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2/여행

섬진강 2.

오완선 2015. 4. 8. 16:43

일러스트레이션 이림니키
곽병찬의 향원익청(香遠益淸)
김동리는 쌍계사 매화가 좋다길래 동무들과 길을 나섰다. 화개천이 섬진강에 합류하는 쌍계사로 오르는 길목에 화개가 있고, 마침 장이 섰으니, 고이 지나칠 위인들이 아니다. 술 한잔 따르다 끝내 육자배기를 참지 못하던 주모 사연을 가만둘 리 없다. 구구절절 풀어낸 것이 소설 <역마>였다

섬진교가 지척이다. 경상도 땅 하동과 전라도 땅 광양이 만나는 곳. 그 너머는 모래톱도 없고, 왕버들 대나무 숲도 없다. 발길을 떼지 못하던 섬진강도 결국 바다에 이른 것이다. 육자배기 흥타령 가락이 바람에 섞여 사라지듯, 섬진강이 안고 있던 그 모든 것이 바다로 스민 것이다

금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드는 강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떠내려오는 물길이 꽃잎으로 하얗다. 백운산 정상에서 뻗어내린 두 산줄기에 안긴 산마을 평촌, 서동, 동동엔 꽃구름이 덮었다.

예니레 전만 해도 강 언덕 매실밭엔 꽃그늘이 제법이었다. 코끝으로 슬그머니 스친다는 매향으로 정신이 아뜩했다. 달은 상현, 이미 백운산 꼭대기에 걸려 있었다. 하나둘 떠오르던 별들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강이 잠드는가 싶더니, 하늘에 은하수가 흐르는 것이었다. 지상의 꽃들이 하늘의 별이 되고, 땅의 눈물이 하늘의 은하수로 흐르는 시간.

안으로만 흐른다더니, 과연 섬진강은 상류에서나 하류에서나, 소리도 없고 포말도 없었다. 회문산이 토해내는 안정천과 구림천이 합류하는 곳에서나 잠시 어깨를 들썩일 뿐 곧 잠잠했다. 진메마을 앞에선 얼마나 게을렀던지, 한참 뛰어놀 흑염소 새끼조차 풀밭에 등을 부비며 눈만 꿈벅거리고 있었다. 구담마을 벼랑을 치며 내룡마을을 휘감아 돌 때 잠시 물거품이 일었지만, 장구목에 들면서 다시 조용해졌다.

60~70년 전 회문산으로 쫓겨나고 다시 지리산으로 쫓기던 산사람들의 발길도 그랬을 것이다. 돈 많은 늙은이 첩실로 팔려가는 누이의 발걸음도 그랬을 것이고, 병들고 늙은 부모 두고 서울로 품 팔러 가는 남정네의 발길도 그랬을 것이다. 가다가 서고, 또 가다가 돌아서고, 어깨를 들썩이다가 또 가고…. 그러나 결국 흘러가고 마는 것.

옛날 유대왕 다윗은 보석세공사에게 반지를 주문하면서 이렇게 명했다던가. “승전해 기쁨이 넘칠 때 교만하지 않게 하고, 절망에 빠졌을 때 좌절하지 않게 할 문장을 새겨 넣으라.” 세공사는 왕자 솔로몬에게 물었다. 솔로몬은 이런 글귀를 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전날은 청계동 계곡이 멀리 보이는 강 마을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강은 향기롭고 산은 아름답다는 순창의 향가마을을 지나고, 온갖 이름이 새겨진 강변 들판을 가로질러 다다른 남원 석촌마을 초입이었다. 이편은 원대머리, 누룩오리, 큰언덕, 큰뱀, 피리뱀, 구정 들이고, 저편은 뱃길, 홍원평, 섬, 방천, 신구절 들이었다. 강은 노을의 강, 들 또한 노을의 벌판이었으니, 크고 작은 들과, 깊고 얕은 호소가 저마다의 색깔로 타오르고 있었다.

청계동 계곡을 벗어나 곡성 들판, 횡탄정을 지나 다시 계곡으로 들어서면, 강 저편 산비탈을 타고 전라선 철길이 게으르게 나 있다. 울타리 없다는 가정마을 다음 역은 압록. 저편으로는 천덕산 공방산 호봉산이 말처럼 내달리고, 이편 역시 무명봉들이 질세라 숨가쁘게 달리던 것들이 강을 넘지 못하고 우뚝 멈춰선 곳, 그 비탈에 압록은 있다. 흐르지 않을 것만 같던 강은 벌써 300리 길을 흘러온 것이다. 그곳에서 섬진강은 보성강을 받아들여, 시름을 털어냈는지 한결 가벼워졌다.

달빛과 별빛이 텐트에 매화를 치고 있었다. 가끔씩 나무는 부르르 떨었고, 그때마다 꽃잎이 흩어져 사라졌다.

한낮의 섬진강은 적요했지만, 그 새벽은 소란했다. 강 저편인가 이편인가, 도량석이 울리자 장닭 한 놈이 높이 홰를 쳤다. 그러자 강 마을 이편저편의 장닭들이 일제히 목청껏 울어댔다. 새벽예불이 끝날 때까지 소란이 계속됐다. 직박구리 떼가 대나무 숲에서 바글바글 울어대고, 산에는 휘파람새, 강변엔 청호반새가 지저귈 때쯤 지리산 자락으로 동이 트기 시작했다. 산비둘기 강을 가로지르고, 가마우지 떼는 물길 따라 비행을 하고, 갈대숲에서 튀어 오른 장끼의 외마디 울음이 하늘을 찔렀다. 그때쯤 몸을 풀기 시작한 물안개가 강 마을을 덮기 시작했다.

