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백두대간 산행기-11(혹, 저것이 산삼이 아닐까)

오완선 2012. 12. 1. 18:21
(혹, 저것이 산삼이 아닐까)

세상과 격리되어 산골에 혼자 있게되면 할 일도 없어 저녁 9시는 한밤중이고 도심의 일상시간과 비교하면 자정쯤 되는 시간이라 9시는 이미 꿈나라로 골아 떨어지므로 새벽에 눈을 뜨면 새벽3시쯤 된다.

여름철에는 해 떠오르는 시간도 빨라서 꼭두새벽부터 산행을 준비하지만 요즘 같은 가을에는 8시부터 10시간 산행을 한다하더라도 오후 6시면 산행이 끝나므로 바삐 서둘 필요가 없어 침낭 속에 마냥 누워있자니 그것도 고역이라 저녁시간보다 새벽시간이 더 무료한 시간이다.

오늘 구간은 월악산국립공원 권역이지만 월악산과는 많이 떨어져 있어 월악산과는 관련이 없고 하늘재에서 포암산을 올라 대미산을 거쳐 찻갓재까지 대략 20km정도 계획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경북 문경과 충북 충주와 제천의 경계금을 밟아가며 욕심을 내여 더 진행하게되면 황장산을 넘어야하므로 30km정도 운행하여야 하고 15시간정도 소요되므로 무리할 생각은 없었다.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객기는 충분히 부려봤음으로 그럴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대간을 걷기에는 지금처럼 좋은 계절이 없으니 이번 대간 길은 청명한 가을하늘을 만끽하며 산천유람이나 하는 그런 여유를 가지고 운행할 생각이다.

봄에는 짙은 안개 때문에 시야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고 여름에는 더위와 싸우느라 징글징글하고 겨울에는 폭설로 뒤덮인 강원도의 험준한 산을 어떻게 뚫을 것이지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지금처럼 좋은 시절은 대간 길에서 다시는 만날 수가 없다.

오늘 구간은 두 곳을 조심해야 한다. 한 곳은 월악산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서 직진능선이 아닌 우측능선을 찾아야하고, 또 한 곳은 대미산을 내려와서 월악산 문수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어느 지점에서 동쪽으로 급선회를 해야 한다.

오늘 아침도 누룽지 죽이다. 집에서 말려온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이면 되므로 아주 간편하고 변질될 우려도 없으니 산에서는 최고였다. 햇반은 집에서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는 간편하지만 산에서 끓는 물로 데우는데는 밥을 하는 시간과 비슷하여 차라리 밥을 하는 것이 속 편했다.

여장을 챙겨 포암산을 올라가는데 워밍업도 없이 처음부터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므로 초반부터 죽을 맛이다. 사람 몸은 기계가 아니어서 매일 매일 컨디숀이 다르고 또 초반에는 서서히 워밍업을 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급경사를 치고 올라가므로 30분 정도 올라가니 더 이상은 못 가겠다.

가끔 산악회를 따라서 산행을 하다보면 모두들 초반부터 무섭게 치고 올라가는데 거기에 말려들어 초반에 엄청 고생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1시간정도는 무조건 워밍업을 하며 몸을 만들어야 그 날 산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데 요즘은 모두들 산악마라톤에 출전하려고 준비를 하는지 무쟈게 빨라서 이제는 그들 따라가기도 겁이 난다.

포암산정상에서 바라본 경관은 청명한 가을하늘과 조화를 이루며 장관이었다. 남쪽으로는 주흘산이 북쪽으로는 월악산이 멋진 자태를 드러내며 백두대간을 좌우에서 보호하는 그런 모습이다.

대미산까지는 완만한 오르내림이 계속되고 있어 열심히 발 품만 팔면 되므로 특별히 기억나는 곳도 떠오르지 않은 밋밋한 능선 길이다.

대미산을 오르기 전에 적당한 장소를 잡아 점심을 먹고 커피한잔 마시며 잠시 휴식 중에 볼 일이 생겨 등로를 이탈하여 그늘진 곳에서 일을 보는데 이름 모를 야생초가 눈에 들어온다.

산에는 많이 다녔지만 사실 약초나 야생초에 대하여는 관심도 없고 무지인 상태며 지금까지 그 흔한 더덕 한 뿌리조차 캐 보지 못하였다. 다른 등산객은 눈에 보이는 것이 더덕인 모양인데 나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더덕 한 뿌리 발견 못했고 아예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그 자태가 예사롭지 않아 직감적으로 산삼이란 느낌이 스치고 있다. 평소에 인삼밭에서 인삼줄기모양이라도 한번쯤 봤으면 쉽게 알아보았겠지만 그런 적도 없었는데 그런 생각이 든 것도 이상한 일이고 이는 그 만큼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을이 되어 다른 잡풀들은 모두 생기를 잃어 가는데 유독 혼자 푸르름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생김새는 30cm정도 되는 가느다란 외줄기이며 줄기 끝에서 3줄기로 나눠지고 각 줄기마다 타원형의 5개의 잎사귀가 달려 있어 그 자태가 너무 절제되고 단아하여 품격이 있어 보였다.

