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도시바 야채..

오완선 2015. 1. 24. 14:17
입력 : 2015.01.24 02:58 반도체 공정 활용 도시바 야채, 車 조립 방식 응용한 도요타 쌀 日, 제조업의 기술과 자본으로 농업에 새바람, 해외로 진출 우린 농사를 농민 전유물 취급… 聖域 허물어야 경제 설 수 있어 송희영 주필 '여기에 당신이 모르는 파나소닉이 있다.' 두 달 전 일본 경영인들이 많이 보는 잡지에 실린 광고다. '자연보다도 야채에 쾌적한 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폭염, 장마, 폭풍우… 자연이 언제나 농작물에 최적 환경을 제공하는 건 아닙니다'라는 설명이 이어진다. 전자 회사의 광고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파나소닉은 창업 96년 만에 2014년 농업 분야에 본격 진출한 모양이다. 파나소닉이 내놓은 상품은 비닐하우스 안의 빛과 물, 바람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솔루션이다. 이 솔루션을 활용하면 시금치를 연간 8번 생산할 수 있다. 종전의 비닐하우스에서는 잘해야 4~6번 생산했다. 파나소닉은 날씨에 관계없이 시금치를 제조해 생산량을 최대 2배까지 늘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제조업체의 말단 현장을 보도하는 '닛케이 모노즈쿠리(물건 만들기)'에 실린 특집 기사는 더 자극적이다. 도시바는 작년 9월 요코스카에 새 공장을 가동했다. 농약을 쓰지 않고 인간에게 해로운 균(菌)을 제거한 야채를 대량생산하는 곳이다. 과거 플로피 디스크를 뿜어내던 공장 건물 4층을 개조해 식물 공장을 세웠다. 온도·습도·이산화탄소는 반도체 공정의 클린룸 관리 기술을 그대로 활용해 조절하고 있다. 반도체 기술과 농업의 융합이다. 도시바는 파나소닉보다 한발 더 나갔다. 공장에서 나온 여러 야채를 4㎝ 길이로 잘라 테이크아웃 커피 용기에 담는다. 신상품은 일본에서 막 인기를 끌고 있는 샐러드 카페와 편의점에 공급된다. 생산 과정에 흙은 없다. 반도체 만들 듯했으니 잡균(雜菌)이 비집고 들어갈 틈새도 없다. 농약도 쓸 필요가 없다. 청정 상태에서 성장한 야채라 물로 씻을 일도 없다. 소비자는 입맛에 맞는 드레싱만 하면 그만이다. 농사에 제조업 기술이 파고드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저스트 인 타임(JIT)'이라는 도요타 생산 방식을 쌀농사에 도입했다. 묘판에 볍씨를 뿌리는 일부터 모내기를 거쳐 수확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자동차 만들어내듯 관리한다. 그 결과 자재비는 25%, 인건비는 5%씩 절감했다. 일본이라고 대기업이 농업에 진출하는 움직임에 반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 정부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몹시 골치 아픈 걸림돌 중 하나가 농산물 개방 문제다. 농민 단체들은 개방 반대 시위를 벌인다. 그렇지만 농민은 늙어가고 농촌에 젊은이는 줄고 있다. 놀고 있는 논밭은 넓어진다. 신기술 개발 투자가 이루어질 리 없고 자본력도 형편없다. 한국 농업과 일본 농업은 똑같은 병을 앓고 있다. 그러나 국가가 내놓은 처방은 딴판이다. 우리는 농업에 기업 참여를 금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기업에 길을 열어주고 있다. 기업이 농업 법인에 참여하고 농지도 장기 임차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제조업의 경영 능력, 자본·기술력이 농업에 새바람을 넣고 있는 것이다. 농업의 공업화이고, '기업 농업'의 등장이다. 일본의 '기업 농업'은 두 갈래로 확장하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홋카이도에서 혈당(血糖) 수치를 낮춰주는 양파를 대량생산하기 시작했다. 당뇨병에 좋은 토마토를 내놓은 회사도 있다. 인간의 몸에 좋은 기능성 야채를 속속 개발하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흐름은 해외 진출이다. 후지쓰는 터키에서, 미쓰비시화학은 홍콩에서 식물 공장을 가동하고 있다. 아직은 기업 농업이 크게 남는 장사는 못 된다. 하지만 그들은 곧 100억명에 이를 세계 인구의 증가 그래프를 유심히 보고 있다. 우리 헌법 121조는 '국가는 농지에 관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이 달성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로 돼 있다. 농업은 농민의 전유물이라는 것이 누구도 깰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농민은 건들지 마라' '대기업이 웬 토마토 농사냐' 이런 금기(禁忌)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것이 농민 단체를 수백 개 난립시킨 출발점이자 수많은 농업 관련 관청과 공무원을 먹여 살리는 철밥통이다. 우리가 이러는 사이 일본의 '기업 농업'은 저 멀리 앞서 갔고 해외에서 시장을 넓히고 있다. 어디 농사뿐인가. 우리 국토 가운데 64%가 산지(山地)다. 산지 개발을 막는 법은 최소 20개에서 최대 30개에 달한다. 국토의 49%는 아토피 치료에 좋다는 치유(治癒)의 숲으로 개발할 수도 없는 철벽 감옥 안에 갇혀 있다. 잡초와 잡목만 무성하다. 박근혜 정부는 착각하고 있다. 서울 용산에 50층짜리 빌딩 몇 개 올리고 채울 수도 없는 산업단지를 늘리는 식으로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는 듯하다. 정권 실세들 주변에는 그걸 기대하는 사람들만 북적인다. 한국 경제는 벌써 그 단계를 지났다. 민둥산을 없앴다는 데 만족하지 말고 잡초를 치운 뒤 새로운 숲을 꾸며야 한다. 70년 동안 우리가 겁내며 건드리지 못했던 성역(聖域)을 하나둘 허물지 않고서는 다시 일어설 수 없다. 지난 2년 한 것을 보면 가야 할 길을 깨치지 못하고 남은 3년을 보낼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