남도다리 건너 화개도 물안개가 자욱했다. 해방되고 난 이듬해던가 그 다음해던가, 소설가 김동리는 쌍계사 매화가 좋다길래 동무들과 길을 나섰다. 화개천이 섬진강에 합류하는 쌍계사로 오르는 길목에 화개가 있고, 마침 장이 섰으니, 고이 지나칠 위인들이 아니다. 남의 인생 길 훔쳐내는 게 소설가의 팔자였으니, 술 한잔 따르다 끝내 육자배기를 참지 못하던 주모의 사연을 가만둘 리 없다. 구구절절 풀어낸 것이 소설 <역마>였다.

‘우수 경칩도 지나, 청명 무렵의 비가 질금거릴 즈음’이었으니, 때는 꼭 지금이었다. ‘(옥화의) 주막 앞에 늘어선 버들가지는 다시 실같이 푸르러지고, 살구 복숭아 진달래들이 골목 사이로 산기슭으로 울긋불긋 피고 지고’ 하는 중이었다. 계연을 떠나보내고는 1년째 앓아누워 동리 사람들이 ‘다시는 회춘하지 못하리라’ 안타까워하던 성기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 것도 그때였다.

그런 성기를 앉혀놓고 어미 옥녀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37년 전이었다. 장터 주막에 머물던 남사당패 우두머리는 주모에게 옥녀를 잉태하고는 훌쩍 떠났다. 어미는 그런 역마살 낀 남정네를 기다리다가 세상을 떴고, 주막을 이어받은 옥녀는 떠돌이 중에게 씨를 받아 성기를 낳았다. 1년 전 찾아온 체 장사는 그 옛날 바로 그 남사당패였고, 그의 손에 딸려온, 살구꽃 향기 나는 처자는 영감이 또 어디선가 얻은 딸 계연이었다.

엿장수로 나선 성기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작년 이맘때 계연이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 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롱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돌아 구례 쪽으로 향했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머니의 주막이 시야에서 사라져갈 무렵 성기는 “육자배기 가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웅얼거리며 가고 있”었다. ‘영산 홍로 봉접비 허니, 옥화 홀로를 허느라고 우쭐우쭐 진달화요, 웃고 피는 목단화라, 낙화는 점점 편편 홍이요, 나는 언제 죽어 꽃이 되며, 우리 님 어느 시절에 죽어 나비 될 거나….’

하동 쪽 평사리엔 소설 <토지> 속 인물 군상의 통한이 대하처럼 흐른다. 금천을 건너 지척인 곳에 죽천마을이 있고, 그 강 건너에 악양루가 있다. 악양 들판이 시작하는 곳이다. <역마>와 달리 <토지>가 그리는 봄은 무채색이었다. “나날이 짙푸르게 달라져 갔다. … 마을의 인심은 하느님 마음씨하고 통한다. 후하고 박한 것은 노상 일기에 좌우되는 것이다. 아직은 논바닥에 물이 질척히 괴어 있었지만… 조급한 농가에서는 아낙들 아이들이 들판을 쏘다니며 벌써 쇠어버린 비름을 뜯고, 나물밥, 시래기죽을 쑤었다.”

김개주에게 겁탈당해 아들(김환)을 낳은 최 참판댁 할머니 윤씨 부인, 동학의 접주가 되었다가 참수당한 김개주, 최 참판댁 종으로 들어왔다가 별당아씨(형수)를 둘러업고 달아난 김환, 병약한 별당아씨는 묘향산에서 죽었다. 그런 할머니, 어머니 밑에서 자란 서희였다. 주인 서희를 사랑하던 길상과 그런 길상을 사랑하던 봉순네, 용이와 월선의 비련, 서희를 연모하다가 자살한 의사 박씨와 그를 가슴에 두고 있었던 서희. 저마다 가슴속엔 통한이 쌓여 있었다.

흐르는 것이 어찌 강물뿐이랴. 사랑도 꿈도 원망도 세월의 강물에 흐르고, 그리움도 기다림도 흐르고, 납덩이 같은 한도 흘러가는 법. 아마도 골짝마다 골물에 실려 오는 그 통한 때문이었을 것이다. 섬진강이 그렇게 쉬이 가지 못하고, 안으로만 흘렀던 것은.

죽천마을에서 오리 거리에 매화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의 한 장면. 죽음을 앞둔 백사 노인은 장님 소리꾼 송화 옆에 눕는다. 건듯 바람에도 혹은 꽃잎이 흩날리고, 혹은 무너져 내리던 날이었다. “꿈이로다. 꿈이로다. 모두가 다 꿈이로다. 너도나도 꿈속이요. 이것저것이 꿈이로다. 꿈 깨이니 또 꿈이요. 깨인 꿈도 꿈이련만 꿈에 나서 꿈에 살고.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흥타령’)

 
섬진교가 지척이다. 경상도 땅 하동과 전라도 땅 광양이 만나는 곳. 그 너머는 모래톱도 없고, 왕버들 대나무 숲도 없다. 발길을 떼지 못하던 섬진강도 결국 바다에 이른 것이다. 육자배기 흥타령 가락이 바람에 섞여 사라지듯, 섬진강이 안고 있던 그 모든 것이 바다로 스민 것이다.

곽병찬 대기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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