모양새를 보고 더덕인지 도라지인지 산삼인지 구별할 수 없었으니 내가 생각해도 그때는 몰라도 너무 몰랐으며 호기심으로 스틱을 가져와서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내가 산에서 무엇을 캐는 것은 이 때가 처음이라 그것도 쉽지 않았지만 다행이 흙이 부드러워 파기는 쉬었다.

잔뿌리가 여기저기 뻗어 있었지만 적당히 파서 그대로 뽑아보니 실망이다. 더덕처럼 클 줄 알았으나 길이는 가운데 손가락만 하고 새끼손가락처럼 가늘고 모양도 별 볼일이 없어 보였다.

캐고 나서도 뭔지 몰랐고 맛이나 보자 하고 조금 잘라서 씹어 보니 은단을 몇 알 씹어먹은 것처럼 향이 아주 강렬하고 뒷맛은 인삼의 쓴맛이 나고 순간적으로 세상이 확 밝아지며 약간의 어지름 증세가 있었다.

옳거니, 요것이 산삼이구나 하고 5뿌리를 캐고 그만 두었다. 그 날 그 곳에서 맘먹고 캤으면 20뿌리정도는 거뜬히 캘 수 있었으나 5뿌리면 충분하여 모두 그대로 두고 왔다.

물론 더 캐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그 것을 누구에게 팔아야 할 만큼 궁색하지도 않고 돈이 욕심나면 다른 짓을 하여서도 그 정도는 벌 수 있으니 다 쓸데없는 짓이며 차라리 다른 사람이 발견하여 요긴하게 사용했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꼭 무엇을 도둑질하는 것처럼 양심이 찔려서 더 이상 캘 수가 없었다.

모든 욕심 다 버리고 나를 찾아가는 길에 다시 욕심을 부린다면 신령님이 노하실 것이란 생각 때문에 오히려 두려움이 생겨나고 있었다.

너덜지대를 통과하여 대미산 정상에 올라서니 앞으로 가야 할 소백산도 까맣게 보이고 뒤돌아서면 지나온 속리산도 저 멀리 까맣게 보이고 있다.

다시 갈 길을 재촉하여 오후 5시경 송전탑이 기다리고 있는 찻갓재에 도착하여 계획된 오늘산행을 모두 무사히 마무리한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어 본다.


(금강송에 대하여)

6월에 시작한 대간 길도 10월로 접어들어 5개월 정도는 모든 만사 제켜두고 백두대간만 생각하며 생활한 것 같고, 산행구간별로 나눠 연재를 시작한지 도 상당히 되었으니 어림잡아 지금쯤은 백두대간의 절반정도를 걸어온 것 같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설악산 넘어 진부령까지 정확한 실제거리는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으나 맵미터로 도면을 실측하면 대략 670km정도이다. 이 곳 차갓재까지는 335km이므로 꼭 절반을 걸어온 셈이다.

차갓재는 차량이 지나는 고갯마루가 아니라 산골마을인 두 마을을 연결하는 옛 길의 고갯마루로 지금은 황장산을 오르는 등산로로만 이용할 뿐이다.

오늘구간은 황장산을 지나 벌재로 내려와서 다시 운봉산을 올라 저수령까지 대략 13km로 7시간 정도로 계획하였으나 산행시간이 짧아서 저수령에서 3-4시간 더 진행하여 내일구간을 그만큼 단축시켜두었다.

이런 답사기록은 겨울이면 설경을, 봄이면 야생화를, 가을이면 단풍을. 여름이면 울창한 산림을, 험난한 골산의 바위구간은 암능이 어떻고, 육산은 그 부드러움이 어떻고 하며 조금은 뻥을 처야 하지만 글재주도 없을 뿐 아니라 이제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호들갑을 떨기도 그렇고 또, 철따라 손꼽을 수 있는 유명한 산을 몇 번씩 다녀보니 그 여타의 곳을 가지고 뻥을 치기에는 쪽팔리는 일이라 그 짓도 할 수 없으니 글을 쓰기가 갈수록 어렵기만 하다.

오늘구간의 주제는 봉산(封山)이다. 봉산은 나라에서 사용하는 목재를 확보하기 위해서 민간인의 벌채를 금지하였던 산으로 봉산 금표을 세워 출입을 금지시켰으며 이 곳 황장산은 그런 봉산의 하나로 옛부터 봉화의 춘양목과 안면도의 안면송 그리고 이곳 황장목이 손꼽히는 목재로 알려져 있다.

