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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日帝가 지은 꽃 이름

오완선 2013. 10. 15. 10:33

'개불알꽃'이라는 점잖지 못한 이름의 꽃이 있다. 꽃의 생김새가 개의 고환 같다고 해 붙은 이름이다. 식물학자들은 부르기 민망해서 그랬는지 '요강꽃' '복주머니난' 같은 다른 이름들을 내놓았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에겐 여전히 '개불알꽃'이 익숙하다. 꽃 이름에는 처음 그렇게 부른 사람의 느낌이 담겨있다. 제비처럼 날렵해서 제비꽃, 씹어 보아 쓰니까 씀바귀다. 같은 종류 꽃이라도 나라마다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것은 꽃을 대하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제식물학회가 1867년 마련한 '식물명명(命名)규약(ICBN)'을 따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규약의 원칙은 세상 모든 식물엔 학술적으로 하나의 이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학명(學名)에는 그 식물이 속한 계통과 식물을 세상에 처음 알린 사람 이름이 들어가 있다. 한번 ICBN에 오르면 호적 이름처럼 바꾸기 힘들다.


	[만물상] 日帝가 지은 꽃 이름
▶천리포수목원의 정원에는 설립자인 고(故) 민병갈(Carl Miller) 흉상 옆에 나무가 하나 서 있다. 수목원에 있는 식물 1만5000여 종 가운데 선택된 이 나무는 완도호랑가시나무다. 민병갈은 1978년 완도에 자생식물 탐사를 갔다가 이 나무를 처음 발견했다. ICBN에 나무 이름을 올릴 때 원산지 'Wando'와 자기 이름 'Miller'를 새겨넣었다. 자식이 없던 민병갈은 "식물학도에겐 일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영예"라며 죽을 때까지 완도호랑가시나무를 자식처럼 사랑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만 자생해온 토종 식물은 400여종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가운데 모데미풀, 섬노루귀, 봉래꼬리풀 등 우리 토종 식물이지만 일본인 발견자 이름이 들어간 식물이 절반이 넘는다. 우리가 근대적 식물 분류법이나 학명이란 걸 알기 전에 일제시대 일본 학자들이 먼저 ICBN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더욱 고약한 것은 우리 고유 식물의 계통을 표시하는 데 조선 침략 원흉들의 이름을 넣은 경우다.

▶문화재제자리찾기 대표 혜문 스님과 식물학자·역사학자·예술인들이 조선 주재 초대 일본 공사였던 하나부사(花房) 이름이 들어간 '금강초롱꽃', 초대 조선 총독으로 무단통치를 폈던 데라우치(寺內) 이름이 들어간 '평양지모'의 학명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쉽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가 우리 고유의 이름과 문화를 제멋대로 하려 했던 역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 식물 이름, 마을 이름 바꾸기에서 창씨개명에 이르기까지. 그게 어디 한두 가지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