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릴리는 성생활에서 남성 67%, 여성 73%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약간 받는다고 했다. ‘어땠어? 좋았어? 느꼈어?’ 이거 분명히 남편과 아내에게 스트레스다. 거사를 치른 후 남편은 아내가 오르가슴을 느꼈는지 궁금해 죽는다. 남편은 반드시 아내에게 오르가슴을 느끼게 해드려야 한다는 책임감에 사로잡혀 강한 남자 콤플렉스에 시달린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파트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87%로 높다. 그러나 파트너의 성적 불만족에 대한 우려는 호르몬 조절 기전에 영향을 줘 성욕까지 주저앉힌다.
눈 위에 서리를 더하듯(雪上加霜) 여성의 만족을 위해 사정을 최대한 늦춰야 한다는 책임감은 삽입 때마다 남성을 짓누른다. 성 반응은 대부분 부교감신경의 지배를 받지만 유독 사정 현상만은 교감신경의 지배를 받는다. 교감신경 기능이 지나치게 상승된 상태가 바로 불안과 스트레스인데, 이때 조루로 이어진다. 남편은 질 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돼서 벌써 좋아 죽겠는데, 내려다보니 아내는 아직 끓기는커녕 김도 안 난다. 아내가 좋아하는 꼴은 보고 싶어 시간은 끌어야겠지만 기어 나오는 걸 틀어막을 수는 없고 에라 모르겠다 쏟아내고 나서 ‘미안하다 다음에 잘할게’라며 뻐꾸기를 날린다. 스트레스를 팍팍 받으면서.
스트레스를 느끼면 대뇌피질의 강력한 억제 반응이 일어나 성 활동 중추의 기능이 떨어지고 남성호르몬 분비가 억제된다. 당연히 성기능에 적신호가 온다. 또 이는 체내 유해산소 분비를 증가시켜 혈관 내피세포를 손상시키고, 자율신경계 균형을 깨뜨리면서 말초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하게 한다. 이로 인해 오그라든 음경은 다 쓴 풀자루처럼 축 늘어져 일어날 기미가 없다.
이에 못지않게 여자도 오르가슴을 느끼는 척 연기해야 하는 스트레스로 짜증이 난다. 남편에게 자주 듣는 말이자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느꼈냐’는 말이다. 자꾸 물으니 온몸을 뒤틀고 괴성을 지르면서 가짜로 할리우드 액션을 취하는데, 이젠 그 짓도 지친다. 오르가슴을 못 느끼는 아내는 남편을 기쁘게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에 자신도 흥미를 잃어버리고 심지어 성 혐오증까지 생기게 된다.
바이엘쉐링제약 조사에 따르면 파트너에게 만족감을 주기 위한 배려 수준과 관련 한국은 유럽 평균(96%)과 아시아 평균(91%)보다 떨어지는 87%로 비교 대상 국가 가운데 최하위였다. 성관계할 때 파트너에 대한 배려는 형편없으면서, 파트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만 높은 앞뒤가 안 맞는 웃기는 결과다. 남성들은 그저 남보다 섹스를 더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려 섹스의 질보다 횟수를 늘리는 데 집착하고, 여성은 이런 태도에 불만을 가지면서 부부 모두 성생활에 스트레스 마일리지만 차곡차곡 쌓고 있다.
삶의 무게 때문에 울고 싶은 남편에게 성생활은 또 하나의 스트레스다. 오르가슴은 섹스의 목표가 아니라 하다 보면 얻어지는 보너스일 뿐이다. 느끼면 좋고 안 느껴도 남편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내는 삶의 활력소가 된다. 을씨년스러운 늦가을에 서리 맞은 배추처럼 축 처진 남편에게 꼭 필요한 것은 고슬고슬하게 갓 지은 따끈한 밥상이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