황장목은 나무 속이 노란색을 띠어 황장목이라 하며 주로 시신을 보관하는 관을 만드는데 사용하였고 수령이 오래된 것은 궁궐이나 사찰의 기둥으로 사용되었으며 일반적으로 금강송이라 부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금강송 자생지는 태백에서 울진과 봉화로 이어진 주변의 산에 많이 자생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50여 년 동안 민간인의 출입을 일체 금지하였다가 금년에 처음으로 개방한 울진군 서면 소광리의 금강송 단지로 그 곳을 방문하면 500년 된 금강송이 방문객을 반기고 있다.

이런 황장목이 많이 자생하고있어 황장산으로 부르고 있으나 고지도에는 작성산으로, 지자체에 세워둔 이곳의 등산안내판은 황정산으로, 국립지리원에서 발간한 지형도에는 황장산으로 각각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속리산에서 소백산까지의 봉우리들은 1100m를 넘지 못하고 대략 1000m정도에서 서로 도토리 키 재기를 하고 있음으로 황장산도 그 범주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산의 이름이라도 가진 봉우리들은 1,000m를 약간 넘고 900m급의 봉우리들은 모두 이름 없는 무명봉으로 도면에 나오는 고도표시로 그 이름을 대신하고 있다.

황장산의 정상직전에는 멧동바위라는 고약한 바위가 앞을 가로막고 있으며 대략 20m정도를 밧줄을 잡고 쎄미크라이밍을 하여야 하나 겨울철이 아니면 그리 위험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즐거운 비명을 지르는 곳이다.

정상부근은 암능이 많아 조심하여 지나야하며 몇 곳의 갈림길에서는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내려오면 단양의 삼선암계곡과 문경을 연결하는 지방도가 지나는 벌재에 이르게 되고, 이 도로는 숨어있는 단풍드라이브코스로 지금부터 절정을 이룰 것 같으나 소문이 나지 않아 이곳을 찾는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도로를 건너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면 운봉산에 이르게되고 이곳 운봉산을 이곳 사람들은 문봉재라 부르고 있다. 이 곳에서 다시 능선따라 이어오면 드디어 저수령 고갯마루로 내려선다.

이 곳 저수령은 충북 단양과 경북 예천을 연결하는 포장도로가 관통하는 고갯마루로 두 지역의 도 경계를 이루고 있고 힘들게 올라온 차량들이 한번쯤 쉬어가도록 도로변에 소공원을 조성하여 유혹하는 곳이다.

이 곳 저수령부터 소백산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듯하다, 충북쪽으로 도로따라 몇 백미터 내려가면 단양축협에서 운영하는 소백산관광목장이 자리잡고 있어 소백산의 이름이 비로써 등장하고 내일 묘적봉과 도솔봉을 넘어가면 소백산의 죽령에 이르게 된다.

이 곳 저수령은 이름부터가 무시무시하다. 저수(低首)의 의미는 목이 낮은 곳에 있으므로 목을 쳤다는 뜻이며 그 유래는 임난때 이 고개를 넘어온 왜놈들의 목을 이곳에서 모두 짤랐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저수령의 안내석이 도로변에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다.

차갓재에서 이곳까지 대략 7시간 정도 걸렸으며 오후 2시쯤 되었다. 이 좋은 가을에 대간을 걷는 산꾼이 2시에 산행을 멈추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휴게소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죽령을 향해 다시 길을 이어 갔다.

이제부터는 문경 땅과는 이별하고 예천 땅을 잠시 밟으며 영주 땅으로 진입하고 충북쪽은 단양 땅을 지나는 구간이다.

30여분 다시 땀 한번 흘려서 1000m쯤 되어 보이는 이름 없는 첫 봉우리에 올라섰다. 아! 드디어 소백산의 연화봉이 보이고 그 앞에는 내일 넘어야할 도솔봉이 가로막고 있다.

멀리서 이렇게 소백산만 바라봐도 그 얼마나 감개 무량한가. 소백산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간을 이어온 사람은 백두대간의 완주를 보장한다는 말이 있다. 이제는 포기하고 싶어도 포기할 수 없는 길이고, 포기할 길이라면 이미 포기를 했어야 했고, 남은 일은 너가 죽든 내가 죽든 끝장을 볼 수밖에 없는 외길 수순으로 접어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소백산은 아득하게 보인다. 여기서도 20km가 떨어져 있으니 아무리 시야가 좋더라도 그 형태만 보고 어림잡아 알아 볼 뿐 일반산행에서는 쉽지 않은 거리다.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나아가지만 경치고 나발이고 하여간 징그럽기만 하다. 봉우리를 오르고 나면 다시 내리막이고 다시 앞에 보이는 봉우리를 올라서면 다시 내리막이고 이렇게 봉우리를 5-6곳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내가 항복해야지 더 이상은 역부족이다.

내일 구간을 그나마 이 만큼 단축한 것으로 만족하고 오늘은 이름 없는 이 곳 산 속에서 그만 길을 멈춰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