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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CEO(上)] 상.

오완선 2016. 9. 14. 16:18


 

대만 타오위안 공항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의 타이중(臺中)시 외곽. 조용한 바닷가에 위치한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 자이언트(Giant)의 공장에 들어서자, 형형색색의 자전거 몸체(프레임)들이 눈에 띄었다. 큰 트라이앵글 모양의 프레임을 한 손으로 잡자, 거의 힘을 쓰지 않고도 쉽게 들렸다. 이곳에서 생산된 프레임 무게는 780g. 초경량 소재인 탄소섬유 프레임이다. 이번엔 직원이 바퀴·안장·손잡이까지 모두 조립이 끝난 철인 3종 경기용 자전거를 건네줬다. 역시 한 손으로 가뿐히 들 수 있을 만큼 가벼웠다. 8㎏이 조금 못 된다.

자이언트는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다. 연간 생산 대수는 550만~600만 대로, 미국·이탈리아·스위스 등의 하이엔드(고급) 자전거를 실제로 제조하는 회사가 자이언트다. 생산량으로 보면 중국이나 인도 업체에 비해 적지만, 중·고가 고급 자전거를 만들기 때문에 매출액으로 보면 전 세계 자전거 매출 중 자이언트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10%에 달한다. 2015년 이 회사의 매출은 604억대만달러(약 2조1584억원)를 기록했다.

자이언트는 원래 주문자상표부착방식(OEM)에 특화된 회사였다. 그러나 1980년대 자이언트의 첫 OEM 고객사였던 미국 최대 자전거 회사 슈윈(Schwinn)이 중국으로 옮겨가는 위기를 맞았고, 이를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자사 브랜드를 부착한 사이클 자전거를 만들어 팔기 시작하면서 더욱 성장했다. 현재 자이언트의 전체 매출 중 70%는 자사 브랜드에서 오고, 나머지 30%만 OEM 사업에서 온다. 쉽지 않은 변신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자이언트 제공

이달 초 자이언트 본사에서 토니 로(Lo·羅祥安·68)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로 CEO는 일흔을 앞뒀다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체격이 건장했다. 구릿빛 피부색은 1년에 8000㎞씩 자전거를 탄다는 그의 말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그의 첫마디는 "자전거 타세요? 어디서 주로 타나요?"였다. 자전거를 '전도'하고자 하는 종교인처럼 보였다.

"우리는 자전거를 만들기만 하는 공장이 아닙니다. 자전거를 타는 문화(사이클링 컬처)를 만들고 확산하는 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죠. 사이클링 컬처를 양산하는 것은 사람들을 정신적·신체적으로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자이언트에도 이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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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로 자이언트 CEO. /자이언트 제공

탄소섬유 제품
처음으로 대량 생산해
경쟁 치열한 유럽에서
브랜드 인정받아

로 CEO는 자이언트가 설립된 이듬해인 1973년 부사장으로 입사해, 올해로 43년째 회사에 몸담고 있다. 자이언트는 창업자인 엔지니어 출신 킹 리우(劉金標) 회장이 기술·소재 개발과 공장 운영에 집중하고 영업과 마케팅은 로 CEO가 하는 체제다. 그가 2005년 CEO 자리에 오를 때 265억대만달러이던 매출액은 5년 만인 2010년 442억대만달러로 뛰었고, 업계 1위 자리에도 올랐다.

―OEM 업체로 시작해 지금은 전 세계 1위 자전거 업체가 됐습니다.

"'넘버 원'이 목표였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자이언트는 44년간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회사가 되자는 '온리 원'을 추구했습니다. 신제품을 많이 개발하고 기술도 개발하고 다른 자전거 업체들이 제공하지 않는 여러 서비스와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예를 들면 고급 자전거 업체 중 여성용 자전거를 만든 것은 자이언트가 처음입니다. 여성은 남성과 체형이 다르고 근육도 다르고 자세도 크게 다른데, 자전거 업계는 수십 년 동안 남성용 자전거를 조금 작게 만들어 여성들에게 팔아왔습니다. 여성용 자전거를 따로 개발하는 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자이언트는 사이클을 즐기는 여성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에 착안해 여성의 몸에 맞춘 자전거를 개발했습니다."

―1990년대 초경량 소재인 탄소섬유로 자전거를 대량 생산하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였다고 들었습니다.

"자이언트보다 먼저 탄소섬유 자전거를 만든 업체가 있었지만 다루는 기술이 매우 어렵고 가격이 비싸기 때문에 대부분 소량 생산됐습니다. 본격적으로 탄소섬유 자전거를 대량 생산한 것은 우리가 처음입니다. 자이언트는 1980년대부터 자사 브랜드의 자전거를 유럽에서 팔기 시작했는데 브랜드를 알리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사이클링 역사가 훨씬 발달한 유럽에선 이미 유명한 고급 브랜드가 아주 많았으니까요. 그 누가 대만에서 온 자전거 업체를 알겠어요? 그래서 우린 탄소섬유 기술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남들이 못하는, 우리만 할 수 있는 최고의 자전거를 만들면 소비자들이 자이언트를 믿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토니 로 자이언트 CEO가 자사 제품을 들고 있는 모습. /블룸버그

―당시엔 다른 회사들이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제품을 만들어 팔면, 브랜드 인지도는 당연히 따라올 것이라고 보셨던 것이군요.

"탄소섬유 프레임 개발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87년입니다. 탄소섬유 원재료는 머리카락처럼 실 모양을 띠고 있는데 그걸로 자전거 프레임을 만들 수 있게 가공할 수 있는 업체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직접 해야 했습니다. 리우 회장과 저는 탄소섬유가 그렇게까지 어려운 것인지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젊고 잘 몰라서 달려들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 소재를 사오고 독일에서 장비를 사오고 스위스에서 화학제품을 사와 3년 만에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탄소섬유 자전거를 자이언트 브랜드로 팔기 시작하자 그제야 우리 회사를 알아주기 시작했습니다. 연구를 시작한 지 10년 만인 1997년, 대표적인 사이클링 대회인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팀 온세(ONCE)가 탄소섬유 자전거를 만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탄소섬유는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비싼 소재다. 미국 최대 자전거 전문지(誌)인 바이시클링에 따르면 탄소섬유 원사(原絲) 가공 기술을 가진 업체는 자이언트와 프랑스 자전거업체 타임(Time) 등 2곳이다.

―미국과 유럽에선 3대 브랜드, 한국과 일본에선 최대 수입 브랜드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대만·네덜란드까지 공장 9곳을 운영하고 있고, 미국·독일·이탈리아·영국·호주 등 전 세계 14개 판매 법인을 운영 중입니다. 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매출 1위를 할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각국의 판매 법인에 모두 현지 사람들을 앉혔다는 점입니다. 현지 소비자들의 특징, 소비 성향, 현지 지형, 어떤 자전거를 선호하는지에 대해선 현지인들이 잘 압니다. 저는 한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대만 사람이 가서 이것저것 시켜봤자 뭘 하겠습니까." <下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