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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담백한 육개장 국물 속 한우 풍미

오완선 2018. 3. 1. 14:35



입력 : 2018.02.23 08:00

[맛난 집 맛난 얘기] 신부자면옥

육개장은 「규곤요람」 등 옛 조리서에도 조리법이 등장한다. 그만큼 족보 있는 음식이다. 그럼에도 전통 탕반 가운데 유독 육개장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설렁탕, 곰탕, 갈비탕 집은 섭섭지 않게 보인다. 순대국 집들은 수두룩하다. 다른 탕반들보다 육개장은 전통 요소를 많이 지녔다. 그만큼 대중적으로 풀어내기가 어려운 음식이다. 경기 죽전 <신부자면옥>은 한우로 끓인 육개장이 먹을 만하다. 수도권에서 이 정도 맛을 구현해내는 육개장도 드물다.

우거지 대파 그득 들어간 건강 탕반

육개장은 본시 개장에서 나왔다. 예전 우리 동네에선 추렴으로 개장을 많이 끓여먹었다. 촌에서 명절이나 잔치 때 이외에 먹을 수 있는 고기는 오직 개고기밖에 없었다. 반상 습속의 잔영이 남아있던 때여서 개를 잡거나 개장을 먹는 일은 ‘양반이 할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양반 체면에 이거...” 어쩌구 하면서도 결국 다들 잘 드셨다.

끈 떨어진 이름뿐인 촌구석 양반붙이들이야 그랬다지만 행세께나 하는 유지급 양반들은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더구나 서울에서 쩌르르 하는 양반들은 차마 체면상 개장을 먹진 못했을 것이다. 개장은 먹고 싶은데 개고기는 먹지 못한다? 방법은 있다. 같은 레시피에 개고기 대신 소고기를 넣으면 된다. 아마 육(肉)개장은 그래서 탄생한 것 같다.

육개장은 다른 탕반들에 비해 채소류가 재료로 많이 투입된다. 그러다 보니 요즘 기준으로 건강식에 가깝다. <신부자면옥>의 육개장(1만원)에도 배추 우거지를 비롯해 대파와 고사리가 푸짐하다. 심지어 메뉴 별칭을 ‘한우 파개장’으로 붙였다. 이들 채소류는 그 자체로 맛을 내주는 조미료 구실을 하면서 육식과 채식의 균형도 잡아준다.

건강 요소는 또 있다. 한우 가운데 기름기가 비교적 적은 사태살을 사용, 국물에 소기름이 거의 없다. 그나마 국물을 내는 과정에서 모두 걷어냈다. 국물이 담백하고 느끼하지 않은 이유다. 일부 다른 집 육개장은 고추기름을 과다하게 넣거나 매운 맛을 강조해 마치 해장국처럼 끓이는데 이 집 육개장은 맵지 않다. 자극적이지도 않다. 고지식한 시골 양반 같다.

뼈를 넣지 않고 한우 사태로 낸 국물은 역시 감칠맛이 뛰어났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혀를 긴장시킨다. 탕반 국물 베이스로는 한우를 따라갈 재료가 존재치 않는다. 넉넉히 넣은 대파 덕분에 국물에서 친근한 단맛이 감지된다. 건더기로 넣은 한우 사태가 푸짐해 숟가락을 넣을 때마다 큼직한 고기 덩어리가 올라온다. 사태살은 소스에 찍어먹는다. 그러나 굳이 안 찍어도 맛있다. 뚝배기에 쌀밥 말아 한 숟가락 뜨니 세상 부러울 게 없다.

1인분씩 파는 국내산 암퇘지 수육 

식당에서 직접 담근 김치와 섞박지 맛도 수준급이다. 근래 먹어본 김치와 섞박지 가운데 최고였다. 육개장 자체가 워낙 염도가 뒷받침 된 탕반이어서 맛있는 김치와 섞박지를 남긴 것이 아쉬웠다. 맛있는 탕반에 곁들인 잘 익은 김치와 섞박지는 한국인에게 최고의 밥상이 아닐 수 없다.

식사하면서 고기도 먹고 싶을 때가 있다. 대개 최소 판매 단위가 너무 크고 비싸 포기하고 만다. 이 집에선 국내산암퇘지 수육을 1인분(행사가 8000원) 단위로도 판매한다. 1인분임에도 고기 점이 적어 보이지 않는다. 여럿이 식사할 때 1인분 주문해 곁들이면 속이 더욱 든든할 것 같다.

수육에 적당히 기름이 섞여 있어 육질이 부드럽고 야들야들하다. 청양고추, 쌈장, 새우젓을 함께 내온다. 씹으면 잡내가 전혀 없고 육향이 매우 진하다. 육개장 속 한우 사태살과는 또 다른 맛과 육향이다.

앞으로 다른 탕반들처럼 육개장을 시중 식당에서 어렵지 않게 접했으면 좋겠다. 또한 일반 식당 육개장과 더불어 장례식장 육개장 맛도 향상됐으면 한다. 육개장은 이승을 떠나는 망자가 찾아온 벗들에게 마지막으로 대접하고 떠나는 음식이다. 장례식장 육개장 맛이 조금만 더 좋아지면 떠나는 분의 발걸음도 조금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경기 용인시 기흥구 용구대로 2601, 031-898-1700

글 사진 이정훈(월간외식경영 외식콘텐츠마케팅연구소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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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