렵) 히로시마엔 약 10만명의 한국인이 군인, 군속, 징용공, 동원학도, 일반 시민으로 살고 있었다. 원폭 투하로 약 2만명의 한국인이 순식간에 소중한 목숨을 빼앗겼다”고 적혀 있다. 히로시마에서 희생된 (남·북한을 합친) 한반도 출신자는 2만~3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는 히로시마 전체 희생자의 약 10%에 이르는 규모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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