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주문받고 서빙 척척… 알고 보니 283km 떨어진 장애인이 조종

오완선 2018. 12. 22. 15:42


日 도쿄의 분신 로봇 ‘오리히메-D’의 활약기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이 집에서 원격으로 로봇을 조종하며 일을 하는 도쿄 아카사카의 ‘분신 로봇 카페 돈(DAWN)’. 손님들은 “로봇에 내장된 스피커를 통해 로봇이 아닌 사람과 의사소통을 한다는 것이 새로웠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도 로봇이 가져다 준 커피를 마시며 집에서 로봇을 조종하는 장애인과 이야기를 나눴다(아래 사진).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지난달 26일 오후 일본 도쿄 미나토(港)구 아카사카(赤坂)에 ‘분신 로봇 카페 돈(DAWN)’이라는 이름의 이색 카페가 문을 열었다. 개장 첫날 찾아간 이 카페는 얼핏 보면 여느 카페와 다를 게 없다. 30석 규모의 카페 안을 둘러봤다. 평범한 순간도 잠시. 기자가 앉은 테이블로 흰색 로봇 한 대가 다가왔다. 로봇은 메뉴판이 얹어진 쟁반을 왼팔로 들고 있었다. 높이 120cm로 눈에서 파란빛을 내는 로봇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 받겠습니다.”

기자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다”고 하자 로봇은 “알겠습니다. 오늘 첫 손님이시네요.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주문을 받아갔다. 몇 분 후 쟁반에 커피를 담아 온 로봇은 자신을 미에(三重)현에 사는 야나기다 고키라고 소개했다. “한국에서 왔다”는 기자의 말에 로봇은 일본어투가 묻어나는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 사지마비 장애인이 응대하는 카페 

중증 장애인은 아이트래킹(시선 추적) 기술을 이용해 눈의 움직임으로 로봇을 조종할 수 있다.

이날 기자를 포함한 손님들을 응대한 종업원은 분신 로봇 ‘오리히메-D’였다.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면 카페에서 직선거리로 약 283km 떨어진 미에현 가와고에(川越)정에서 이 로봇을 원격조종한 야나기다 고키 씨(45)였다.

 

야나기다 씨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수영장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지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목 아래 신체를 움직일 수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된 뒤 그의 인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간병인 등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일상생활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그러던 중 올해 온라인에서 분신 로봇 오리히메-D의 파일럿(조종사) 모집 공고를 봤다. ‘로봇을 통해 일을 할 수 있다’는 문구에 작은 희망을 품게 됐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야나기다 씨가 로봇을 조종할 수 있는 비결은 아이트래킹(시선 추적) 기술 덕분이다. 눈의 움직임으로 화면 속 자판을 움직여 메뉴를 선택한다. 시선만으로 전진 후진 멈춤 등 로봇의 기본 동작을 조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