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집안의 물건을 줄이고 있다.
버리고, 기증하고, 나눠주고.
요즘 유행한다는 미니멀리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아가려는 그 시도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 3년째인데 아직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날 잡아서 마음먹고 안쓰는 물건 버리면 쉽게 미니멀리즘의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해보니 그렇지 않다. 쌓여있는 물건을 정리하는 것은 수십년 동안 쌓아온 나의 취향과 삶의 방식을 다시 마주보는 것과 같은 작업이기 때문에 그 층이 매우 여러 개여서 한번에 정리하기가 어렵다. 또 살면서 사고방식, 생활방식이 바뀌기 때문에 사들이는 물건의 종류가 바뀌므로 물건을 버리는 다른 한편에서는 다른 종류의 물건이 또 생기기 마련이다.
아직 진행형인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삶의 과정에서 몇 가지 법칙같은 것을 발견했다.물건을 줄이고 단순하게 사는 방법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이렇게 하지 않았더니 불필요한 물건이 쌓이고 삶이 복잡해지더라는 뜻이겠다.
첫째, 소품은 필요없다.
기념품, 장식품, 액자류들이 나한테는 제일 필요가 없었다. 여행지에서는 꽤 괜찮은 물건처럼 보여 사온 것들이 집에만 오면 별로 예쁘지도 않고 쓸모도 없는 물건 1위가 된다. 잘 보이는 곳에 내놓으면 먼지가 쌓여 청소하기 귀찮고 집은 어수선해 보인다. 누구 줄 사람도 없다.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장식품을 늘어놓는 것보다 아무 것 없는 깨끗한 빈 공간이 훨씬 더 아름답다. 청소하기도 편하고 실용적이다. 소품 사느라 쓰는 돈과 시간도 절약되는 것은 물론이다.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실용적인 물건이 아닌 것들은 일단 손에 넣지 말아야 공간이 단순해진다. 필수품만도 적지 않다.
둘째, 싸구려는 사지 않는다.
집에서 입는 바지. 가격이 좀 나가지만 품질좋은 바지는 10년 가까이 입도록 멀쩡해서 나중엔 지겨워 버릴 정도였는데, 당장 싸다고 산 바지는 1년을 넘게 입기가 힘들다. 빨수록 늘어나고 털이 빠져 춥다. 품질이 떨어지는 물건을 사면 자주 사고 자주 버려야 해서 결과적으로는 좋은 걸 사서 오래 쓰는 것보다 여러모로 비용이 더 많이 든다. 좋은건 하나만 있어도 되지만, 질이 떨어지는 건 여러개가 있어도 불만족스럽다. 제대로 된 것으로 구비하고 있으면 관리해야할 것도 줄어들고 자주 사지 않아도 되므로 장기간으로 보면 경제적이다.
셋째, 가구는 최소한으로.
수납공간을 늘리는 것이 살림의 필수적인 기술처럼 여기는 풍조가 있으나, 이건 수납제품을 팔아먹기 위한 상술일 뿐.
물건을 놓을 공간이 없으면 가구나 수납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줄이면 된다. 가구는 고정적으로 집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집을 좁게 하고, 또 공간이 있는 만큼 물건을 쟁여두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 만큼 가구 자체를 줄여 물건이 있을 공간 자체를 두지 않는 것이 좋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하다보니 심지어는 '이런 조명을 달아야, 이런 식탁이 있어야 미니멀리즘이 완성된다'는 식의 마케팅까지 나오는 마당이다!)
넷째, 금융상품도 단순하게.
15년 가까이 주식과 관련 파생투자상품 등에 투자해본 내 경험에 따르면 투자상품은 하지 않는 것이 단순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투자상품으로 이익을 본 적도 있지만 당연히 손실을 본 경우도 있었고, 합계를 내면 수익이 전혀 없거나 손해를 본 수준이 된다. 그 과정에서 신경쓰고 시간쓰며 고민한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손실이 되는 것이다. 골치아프게 신경써서, 번 돈은 없는 상황인 셈이다. 상술로 뒤범벅된 복잡한 투자금융 시장에서 개인이 사고파는 시점을 정확히 판단해 이익을 챙기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 방' 터져서 큰 돈 만져보고 싶다는 욕심을 버리고, 차곡차곡 쌓이는 것만 내 것으로 한다는 사고방식은 사람의 정신을 차분하게 만든다.
다섯째, 기본 물품으로 해결한다.
몇 년전 벽곰팡이를 지우려고 벽곰팡이제거 전용 스프레이를 샀다. 2만원 가까운 비싼 가격이었는데 양도 적고 효과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2000원이 안되는 락스를 썼더니 금방 지워졌다. 겉만 그럴싸하게 만들어 비싼 가격에 파는 제품들이 실속없는 경우를 많이 봤다. 어떻게든 물건 많이 팔아 돈벌겠다는 시장논리의 어두운 면이다.
세상에는 별의별 아이디어 상품과 물건들이 많이 나와있지만 그것들이 실제로 필요하거나 유용한 것은 아니다. 사람사는 세상에서 기본이 되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소금 하나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눈에 다래끼가 날 것 같으면 소금으로 슬슬 씻어주고 자면 다음날 말끔해진다. 감기 기운이 있으면 소금물로 코세척을 하면 된다. 몸에 난 여드름도 소금으로 한번 씻어주면 훨씬 줄어든다. 발도 소금으로 한번씩 닦아주면 냄새가 줄고 상쾌해진다. 양치할 때도 쓴다. 과일껍질에 묻어있는 농약도 소금으로 닦는다.
설거지, 청소, 얼굴 각질제거할 때에는 베이킹소다를 두루두루 쓴다. 설탕으로도 각질제거를 하면 피부가 뽀얗고 부드러워진다. 머리감을 때는 샴푸만 쓰고 굳이 린스를 쓰지 않는다. 바디클렌저같은 것도 따로 쓰지 않고 비누로 해결한다. 진공청소기같은 건 없고 밀대 걸레로 마른 걸레질, 젖은 걸레질을 모두 해결한다. 얼굴로션, 바디로션, 핸드크림이 꼭 따로 있어야 하는건 아니다. 순한 로션 하나로 얼굴도 바르고, 몸에도 바르고, 손에도 바르면 된다.
생활에 필요한 것을 상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저렴하고 친환경적이고 몸에도 해롭지 않은 '기본재료'에 두고 해결하려고 하다보면 생활이 단순해질 수 있다.
갖고 물건을 줄이기 위해서는 물건을 줄이는 동시에 새로 사지 말아야 한다.(또는 최소한으로 사야한다). 계속 사들이면, 버리는 게 있다 하더라도 절대적인 양은 줄어들지 않는다. 새로 들이는 것 없이 물건을 줄이면, 물건을 줄이는 티가 팍팍난다. 물건이 줄어들어 공간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한편, 이렇게 쓸데없는 것들에 힘들게 번 돈을 썼던 것을 확인하는 과정은 고통스럽다. (10만원짜리 열쇠고리는 도대체 왜 샀던 것인가!!!) 나를 많이 바뀌게 한 것은 그 '고통'이었다. 마음먹기에 따라 아무 쓸모없는 것이 돼버린 그런 물건에 집착하며 돈과 시간과 정성을 썼던 것이 허무해지자, 새로운 무언가를 사고자하는 마음이 많이 줄어들었다. 미니멀리즘으로 가는 길은, 과거 나의 치부를 들여다보는 정신 청소의 과정인 것 같기도 하다
한계레 2017.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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